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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무엇이며, 왜 퍼질까?

자아 중심적인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는 ’확증편향’이 더 강하게 작용해서 가짜뉴스가 더 잘 확산된다

문재인은 트럼프를 만나 자기도 대선에서 ‘가짜뉴스’ 때문에 고생했다며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 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모조리 가짜뉴스 취급하는 트럼프를 편든 것이다.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을 모욕한 셈이다.

오늘날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사실이다. 경제 위기와 정치적 양극화, 주류 언론의 영향력 쇠퇴 등이 가짜뉴스가 늘어난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누구나 쉽게 매체를 만들어 정보를 퍼뜨릴 수 있는 인터넷이 오늘날 가짜뉴스의 핵심 수단이 됐다.

유명한 통계 조사 기관 퓨리서치는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접한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는 미국 대선 기간 3개월 동안 페이스북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가짜뉴스 20개를 조사했다. 공유, 좋아요, 댓글 등 반응이 무려 8백71만여 건으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류 매체의 ‘진짜’ 뉴스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멀리 마케도니아의 한 마을 청소년들이 광고 수입을 노리고 만들어 낸 가짜뉴스들도 있었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모두 트럼프에게 불리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유력 언론은 가짜뉴스를 트럼프 당선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인 언론 〈파이낸셜 타임스〉는 인터넷에서 ‘힐러리가 아이시스(ISIS)에 무기를 팔았다’거나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등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것을 개탄했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비난은 미국의 주류 언론들을 겨냥했다. 대선 당시 미국 지배자들 일부는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트럼프보다는 힐러리가 자신들의 이익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킬 것이라고 여겨 트럼프에게 비판적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런 비판의 영향력을 깎아내릴 요량으로 싸잡아 가짜뉴스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사실 이처럼, 서로 경쟁하는 지배계급 파벌들이 언론을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 자체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각종 흑색선전과 비방, ‘아님 말고’ 식 추측 보도, 왜곡 보도 등. 여기에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활용한 가짜뉴스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국민의당의 문재인 아들 정보 조작 사건이나, 강남구청장 신연희의 가짜뉴스 유포 등도 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한 흑색선전의 사례다. “한국은 세금으로 국가정보원이 야당 후보 비난 여론을 조작하고, 청와대 뉴미디어실이 극우·혐오사이트의 글을 퍼 나르는 곳이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대선이 있던 2012년 정부 당국 요청에 따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서 특정 키워드를 삭제·제외할 수 있는 회사 차원의 지침을 만들기도 했다.”(〈미디어 오늘〉 2017년 1월 13일치)

지배계급 분파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지배자들과 주류 언론이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을 왜곡하고 매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문재인이 트럼프를 만나 가짜뉴스 운운하는 동안, 민주당의 전 부대변인은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길에 천막을 쳤다는 가짜뉴스를 페이스북에 퍼나르며 “불법에는 엄정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인터넷 매체의 특성

인터넷 매체의 특성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문제도 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비용이 적게 들고, 무제한 복제될 수 있고, 한번 널리 퍼지면 완전히 삭제하기 어려운 인터넷 매체의 특성에 찬사를 보냈다. 차별받는 사람들이나 미조직 노동자들 일부는 운동을 건설하지 않고도 이런 특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정을 보면, 온라인 매체의 특성은 피지배자들에게만 유리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배자들도 인터넷 매체를 자신의 목적에 따라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으로 말해, 언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듯이 인터넷 가짜뉴스의 영향력도 과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소수 엘리트들이 대중의 의식을 조종한다는 음모론은 현실과 다르다. 지배자들은 인터넷 등장 전에도 학교 교육과 다양한 매체(TV, 라디오, 종이신문 등)를 이용해 피지배자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려 애썼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언론에 대한 박근혜의 강한 관여와 온갖 가짜뉴스도 광범한 대중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 나서 성공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또, 자본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자본들로 나뉘어 있고, 이들 각자와 연결된 다른 지배자들도 서로 경쟁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 이런 분열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나라에서 정치 위기는 언론의 폭로와 연관돼 있다. 대기업과 주류 언론이 만든 jtbc가 박근혜 퇴진에서 한 구실도 이를 잘 보여 준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도 이와 관계 있다. 대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언론은 일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황당한 거짓을 꾸며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짜뉴스는 한마디로 말해 이런 규칙을 무시하는 선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인터넷을 이용한 가짜뉴스가 앞서 언급한 인터넷 매체의 특징 덕분에 다른 수단을 이용한 가짜뉴스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간단한 기술만 익히면 주요 언론사 웹사이트를 모방한 뉴스 사이트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주자 두 명이 운영하는 가짜뉴스 〈리버티라이터스뉴스〉는 매달 최대 4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조회수가 늘어나다 보니 대기업들도 이 사이트에 광고를 낸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가짜뉴스도 대개 시간이 흐르면 검증 과정을 거쳐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꽤 오랫동안 가짜뉴스를 믿고 심지어 갈수록 가짜뉴스에 의존하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자아 중심적인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확증편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해서 가짜뉴스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가 많다.”(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신문과 방송〉 2017년 4월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생산물과 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자신감도 잃게 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소외’라고 불렀다. 이런 자신감 상실은 노동계급이 총체적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데에 주된 어려움을 안겨 준다. 자신감과 총체적 세계관이 결여되면 수동성과 온갖 편견이 자리잡기 쉽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의식은 불균등하고 모순돼 있다. 일부는 음모론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확증편향 같은 잘못된 사고방식에 빠지기도 한다. 가짜뉴스가 끊임없이 소비되는 이유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며 스스로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소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운영할 자신감과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그 역이 아니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국가의 인터넷 규제를 강화해 가짜뉴스를 줄이려는 시도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부나 시장 질서에 비판적인 언론들에 재갈을 물리는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다.

