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7월 15일 제18회 퀴어퍼레이드를 맞아 노동자연대 성소수자 회원들(노동자연대를 대변해)이 발행한 리플릿 전문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을 무지개 깃발로 수놓는 ‘퀴어퍼레이드’가 돌아왔다. 우리 성소수자들이 오늘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던가.

우리 성소수자들에게 ‘퀴어퍼레이드’는 자긍심 행진이다. 오늘은 “혐오의 지옥”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긍심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날이다.

또한, 우리 성소수자들과 우리의 지지자들이 수만 명 규모로 도심을 행진하며 성소수자 차별 반대를 외치고 연대를 한껏 드러내는 것은 사회 전체에 주는 메시지도 있다. 바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삭제되거나 치료돼야 할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점이다.

물론 올해도 시청 광장을 대여하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서울시는 광장을 점유하고 있던 친박 ‘태극기 부대’와 잔디(!)를 이유로 광장 사용 여부 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서울시는 동성애 혐오세력의 주장을 의식해 퀴어문화축제의 광장 사용이 “광장의 조성 목적에 위배”될 수 있다며 심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스톤월 항쟁’(1969년 6월 경찰의 게이바 습격에 항의해 벌어진 미국의 급진적 성소수자 항쟁)을 기리며 6월에 열려야 했던 행사가 7월 15일에야 열리게 된 것이다.

서울 도심을 무지개로 물들인 2016퀴어퍼레이드 ⓒ이미진

일부 기독교 우익의 역겨운 혐오 선동

올해도 일부 기독교 우익들이 동성애를 물고 늘어지며 ‘맞불’ 집회와 동성애 “치유”를 위한 기도회를 연다. 그러나 진정 “치유”받아야 할 것은 그들의 편협함이다.

최근 기독교 우익들은 더욱 날뛰고 있다. 군대 내 동성애 처벌법인 군형법 92조6을 폐기하는 법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특히 법안 발의에 참여한 윤종오·김종훈 두 진보 의원의 지역구인 울산에서는 악의적 선동이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 우익들은 법안 발의자인 심상정 의원의 울산 강연장 앞에서 항의 집회까지 열었다. ‘이웃 사랑’을 가르친 예수가 본다면 통탄할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기독교 우익들의 혐오 선동은 결코 대세가 아니다. 청년·학생·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우리에 대한 우호적이고 개방적인 태도가 확산돼 왔다. 그래서 퀴어퍼레이드 참가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진보 기독교 단체들의 참여도 늘어 왔다. 우리는 이를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으로 만들어야 한다.

성소수자 차별 개선을 ‘나중’으로 미루자는 문재인 정부 

오늘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열리는 첫 퀴어퍼레이드이기도 하다. 우리 성소수자들은 자랑스러운 촛불 항쟁의 일부였다. 그러나 촛불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동성애 반대” 발언으로 우리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성소수자는 보이지 않느냐”는 항의는 “나중에”라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문재인은 군형법 92조6 폐지도, 차별금지법 제정도 “나중”으로 미뤘다.

그러는 동안 단지 동성과 성관계 했다는 이유로 A대위가 유죄 판결을 받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검사는 군사법원 재판장에서 A대위가 성관계한 장소, 대상, 행위를 까발리며 반성을 요구했다. 이런 모욕이 어디있는가.

문제는 이런 야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육군은 함정수사를 통해 다른 동성애자 군인을 기소·처벌하려 한다. 문재인은 이런 시도를 즉각 중지시켜야 한다. 또한 함정수사의 책임자인 육군참모총장 장준규를 즉각 해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산적한 과제들도 방치하고 있다. 까다로운 성별정정 요건과 편견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고통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우리의 존재를 지우는 ‘국가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새 정부 하에서도 여전히 폐기되지 않고 있다. 이런 표준안이 교실 일선에서 활용된다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입을 상처는 불 보듯 뻔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10년째 답보상태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자신이 공약한 차별금지법을 우파들의 비난에 타협해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문재인은 여기서 더 후퇴해 아예 공약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대다수 중진 의원들도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보수적이다. 대다수 더민주당 의원들은 군형법 92조6 폐기 법안 발의를 외면해 발의 기준인 국회의원 10명을 모으는 데도 애를 먹었다.

올해 4월 동성애 반대 발언을 한 문재인 규탄 및 연행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는 문화제 ⓒ이미진

스톤월 항쟁의 정신

따라서 결국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우리의 권리는 우리 손으로 쟁취해야 한다.

전 세계 자긍심 행진의 기원이 된 ‘스톤월 항쟁’의 진정한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이 투쟁은 흑인과 아시아계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이끌었고, 국가 폭력 종식과 성소수자 생존을 위한 투쟁을 운동의 중심에 놓았다.

당시 성소수자들은 “병든 것은 내가 아니라, 나보고 병들었다고 하는 사회다” 하고 선언했다. 이들은 ‘병든 사회’인 자본주의에서 고통받는 다른 저항 세력들과 연대해 투쟁했다. 이런 연대는 성소수자 운동이 편견과 고립에 맞서 저항할 수 있게 했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성소수자들이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 또 다른 감동적인 예시다. 1980년대 영국 성소수자들과 탄광 노동자들은 서로 연대하며 의식이 변했고, 서로의 투쟁에 가장 큰 지지자가 됐다. 이들은 노동자들과 성소수자들이 착취와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성소수자 권리 확대는 위로부터 누군가 해 주리라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아래로부터, 이 사회 권력에 도전하는 집단적 저항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국적기업들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고통에 빠뜨려 온 장본인이다. 특히 미국은 한국 현대사를 유린한 장본인이고, 지금도 성주 주민들을 짓밟고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이 우리의 친구인 양 행세하는 것은 자신들의 악행을 이미지 세탁해서 가리려는 것(“핑크워싱”)일 뿐이다.(더 자세한 내용은 〈노동자 연대〉 신문 기사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과 다국적기업의 퀴어문화축제 참여는 위선이다’ 등 관련 기사들을 보시오.) 제국주의 국가와 다국적기업이 아니라 그들에게 고통받는 다수 민중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남은 364일도 해방감과 자긍심 속에서 살 수 있는 삶을 원한다. 오늘의 즐거운 축제가 끝나면 다시 숨막히는 ‘벽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끝장나길 바란다. 가족, 학교, 직장 등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멸시받거나, 혹은 들키지 않으려고 ‘이중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끝장나길 바란다.

그런 진정한 변화를 위해, 우리 사회의 차별받고 착취받는 사람들과 함께 싸워 나가자.

2017년 7월 15일
제18회 퀴어퍼레이드를 맞아
노동자연대 성소수자 회원들(노동자연대를 대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