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오랜 활동가이자, 신간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성차별, 성폭력》(책갈피)의 저자 실라 맥그리거가 7월 20~23일 방한해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7’에서 연설했다. 이 글은 7월 20일에 실라 맥그리거가 한 같은 제목의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통역자와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발제

트럼프 같은 자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오늘날, 그 누구도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트럼프처럼 여성혐오적인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성평등이 이미 성취됐다고 말하는 여성도 일부 있기 때문에 오늘날 여성차별의 두 가지 주요 측면들을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맑시금2017에서 연설 중인 실라 맥그리거 ⓒ이미진

첫째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전히 현실에 만연하다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정도인 35퍼센트가 자신의 연인, 파트너인 남성에게서 폭력이나 성폭력을 겪거나 낯선 사람한테서 성폭력을 당한다고 추산합니다. 또 여성 살인 사건의 38퍼센트가 남성 파트너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자기 삶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자신이 사랑하거나 한때 사랑했던 남성일 수 있다는 기막힌 현실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들 간 관계의 모순을 일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동시에 여성들에 대한 편견도 지독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강간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둘러싼 끔찍한 편견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2011년에 이것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해 4월 3일 캐나다 토론토의 어떤 경찰관이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거리에 다닐 때 창녀처럼 옷을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입니다.

이런 여성혐오에 대한 반발로 전 세계적으로 ‘슬럿워크’[‘창녀처럼 걷기’라는 뜻] 운동이 촉발됐습니다. 캐나다뿐 아니라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여성들이 항의 행진을 벌였습니다. 제가 있는 런던에서는 젊은 여성과 함께 남성도 항의 행동에 참가했습니다.

그 다음해인 2012년에 또 한 차례 전 세계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인도에서 조티 싱이라는, 물리치료 인턴을 하던 여성이 민영 버스 안에서 버스 기사를 포함한 남성 6명에게 집단 강간과 구타를 당한 사건입니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함께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성차별은 단지 개인들 간 관계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영역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노동 현장과 일터에서도 벌어집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이 임금 차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 노동자가 평균 1달러를 벌 때 여성 노동자들은 77센트밖에 벌지 못합니다. 생애 소득 전체에 이 정도 차이가 납니다. 소수 인종이거나 이주민이거나 자녀가 있는 여성들일 경우에 성별 임금 격차는 더 커집니다.

육아가 여성의 임금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큰데요.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도 다르지만, 아이를 갖게 되면 임금에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은 같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남녀 전체의 임금 격차는 14퍼센트이지만,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과의 임금 격차가 35퍼센트까지 뜁니다.

2012년에 한국은 남녀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에 가장 커서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한국]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겨우 62.6퍼센트에 그쳤던 것입니다. 또 한국은 ‘유리 천장’[여성이 회사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 승진하지 못하는 것] 지수도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성별 임금격차가 이토록 큰 탓에, 한국의 출산율은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낮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OECD 국가 중에서 꼴찌를 다툽니다. 예컨대 25세에서 54세 사이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고작 60퍼센트인데, 미국의 경우에는 75퍼센트이고 유럽연합 전체로 봤을 때는 76퍼센트입니다.

한국 여성 가운데 아이를 꼭 갖겠다고 답한 비율은 1991년에는 90퍼센트였는데 2000년에 가서는 58퍼센트로 떨어집니다. 1970년에는 평균 초혼 연령이 여성의 경우 23세였는데 2005년에는 28세가 됩니다.

영국에서조차 남녀 소득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한 가지 재미있는 통계가 있는데요, 부모들한테 받는 용돈이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에 비해서 20퍼센트가 더 많다고 합니다.[청중 웃음] 이 남녀 용돈 격차는 아이가 십대가 되면 더욱 벌어집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은, 그동안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지위가 엄청난 변화를 겪었음에도 여성차별이 전 세계적으로 서슬 퍼렇게 살아 있고 아주 공고하게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에서도 결혼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크게 변해 왔다

예를 들어서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동일임금법, 성차별금지법 같은 것들이 법제화돼 있긴 합니다. 피임이나 낙태가 합법인 곳도 꽤 있습니다. 물론 나라별로 편차는 있는데, 예컨대 영국 잉글랜드[낙태 합법]와 아일랜드 지역[낙태 단속]만 해도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아 1백여 년 전에 비하면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의 성과물로서 많은 나라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고 일부 나라에서 동성 결혼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비록 세계적으로 불균등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는 있습니다.

