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의혹 검증 때문에 정권 초 (인수위 과정이 없기에 더욱) 신속해야 할 내각 임명이 늦춰진다는 불평 때문에 문재인은 공약인 소위 5대 인사 원칙을 삭감해야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 안보실 제1차장으로 내정됐던 김기정을 추문을 이유로 갑작스레 사퇴시켜야 했다.

강경화는 “공직자로서 판단이 매우 부족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딸을 이화여고에 진학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이 사실은 문제가 특권층의 부패 문제임을 보여 준다. 이화여고는 아마 고위층 자녀들을 유치해 학교 위상 등을 높이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

청문회에서 답변하는 강경화 

물론 부패로 말할 것 같으면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새누리당 계승 정당들과 조중동 등 주류 언론이 딴지를 거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불과 한 달 전에 그들 중 다수는 돼지 발정제로 강간을 공모한 작자를 편들며 대통령으로 뽑자고 했던 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이 바로 부패 때문에 집권 여당의 지위에서 강제로 쫓겨나거나 야반도주하듯이 도망나온 자들이다. 한때 “아우라가 1백 개의 형광등이 켜진 것 같다”며 박근혜에게 듣기에도 민망한 아부를 떨다가 그가 권력 투쟁에 밀리자 폭로 보도로 돌아선 것도 그들이다. 이런 자들이 “민주공화국”의 국회의원과 공공 언론이라고 하는 건 너무나 역겨운 일이다.

따라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구 여권의 악취나는 위선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파의 방해가 이 정부의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촛불 덕분에 집권한 정부가 가장 추진력이 있을 때인 정권 초에 촛불의 기대에 못 미치는 행태들을 슬금슬금 시작하는 것을 진보·좌파는 비판할 자격이 있다.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두드러진 노무현 정부 시즌2

문재인 정부의 초기 인사를 보면 정말로 노무현 정부 시즌2 냄새가 난다. 특히, 한국 지배자들의 위기감이 큰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그런 듯하다.

경제 분야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 정책의 얼개를 세우고 주도했던 관료들이 먼저 나서고 있다. 경제부총리, 청와대(총무비서관), 국무총리실(국무조정실장) 등은 노무현 정부에서 나란히 청와대 정책실장을 거친 박봉흠·변양균의 경제기획원 라인들이다.

외교·안보 라인도 그렇다. 외교부장관 후보자 강경화는 김대중·노무현 시절 외교부에서 중용됐고, 노무현 정부가 당시 외교부장관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선거 도전을 지원할 때, 외교부 간부로서 선거운동을 도왔다. 이후 반기문이 사무총장이 된 유엔으로 아예 자리를 옮겼다.

선택

유임된 외교부 제1차관 임성남, 새로 임명된 국방부 차관 서주석 등이 모두 노무현(과 문재인) 시절 청와대를 거쳤고, 서주석과 국민안전처 차관 류희인은 대통령 자문 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실무진이기도 했다.

이런 인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안보 노선과 기조가 노무현 정부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즉, “자주”라는 포장지를 입힌 친제국주의, 복지와 친노동의 냄새는 피우지만 결국 기업주들을 위한 경제·노동 정책들 말이다. 노무현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 지원 파병, 연금 개악, 비정규직 확대를 고착화한 법 개악, 한미FTA 추진 등을 민족주의적 언사와 모호한 진보적 미사여구와 함께 추진했다.

특히, 한미FTA의 전격적 추진은 (지금은 문재인 정부 지지에 올인하는 듯한) 온건 진보파들도 정권에 등돌리고 격하게 저항하게 만든 일이었다. 한미FTA는 대미 종속 문제가 아니었다. 시장 경제의 확대를 통한 국내 산업과 일자리의 친기업적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었다.

노무현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이런 선택을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했다.(선택과 불가피성은 양립 불가능하다.) 그는 그때 심지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노무현은 대연정 제안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충정”이라고 변명했으나, 그 ‘진정성’은 좌우의 모두에게 의심받았다. 노무현 정부가 지역주의 타파를 중시한 것은 여당의 재보선 참패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은 배신당한 지지층의 실망과 환멸이 낳은 결과였다. 오히려 문재인이 2006년 부산에서 “노무현 정부는 부산 정권”이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노동자·민중은 자신의 삶이 지역주의 때문에 악화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노무현은 정권 초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여당을 만들려다가 첫해를 까 먹고는 또다시 집권 여당을 강화하려는 꼼수로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이번에는 더 큰 이반과 환멸에 직면했다.

