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필자인 질베르 아슈카르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사회주의자다. 현재 카타르를 둘러싼 중동 여러 국가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잘 정리하고 있어서 소개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이집트 정부가 카타르를 상대로 [단교, 봉쇄 등] 맹렬한 외교적 공격을 퍼붓는 상황을 이해하려면, 카타르가 이라크에서 [납치된 왕족을 석방시키려] 테러리스트들에게 몸값을 지급하는 등 테러리즘을 지원했다는 비난의 이면을 봐야 한다. 카타르를 비난하는 국가들도 똑같은 일을 수십 년간 해 왔으므로, 그것이 진짜 이유인지는 신뢰하기 힘들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려면 2011년] ‘아랍의 봄’ 때로 돌아가, 이 위대한 반란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미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와 카타르 국왕 타밈 빈 하마드

국왕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의 통치 기간[1995~2013년] 동안 카타르의 역내 외교 정책은 1961년 쿠웨이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택한 정책과 비슷하다. 당시 쿠웨이트를 자신에게 반환하라고 요구하던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독립에 분노했다. 그러나 쿠웨이트가 아랍 국가들에게 독립을 인정받은 데에는 영국이 제공하는 보호에 더해 이라크 [총리] 압둘 카림 카셈과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 사이의 긴장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쿠웨이트는 자국을 합병하려는 인접국 이라크를 단념시키려고, 당시 “아랍 판 냉전”이라고 불린 갈등의 양 축인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모두와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아랍 판 중립 외교를 펼쳤다.

이와 마찬가지로 카타르와 인접국 사우디아라비아도 역사적으로 긴장 관계였고, 특히 1971년 카타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에는 더욱 그랬다. 1995년 권력을 잡은 카타르의 하마드 국왕은 자국을 ‘작지만 매운 고추’로 만들려고 역내 갈등의 양대 축 모두와의 유대를 강화하려 했다. 미군이 걸프만[페르시아만]에 대규모 파병을 한 뒤로 그 양대 축은 미국과 이란이었다. 카타르는 역내에서 가장 중요한 미군 공군 기지를 유치(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 서로 대립하는 양 세력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정책은 카타르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인 저항 세력] 하마스를 지원한 데서도 나타났다.

하마드 국왕 통치 시기 카타르는 그저 중립적이고 수동적으로 여러 세력과 좋은 관계를 맺는 쿠웨이트 방식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카타르는 자국의 상당한 부를 이용해 지정학적으로 주요한 세력이 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무슬림형제단을 후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슬림형제단을 1928년 결성 때부터 후원했지만 1990년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갈등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무슬림형제단이 반대하고 나서자 후원을 중단했다. 카타르의 정치적 영향력은 〈알자지라〉 TV 네트워크가 설립되면서 크게 증대했다. 〈알자지라〉는 무슬림형제단 같은 야당 세력의 목소리를 방송함으로써 아랍 시청자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아랍 혁명

그래서 2011년 위대한 아랍 반란이 분출했을 때,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알자지라〉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 중대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2011년 이후로 아랍권을 지배하는 갈등의 양대 축(구 정권과 이슬람근본주의 야당)들은 모두 걸프협력회의(GCC)에 속하는 세력들한테서 각각 후원자를 구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전역에서 구 정권을 지지했다.(리비아와 시리아에 대해서는 달랐다. 리비아에서는 중립을 지켰다. 시리아에서는 종파적 요소가 낳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과 [사우디아라비아와 갈등 관계인] 이란의 동맹[에 대항해 반정부 세력 일부를 지원했다.]) 반면, 카타르는 반란(특히 무슬림형제단이 관련된 반란)을 지원했다. 물론 같은 GCC 회원국인 바레인에서 일어난 반란은 지지하지 않았다. [GCC 회원국들은 역사적으로 밀접해서 한 나라의 반란이 자국으로 확산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아랍의 봄’이 시작될 때 카타르는 튀니지의 반란을 지원한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튀니지의 쫓겨난 대통령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의 정치적 망명을 받아 줬다. 그 뒤로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은 확연히 드러났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카타르를 아랍의 반란이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수준으로 급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그래서 미국은 아랍 반란의 양 편에 모두 개입했다. 한편으로는 (바레인에서처럼)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구 정권들을 지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처럼) [반란을 지지하되] 무슬림형제단과 관련 단체에 대한 카타르의 영향력을 이용해 반란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다. 미국이 반란 세력에게 환심을 사려는 정책을 취하는 데서 카타르가 한 구실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카타르에 분노했다. 무슬림형제단을 제1의 공공의 적으로 지명한 아랍에미리트연합도 격분했다. 이집트 군부가 [무슬림형제단] 무르시 정권을 전복시키고 무슬림형제단을 혹독하게 탄압하면서, 무슬림형제단에 걸었던 카타르의 도박은 크게 실패했다. 그 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이 카타르에 가하는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때 마침 카타르의 하마드 국왕이 자기 아들 타밈에게 권좌를 물려줬고 그 이후로 카타르의 외교 방향에 대한 걸프해 연안국들의 압력은 2014년에 최고조로 올랐다.

이때의 긴장 국면이 지나자, 걸프해 지역의 갈등은 끝난 듯했다. 시리아에서는 걸프해 연안 3국[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카타르]이 아사드 정권에 맞선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이 때문에 카타르와 그들이 지원하는 무슬림형제단이 이란과 맺은 관계는 나빠졌다.) 예멘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정부에 반기를 든] 알리 압둘라 살레와 후티 반군 사이의 동맹을 공격하는 군사작전에 카타르가 참여했다. 그러면서 GCC 회원국 간의 화합이 가능한 듯했다.(이 일들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이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경향은 한동안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에 맞서 범수니파 세력의 협력을 추구하며 [수니파이기도 한] 무슬림형제단까지 포용하는 가운데 강화됐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정부 사이에는 긴장이 생겼다. 이는 [쿠데타로 들어선 이집트의 엘시시 정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던] 오바마 정부의 정치와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세력 균형의 방정식이 바뀌었다. 트럼프는 아랍의 변화와 혁명에 공세적으로 맞대응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또한, 이란에 매우 적대적이고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한다. 트럼프의 주요 보좌관들은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분류하고 싶어 하고 이 점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뜻을 같이한다. 이는 최근 폭로된, 아랍에미리트연합 대사와 백악관이 주고받은 서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미국 정책의 중대한 변화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의 엘시시와 화해했다.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연합•바레인과 함께 카타르를 맹렬히 공격해 카타르의 정책을 철저히 바꾸도록 강제하려 한다.

이렇듯, 아랍 전역에서 아랍의 봄을 되돌리려는 구 정권 세력들의 반격 시도의 가장 최근 국면은 거의 완료됐다.(대다수 나라에서는 걸프해 연안국들이, 시리아와 예멘에서는 이란이 이 반격을 도왔다.) 그러나 늦든 빠르든 새 혁명 물결은 다시 밀려올 것이다.(이미 모로코와 튀니지에서 그런 조짐이 보인다.) 그때가 오면, 누구도 그 반란을 일정 수준 이하로 자제시키기 어려울 것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카타르가 그런 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출처: 미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017년 6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