또 한가지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속도 차이는 있지만) 여성이 사회적 생산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여성들은 사회 최상층까지 진출하기도 하죠.

그 최상층에 있는 여성 하나를 여러분이 제거했기 때문에 더 잘 아시겠지만 말입니다.[청중 웃음] 영국에서도 테레사 메이라는 여성[현직 총리]을 끌어내리고 싶어서 안달이고, 그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도 최상층에 있는 여성의 또 다른 사례입니다.

이들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의 여성 기업 임원들이 자신의 성공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인용해 보겠습니다.

미국 GE벤처스의 사장인 수 시겔은 “‘훌륭한 근로 윤리를 키우라’는 어머니의 조언이 자신의 성공에서 가장 소중했다”고 말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즈니스 개발 담당 부사장인 페기 존슨은 어머니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규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 덕분이라고 얘기합니다.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최고경영자인 캐시 엥겔베르트는 어머니가 이런 얘기를 했다네요. “남자애들이 하는 모든 것을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남자 형제 다섯 명이랑 같이 커서 알잖아?”

‘캐피털 원’이라는 금융 기업의 사장인 이베트 버틀러는 어머니가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라” 하고 조언했답니다.

아마존 임원인 시모이나 바센은 “우리 엄마는 항상 내가 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 어떤 정해진 틀에 자신을 짜맞출 필요 없다. … 내가 아마존에서 맡았던 여러 직책 중에서 일부는 내가 업무 분장을 직접 써서 사장한테 갖다 주면서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자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의 말입니다. “여성들 스스로 자기 앞길을 막기도 한다. 바로 여성차별과 사회적으로 부여된 성 역할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논리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이들의 말대로라면 여성들이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정치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다 여성 자신의 탓입니다. 여성 스스로 “근로 의욕”이 충분치 않다거나 성차별을 “스스로 내면화”해서 생긴 문제라는 것이죠.

둘째, 이 여성들은 지배계급의 구성원들이고 거기에서 비롯하는 모종의 자신감이 넘쳐납니다. 이런 걸 볼 때 자신감 등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결국 모두 계급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최상층에 올라 선 사람의 겨우 4퍼센트만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분명 격노할 일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이 여성들이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다수 여성들이 겪는 차별은 어떤 개인적 결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여성들 탓도 아닙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의 현실을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후] 여성해방 운동의 이론가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경제주의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성차별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있었고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계속 온존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이 핵심 이론가들은 모두 옛 소련이나 중국,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봤습니다.

저는 이들과는 다른 정치적 전통에 속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전통에서는 이런 국가들은 사회주의가 아니고 러시아 혁명이 패배하면서 생겨난 부산물이라고 봅니다. 러시아 혁명의 패배의 한 부분이 바로 여성 노동자들의 패배였고 그에 따라서 러시아에서 여성차별이 되살아났[고 이런 러시아를 모방한 국가들에서는 여성차별이 여전했]습니다.

둘째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성차별이 자본주의에서 시작됐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쓴 것은 여성차별의 뿌리가 다름아닌 계급 사회[역사적으로 자본주의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임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초기 저작에는 여성차별 문제에 대한 약간의 혼란이나 약점도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 당시[19세기]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보면서 여성차별의 뿌리였던 노동계급 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있다고 봤습니다.

