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바로 가기
  • 검색창 바로 가기
  • 메인 내비게이션 바로 가기
  • 서브 내비게이션 바로 가기
  • 사이드바 바로 가기

노동자 연대

노동자 연대
등록일 2009년 1월 12일, 사업자등록번호 104-86-18859, 통신판매업신고 제2009-서울중구-0370호, 신문사업등록번호 서울다08179
  • 차별
  • 국제
  • 코로나19
  • 경제
  • 노동조합
  •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 이론
〈노동자 연대〉 페이스북 〈노동자 연대〉 트위터 〈노동자 연대〉 인스타그램 〈노동자 연대〉 유튜브 〈노동자 연대〉 텔레그램 알림 받기
    • 바로가기
    • 성명
    • 활동사진
    • 맑시즘 포럼
  • 노동자연대TV
    • 영국 소셜리스트 워커
    • 영국 소셜리스트 리뷰
    • 영국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 추천 책
  • 전체 기사 (최신순)
  • 꼭 봐야 할 글
  • 전체 주제
  • 갤러리
  • 추천 외부 글·영상
  • 독자편지
  • 독자편지/기고
  • 정기구독
  • 후원
  • 지면 PDF
  • 지난 호 목록
  • 구입처 안내
노동자 연대
등록일 2009년 1월 12일, 사업자등록번호 104-86-18859, 통신판매업신고 제2009-서울중구-0370호, 신문사업등록번호 서울다08179
  • 차별
  • 국제
  • 코로나19
  • 경제
  • 노동조합
  • 온라인 토론회
  • 이론
    • 바로가기
    • 성명
    • 활동사진
    • 맑시즘 포럼
  • 노동자연대TV
    • 영국 소셜리스트 워커
    • 영국 소셜리스트 리뷰
    • 영국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 추천 책
  • 정기구독
  • 후원
    • 전체 기사 (최신순)
    • 지면 PDF
    • 지난 호
    • 구입처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6: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예술 양식

번역 김종환
216호 | 2017-08-01 |
주제: 역사, 혁명과 혁명가, 투쟁, 기타, 예술
제보 / 질문 / 의견 | 후원하기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8: 극빈하고 궁핍한 노동자들만이 투쟁에 나설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0: 러시아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모두 보여 준 크론시타트 수병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1: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전쟁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신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2: 혁명과 내전 중에도 토론과 논쟁은 중요한 요소였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3: 노동자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4: 혁명은 어떻게 러시아 제국 전체로 확대됐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5: 7월 사태 - 위기에 처한 러시아 혁명과 시험대에 오른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6: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예술 양식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7: 민족 자결권 보장과 혁명의 관계를 이해한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8: “빵, 평화, 토지!” – 농민과 노동자를 이어준 구호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9: “여성의 완전한 해방”으로 발을 내디뎠던 혁명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30: 코르닐로프 쿠데타: 쿠데타를 저지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했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1: 차르의 보물을 놓고 지배자들이 벌인 소동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2: 노동자 권력은 독재를 뜻할까?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3: 겁에 질린 지배자들이 거짓말을 퍼트리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4: 혁명은 사회뿐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도 변화시켰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5: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신문이 필요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8: 10월 혁명 -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접수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9: 1917년 러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0: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이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1: 트로츠키: 노동자 운동을 무장시킨 지도자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2: 혁명의 패배는 예정돼 있지 않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3: 《세계를 뒤흔든 열흘》 -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책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협상: 전쟁에 목매는 지배자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5: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지 않았다면 혁명은 패퇴했을 것이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6: 십중팔구 처음 들을 볼셰비키 영웅 3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7: 반혁명의 씨앗을 뿌린 러시아 내전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8: 혁명은 새로운 지배계급을 낳을 수밖에 없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9: 연재를 마치며 - 러시아 혁명은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함을 보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사회를 구석구석 뒤흔들었고 예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르 정권을 경멸했고, 제1차세계대전을 무의미한 살육이라 봤던 작가, 화가, 건축가들이 영감을 표출할 공간이 혁명으로 마침내 열렸다.

