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제18회 퀴어문화축제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가 열린다. 나라마다 명칭이 다르지만 퀴어문화축제는 1969년 미국에서 성소수자 차별에 항의해 벌어졌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해 세계적으로 해마다 6월에서 9월 사이에 열린다.

한국에서 퀴어퍼레이드는 2000년에 처음 수십 명 규모로 시작됐다. 이후 해마다 참가자 수가 늘어 지난해에는 5만 명이 참가했다(주최측 추산). 성소수자와 관련된 행사 중 단연 최대 규모다. 올해도 성소수자와 지지자들 수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울산, 대구 등지에서는 성소수자 단체들이 주축이 돼 퀴어퍼레이드 참가를 위해 ‘퀴어 버스’를 조직하고 있다.

지난해 5만여 명이 모인 2016퀴어문화축제 ⓒ이미진

 해방감

오늘날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은 수많은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살아간다. 차별적 법률과 제도들이 이를 부추기고 정당화하고 있다.

올해 육군이 광범하게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A대위를 처벌한 것은 국가가 동성애자들에게 가한 끔찍한 공격의 하나다. 국가는 A대위의 성생활을 법정에서 까발리며 온갖 모욕을 줬다. 동성애자 군인 색출도 지속되고 있다. 동성애자 군인 색출·처벌은 중단돼야 하고, A대위에 대한 처벌은 철회돼야 한다. 처벌의 근거가 된 군형법 92조의6은 당장 폐지돼야 한다.

반면 차별금지법은 10년째 제정되지 않고 있다. 기독교 우익이 이 법에서 규정하는 차별 금지 사유 중 특히 ‘성적 지향∙성별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온갖 악선동과 의회 로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보수 기독교 단체들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성별 정정 요건이 몹시 까다로워 트랜스젠더들은 일상 생활에서 큰 차별과 불편을 겪고 있다. 성소수자들에게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결혼, 입양 등)도 보장되고 있지 않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특히 취약한 집단인데,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완전히 빠져 있다. 퀴어퍼레이드는 개최 장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해마다 관할 관공서와 싸워야만 한다.

SOGI법정책연구회가 지난 5월 발표한 〈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6〉을 보면,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관련 제도 유무를 분석해 계량화한 ‘무지개 지수’가 한국은 12.3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 49개국과 비교하면 4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런 차별적 현실 속에서 퀴어퍼레이드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1년에 한 번 자신의 존재를 맘껏 드러내어 자긍심과 해방감을 느끼는 날이다. 퀴어퍼레이드가 어느덧 “성소수자들의 명절”로 불리며 개최일 전부터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공식 정치 영역에서 동성애에 대한 보수적 태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사회 저변에서는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빠르게 확산돼 왔다. 퀴어퍼레이드가 크게 성장한 것도 이런 기층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에서 변화가 두드러진다. 대학생과 청년들은 퀴어퍼레이드 대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동성애가 “타락한 성문화”이고 “에이즈”의 원인이라면서 혐오를 부추겨 온 기독교 우익은 이런 변화에 큰 불만을 품어 왔다. 2013년부터 퀴어퍼레이드 규모가 급속히 늘자 이들은 2014년부터 ‘맞불 집회’를 열고 행진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위축되지 않았고, 참가 규모는 그 뒤에도 매년 늘어났다. “건전한 국민들과 청소년들까지도 동성애 옹호자가 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처럼 인식하게 하려는 것”(2017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교계연합 기자회견 성명서)이라며 기독교 우익이 퀴어퍼레이드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자신들의 방해가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독교 우익들은 올해도 시청광장 맞은편 대한문에서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를 개최해 동성애 혐오를 계속 부추기며 공세를 펼칠 예정이다. 우익의 이런 공격에 맞서서 성소수자들과 진보·좌파 단체들이 함께 대규모 행진을 벌여서 성소수자의 평등과 해방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크고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와 다국적기업은 성소수자 해방의 친구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새 퀴어퍼레이드 주최 측은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들과 다국적 기업들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서방 자본주의의 권력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한국 지배계급 전반의 냉대와 친미주의자들인 우익의 공격에 맞서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미국 대사관을 포함한 서방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들과 구글 같은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올해는 영국, 프랑스 등 13개국 대사관과 구글코리아, 러쉬(영국계 화장품 기업) 등 기업들이 부스를 운영한다. 심지어 러쉬는 행진 차량 한 대를 이끈다. 미국 대사관은 올해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발표한 부스 운영 명단에서는 빠졌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올해 [서울] 퀴어 페스티벌도 지지하고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사관은 얼마 전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에는 부스도 차렸다.)

