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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
약간의 개선 있지만, 기본적으로 요란한 빈 수레

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조처로 저소득층의 극히 일부는 실질적인 개선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조처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에 가깝다. 이번 대책의 핵심 목표는 현재 63.2퍼센트 수준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70퍼센트로 높이는 것이다. OECD 평균 건강보험 보장률이 입원의 경우 90퍼센트, 전체로도 80퍼센트가 넘는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한겨레〉 등이 이를 두고 “비급여 전면 건강보험 적용”이라며 부풀려 보도한 것은 한심한 일이다.

물론 이조차 약속대로 된다면 개선이기는 하다. 문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작다는 것이다.

먼저, “필수적인 비급여는 모두 급여화”한다지만 이는 하나 마나 한 얘기다. 지금도 법적으로 ‘필수적인’ 의료는 모두 급여화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비급여가 이토록 많은 것은 의료기관(병원, 의원, 약국 등)이 대부분 민간 소유인 상황과 연관이 있다. 민간 의료기관들은 자신의 수익이 진료비에서 나오니 값비싼 재료와 약품, 치료법을 선호한다. 반면, 건강보험공단(정부)은 의료비 지출을 일정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정부는 이런 구조가 효율성을 높인다고 선전해 왔지만, 실제로는 이윤 논리와 관료주의가 대중의 필요를 대체해 왔을 뿐이다. 그 결과 민간 의료기관이나 정부 모두 일정 영역을 건강보험에서 제외시키려는 경향을 낳았다.

예컨대 수액 주사를 맞을 때 흔히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주사바늘은 일선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보험 적용에서 제외돼 왔다. 정부는 값싼 금속 바늘을 써도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었고 병원 측은 자신이 운영하는 매점에 바늘을 갖다 놓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누구도 이 멍청한 상황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는 넘쳐난다. 제약, 의료기기, 용품 등 의료 연관 기업 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상품은 원가를 줄이는 방향으로(즉, 질을 낮추는 방향으로), 비급여는 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양쪽 모두에서 최대 수익을 올리려 한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영국 국가의료체계(NHS) 같은 방식으로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는 한 보장률을 높이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민간 의료체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국, 한국, 멕시코가 늘 OECD 꼴찌를 차지하는 이유다.

요란한 빈 수레 호들갑을 뒤로 하고 들여다 보면 보장성, 재원 마련 등에서 함정이 많다 ⓒ이미진

게다가 정부는 비급여를 없애기 위해 5년 동안 30조 원가량을 투입한다고 했지만 이는 누적해서 부풀려진 액수다. 실제로는 내년까지 3조 7천억 원을 투입하고 2019년에는 9천6백58억 원, 2020년 6천9백15억 원, 2021년 6천3백5억 원, 2022년 5천9백5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2015년 현재 건강보험 급여 지출 규모가 45조 7천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증가율은 5퍼센트도 안 되는 셈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많은 비급여 항목이 곧바로 급여로 전환되기보다 일부만 보장하는 것으로 남을 듯하다. 문재인은 이런 경우들을 “예비급여”로 분류해 보험 적용 비율을 차등화(10~50퍼센트) 하기로 했다. 또 3~5년 뒤 보험적용 지속 여부를 재평가하겠다고 한다. 정확히 말해 ‘모두’가 아니라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보험적용인 셈이다.

예비급여

입원 환자들에게 가장 부담이 큰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간병비, 병실료)도 찔끔 생색내는 수준인데다 실제 시행될지는 두고 봐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먼저 선택진료비는 박근혜 정부조차 이미 단계적 폐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환자들에게는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데다 이를 성과급과 연동하는 병원 측의 임금 정책에 노동조합들이 문제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정말로 폐지했을지는 미지수지만 촛불 대통령을 자처하는 문재인이 이를 새로운 계획처럼 내놓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간병 부담을 줄이려고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2022년까지 10만 병상까지 확대한다지만 “충분히 제공”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서는 간호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하는데, 열악한 노동조건과 이에 비해 낮은 임금 탓에 지금도 많은 간호사들이 몇 년 만에 일을 그만두는 형편이다. 그런데 정작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한다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문제를 만들어 내는 식이니 실질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1~3인실 병실료의 경우 환자 “쏠림” 현상을 막는다며 최대 50퍼센트까지 환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기로 했다. 약제도 전액 보장이 아니라 30~90퍼센트까지 차등을 둔다. 치매 의료비 부담을 완화한다지만 치매 진단 검사비를 지원하는 정도다.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비용이 드는 돌봄 비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중증’ 치매의 경우에만 욕창 치료 등 진료비의 90퍼센트를 지원한다. 물론 그조차 앞서 지적했듯이 이 계산에서 제외되는 비급여의 폭은 계속 달라질 것이다.

개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일부 저소득층의 의료비 경감 대책인데, 그조차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장기 입원자는 별도 심사제도를 두겠다니 두고 볼 일이다.

서비스법·규제프리존법

재원 마련 방법도 기만적이다. “보험료 인상은 과거 10년간 통상 보험료 인상률 수준에서 관리”하겠다지만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보험료가 동결되거나 1퍼센트 남짓 인상된 기억을 이용하려는 못된 꼼수일 뿐이다. 2007년 보험료 인상률은 무려 6.5퍼센트였고 2008년에도 6.4퍼센트나 올랐다. 2010년과 2011년에도 각각 4.9퍼센트, 5.9퍼센트 인상됐다. 지난 5년간 실질임금 인상률이 1.34퍼센트밖에 안 되는 것을 고려하면 보험료 인상폭이 지난 10년 평균치(2.9퍼센트)만 돼도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약삭빠르게도 “OECD 수준으로의 급격한 개선보다, 부담가능한 보험료 인상률을 고려한 계획”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또, 정부는 매년 4월마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분을 따져 1년치 보험료 추가분을 징수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보험료 수입의 14퍼센트에 해당하는 정부 재정 지원액을 전년도 기준으로 계산해 지난 10여 년 동안 5조 3천억 원가량 덜 냈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 돈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도 없이 보험료 인상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도 근본에서 의료를 수익성 높은 산업으로 여긴다 ⓒ제공 최윤석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의료를 수익성 높은 서비스 ‘산업’으로 여겨 온 전임 정부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 정부 여당은 그동안 의료 민영화법으로 지적돼 온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도 다음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하겠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그 정도로 이 법이 끼칠 효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관련기사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포장지만 바꾼 의료 민영화’, 본지 212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신의료기술 개발에 대한 안전 규제도 완화하려 하는 등 박근혜 ‘적폐’를 이름만 바꿔 이어받는 모양새도 보인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극의 공범이었던 박기영을 최근 과학기술혁신 본부장에 임명하려 한 시도도 그 일환인 듯하다. 사실 이명박근혜 시절 새누리당이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시작한 일이라고 꼬집었을 때 민주당은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요란한 홍보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의 건강보험 ‘개혁’이 노동자들에게 그저 이익이 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기업주들이나 의료 ‘산업’ 자본가들의 이익을 사회에 알아서 재분배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약속은 지키지도 못할 것이고 그 책임을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는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좌파는 노동자들에게 문재인을 믿고 기다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임금 등 자신들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