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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시흥캠퍼스 철회 투쟁:
기만적인 합의문 수용 말고 점거를 유지해야 한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요구하며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학교 당국이 징계를 무기 삼아 압력을 가하고 있다. 7월 4일에 학교 당국은 학생 12명을 대상으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징계 대상자들이 부당한 징계에 항의하고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하면서 징계위원회 출석을 거부하자 학교 당국은 7월 20일에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겠다고 통보했다. 학생들은 19일 저녁 7시에 도심에서 대정부 집회를 하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할 계획이다.

지금 성낙인 총장은 학생들에게 “제명”(재입학이 불가능한 퇴학 징계)되지 않으려면 ‘시흥캠퍼스 관련 갈등해소와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협의회’(이하 협의회)를 발족하고 점거를 푼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수용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부총학생회장을 포함한 학생 대표자들과 학교 당국 사이에서 중재 구실을 자처한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서울대 민주동문회 소속)은 학생 측에 ‘학생들이 합의문을 받고 점거를 해제하면 협의회 발족식에서 총장이 징계 선처와 형사고발 취하 의지를 밝힐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중재를 자처한 다른 인사들도 점거를 풀고 학교 당국과 타협하라고 학생들을 회유하고 있다.

이런 압력 속에서 임수빈 부총학생회장은 합의문 수용 여부를 오늘(7월 9일) 저녁 총운영위원회에 긴급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의 부당한 징계 압박에 굴복해 합의문을 수용해선 안 된다.

첫째, 협의회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위한 권한이 없다. 합의안에 따르면 협의회는 기껏해야 학교 측이 내놓는 “사업의 추진 이유, 추진 절차, 사업의 주요 내용”에 대해 검토할 뿐 실시협약 철회 여부에 대해선 논의조차 할 수 없다.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해 10월 10일과 올해 4월 4일 두 번의 학생총회에서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실시협약 철회를 위한 실효성이 없는 기구에 들어가려고 본부 점거라는 투쟁 수단을 포기하는 것은 학생들의 바람에 크게 반하는 것이다.

둘째, 협의회 참가는 학교 당국이 시흥캠퍼스 건립을 강행하는 데 명분만 줄 뿐이다. 합의안에는 “협의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학본부는 시흥캠퍼스 조성 공사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어서 협의회에 들어가면 시흥캠퍼스 공사 진행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중단이다. 1개월 뒤에 협의회가 종료되면 학교 당국은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협의회, 평의원회와 함께 시흥캠퍼스의 내용에 관한 논의를 충분히 했다’면서 협의회를 명분 삼아 시흥캠퍼스 건립을 강행하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협의회는 지난해 학생총회에서 참가를 거부한 ‘시흥캠퍼스 추진위원회’처럼 들러리 기구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점거를 해제하고 협의회에 참가하게 되면 학생들은 무장해제 당한 상태에서 학교 당국과 맞서야 한다. 즉 점거를 해제하고 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현금 주고 어음 받는 것이다. 그마저도 실시협약 철회는 논의 대상도 아니니 ‘부도어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합의문의 내용이 보잘것없고 오히려 투쟁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자, 매일같이 농성장을 지키는 열의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합의문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5월부터 총운위와 더불어 타협을 주도해 온 사회변혁노동자당(이하 변혁당) 서울대분회 학생들도 지금의 합의문에는 반대하고 있다.

지난 과정의 결과

그런데 지금의 상황이 그동안 일부 지도적 학생들이 학교 측과 타협을 추구해 온 과정의 결과라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5월 1일 2차 점거가 시작되고 불과 2주 만에 변혁당 서울대분회 학생들은 학생들의 투쟁 동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교와 타협을 추진했다.

당시 〈노동자 연대〉는 “현재 투쟁의 동력이 충분히 크지 않다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보며 상황에 쫓기듯이 후퇴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후퇴로 이어지며, 무원칙한 후퇴를 반복하고 타협에 매달리는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고 비판했는데 이후에 그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노동자 연대〉 208호 ‘서울대 당국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하라! 불필요하게 한 발 물러서지 말자!’)

처음에는 학교 당국이 징계를 철회해야 협의회에 응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조건은 ‘징계 유보’로, ‘중징계를 하지 않으면’ 하는 식으로 뒷걸음질쳤다. 학교 당국이 학생들과 협의를 하는 중에 징계위원회를 강행하며 학생들의 뒤통수를 쳤는데도 학생 측 협상 대표들은 학교와의 협상에 매달렸다.