이런 상황은 분명 성소수자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제국주의 대사관들과 다국적기업들의 퀴어퍼레이드 참가를 환영해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성소수자 해방의 친구가 아니다. 성소수자 친화적 언사를 구사해 가며 기회주의적으로 자신들의 악행을 가리거나 사업 확장에 이용하려는 것일 뿐이다(‘핑크 워싱’).

미국 정부가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 무지개 깃발을 걸고 성소수자들의 친구인 양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에서 성소수자들의 적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올해 성소수자 차별 금지 행정명령과 트랜스젠더 학생들의 학교 내 화장실 권리 보호 지침을 폐기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 정부는 시리아에 미사일을 쏟아 붓고, 한국에서는 성주 소성리 주민들을 짓밟게 하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등 세계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제국주의는 성소수자 친화적 언사를 사용해, 자신들이 중동에서 벌인 전쟁과 대외 정책을 정당화해 왔다. 서방 지배자들은 이슬람 일반이 동성애를 유난히 혐오하는 종교라는 인종차별적 관념을 퍼뜨리면서 자신들이 성소수자의 친구인 양 행세해 왔다. 이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정 등 중동 지역의 반동적 세력들이 동성애를 “서구의 산물”로 치부하며 성소수자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돼 왔다. 한 이라크인 성소수자는 최근 영국 신문에 기고해 “서방의 침공 이후 이라크에서는 LGBTI+에 대한 증오 범죄가 극적으로 늘었다.”(〈가디언〉 2017년 7월 5일자)며 서방의 책임을 물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가 미국 등 서방 대사관을 퀴어퍼레이드에 끌어들이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핑크 워싱에 놀아나는 것이고,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을 미국 제국주의에 정당한 분노를 가진 한국의 대다수 민중운동과 약소국 민중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소원하게 만든다.  

다국적기업의 퀴어퍼레이드 참가도 성소수자 운동에 득이 아니라 독이 된다. 기업이 성소수자 운동을 지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돈벌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세 회피로 유명한 구글은 최근 한국에서 ‘구글세’ 도입 논의가 시작되자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무지개행동 등 성소수자 운동에 체계적인 지원을 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려고 한다.

러쉬는 성소수자 운동을 지원한다고 광고해서 값나가는 비누와 로션을 팔아 그 수익금 일부를 성소수자운동에 지원한다. 이런 생색내기 와중에 러쉬는 도리어 성소수자 차별을 부추기기도 했다. 지난해에 ‘신나는센터’(이사장 김조광수)가 개최한 “성소수자와 기업”이라는 강연회에 참가한 러쉬코리아의 상무 우승용은 “[성소수자 유명인이] 티팬티 입고 엉덩이 까고 돌아다니면 다른 분들이 불편해할 것이다” 하고 발언했다. 이 때문에 30분 만에 강연이 중단됐다.

서구의 자긍심 행진들은 성소수자 운동 초기의 투쟁적 전통이 쇠퇴하면서 점차 “대규모 기업 홍보 행사”가 됐고 행진 주최 측은 사회의 유력자들을 끌어들이면서, 가난한 이민자 등 천대받는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무시해 왔다. 미국에서는 자긍심 행진에 대기업과 국가기구의 후원뿐 아니라 경찰의 행진도 허용돼 분노가 일었고, 최근 이에 대한 항의가 조직됐다.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 내 급진파와 진보∙좌파는 성소수자 운동의 훌륭한 전통을 되살리려는 이런 시도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천대받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가 강력한 운동을 만든다

 한국의 국가와 대기업들이 성소수자를 무시하고 천대한다고 해서 퀴어퍼레이드 주최 측이 제국주의 대사관과 다국적기업들을 행사에 끌어들이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제국주의 국가와 다국적기업은 세계를 약탈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범이며 한국과 세계 민중의 적이다.

퀴어퍼레이드의 역사적 기원이 되는 미국의 스톤월 항쟁은 국가 폭력 종식과 성소수자 해방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집단적 투쟁이었고, 여러 차별받는 사람들과 미조직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연대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퀴어퍼레이드는 단지 문화제에 머무르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려면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과 노동계급이 지배자들에 맞서 단결해 광범하고 투쟁적인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