이들은 예술이 더는 권력자들의 노리개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수단이자, 갓 태어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찬이었다.

이들의 예술은 단지 정치 선전 수단이 아니었다. 이들은 새로운 청중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식을 발명하길 바랐다. 이런 전위예술은 앞선 예술 양식을 비판하는 데서 몹시 혹독했다.

화가들은 “(예술 매체로서)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현실을 재현하려는 예술을 거부하고 “추상적 진실”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스포츠맨’

알렉산더 로드첸코와 같은 사람들은 갓 등장한 사진술을 이용하면 찰나에 담긴 본질을 포착할 수 있다고 봤다.

로드첸코는 포토몽타주 기법(사진합성법)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이전의 사진들과 완전히 종류가 다르고, 삶을 드러내는 데서 아주 사실적이어서 사진 그 자체가 삶인 그런 사진을 나는 만들고 싶다.

“나는 내 사진이 단순하면서 동시에 복잡하고,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그런 사진이길 바란다.”

알렉산더 로드첸코, ‘트럼펫을 부는 선구자’ ⓒ사진 출처 아트스페이스J

전통적인 조각도 “구성된다”는 개념으로 바뀌었고 건축술에 적용됐다.

디자이너 엘 리시츠키(대표작 ‘붉은 쐐기로 백군을 강타하라’)가 혁명 후 만든 작품들은 유럽 전역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는 이내 혁명 러시아의 문화 외교관으로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 건너 갔고 그곳에서 태동하던 바우하우스 운동[독일의 조형예술학교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예술 창작과 공학적 기술의 통합을 추구한 예술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엘 리시츠키, 붉은 쐐기로 백군을 강타하라

당시 많은 예술가들은 다양한 매체를 실험했는데 구스타프 클루치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길모퉁이에 가판을 설치해 예술과 정치 선전을 결합한 영화, 음악, 연설을 틀었고 포스터를 전시했다.

그러나 “구성주의” 흐름을 따른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클루치스도 추상적 표현에 강하게 사로잡혔다. 그래서 클루치스가 만든 많은 정치 선전 작품은 서방 평론가들에게 “조야하다”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그런 작품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작품들에서 클루치스는 그 이상을 시도했고, 예컨대 중력과 힘의 지배에 따라 우주를 누비는 행성들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런 작품들을 단지 정치 선전 수단이라고 여긴 사람은 없었다. 이런 구성주의자들의 시도는 몹시 성공적이었고 그 결과 [추상미술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을 뿐 아니라] “대중 예술”과 “고급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술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과정의 일부였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새로운 사회를 낳은 혁명과 한배를 탄 운명이었다.

수년에 걸친 전쟁과 뒤이은 내전 때문에 1920년대 말이 되면 러시아 혁명은 기진맥진해진다. 1917년에 권력을 장악한 노동계급은 크게 약화됐고, 10월 혁명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관료들뿐이었다.

혁명적 예술은 노동과 놀이 사이의 구분을 끝내고자 했다. 이런 예술은 ‘5개년 경제 계획’이나 노동수용소 따위와 공존할 수 없었다.

대신에 스탈린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자애로운 기계의 일부라고 생각하도록 해 줄 예술을 원했다.

대부분의 혁명적 예술가들은 자신의 과거 작품을 감췄다. 활동을 중단한 예술가들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미명이 붙은 새로운 사조에 몸담았다.