그런데 투쟁에서 주요한 구실을 해 온 변혁당 서울대분회 활동가들은 이런 과정에 대한 돌아보기 없이 협의회에 시흥캠퍼스와 관련한 “조사권한”을 부여한다는 합의가 되면 점거를 해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협의회에 설사 “조사권한”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점거라는 핵심적인 투쟁 수단을 포기한 상태에서 학교 측에 실시협약 철회를 강제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부분적인 수정을 가할지라도 본질적으로 현재 합의문과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학교 당국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것이 불필요한 타협에 매달리는 결과를 낳아 왔다. 비관과 자기제한적인 생각이 투쟁에 약점으로 작용했고 그 결과 지금 시흥캠퍼스 철회 투쟁이 결코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긴 하지만 학교 측이 처한 상황도 그리 쉬운 조건은 아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승리로 전 사회적 개혁 열망이 큰 상황에서 교육 ‘적폐’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제명이라는 초유의 징계를 내리고 다시금 직원 수백 명을 동원해 학생들을 점거장에서 끌어내는 것은 전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탄을 받을 일이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더욱 알려나가며 투쟁을 키워갈 가능성은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에게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은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런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투쟁 지도부가 징계 압박에 당당히 맞서면서 투쟁의 대의를 지켜 나가야 한다.

매우 실용주의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학교와 타협을 하고 징계에 관한 “선처”라도 받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적인 학생들이 징계 압박에 굴복해 학교 측과 부적절한 타협을 한 상황에서 이후 투쟁이 제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학생총회에서 결정하고, 시민 수천 명이 지지했던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라는 대의를 고작 “징계 선처”와 맞바꿔 저버린다면, 이후 투쟁에 그들이 어떻게 신뢰를 보내고 연대할 수 있을까? 학생·시민들의 지지와 연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학교 당국에 굴복함으로써 ‘제명만은 면했을 때’, 이후 투쟁에 함께 나서달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2006년 고려대에서 부당하게 출교됐던 학생들은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진보진영도 타격을 받던 정세 속에서도 연대를 건설해 전원 복학했다. 1천7백만 명이 참가한 촛불운동 이후 투쟁 참가자들의 자신감이 높아져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학교 당국이 부당한 징계를 내리더라도 징계에 반대하는 광범한 연대를 건설할 가능성도 있다. 불필요하게 타협해 투쟁 대의를 훼손하지 말고 징계 문제도 투쟁을 통해 맞서려 해야 한다.

징계 압박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일관되게 해야 한다. 학교 측의 징계 압박에 흔들려 합의문을 받고 점거를 해제했다가는 시흥캠퍼스 반대 투쟁의 대의도, 징계 반대 투쟁의 동력도 지켜내기 어려울 것이다.

점거를 굳건히 유지하며 연대를 넓히자

또, 점거라는 투쟁 수단을 굳건히 지켜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학생들이 시흥캠퍼스를 막기 위해 수차례 집회를 열고 천막 농성을 해도 듣지 않던 학교 당국은, 지난해 10월 학생들이 본부 점거에 들어가자 미흡하게나마 “사과”하고 시흥캠퍼스 건립도 1년 보류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학교 당국은 대화 테이블에라도 나오지만, 3월 11일 침탈에 의한 점거 해제 직후만 해도 학생들이 천막 농성을 하고 세 번의 대중집회를 열어도 학교 당국은 면담조차 응하지 않았다. 일부 높은 수위의 징계를 감수하고서라도 5월 1일 재점거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도, 실시협약 철회를 위해서는 더욱 전투적인 전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아니었나. 그렇다면 부적절한 합의문을 조건으로 점거를 해제할 게 아니라, 점거 투쟁을 지속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가장 강력한 수단을 포기하고 더 큰 “새로운 투쟁”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공상일 뿐이다.

5월 1일 재점거를 시작하며 점거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점거 해제의 권한은 점거위원회에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점거 농성의 향방은 실제 점거 농성을 유지해 온 학생들이 스스로의 민주적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고, 점거위원회에 가맹된 총학생회는 이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점거위원회는 합의문을 거부하고 점거 농성을 지속하며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오늘 총운위에서 어떻게 결정되든 점거위원회는 이와 독립적으로 행동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