장하성·김상조 등의 문재인 정부 참여:
재벌 개혁이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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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고 재벌 개혁에도 앞장서겠다.”
그는 또, 1990년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편, 민주노총은 민주노총대로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 등과 함께, 재벌 체제 해체
박근혜 게이트에서도 재벌 총수들이 정권과 유착해 수백억 원의 뇌물을 갖다 바치고 온갖 특혜를 얻은 것이 드러났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왔다. 이에 대중이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을 해낼 것이라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 역대 정부는 번번이 재벌 개혁을 표방하고 실패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자본과 국가가 구조적으로 상호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 기구가 조세 수입을 충분히 얻으려면 기업주들이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원활하게 뽑아 내야 한다. 그래서 국가 권력이 자본을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재벌 개혁을 목표로 삼는 것은 한국 사회 불평등의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다. 설사 만에 하나 재벌 개혁이 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문재인이 재벌 개혁에서 첫째로 꼽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한 경영’이다. 재벌 총수 세습을 타파하고, 이사회와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소액주주가 경영에 부분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 구조 개선이나 투명한 경영은 자산 소유자들 사이의 공정·공평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문제의식의 발로로, 노동자들에게는 득이 될 게 없다. 재벌의 경영이 투명해지고 주주들의 입김이 세진다고 해서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윤을 감축하면서 정규직 고용을 늘리거나,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재벌개혁론자들은 민영화된 KT를 소액주주들로 구성된 모범적인 기업 지배 구조 사례로 추켜세웠다. 그러나 KT는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수차례에 걸쳐 노동자 수만 명을 해고했고,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실적 압박으로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성과연봉제나 저성과자 퇴출제 같은 노동개악이 KT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결국 지배 구조 개혁은 설사 성공하더라도 재벌 총수 일가 수백 명이 갖고 있는 권력을 금융 자산가 수만 명에게 확대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재벌개혁론을 내세운 NGO들이 펼친 소액주주 운동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곳들도 사실상 주식시장의 큰손들과 외국계 펀드들이었다.
물론 한국의 재벌들은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면서도 비정규직을 대거 고용하는 등 한국 사회의 양극화 심화에 일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3백 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형태 공시결과를 보면, 대기업이 고용한 노동자 4백73만 7천 명 가운데, 기간제와 간접고용을 합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는 1백83만 1천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8.7퍼센트에 달했다. 특히, 기업 규모가 클수록 간접고용 비율이 높았다. 5백 인 미만 기업의 간접고용 비율은 14퍼센트였지만, 1천~5천 명 기업은 18.4퍼센트, 5천 명 이상은 26.6퍼센트였다.
그러나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찾지 않고, 재벌과 같은 자본의 특정 조직 형태나 소유 구조에서 찾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진단이다. 세계 각국에는 미국식, 일본식, 독일식 등의 서로 다른 기업 소유 형태가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기업들도 모두 비정규직을 늘리며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BMW
이처럼 재벌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도 비정규직을 늘리며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밝혔듯이, 1970년대부터 이윤율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장애물은 자본 자체이다.”
불평등은 재벌 탓?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의 둘째 과제로 밝힌 것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억제’다. 지주회사 규정 강화, 금산분리 강화 등과 함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들
사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는 재벌개혁 요구는 ‘재벌 같은 독과점이 없다면 시장은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작동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불평등을 완화할 것’이라는 그릇된 전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재벌이 맡아 온 사업 부문을 중소기업이 맡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처지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노동자에게 더 못되게 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최저임금 결정을 코앞에 둔 시기에 중소기업중앙회장 박성택은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 감소로 직결되는 만큼 기업의 지급능력을 고려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앞장서 반대했다.
마찬가지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용접 등 이른바 ‘6대 뿌리산업’을 지원한다며 이 부문에 파견을 허용하려고 하자,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나서서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중소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 하청 단가 인하 같은 대기업들의 압박에 때로 반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재벌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착취해서 이윤을 뽑아 내야 하므로 재벌이 드러내는 여러 문제들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운동 내에서 재벌 개혁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재벌은 공중에 붕 떠서 민중 전체
따라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이 재벌 개혁을 앞세우는 것은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고, 전혀 비효과적인 투쟁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비
재벌에 실질적으로 타격을 주기 위해서라도 재벌과 위계적으로 연계된 착취자들의 조직 체계, 즉 자본주의 체제와 싸워야 한다. 민주노총이 주요 과제로 제시한 최저임금 1만 원,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비정규직 철폐 등을 달성하려 해도 재벌뿐 아니라 중소기업과도 맞서야 한다.
기본적으로, 재벌의 이윤뿐 아니라 소유까지 공격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갖고 있다. 그들이 서로 단결해서 기업주에 맞서 싸우고, 다른 기업과 산업의 수많은 노동자들도 그들에게 연대하는 것, 그리고 이 역도 성립한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부문을 초월해 계급적으로 단결하는 것을 통해 과감하게 자본주의 국가와 대결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지름길처럼 보이는 다른 길은 실은 샛길일 뿐이다.
일상적인 시기에 좀 더 흔한 패턴은 이럴 것이다. 잘 조직돼 있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재벌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에 고무받아 자신들의 처우 개선과 투쟁에 나서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