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호에 실린 조한주 씨의 독자편지는 ‘다함께’의 계급 개념이 성, 민족성, 종교, 지역, 직업, 신분 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계급과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이 그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에는 개인들 사이의 사소한 싸움에서부터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 종교 사이의 비극적인 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익의 충돌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에 바탕을 둔다 해서 이러한 분열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계급 이론가들 가운데서 여성, 종교, 민족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다룬 사람들은 많다. 계급 이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충돌의 기저에 놓인 근본 구조를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분열과 충돌의 양상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조한주 씨는 다양한 분열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분열(계급 분열)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 ‘다함께’의 계급 개념은 “다른 측면들에서의 차이들을 억압하는 ‘개념의 본질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다. 사회가 굴러가는 기초는 생산이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충돌이 모든 갈등 가운데서 가장 근본적이다. 

노동계급의 중요성은 바로 이처럼 생산과정에서 차지하는 객관적 지위 때문이다. 노동계급 중심성을 성·성 지향·종교 등에 따른 억압에 맞서는 운동을 무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 억압과 동성애자 억압, 민족 억압 등에 맞서는 투쟁을 지지해 왔다.

계급 해방이 된다고 여성 해방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은 계급 해방에 대한 협소한 이해를 드러낸다. 관념이 아닌 현실의 노동계급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으로 구성돼 있고,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해방되는 과정은 노동계급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열을 극복하는 과정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특정 억압을 받는 사람들의 ‘자율적’ 운동을 주장하는 ‘정체성’ 정치는 억압을 없앨 수 있는 진정한 사회적 힘을 발견하는 데 실패해 왔다. 억압에 맞선 투쟁과 착취에 맞선 투쟁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는 데서 노동계급이 하는 결정적 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힘이 없는 운동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결국 체제에 흡수되기 마련이다. 1960년대 서구에서 등장한 급진적 운동(여성, 동성애자, 흑인 운동 등)이 1970∼80년대 동안 계급투쟁이 하강하면서 약화되고, 그 운동의 주요 대변자들이 우경화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은 현실의 다양한 운동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운동이 승리하는 법을 알게 하는 데서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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