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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성주 사드 배치 반대와 미 대사관 참여 허용은 병행할 수 없다

6월 24일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에서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보수의 아성’으로 불리는 대구의 번화가에서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감명 깊었다.

축제가 시작되는 1시가 되자 동성로 일대는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고, 퍼레이드를 할 때는 1천 명가량이 참가했다. 지난해에 견줘 분명히 늘어난 규모다. 참가자들은 매우 젊어, 20대와 청소년들이 많았다. 동성로를 지나는 많은 행인들도 우호적인 시선으로 행사와 퍼레이드를 바라봤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행사장 주변에서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는 악선동을 해댔다. 물론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고 축제를 즐기며 때로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혐오 선동을 맞받아쳤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이하 대구퀴어조직위)에는 대구지역의 진보·좌파 단체 45곳이 참가하고 있고, 공동대표단에는 여성, 장애, 노동 단체 등이 포함돼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주 사드 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구는 사드 배치가 강행되고 있는 성주와 불과 1시간 거리이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부스에서 사드 반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성주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지킴이 동남청년단’(이하 동남청년단)은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전부터 축제를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했고, 축제 당일에도 “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쓰인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가했다.

성소수자들에 연대하기 위해 온 성주 청년들(‘성주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지킴이 동남청년단’) ⓒ양효영

동남청년단의 백소현 활동가가 연단에서 발언했다. 연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는 먼저 “성주에선 3백47일째 사드 배치 철회 초를 들고 있다”고 말한 뒤, 영화 〈런던프라이드〉를 보며 느낀 바를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마거릿 대처가 탄광 노동자들을 공격하자, 성소수자들이 노동자들도 자기들이 받았던 폭력과 억압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연대를 하게 됩니다. …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는 그들이 게이·레즈비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후원을 거부하지요. 그러나 소수의 노동조합에서 그들을 받아 줘서 연대하게 됩니다. … 1년 뒤 ‘퀴어 축제’에 광원노조 분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러 오게 됩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제가 연대의 힘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됐고, 우리 나라 성소수자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제가 속해 있는 동남청년단이 참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될 때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성소수자 분들이 오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저희 차례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지난 겨울에 그 부패한 박근혜 정권에 [맞서] 초를 들었던 위대한 나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군대 밖에서 합의 하에 섹스를 했는데 상대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유죄를 받는 사건이 있는 걸 보면, 성소수자 분들이 아직 갈 길이 멀고 외롭고 힘든 투쟁을 하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미루어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제가 힘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드 배치 반대 활동가들의 감동적 연대의 다른 한편에서는 매우 모순된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올해 대구퀴어조직위는 사드 배치를 강행한 바로 그 제국주의 국가 미국의 주한 대사관 참여를 허용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부스를 차리고 연단에서 연설까지 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의 조직위원회가 미 대사관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 기구들의 참여를 허용한 지는 이미 몇 해 됐지만,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미 대사관이 참여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미 대사관 부스에는 트럼프가 ‘성소수자를 보호하겠다’는 위선적인 입발림 말을 한 사진 판넬도 함께 붙어 있었다! 트럼프의 반성소수자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미국의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보면 속이 다 뒤집혔을 법하다.

사드 배치 강행하는 '자유의 나라' 미국?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차려진 주한 미국 대사관 부스. ⓒ양효영

심지어 성주 사드 배치 반대 활동가가 발언한 바로 그 연단에서 잠시 후 주한 미 대사관 공공외교지역총괄담당관이 올라와서 연설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회자는 “자유의 나라 미국, 미국 대사관에서 지지발언을 하러 오셨다. 발언하는 분도 동성부부다”라며 참가자들의 환호를 유도했다.

미 대사관 공공외교지역총괄담당관은 성소수자 문제가 ‘인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루 알다시피 미 대사관의 “인권” 운운은 완전한 위선이다. 당장 한·미 당국은 소성리 할머니들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폭력적으로 밀어내고 사드 배치를 강행한 장본인이다.

왜 미 대사관이 올해 처음 대구에까지 내려와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성주와 지근거리에 있는 대구퀴어문화축제에는 대구·경북지역의 성소수자 단체들과 진보·좌파단체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미국 제국주의가 이 지역에서 한 사드 배치 강행을 물타기하는 효과를 내려는 것이다.

성소수자 운동은 제국주의적 공세를 ‘이미지 세탁’하려는 미 대사관의 위선적 의도에 무비판적으로 동원돼선 안 된다. 이 점에서, 진보·좌파 단체들로 이뤄진 대구퀴어조직위가 미 대사관의 참여를 허용한 것은 크게 아쉬운 대목이다.(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더군다나 같은 날 같은 시각, 서울에선 사드 반대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을 에워싸고 항의를 하고 있었다. 미국 대사관 직원이 “인권”을 운운하며 무대에서 환호를 받는 모습을 본 성주 주민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정의당 성평등부가 미 대사관의 대구퀴어문화축제 참여가 진보인 것처럼 논평한 것도 크게 아쉬운 일이다.

물론 보수 우파의 아성인 대구에서 성소수자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외로움은 이해가 간다. 우파들이 숭배하는 미국의 대사관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우파를 침묵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우파의 기를 살릴 것이고, 결국은 성소수자 운동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관련 기사: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과 다국적기업의 퀴어문화축제 참여는 위선이다’)

성소수자 운동이 미 제국주의의 위선을 가리는 데 의도치 않게 동참함으로써 결국엔 좀 더 진보적·급진적인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운동 주류에 소원하게 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성소수자 운동 리더들은 자기 운동 예외주의를 버리고 사회 전체의 변화와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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