당시는 공장제가 확산되면서 남성과 여성,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사회적 생산으로 편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의 물질적 토대가 실제로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던 시기에 노동자 평균 수명은 짧아지고 사망률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그걸 보면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다음날 일터에 출근하려고 스스로 재생산하는지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고 올바르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원체 역동적인 체제인 만큼 우리는 그 체제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식으로 변화·발전하는지 포착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에는 몇 가지 과정들이 결합됐는데요. 우선, 새로운 산업들이 등장함에 따라 자본가들은 갈수록 더 교육받고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해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엄청나게 높은 영유아 사망률을 끌어내리는 등 노동계급 재생산을 원활히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공장감독관이나 의사들이 공장 내의 끔찍한 실태를 보고한 것과, 엄청나게 긴 노동 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동계급 자신도 사용자들과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는 상황, 이런 것들이 맞물리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이 성공적 투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쟁취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계급 내에서 부르주아 가족을 본 뜬 가족 구조를 확립하려고 법들이 제정됐습니다. 그래서 동성간 성행위를 단속하는 법률, 혼외자와 혼내자를 차별하는 법률 등 결혼을 장려하는 여러 가지 법률, 또 여성이 가정에 남아서 가족을 돌보도록 장려하는 법률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남성이 밖에 나가 일해서 돈을 벌어 오고 여성은 집에서 가정을 돌본다는 가족 모델이 확립됐고 그것이 광범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이런 이상은 현실과 들어맞지 않았고, 흔히 남성의 수입이 너무 작아서 여성도 나가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노동자들은 왜 이런 새로운 가족 시스템을 받아들인 것인가? 남성들의 성차별 의식 때문인가?

그러나 남성 노동자들이 공모해서 여성 노동자들을 몰아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새로운 기계가 도입될 때마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핵심적이었던 것은 초창기 면직물 공업과 달리 새로 등장하는 산업들은 여성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으면서 여성이 차츰 생산 활동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또, 결정적으로 유럽과 영국에서 1848년 혁명의 패배, 차티스트 운동의 패배로 인해서 노동자 혁명의 가능성이 꺾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자본주의가 변하면서 여성이 사회적 생산 활동에서 차지하는 구실도 변했고, 이는 다시 노동계급 가족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변화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가 지적한 모순 즉, 생산은 사회적으로 진행되지만 그 생산 수단은 몇몇 개인들이 소유한다는 모순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뤄지지만 노동계급의 재생산은 개별 가정에게 맡겨져 있다는 모순을 이해해야 합니다.

[노동계급] 가족은 모순된 구실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갖고자 하면, 그 둘은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이를 통해 남성이 가장으로 돈을 벌어와야 하고, 여성은 가정을 돌본다는 생각이 고착화됩니다. 그리고 남성의 임금이 더 많기 때문에 남성이 가족에서 중심적 인물이 됩니다. 실제로는 여성도 일하고 여성의 소득 없이는 가계가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도 말입니다. 또한 가족 안에서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 아이는 가족을 둘러싼 사회와 그 사회의 사상들을 수용하고, 이런 식의 남녀 역할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가령 1950년대만 해도 영국과 미국, 유럽에서는 ‘여성이 하는 일은 단지 용돈 벌이용’이라는 관념이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제2차세계대전과 전후의 세계적 호황이 서구 세계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전후 호황기에 이런 나라들에서는 보건, 복지, 교육, 의료, 공공주택 등이 엄청나게 보급됐는데요. 그것들을 운영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동력을 흡수해야 했습니다.

즉 새로운 노동력이 대거 필요했는데, 영국의 경우 그 중 일부를 옛 식민지의 이주 노동자들로 채웠고, 또 한편에서는 여성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새로 생겨난 산업들 ― 보건, 의료, 교육, 전자제품 제조업 등― 에 여성 노동력이 대거 진출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과거에 미혼 여성이 풀타임으로 일하다가 아이를 갖고 나서는 일을 쉬고 그 다음에 아이가 좀 크면 파트타임으로 일에 복귀하는 패턴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출산 직후에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전후 유럽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독일에서는 터키와 이탈리아에서 유입된 이주 노동자들로 새로운 노동력 수요를 채웠고, 프랑스에서도 옛 식민지들, 특히 알제리 같은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유입된 노동력으로 상당부분 충당했습니다.

오늘날 여성은 과거보다 사회적 생산 활동에 더 많이 참가하고 이는 여성차별을 없앨 커다란 잠재력이다 ⓒ이미진

일터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고, 경제 위기로 먼저 잘리는 것이 반드시 여성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산업 부문이 경제 위기의 타격을 받느냐입니다. 예컨대 광업 부문에 위기가 왔을 경우에는, 광업에서 종사하는 여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로 남성들이 해고를 당했죠.

