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인’ 송경동 시인이 미당문학상 후보를 거부했다. 송경동 시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미당문학상이 “친일 부역과 5·18 광주 학살과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그 군부 정권에 부역했던 이를 도리어 기리는 상”이므로 “[그 상을 받는 것은] 민주주의와 해방을 위해 싸우다 수없이 죽어가고, 끌려가고, 짓밟힌 무수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 그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다.]”

송경동 시인은 기륭전자 투쟁을 비롯해 크고 작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 왔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항의해 광화문 광장에서 천막 농성을 했다. 그래서 송경동 시인이 후보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앞선 활동의 연장이고 잘한 일이다.

미당문학상 후보를 거부한 ‘거리의 시인’으로 불리는 송경동 시인 ⓒ이윤선

2000년에 죽은 서정주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대표적 친일 문학가이자 시인이다. 그뿐 아니라 군사 독재 정권도 낯뜨겁게 찬양했던 자다.

서정주는 1940년대 일제를 찬양하고 황국신민화 정책을 선전하고 미화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위해 전쟁에 가미가제(자살 특공대)로 죽어 가라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아래와 같은 시를 쓰며 독사의 혓바닥을 놀렸다. “원수 영미(英美)의 항공모함을 /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 장하도다 /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이도 모자라 조선인 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 출정을 독려하는 시를 쓰고 일본 군대를 쫓아다니며 종군 기사를 썼다. 서정주는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해 “일본의 욱일승천지세(旭日昇天之勢)” 밑에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로 체념하면서 산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고도 했다.

일본이 망하지 않았다면 평생 친일을 했을 것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친일이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면 당시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마저 바친 많은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거스른 사람’들이라는 요설에 불과하다.

‘민족 기상의 모범이신 전두환’

이 “종천순일파”는 해방 이후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공 열풍에 편승해 재빠르게 친이승만파로 변신했다. “그[이승만]와의 반 해쯤의 접촉은 내게는 은근히 큰 힘이 되었다. 늘 짓눌리면서도 끈질기게 뚫고 나온 민족혼의 상징을 그에게서 가까이 느[꼈다.]” 서정주는 이승만의 전기도 집필했다. 이런 변신으로 서정주는 문학계의 거두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초대 문교부 예술과장 자리에 앉은 것이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8월 24일 〈경향신문〉에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혁명 찬(讚)’)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박정희의 베트남 참전 결정을 지지하며 파병을 독려하는 시 ‘다시 비정(非情)의 산하(山下)에’를 쓰고 1975년에는 새마을운동 시찰을 따라다니며 관제용 참관기를 썼다.

19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권좌에 오른 전두환을 위해 그는 그해 TV에 출연해 전두환 지지 연설을 했다. 1987년 전두환의 56세 생일 축하장에서는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 하늘의 찬양과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라는 시도 발표했다. 1987년 6월 항쟁 중에는 《문학정신》에 “이 중차대한 역사적인 시점에서 왜 무슨 바람으로 등 돌리고 뒤돌아서 딴전을 보며 힐난과 불화 조성과 혼란과 파괴만 일삼고 있는지 참으로 이해해 줄 수 없는 일”이라며 민주화 염원 민중을 비난하고 당시 태동하던 민중 문학에 저주를 퍼부었다. 일제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자들과 항일무장투쟁 세력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 운운하며 꿈을 깨라던 행적을 다시 보인 것이다.

이렇듯 서정주의 인생에는 일제와 독재 정권에 대한 찬양과 부역의 세월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 대가로 그는 교과서에 늘 실리는 국민 시인 대접을 받았다. 서정주의 제자 고은 시인마저 “2001년 ‘미당 담론’에서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 시대에 대한 고소 공포증에 가까운 굴복’이라고” 비판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 전두환의 역사 왜곡 회고록 등을 보더라도 독재 세력과 우파는 반성을 모른다. 일제와 독재 찬양에 누구보다 앞장선 서정주 따위들을 기리는 사업들이 중단돼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