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미국판 퀴어 퍼레이드)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그동안 자긍심 행진이 대기업과 국가기구의 후원을 받아 온 데 이어 경찰까지 행진에 참가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LGBT+ 중에서도 주변적 처지에 놓인 이들은 소원해지고 있다. 그 배경을 설명하는 미국의 사회주의자 사라 마모조나 벤 아브라함의 글을 김종환 기자가 소개한다.


“정의 없이 자긍심 없다” 위선적인 대기업 웰스파고의 자긍심 행진 참가를 거부하며 웰스파고의 행진 차량을 가로막고 있는 성소수자들 ⓒ출처 Dylan Comstock

6월 10일 토요일 오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42번가에서 열린 자긍심 행진을 성소수자들이 막아섰다. 그들은 “정의 없이 자긍심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 활동을 주도한 세 그룹은 ‘자긍심행진조직위원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LGBT+’는 경찰을 자긍심 행진에 참가하도록 허용한 것에 항의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LGBT+’는 조직위원회가 군대의 후원을 받은 것에 항의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이주민에 연대하는 LGBT+’는 조직위원회가 감옥과 송유관 건설 사업과 이주민 차별 정책을 후원하는 은행의 후원을 받은 것에 항의했다.

이 행동은 지난 몇 년 동안 성소수자 운동 안에서 벌어진 논쟁을 반영한다. 지난해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활동가들이 토론토 자긍심 행진 와중에 연좌 농성을 벌이며, 경찰이 제복 차림으로 행진에 참가하는 것을 중단시키라고 요구했다.

당시 토론토 자긍심 행진 조직자들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이내 입장을 뒤집었다. 이 때문에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연대하는 사람들과, 대기업과 게이 경찰관이 다수 참가해 자긍심 행진의 ‘명망’을 높이는 데 연연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이 논쟁은 세계 곳곳 자긍심 행진이 대기업의 후원을 더 많이 받고 경찰의 참가가 갈수록 흔해지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

워싱턴DC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단체 ‘정의 없이 자긍심 없다’는 이런 흐름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LGBT+ 운동이 차별적 체제와 공모해 퀴어와 트랜스젠더를 한층 더 주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정의 없이 자긍심 없다’는 자긍심 행진이 더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지 말고, 기업과 경찰이 행진에 참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별받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긍심 행진 후원자 목록에 웰스파고 같은 기업들이 있는 것을 보며 깊이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웰스파고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내쫓고 초대형 송유관을 건설하는 다코타 파이프라인 사업을 지원하고,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이용한 약탈적 금융으로 비난받는 기업이다.

특히, 경찰의 행진 참가는 자긍심 행진의 역사적 기원과 충돌하는 문제다. 자긍심 행진은 6월 말을 전후로 열리는데, 이는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스톤월 항쟁은 1969년 6월 28일 뉴욕 경찰의 성소수자 탄압에 항의해 술집 ‘스톤월 인’에서 벌어진 반란이다(아래 기사 참고).


경찰은 성소수자의 친구가 될 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경찰 단속에 항의해 일어난 스톤월 항쟁

미국의 일부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자긍심 행진에 경찰을 참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난해 6월 올랜도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이 준 충격 때문이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끔찍하게도 올랜도 공격의 피해자는 성소수자들이었다. 그러나 경찰을 행진에 참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생각, 즉 성소수자들의 안전을 경찰에게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 미국 트렌스젠더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8퍼센트)이 경찰의 부당한 대우나 괴롭힘을 아주 빈번하게 당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경찰이 성산업 종사자로 간주하며 대하는 일이 잦다고 답한 응답자도 많았다(특히 유색인 트랜스젠더 여성).

그밖에도 경찰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경찰을 끌어들이는 것은 차별받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와 단결을 깨뜨리는 일이다.


제국주의의 “핑크 워싱”에 반대하라

성소수자 해방 운동이 전진하는 데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연대다. 6월 4일 뉴욕에서 열린 제53회 ‘이스라엘 건국 경축 대회’ 가두 행진을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가로막은 것은 바로 그런 연대를 보여 줬다. 이 행진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정당화하려고 이스라엘을 성소수자 권익의 수호자인 양 내세우는 대열이 있었다. 이 행진을 가로막은 활동가들은 이 대열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인종차별을 제도화하는 식민 정착자들의 국가다.

이스라엘의 몇몇 도심지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문화적 공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지 세탁용이다. 이스라엘 사회의 추악한 현실을 가리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악마화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처럼 성소수자의 권익을 약간 옹호하며 자신의 악행을 가리는 행태를 성소수자 활동가들은“핑크 워싱”이라고 부른다.

자긍심 행진에 갈수록 대기업의 참여와 후원금이 느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또한 우리 운동은 미국 경찰이든, 이스라엘 점령자들이든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자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연대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한다.

자긍심 행진이 성소수자 운동이 그동안 이룬 것을 축하하며 앞으로 이뤄야 할 과제를 알리는 자리가 되려면, 기업·경찰·국가기구·제국주의가 참여하고 관여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성소수자 권리 확대와 보호는 위로부터 누군가 해 주리라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아래로부터, 권력에 도전하는 집단적 저항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스톤월 항쟁의 전통은 달랐다

1960년대에 미국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그나마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안식처인 게이 나이트클럽까지 경찰의 일상적 습격·단속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경찰 단속에 항의해 뉴욕시의 한 술집이었던 ‘스톤월 인’에서 일어난 저항은 “게이 파워”의 탄생을 알리는 사건이 됐다.

나중에 스톤월 항쟁으로 불리는 이 투쟁은 흑인과 아시아계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이끌었고, 국가 폭력 종식과 성소수자 생존을 위한 투쟁을 운동의 중심에 놓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긍심 행진은 너무나도 자주 이런 사실을 지워 버린다.

스톤월 항쟁은 천대받는 사람들이 국가 탄압에 맞서 연대를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당시 많은 인종차별 반대 단체들도 스톤월 항쟁을 지지했다.

이런 전통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벌어진 에이즈 활동가 단체 ‘액트 업’(ACT UP)으로 이어졌다. 2014년에 부상한 운동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도 이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의 많은 리더들은 흑인 성소수자들이고, 그 운동은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동시에 성소수자들의 지지를 얻으려 애쓴다.

출처 미국 반자본주의 언론 〈소셜리스트 워커〉 2017년 6월 16일자


온라인 관련 기사 : 한국에서도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과 다국적 기업의 후원과 참여를 허용했다. 이것이 왜 성소수자 운동의 발전에 해로운지를 다룬 기사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과 다국적 기업의 퀴어문화축제 참여는 위선이다’도 같이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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