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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서브 씨의 안타까운 죽음:
이주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고용허가제 당장 폐지하라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 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깨서브 스래스터 씨가 남긴 유서

한국에 온 지 불과 1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27살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깨서브 스래스터(Keshav Shrestha) 씨가 남긴 유서다. 그는 안타깝게도 지난 8월 6일 새벽 4시 충주의 기숙사 옥상에서 목을 매 자살한 채 룸메이트에게 발견됐다.

깨서브 씨의 유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외부로 알린 청주네팔쉼터 활동가 수니따 씨에 따르면 그는 하루 12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을 했다. 이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 직장을 옮기거나 네팔에 돌아가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사측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팔에 돌아간 다른 이주노동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만 했다고 한다. 깨서브 씨는 이런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더 악화됐고 우울증에도 시달리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깨서브 씨가 직장을 옮길 수 없었던 이유는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는 대표적인 제도인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사용자의 허락이 있어야만 3년 체류 기간 동안 3회 변경이 가능하다.

한국에 온 지 12년이 됐다는 수니따 씨는 그동안 자신이 만나 온 이주노동자들이 한결같이 고용허가제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며, “죽는 이주노동자들은 거의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사업장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끔찍한 차별

직장 변경 금지는 이주노동자들을 사용자에게 종속시켜, 열악하고 부당한 처우를 감내하도록 강요한다. 인천에서 만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은 이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사업장을 바꾸고 싶어도 참고 견디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아파트 문짝 만드는 일 한다. PVC(폴리염화 비닐) 가루가 많이 날리고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데, 이것 때문에 알레르기가 점점 몸에 퍼지고 있다. 그래서 사업장을 옮기고 싶지만 한국에서 더 오래 일하려고 약 먹으면서 참고 일하고 있다.”

또한 고용허가제가 가족 동반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못 본지 2~3년 됐다. 1년마다 한번은 본국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싶은데, 사장이 ‘바쁜데 너 가면 누가 일하냐’며 휴가를 가지 말라고 했다. 가족이 [한국행] 여행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대사관에 갔더니 남편이 고용허가제 비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4년 10개월 동안 가족을 한번도 못 보는 사람이 많다.”

이런 고통을 견디다 못한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 체류로 내몰린다. 그래서 정부는 야만적인 단속 추방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강요해 왔다. 알려진 사례만으로도 단속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이주노동자가 한 해 평균 2명이 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도 단속과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부상 당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끔찍한 제도인 고용허가제가 올해로 벌써 13년 째 시행되고 있다. 정부는 주로 이주노동자가 ‘노동시장을 교란’시켜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이런 통제와 차별을 정당화한다.

지난해 8월 고용허가제 폐지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조승진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며 한국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해 왔다. 실제로 최근 법무부는 “주조, 용접, 농업, 어업 등의 경우 경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산업 분야임에도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고용허가제 등을 통한 비숙련 외국 인력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농림어업의 경우 외국인 취업자 비중이 30퍼센트를 넘을 정도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또한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증가가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고도 주장한다. 그래서 체류 기간 연장의 조건으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가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소득이나 자산 보유를 요구한다. 보수 언론은 본국으로의 송금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한국 사회는 일손이 딸리는 열악한 업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더 큰 편익을 얻고 있다.

편익 제공

정부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반응해 고용허가제 노동자 중 극히 일부에 대해서는 최대 체류 기간을 9년 8개월까지 점차 늘려 왔다. 고용노동부는 최근에 이 체류 기간을 더 늘리려는 시도를 하다가 이주노동자의 정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법무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는 정부의 출입국 규제가 얼마나 자의적인지, 또 이를 어겼다고 미등록 딱지를 붙여 단속 추방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가들은 이렇게 이주노동자가 필요해 더 오래 쓰려고 하면서도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고용허가제의 틀 안에서 체류 기간을 연장하며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사업장 이동과 가족 동반을 금지하고, 영주권 신청 자격을 얻지 못하도록 연속 체류 기간을 4년 10개월로 제한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최근에는 사용자가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숙식비를 강제로 공제할 수 있게 하는 지침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는 사실상 임금을 삭감하는 것으로, 과거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주들의 ‘부담’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 위해 시도해 오던 것을 아예 제도화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죽음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당장 폐지하고 사업장 변경의 자유, 가족 동반, 정주를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후보 시절 고용허가제 폐지, 단속 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에 모두 찬성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가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고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가 단속 추방 됐다는 점을 봤을 때, 문재인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고용허가제는 실업과 저임금을 이주노동자 탓으로 돌려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를 이간질하는 제도다. 또한 이주노동자에게 강요되는 열악한 조건은 내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조건 하향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고용허가제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해로운 제도다. 따라서 노동운동과 진보·좌파 활동가들이 고용허가제 폐지와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를 위해 적극 나서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단결을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