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교수(이하 인명 뒤의 직함과 존칭은 모두 생략)는 “‘레닌주의’는 신주단지인가?”라는 글에서 1917년 10월 혁명 후 레닌의 급선무는 혁명의 생존이었고, 이를 위해 레닌과 그 당은 집권 초기부터 노동자들의 공장관리가 아니라 중앙집권적으로 산업을 경영하고, 전제정의 비밀경찰을 능가하는 새로운 비밀경찰(체카)을 창설하고, 징병제로 운영되고 옛 제정 군대 장교가 약 83퍼센트나 차지하는 붉은 군대를 엄청난 규모로 편성하는 등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일들을 막 해대야” 했다고 썼다.

전에 김영익의 비판을 받은 에서는 “‘이건 사회주의다, … 이건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없다’는 식의 어법”은 변증법적이지 않은 이분법적 사고로서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며 배척했는데, 이제 이분법적 사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의 구체적 흐름이나 맥락을 무시한 채 주장하는 방식은 여전해 보인다.

예컨대, 레닌은 2월 혁명 직후부터 노동자들의 공장·생산 통제를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즉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대표적 정책으로서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내전으로 말미암아 생산의 정상적 운영이 힘들어지고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자 중앙집권적 산업 경영을 통해서라도 열강의 침략을 물리치고 내전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막 해댄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조처들을 취했던 것이다.

박노자는 이런 구체적 상황들을 역사적 맥락과 흐름 속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일면적으로 평가하면서, 무엇보다 레닌이 그런 최악의 국내외 상황에서 악전고투한 것이 바로 사회주의를 지켜내려는 노력이었음을 간과한다. “레닌과 그의 당이 제정러시아 국가를 인수인계하여 몇 배로 보강시킨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몇 줄 뒤에서 “제정 시절의 봉건제(황제, 귀족, 귀족들의 농장, 국교 따위)는 흔적 없이 날아갔”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레닌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인수해서 몇 배로 강화했다는 것인가? 그래서 박노자는 이렇게 거의 전지전능한 “레닌을 대단히 존경”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박노자야말로 레닌을 신줏단지 모시 듯하는 게 아닌가 싶다.

스탈린이 1928년에 위로부터 반혁명을 통해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확립했다고 보는 견해를 박노자는 이른바 ‘클리프주의자들’의 ‘정치신학적 신조’라고 암시하지만, 스탈린이 러시아 혁명의 성과를 파괴한 후 혁명의 이상과 정반대 되는 일당독재 체제를 수립했다는 주장은 토니 클리프의 책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결코 ‘클리프주의자’가 아닌 체코슬로바키아인 미할 라이만(Michal Reiman)도 《스탈린주의의 탄생》(The Birth of Stalinism: The USSR on the Eve of ‘the Second Revolution’, I. B. Tauris & Co., 1987)이라는 책에서 비슷한 주장을 하는데, 라이만은 1930년 러시아에서 코민테른 간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서베를린으로 망명했지만 대다수 동유럽 망명객들과 달리 모종의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사람이다.

구체적 상황 무시

아무튼 박노자는 역사학자를 자처하면서도 1920~30년대 소련의 역사와 러시아 혁명의 부침을 구체적 상황과 맥락 속에서 분석하거나 파악하지 않는다. “사실 이미 1920년대 초반에 공고화된 당/국가의 틀들이 스딸린 집권 이후에도 계속 계승돼온 거”라고 말하는 박노자는,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를 낳았으므로 레닌에게 원죄가 있다고 보는 서구의 냉전 우파와 근본적으로 비슷한 러시아 혁명사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파와 도매금으로 욕 먹기 싫어서인지는 몰라도 “레닌을 대단히 존경”한다고 말하는 데서 더 나아가 아예 스탈린 시대를 칭송하는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나는 박노자가 신봉하는 불교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자비를 스탈린과 그의 시대에 베푸는 것은 정말 아닌 듯하다.

“스딸린의 공포통치 등 엄청난 곡절을 겪은 뒤에 쏘련에서 생겨난 사회는 사람으로서 살기에는 오늘날 대한민국보다 훨씬 좋은 사회 … 완결된 복지국가 …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경쟁 대신 협동적인 관계가 지배적이었[고] … 이런 차원에서는 … 오늘날 … 한국 내지 서방 자본주의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었”다는 구절을 읽다 보면 박노자를 스탈린주의자나 스탈린 지지자로 오해하더라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성싶다.

