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백남기 농민 사망 :
외인사 판정 났지만 가해자 수사·처벌은 감감무소식

6월 15일 서울대병원이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뒤늦게 ‘외인사’로 수정했다. 그동안 경찰과 서울대병원이 민중총궐기 현장을 찍은 영상과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의 목격으로 확인된 경찰의 살인 진압을 2년 가까이 은폐하려 한 시도가 이제야 조금 바로잡힌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에 대한 수사와 처벌에 별 진척이 없다는 것은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이다. 사망 진단서를 조작한 서울대병원 서창석 원장과 백선하 교수 등은 1순위 처벌 대상자들이지만 내부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오히려 뻔뻔하게도 외인사 판정 후에도 서울대병원 측은 “백선하에 대한 징계 검토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쪽에서는 이철성 경찰청장이 유가족도 없는 자리(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사과한 게 전부였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미루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조승진

이철성은 지난해 11월 광주 경찰이 페이스북에 ‘민주화의 성지’ 글을 게시하자, 이를 삭제하라고 지시하면서 “촛불 가지고 이 정권이 무너질 것 같냐”, “내가 있는 한 안 된다”고 말했던 자다. 이외에도 수많은 악행 프로필의 소유자인 이철성의 ‘사과’는 아무런 진정성이 없다.

이철성은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의 바통을 이어받아 박근혜 정부의 말기를 지켰다. 따라서 백남기 농민 사건 진상 은폐, 책임 회피의 공범이다. 밀양송전탑 시위 폭력 진압의 책임자(경남경찰청장)이기도 했다. 이런 자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경찰청장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철성을 해임해야 한다.

한편 박근혜 정부 내내 수사를 어영부영 미뤄 온 검찰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경찰의 내부 진상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박상기 새 법무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는 “장관이 되면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도록 검찰을 지휘 감독하겠다”고 말했지만 이것도 감감무소식이다.

말뿐인 약속들과 시간 끌기 속에서, 이미 잘못이 뚜렷하게 밝혀진 주요 책임자들조차 전혀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책임자 처벌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의 힘 덕분에 등장했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 사망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촛불의 6대 선결 과제 중 하나였다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백남기 농민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며 거리로 나왔다는 것을 외면하려는 듯 하다.

아마 문재인 정부는 자본주의 국가의 집행권자 입장에서 경찰 관료 조직을 건드리는 데 부담을 느낄 뿐 아니라, 때때로 폭력을 수반할지라도 경찰의 시위 진압은 필요하다고 볼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경찰 폭력에 기대 진압해 왔다. 대테러 진압부대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폭력 진압한 2000년 롯데호텔 파업(음주 진압 의혹까지 나왔다), 맨몸으로 도로에 누워 있는 노조원들을 경찰이 야차처럼 달려들어 패고 찍고 밟은 2001년 인천 부평 대우차 폭력 진압 사건 등이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 폭력 진압 사건들이다.

노무현 정부도 첫해부터 철도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을 경찰 폭력으로 해산시켰다. 전북 부안에서는 핵폐기장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 시위에 전국의 진압 경찰들을 끌어모아 2만 명이나 보냈다.(당시 부안 인구가 7만여 명이었고, 이런 경찰 동원은 노무현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2005년에는 농민 집회에서 집회장 안까지 쳐들어온 경찰의 잔인한 폭력으로 농민 두 명이 사망했다. 한 집회에서 두 명이나 때려 죽인 것이다! 2006년에는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열사가,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는 건 물론이고 소화기까지 집어던지는 무자비한 폭력 진압으로 결국 사망했다.

이런 정부에서 청와대 실세로 지낸 문재인은 이후 야당 시절에 낸 여러 회고록 등에서 이런 폭력 진압과 사실상의 국가 살인 사건들에 대해 진심 어린 반성을 보여 준 바가 없다.

지난해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유가족이 요구한 백남기 농민 특검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새누리당이 다수인 법사위에 넘김으로써 유가족과 운동의 뒤통수를 쳤다. 당시 원내대표 우상호는 “어차피 특검 정신은 여야 합의로 하라는 것 … 여야 합의 없이 특검을 하는 전례를 만드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우파와의 상생이 백남기 농민의 억울함과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한편, 경찰이 지금 경찰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인권 경찰로의 개혁” 운운하는 것도 위선적인 ‘쇼’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이익과 질서를 무력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경찰은 개혁 정도로 그 본질적인 성격을 바꿀 수 없다.

ⓒ이미진

최근에 경찰이 개혁적 제스처를 취하는 건 검경 수사권 조정 움직임에 편승해 독자적인 수사권을 확보해 보려는 책략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당 공식 브리핑에서 “경찰 개혁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한 것은 안이한 발상으로 보인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독립적인 비판과 폭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망 진단서를 조작했던 서울대병원조차 외인사를 인정한 마당에, 물대포를 쏜 경찰과 그것을 지휘한 경찰 수뇌부가 처벌받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픈 당연한 소리다. 문재인 정부는 시간 끌지 말고 백남기 농민 사망 책임자들을 당장 처벌하라.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