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스트들은 계급보다 민족을, 노동자 투쟁보다 통일 운동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포퓰리즘은 엘리트, 즉 소수 권력자들과 소수 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보통 국민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정치 사상과 정치 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런 관점은 특정 국면에서 노동자 투쟁과 대립하기도 한다. 현재 민주노총이 김대중 정부 퇴진을 주장하지만, 포퓰리스트들은 김대중이 통일 운동에서 ‘진보적’ 역할을 한다며 퇴진 주장에 반대한다. 심지어 일부 포퓰리스트는 계급적 관점을 내세우는 것을 ‘계급 이기주의’라며 반대한다.

민족이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계의 근본적 구분이 민족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실제로 설득력 있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의 발전이 국민 국가에 의존하면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봉건제의 태 내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비교적 동질적인 국내 시장이 형성됐고, 또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시장이 필요했다. 지역간 관세 장벽이 무너지고 교통·통신 시설이 더 널리 확립되는 것은 국내 시장 형성에 일조했다. 긴밀한 경제적 통합은 민족 국가의 발달을 촉진했다.

민족 국가의 형성 과정은 언어·문화·생활양식 등의 균일성을 촉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봉건제의 쇠퇴 과정에서 여러 방언들이 사라지면서 민족 언어가 등장했다. 민족 국가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와 교육 제도를 통해 이러한 문화적 균일성을 확대해 갔다. 또, 민족 국가는 군사비 지출 등 갖가지 방식으로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했다.

자본주의가 19세기 말에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나라간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고, 세계 대다수 민족들이 극소수 국가들에 종속됐다. 이러한 억압에 대한 정치적 반발은 민족주의의 형태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민족 국가는 봉건제의 구성 단위(장원)보다 더 크고 더 균일한 정치적 단위를 새로 만들어 내고, 현지 주민들에게 자체 언어와 문화를 제공한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지배는 이러한 발전을 제약한다. 민족 국가의 발전이 득이 되는 집단, 특히 신분 상승의 길이 막혀 버린 중간계급은 제국주의 지배에 강력히 반발할 수 있다. 피억압 민족해방 운동의 지도자들이 대체로 중간계급 출신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두 가지 형태의 민족주의가 서로 충돌한다. 하나는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다. 이러한 충돌에서 중국·베트남·알제리·아일랜드 등의 해방 투쟁이 비롯했다.

민족 해방 운동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저항하는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를 지지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족 해방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민족주의에 환상을 가져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위해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아일랜드 독립 운동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지도된다 할지라도 영국 노동자들은 이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영국과 아일랜드의 노동자 계급이 단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눈에 영국 노동자들은 지배자들과 한편으로 비쳐질 것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민족해방 운동들이 제국주의를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베트남 민족해방 운동이 미국을 패퇴시킨 덕분에 미국은 한동안 섣불리 제3세계에 개입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이루고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지지하지만,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와 민족주의가 근본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 계급에 의한 사회 근본 변혁을 위한 지침이다. 그런데 피억압 민족이라 할지라도 그 민족주의의 궁극 목표는 자본주의적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그 정치적 웅변술이 아무리 급진적일지라도 자본주의적 국가 체계의 근간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이것은 그들이 조만간 제국주의와 타협할 것임을 뜻한다.

1980년대 말 이란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미국 제국주의와 타협한 것이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지도자 아라파트가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고 미국 제국주의와 타협하기 시작한 사례 또는 아일랜드의 신페인 당이 무장 투쟁을 포기하고 영국 제국주의와 타협한 것이 이러한 사례들이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자본주의 발전 덕분에 자본주의적 민족 자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이전에 비해 더 어려워졌다. 1949년 중국 혁명이나 1958년 쿠바 혁명은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민족 해방에 성공한 예외 사례에 속한다.

알제리·니카라과·이집트 등 많은 나라들이 경제의 세계화 경향 속에서 민족 자립 경제를 건설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세계 경제에 대한 개방으로 돌아섰다. 심지어 중국이나 쿠바조차 혁명 이후의 경험은 세계 체제가 가하는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 줬다.

투쟁의 동력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십 년 사이에 대부분의 제3세계 민중들이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독립 민족 국가를 건설하면서, 위대한 역사적 민족 해방 운동이 대부분 사라진 듯하다. 물론 여전히 중요한 민족 투쟁들이 소수 존재한다. 터키 내 쿠르드 족이나 북아일랜드의 경우처럼 진정한 민족 해방 운동이 있다.

다른 한편, 발칸 반도에서처럼 각 민족 지배자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대립하도록 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하기도 한다.

한반도에는 냉전의 잔재인 남북한 분단이 현실로 존재한다. 분단이라는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좌파 민족주의 포퓰리스트들이 등장할 수 있는 물질적 기초다.

민족주의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운동을 한결같이 이끄는 이데올로기가 되지 못하면서 반제 투쟁의 동력에 관한 개념이 혼란되곤 했다.

민족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반대해 전 민족의 단결을 외친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고 통합되면서 피억압 민족의 자본가들은 그보다 하층의 사람들에 비해 민족해방에 그다지 큰 열의를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제국주의가 피억압 민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계급적 지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후세인과 평범한 민중이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로 인해 받는 영향은 서로 다르다. 또, 아랍 산유국의 지배자들이 석유로 인한 수익으로 여러 나라를 호사스럽게 여행하는 것과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고로 고통을 겪는 것이 대비된다.

그래서 민족 구성원 전체가 제국주의와 관련해 공통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총련 투사들은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지만 같은 민족의 일원인 김대중은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한다.

오히려 반제 투쟁을 한결같이 하려면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들의 단순 집합인 민족이 아니라 계급에 기초한 정치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민족 ‘분단’보다 계급 ‘분단’이 더 근본적이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로서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려면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인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그들의 국제적 단결이 필요하다. 반제 투쟁에서 민족주의가 아니라 계급 정치가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에 맞설 때에는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지지를 해야 하지만 한결같은 반제 투쟁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구체적 상황에서 민족주의 세력들이 취하는 태도에 대한 구체적·정치적 분석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노동자 대중을 민족주의에서 떼어 내어 근본적 사회변혁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