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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가치매책임제’ :
요란한 홍보에 비해 매우 알량하다

문재인 정부는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치매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약했다. 당선 이후에도 비정규직, 미세먼지에 이어 치매 대책을 세 번째 ’찾아가는 대통령’ 이벤트로 홍보했다. 핵심은 ‘치매지원센터’를 현재 47곳에서 2백50곳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추경에 2천억 원가량을 배정하고 이 재원으로 요양보호사, 간호사 등 인력도 늘린다는 방침이다.

노인들뿐 아니라 가족들, 심지어 당장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아닌 사람들조차 치매에 대한 부담은 엄청나게 크다. 기억력과 인지 능력의 장애를 낳는 병이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각종 성격 변화, 우울, 불안, 망상, 환각, 배회, 공격성, 이상 행동, 수면 장애 등 정신행동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문재인이 2012년 대선에 견줘 부족한 공약을 내놓으면서도 치매에 관해서는 ‘국가책임제’ 같은 개혁적 공약을 들고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요란한 홍보와 달리 문재인이 내놓은 대책은 ‘국가책임제’라 부를 만한 게 전혀 못 된다.

치매지원센터는 치매와 관련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각종 정보를(진단을 포함해) 제공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는 기관이다. 물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제공하는 치매 지원 복지가 있지만 그 존재를 알지 못해 마땅히 누려야 할 서비스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치매지원센터가 지금보다 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질의 공공 요양 시설을 대폭 늘리고, 정부가 요양보호사를 대폭 고용해야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출처 서울요양원

그러나 실제 치매 환자 지원 수준이 형편없는 상태에서 정보 제공만으로 개선을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치매 환자가 가족이 아닌 정부나 의료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노인장기요양제도의 적용을 받아 집에서 돌봄서비스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양 기관에 입주(입원)해 보호를 받는 경우다.

그런데 집에서 받는 서비스(재가서비스)는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면 주5일 하루 4시간 이상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누군가 집에 머물러야 하는 셈이고, 없는 경우 종종 사고가 난다. 독거노인의 경우 불안 증상 때문에 밤에 집 밖에 나섰다가 길을 잃거나 경찰의 신세를 지는 경우가 흔하다.

요양 기관의 경우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2.2퍼센트밖에 안 된다. 국공립 비율이 6퍼센트 정도인 어린이집보다 못한 셈이다. 문재인이 방문한 서울요양원은 건강보험공단이 유일하게 직영으로 운영하는 시설인데 정원 1백50명에 대기자만 2016년 기준 8백 명이었다.

민간 시설은 대부분 영세한 업체들로 가족의 처지에서는 그야말로 ‘죽거나 나쁘거나’ 중에 선택해야 하는 일이 흔하다. 그조차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 업체들이어서, 당연히 온갖 부정 수급이 끊이질 않는다. 낸 비용만큼도 못 받는다는 뜻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5년 전국 장기요양기관 1천28곳을 골라 조사했더니, 대상의 75.3퍼센트인 7백74곳에서 2백35억 원의 요양급여 비용을 부당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겨레〉 2017년 6월 4일치) 의사·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고, 실제 환자를 돌보는 50~60대 여성 요양보호사(간병인)의 노동조건은 무척 열악하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방문 요양보호사 27만여 명이 지난해 한 달 평균 76시간을 일하고 57만 원을 받았다.

그나마도 치매가 얼마나 심한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이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독거노인의 경우 지원에서 완전히 배제되기 일쑤라는 뜻이다. 고독사가 늘어나는 까닭이다.

이런 식이니 치매지원센터를 늘려도 일자리는 일부 늘어나겠지만 ‘국가 치매 책임’은커녕 작은 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엄청난 비극을 멈추려면 정부가 제대로 된 요양시설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포로수용소나 감옥을 연상시키는 시설이 아니라 적어도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시설이 필요하다. 많은 독거노인들에게 생활수준의 하락이 아니라 보호를 제공하는 시설이어야 한다. 가족과 함께 지내길 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1년 3백65일, 대부분의 시간을 돌봐 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겠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현재 치매 환자 한 명을 돌보는 데 정부가 지출하는 재정(보험료를 따로 걷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포함해)은 연간 2천만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현재 치매 환자수는 72만여 명이니 이들 모두에게 서비스를 제공해도 필요 재원은 14조 원가량으로 훨씬 더 늘릴 수 있는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 이런 해법에 조금도 다가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 책임’을 조금치도 믿기 어려운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