이런 배신적인 선택의 결과로 자신감이 증대한 기업주들과 우파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더해 노무현의 배신이 낳은 정치적 환멸이 이명박 정부, 더 길게는 새누리당 정권 9년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민주당 표 “개혁”의 상한선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흙수저’ 대통령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의 존재가 지배계급의 차선책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은 노무현과 민주당의 확고한 친자본주의적 성격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비록 지배계급의 전통적인 제1 선호 정당은 아니지만(그것은 단연 새누리당이었다), 제2 선호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누리당과의 차별화도 필요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가이드라인 삼아 충실히 따르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것에 늘 그 스스로 큰 두려움을 느꼈다. 가령 노무현은 퇴임 직후인 2008년 이명박에 반대한 촛불운동에 정권 퇴진은 지나친 요구라며 자제를 호소했다.

이 점은 새누리당 정권을 중도 퇴진시킨 대중 운동 덕분에 운동의 후미 부위인 문재인과 민주당이 집권한 일과 관련해 꽤 시사적이다. 대중 운동의 뒷받침을 받아 집권했다는 사실은 정권 초기에 개혁 동력일 수도 있지만, 지배계급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는 압력과 충돌한다. 바로 이런 모순 때문에 문재인의 행보도 결국 어떤 한계를 돌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의 실체가 드러나는 안보 문제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에 관한 허위 보고 색출 소동은 결국 국방부 정책실장이던 중장 위승호를 육군으로 돌려보내는 미봉책으로 끝났다. 이것도 위에서 말한 문재인 정부의 ‘가이드라인’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청와대 안보실장 정의용은 사드 배치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미국 정부에 약속했고, 우파가 반발하는 사드 배치 관련 환경영향평가도 이미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와 레이더가 계속 가동되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사드 배치는 한국 지배자들이 안보 위기를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돌파하겠다는 생각에서 강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파는 역사적으로 미국이 해 주던 구실을 중국이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미국이 한국을 핵심 동맹의 지위로 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박근혜가 탄핵돼 수감돼 있는 와중에도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가 진행됐던 것이다.

문재인의 “전략적 모호성” 발언 등은 지배계급 다수의 이해관계와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강경화가 청문회에서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간 합의는 지키는 것이 국제 사회의 관행이라는 말도 덧붙여 모호하게 답변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모순적인 문재인 ‘애국 통합론’을 그냥 받아들이면 노동운동에 족쇄가 될 수 있다 

애국으로 좌우 통합?

문재인은 진보든 보수든 모두 “애국”의 반열에 올려 한국의 “이념 갈등”, “증오와 대립”, “세대 갈등”을 끝내고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자]”고 한다.

같은 날 오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정권 인수위 구실을 대신하는 기구)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 비전 키워드로 ‘정의’와 ‘통합’을 설정하고, 조만간 그에 맞는 5대 목표를 정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날카로운 갈등 속에 집권한 정부가 집권 초에 “국민 통합”을 강조한다. 새 정부를 중심으로 국가적·국민적 단결을 하자는 것인데, 사실상 새 정부를 전폭 지지해 달라는 뜻이다.

이는 정부의 초기 공약 집행에 힘을 실어 주기도 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표방하기 때문에, 지지층의 지지를 받은 정책을 일방으로 실행해선 안 된다는 자기제한성도 함축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처럼 강력한 대중 운동의 (썩 흡족하지 않은) 결과물로 등장한 정부의 ‘통합’론은 개혁(적폐 청산)이 그다지 날을 세우지 않을 것임을 구 여권에게 안심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럼에도 정권의 정당성 문제 때문에 적폐 청산과 정의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통합론은 과거 박근혜가 대선과 정권 초에 내세운 “1백 퍼센트 국민 대통합”과 다르다. 박근혜는 반대자들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기 정부 뜻대로 하는 걸 “국민 대통합”이라고 우겼다. 그래서 주류 언론을 장악해 비판 목소리가 안 나오게 하고 민주적 권리를 무시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반발을 억눌렀다. “1백 퍼센트 통합”은 권위주의적 사고의 발로였다. 당시 유행한 “1 vs. 99” 담론에 대항해 우파가 반박으로 내놓은 슬로건이었던 셈이다.