박노자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사회로 돌아갈 수만 있었다면 저는 당장에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박노자는 국내 통행증 없이 무단으로 거주지를 이탈한 사람으로 몰려 강제 노동 수용소에 구금되는 처벌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박노자가 “레닌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 없는 사회 형태들 … 을 억지로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견강부회를 저질렀다는 점을 알아도 저는 레닌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첫째로 레닌을 완전히 곡해하고 있다는 점과 둘째로, 박노자의 이론적·정치적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레닌은 언뜻 임시방편의 미봉책처럼 보이는 조처를 취할 때조차 어떤 전망 속에서 어떤 이론적 근거로 그런 조처를 취하게 됐는지를 분명히 밝히려 했다.(예컨대, 신경제정책이 어떤 역사적 맥락과 국내외 정치 상황 속에서 시행되는지를 분명히 하면서 그것이 전략적으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임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이 1927년에 국내외 위기 상황에서 실용적으로 대처하다가 결국 반혁명으로 나아간 것과는 완전히 달랐을 뿐 아니라, 오늘날 ‘이론 따로, 실천 따로’ 노는 대다수 학술적 마르크스주의자나 좌파 대학교수들과도 달랐다. 레닌의 유명한 모토 하나가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였고, 닐 하딩이 《레닌의 정치 사상》(Lenin's Political Thought: Theory and Practice in the Democratic and Socialist Revolutions, Haymarket Books, 2009)이라는 책에서 매우 강조하는 바가 레닌은 평생토록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하딩은 레닌이 정치 생활의 결정적 순간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근거한 전략·전술 개념들을 수립하려 했고, 신중하게 도출된 전망과 현실의 경험을 비교해 보면서 재평가하고 적절하게 수정하려고 애썼다고 지적한다.

레닌은 또, 정치 경력의 결정적 시점에서 항상 탐구에 투신했다. 러시아 자본주의의 성격, 러시아 사회의 계급 구성, 무장봉기 문제, 혁명적 전략·전술, 철학과 변증법, 제국주의와 민족자결권, 마르크스주의와 국가 등 레닌의 탐구 주제는 끝이 없었다. 그런 탐구를 통해 레닌은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자신이 제안하는 볼셰비키당의 전망에 이론적 기초를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레닌은 단지 전술적으로 영리한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방법을 당면 과제에 적용하는 데서 뛰어났고, 자신의 이론과 실천을 발전시키고자 계급투쟁 자체에서 끊임없이 배울 만큼 충분히 세심하고 개방적이었다는 것이 하딩의 평가다.

한편, 레닌이 사회주의와 무관한 것을 억지로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견강부회를 저질렀다면 그는 십중팔구 거짓말쟁이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런 사람을 대단히 존경한다는 것은 분별 있는 사람의 자세는 아닐 듯하다.

비판적 검토

마지막으로, 박노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즉 정성진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이정구의 글을 읽고 “상당한 충격에 휩쌓였습니다[원문 그대로]”라는 대목에서 나는 솔직히 상당한 짜증에 휩싸였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박노자의 말처럼, 정성진은 “수업하면서 맨날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발표하면서 하신” 것일 테고, “역사학자에게는 맑스도 레닌도 무엇보다는 비판적 검토의 대상물”이고, “자기 모순들의 극복 과정이야말로 사상적 발전의 원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국제 노동계급 혁명의 이론과 실천(마르크스주의)을 발전시키고자 맨날 하는 토론과 논쟁의 일환으로 정성진의 이론적·실천적 문제점을 비판했을 뿐이다. 그것은 레닌의 무오류를 전제한 채 정성진이 그 무오류의 신화를 포기했다고 비난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세계 변혁의 행동 지침으로 이해하는 우리에게는 마르크스와 레닌뿐 아니라 정성진과 그 밖의 누구라도 “비판적 검토의 대상물”이다. 그리고 정성진이 자기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이야말로 그의 사상적 발전의 원천이므로 우리가 그의 자기 모순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그에게도 도움이 될 테다. 그런데 무슨 “상당한 충격” 운운하며 호들갑을 떠는지 의아할 뿐이다.

당장 정성진은 “《국가와 혁명》 어디에도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 즉 자신들의 행동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노동자 계급에 관한 개념을 찾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박노자는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적 사회의 청사진을 그렸”다고 말한다. 박노자는 정성진의 자기 모순을 극복하도록 도와서 “학계 동료”의 사상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언필칭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임제선사의 법어를 비판 정신의 표어처럼 내세우는 박노자가, 우리가 정성진을 죽이는 것은 고사하고 요모조모 ‘따져 봤을’ 뿐인데도(비판하다를 따지다로 바꿔 쓰는 순우리말 논리학 책도 있다) 그렇게 충격까지 받는 것은 영 아닌 듯하다. 이 글은 결코 그런 충격을 의도하지 않은 글이니 안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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