가짜뉴스는 물론이고 주류 언론의 ‘진짜’ 뉴스가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악영향도 극복하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면서 정치적 경험과 각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투쟁 속에서 유통되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세계를 분석하고, 체제 변혁적 전망을 제시하는 사회주의 신문이 이런 의식 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운동 내 인터넷 오용과 가짜뉴스

한편,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인터넷 활용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진보 언론도 많이 생겼다. 〈매일노동뉴스〉, 〈레디앙〉, 〈민중의 소리〉, 〈참세상〉, 〈노동자 연대〉 등은 주류 언론들이 외면하는 투쟁 소식을 전달하고 피억압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애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은 이런 기사를 널리 퍼뜨리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노동자 연대〉는 더 나아가 반자본주의적 전망과 분석, 사회주의적 전략과 전술 등을 제시하려 한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의 증가와 함께 가짜뉴스 같은 인터넷 악용 사례가 노동운동 내에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상업적 목적으로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려 그 평판을 깎아내리고자 할 때 ‘비용이 적게 들고, 무제한 복제될 수 있고, 한번 널리 퍼지면 완전히 삭제하기 어려운’ 온라인 매체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가짜뉴스들처럼 세련된 형식을 갖추지는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무책임하게 나 몰라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페이스북처럼 공개된 온라인 매체에 특정 단체나 개인에 대한 근거 없는 가십과 비방을 퍼뜨려 평판을 깎아내리는 일이 대표적이다. 악성 댓글을 달아 모욕을 주거나 따돌리기, 지엽말단적 쟁점을 제기해 진정한 쟁점 흐리기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한 사회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처럼 운동 내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은 그 대상 개인이나 단체가 부르주아적 가치관을 잣대로 한 도덕적 비난이나 마녀사냥 식 따돌리기에 시달릴 것을 염두에 두고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서 그런 짓을 벌인다는 점에서 사악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대의를 훼손하고 부르주아적 편견을 부추겨 노동자들의 단결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모욕 주기나 낙인찍기 등의 효과를 과소평가하거나, ‘집단지성’이 결국 오류를 바로잡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첫째, 인터넷에서 비방을 통해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 준다. 오죽하면 이 때문에 각종 소송이 빈발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길까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인터넷 상의 ‘집단지성’은 대개 잘 작동하지 않는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에 따르면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한 우익 사이트들은 구글 페이지랭크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검색 순위를 높여 줄 일종의 속임수를 찾아 공략했다. 그 결과 ... 구글에서 ‘유대인’(are jews)을 검색했을 때 최상위에 소개되는 글의 제목은 ‘사람들이 유대인을 싫어하는 10가지 이유’다. ‘여성은’(are women)을 입력하면 ‘여성은 사악한가’라는 자동완성 문장이 등장한다. ‘히틀러는 나쁜사람이었나?’(Was Hitler bad?)라고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선 ‘히틀러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었던 10가지 이유’가 뜬다.”(〈미디어오늘〉 2017년 1월 13일치)

노동자 운동의 단결과 전진을 위해 애쓰는 좌파라면 이런 운동 내 이데올로기적 혼란에 진지하고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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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J. 솔로브 지음, 이승훈 옮김, 비즈니스맵, 416쪽,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