“1 vs. 99” 슬로건은 미국 뉴욕 등지에서 벌어진 광장 점거 운동에서 유행해 한국에서도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사회가 부와 권력에서 1퍼센트 특권층과 99퍼센트 민중으로 구분돼 있다며 이런 불평등에 맞선 투쟁을 호소했다. “1 vs. 99”는 포퓰리즘(피억압 민중의 계급 동맹)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계급 특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서도 “1 vs. 99” 구호는 거듭 인용됐다. 퇴진 운동에 참가한 대중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에 크게 분노해 있다는 징표였다.

촛불 계승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은 이런 불만을 어느 정도 정치의 기조에 반영해야 한다. 박근혜는 정권 반대파를 “반(反) 대한민국 세력”으로 취급했다. 문재인은 민주화 운동, 노동자들 모두 “애국자”라고 포용하자고 한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도 한다. 박근혜식 통치가 오히려 국민 분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이런 (포퓰리즘적) 언행은 ‘국가 발전(경제·안보 등 국가적 위기의 극복)을 위한 계급 화해’라는 통치 기조의 일단을 보여 준다. 박근혜의 대결적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방식으로 화해하자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 형식을 통해 노동계급에게 고통 분담(사실은 고통 전담)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포용의 형식을 띤 배제의 협박이다.

이는 친민주당계 지식인들이 특권층의 범주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포함시키는 식으로 “정의”와 “불평등”을 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 대표격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이다. 사실상 조직 노동계급이 임금 등의 조건을 양보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계급 통합이 실제로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담론 상으로도 그렇다. 한국전쟁의 “호국 용사”들의 행위가 애국이면, 그들에게 짓밟힌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애국이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첫 선거였던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한 제주 4·3 항쟁의 정당성은 어떻게 인정될 수 있을까? 백남기 농민을 살인 진압한 경찰의 “애국”과 박근혜를 몰아내 나라를 바로잡자고 생각한 사람들의 “애국”은 공존할 수 있을까? 경제 위기 고통 분담을 명분으로 내세운 사회적 합의 강요를 노동자들이 거부하면 그것은 “비애국”일까?

‘국민 통합’은 “계급 화해”를 강요한다. 그러나 이병철과 전태일을 하나로 묶는 “국민”은 부와 권력의 불평등 때문에 일상적으로 분열해 있다. 적대적 계급 관계는 잠시 봉합되거나 폭력으로 그 갈등이 억제될 순 있어도 영구 화해하거나 통합될 수 없다. 그러니 계급 화해는 봉합과 억제를 일시적으로 뜻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서구의 복지국가 체제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장기 호황이 끝나고 1970년대 중엽 이후 위기로 가면서 지속적으로 해체와 공격의 대상이 돼 왔다. 바로 그런 시스템을 만든 한 당사자인 정부와 기업주들, 공식 정치를 지배하는 정당들에 의해서 말이다.)

실용주의자들에게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와 문재인 모두 “애국 vs 비애국”을 포용과 배제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애국”은 평범한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국가와 체제에 ‘희생으로’ 충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선 수백만 노동계급 대중이 바란 적폐 청산은 지배계급의 기득권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사실상 (약간일지라도) 계급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민 통합”(“계급 화해”)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다. 자신의 계급 기반에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하고 참여(케 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뿐 아니라 파업권을 제약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두 정부에게는 지배계급을 위한 산업(노사관계) 평화와 ‘팍스아메리카나’라는 목적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에게 적폐 청산은 새누리당을 선거에서 심판하는 것(그 당과 대립하는 당에 투표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의’와 ‘통합’은 퇴진 운동에서 분출된 박근혜 정권 청산(“적폐 청산”) 염원에 미칠 수가 없다. 아무리 촛불 혁명 계승 정부, 6월 항쟁 계승 세력을 자처하며 자신들을 포장해도 그 과제는 일관되게 구현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