혁명적 예술의 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553호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8: 극빈하고 궁핍한 노동자들만이 투쟁에 나설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0: 러시아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모두 보여 준 크론시타트 수병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1: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전쟁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신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2: 혁명과 내전 중에도 토론과 논쟁은 중요한 요소였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3: 노동자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4: 혁명은 어떻게 러시아 제국 전체로 확대됐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5: 7월 사태 - 위기에 처한 러시아 혁명과 시험대에 오른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6: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예술 양식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7: 민족 자결권 보장과 혁명의 관계를 이해한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8: “빵, 평화, 토지!” – 농민과 노동자를 이어준 구호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9: “여성의 완전한 해방”으로 발을 내디뎠던 혁명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30: 코르닐로프 쿠데타: 쿠데타를 저지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했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1: 차르의 보물을 놓고 지배자들이 벌인 소동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2: 노동자 권력은 독재를 뜻할까?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3: 겁에 질린 지배자들이 거짓말을 퍼트리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4: 혁명은 사회뿐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도 변화시켰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5: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신문이 필요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8: 10월 혁명 -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접수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9: 1917년 러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0: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이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1: 트로츠키: 노동자 운동을 무장시킨 지도자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2: 혁명의 패배는 예정돼 있지 않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3: 《세계를 뒤흔든 열흘》 -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책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협상: 전쟁에 목매는 지배자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5: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지 않았다면 혁명은 패퇴했을 것이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6: 십중팔구 처음 들을 볼셰비키 영웅 3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7: 반혁명의 씨앗을 뿌린 러시아 내전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8: 혁명은 새로운 지배계급을 낳을 수밖에 없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9: 연재를 마치며 - 러시아 혁명은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함을 보였다
제보 / 질문 / 의견
구독 안드로이드 앱 텔레그램 봇
  • 페이스북
  • 트위터
  • 정기구독하기
  • 후원하기 (1천 원부터 가능)
독자·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
정기구독 일시 후원 1000원부터 정기 후원
후원 입금 계좌 : 국민은행 020601-04-080896, 농협 301-0010-1643-71, 예금주: (주)레프트미디어
  • 지면 신문 구입처 보기
  •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보는 방법 안드로이드 페이스북 텔레그램
↑ 맨 위로 ↓ 기사에 의견 보내기

제보 / 질문 / 의견

  • 〈노동자 연대〉는 정부와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들 편에서 보도합니다. 활동과 투쟁 소식을 보내 주세요.
  • 간단한 질문이나 의견도 좋습니다. 맥락을 간략히 밝혀 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내용은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편지란에 실릴 수도 있습니다.
맨 위로
전체 주제
  • 제국주의
  • 한반도 주변정세
  • 경제
  • 공식정치
  • 일반적인 정치
  • 차별
  • 민주적 권리
  • 국제
  • 노동자 운동
  • 개혁주의
  • 좌파
  • 이론
  • 전략·전술
  • 역사
  • 기타
  • Copyright (c) wspaper.org All rights reserved
  • (주)레프트미디어 대표 김인식
  • 노동자 연대
  • 소개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 정기구독 이용약관 · 비회원 개인정보 수집 동의
  • 〈노동자 연대〉 언론 윤리 강령
  • 로고
  • 기사
  • 전체 기사(최신순)
  • 꼭 봐야 할 글
  • 〈노동자 연대〉 추천 외부 글·영상
  • 기사 묶음
  • 종이 신문 구독
  • 정기구독
  • 구입처 안내
  • 온라인 구독
  • 페이스북
  • 안드로이드 앱
  • 트위터
  • 텔레그램 알림
  • RSS (전체 기사)
  • RSS (지면에 실리지 않은 기사)
  • 쓰기
  • 독자편지/기고
  • 구독정보 수정/구독불편 접수
  • 웹사이트 오류신고/제안
  • 후원/알리기
  • 일시 후원
  • 정기 후원
  • 웹 홍보 소스
  • 연락
  • 대표전화: 02-777-2792
  • 기사제보: 02-777-2791
  • 팩스: 02-6499-2791
  • 이메일: ws@wspaper.org
  • 주소
  • (우: 04710)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363-1 4층 (지번: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946-16 4층)
  • 정기구독/후원 입금 계좌
  • 국민은행 020601-04-080896
  • 농협 301-0010-1643-71
  • 예금주: (주)레프트미디어
  • 발행인: 김인식
  • 편집인: 김인식
  • 사업자등록번호 104-86-18859
  • 신문사업등록번호 서울다08179
  • 통신판매업신고 제2009-서울중구-0370호
  • 등록일 : 2009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