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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건설 노동자 :
정부는 건설 현장 노동조건을 개선하라

전국의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이 8월 10일 하루 일손을 놓고 서울 광화문에 모여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불법다단계하도급 척결, 퇴직공제제도 개선, 포괄임금제 폐지, 초단기근로계약 반복 갱신 금지, 부당노동행위 척결, 노조 할 권리 보장, 산별교섭, 원청 건설사와 교섭권 보장 등이다.

문재인은 플랜트건설 노동자의 요구 외면 말라 ⓒ이미진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은 정유, 석유화학, 발전소 등 대규모 산업 설비를 건설·유지·보수하는 일을 한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고용 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은 이번 상경투쟁을 통해 ‘일할 만한 일자리’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조건들을 법·제도적으로 보장받기를 원한다.

토목건축 건설 현장과 마찬가지로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의 일터에도 다단계 하도급과 포괄임금제가 만연해 있다. 이로 말미암은 높은 산재 위험과 임금 갈취, 장시간 중노동의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원청 건설사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 공사를 진행하지 않고 여러 단계로 하도급을 거치면서, 공사를 수주받은 하도급업자는 이윤을 늘리기 위해 공사기일을 단축시키려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채근한다.

광양의 한 플랜트건설 노동자에게 현실을 들었다.

“5명이 이틀간 해야 하는 공사를 야근해서 하루 만에 끝내면 하도급업자는 이틀치 공사비를 받고도 우리한테는 하루 일당에 야근비만 조금 더 주고 나머지 차액을 가져가요. 그러니까 우리 고혈을 더 짜낼수록 하도급업자가 더 많은 돈을 가져가는 구조죠.”

포괄임금제는 하도급업의 노동자들에게 고혈을 짜내는 수법이다. 임금에 이미 ‘추가수당’을 반영한 것으로 간주해 사업주들이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중노동을 마음대로 강요한다.

“이쪽 광양, 여수 현장에서는 그동안 투쟁으로 오전 10시 30분, 오후 3시 30분 휴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포괄임금제를 받는 팀들은 이런 휴식 시간도 없이 종일 빡세게 일할 때가 비일비재해요.”

이런 혹사 속에 누적되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노동자들이 안전을 챙기기 어렵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0여 년간 제조업의 제조원가에서 수선비(건물, 설비의 내용연수에 따라 적절한 손질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수리 비용)의 비중은 감소 추세다. 이 때문에 플랜트건설 현장을 포함한 건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위험은 오히려 높아졌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6년 1천대 건설업체에서 발생한 재해자 수는 3천8백37명으로 전년 대비 3백69명(10.6퍼센트)이 증가했다. 재해율도 최근 5년간 매년 증가 추세다.

초단기 계약

한 달 단위의 초단기근로계약 같은 불안정한 고용 조건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기 어렵게 하는 구실을 한다. 또, 근로기준법상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하지 않았을 때,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이 해고예고수당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3개월, 6개월짜리 공사에 일자리를 구해도 한 달 단위로 근로계약을 해요. 노조가 없거나 약해서 매달 계약 갱신을 할 때마다 업체 눈치를 보게 되면, 빡세고 위험해서 불만이 있어도 말하기가 꺼려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이렇게 평생 현장에서 몸을 혹사하다가 나이가 들거나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됐을 때, 최소한의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게 도입된 퇴직공제부금도 현실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사용자가 납부하는 퇴직공제부금은 10년째 하루 4천 원으로 동결돼 있어 건설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퇴직공제부금은 1년에 고작 77만 8천 원이다. 이는 제조업 노동자 1년 퇴직금(2백81만 9천 원)의 27.6퍼센트에 불과하다.

심지어 현행법상 민간 공사의 경우 공사 예정 금액이 1백억 원 이상이어야 퇴직공제제도가 적용된다. 그래서 편법이 만연하다. “지금 현대제철이 발주한 공사에 나가는데, 전체 공사비는 1백억 원이 넘지만, 공사를 여러 과정으로 쪼개 공사비 규모를 줄이는 편법을 써서 퇴직공제부금이 적립되지 않아요. 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을 평생 비정규직으로 뼈 빠지게 부려 먹으면서 노후생계비로 고작 하루 4천 원 적립하는 것조차 아까워하는 거죠.”

위에서 열거한 사항들은 이미 노동자들이 수년 동안 개선을 요구해 온 것들이다.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도급은 2008년부터 법으로 금지됐고, 얼마 전 발표된 정부 ‘1백대 국정과제’에 포괄임금제 규제가 포함돼 있다. 퇴직공제부금도 고용노동부가 이미 2014년부터 5천 원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플랜트건설노조의 상경 투쟁은 정당하다.

최근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의 사기는 나쁘지 않다. 울산, 충남 대산에서는 몇 년 만에 임금 인상을 쟁취했고, 여수에서도 임금 인상을 얻어 냈다.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정유업체들이 시설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비교적 쉽게 양보를 했다. 포항, 전남동부경남서부(광양), 강원 등에서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이 진행 중이다. 특히 충남 대산 지역 조합원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1차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키며 파업을 지속해 지부 지도부가 추가협상으로 더 많은 양보를 받아오도록 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번 상경 투쟁이 이런 분위기를 이어받아 정부에 법·제도 개선을 압박하고, 현장에서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