최근 영국에서는 경제 위기의 여파로 여성 노동자들의 실직률이 더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주로 긴축 정책 때문에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 교육 부문에서 해고가 많이 이뤄지는데 여성들이 그런 부문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제2차세계대전 직후 유럽에서 공공 복지 서비스가 팽창하고 여성 노동력이 진출한 것이 단지 경제 호황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노동계급이 1930~40년대에 끔찍한 희생을 감수한 뒤 ‘이제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엄청난 분노를 가졌고 또 미래에 대한 기대 수준이 올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충족시키지 못하면 혁명을 맞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결코 지배계급들이 너그러워진 것이 아니라, 그 중 한 명이 말했듯이 “우리가 노동계급에게 개혁을 선사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혁명을 선물할 것이다” 하고 봤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적, 정치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이 체제가 가하는 온갖 불의에 맞서 도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1950~60년대 흑인들이 “더는 인종차별을 감내할 수 없다”고 나서면서 공민권 운동이 불붙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 교도들이 “더는 차별을 참을 수 없다”고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 대학생들은 베트남 전쟁을 보면서 제국주의에 맞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동일 임금과 피임·임신·출산에 대한 통제권, 양질의 보육원 등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던 것이죠.

이처럼 사회 저변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가운데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데서는 혁명적 사상이 특히 더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그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이곳들에서 노동계급 투쟁이 더 크게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 해방 운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운동들이 열어젖힌 사회적 공간이 있었기에 여성들도 이제는 혼외 성관계(남성들은 늘 할 수 있었던)도 감히 시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요. 싱글 부모들도 정상적인 부모로 받아들여지고 혼외 출산에 대한 낙인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성소수자 해방 운동은 처음에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까지 다 포괄하다가 후에 동성애 해방 운동으로 좁혀지긴 했습니다만, 적어도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습니다.

요컨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고 나서 1백50년이 흐른 지금,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마르크스가 봤듯이 자본주의가 기존 가족 제도의 기반을 허무는 듯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 가능성의 지평이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습니다. 오늘날 영국에서 자라나는 청년들은 저의 청년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젠더 규정이나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다양한 선택권을 누립니다.

그럼에도 제가 처음에 밝혔듯이 여성차별은 엄연히 우리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는 오랜 한 가지 상식이 있는데요. 레닌과 트로츠키도 이 점을 거듭 밝힌 것인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좀먹고 영혼을 파괴하고 단순 반복적인 가사노동을 사회화 해야만 진정한 여성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레닌이 가사 노동에 대해 쓴 표현들을 보면 그가 가사 노동을 정말 증오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리라든가 빨래라든가 이런 가사노동을 완전히 사회화 하고, 사람들이 지금처럼 단지 핵가족 형태 즉, 두 사람이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그런 형태(자녀가 있든 없든)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함께 사는 그런 사회로 전환하고 그에 맞게 자원을 새로 배치하려면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적어도 제가 몸 담고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서는)의 또 한 가지 상식은 혁명정당이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의 호민관[비슷한 의미로 ‘옹호자’ 또는 ‘지킴이’ - 통역자]이 돼야 한다”(레닌)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라면 모든 회원들이 일체의 차별에 맞서서 싸우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의 임무입니다.

정리 발언

모든 질문에 다 답할 수는 없지만, [사회 체제 개편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제가 좀 보충하겠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반대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가 엄청나게 생산력이 크다는 것에도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고 가사노동을 사회화 할 잠재력은 이미 존재합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한 가지 주목한 것이 곳곳에 식당 천지라는 것입니다. 즉, 음식을 사회화할 잠재력은 이미 있는 것이죠. 세탁소의 경우에는 제가 주의 깊게 보지는 않았는데 꽤 많을 뿐 아니라 만약 부족하다면 더 많이 지을 여지는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호텔들도 많이 보이던데 사람들이 주거 공간이 부족하거나 어린이집이 더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그런 호텔들을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서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노숙인 문제라든가 먹고 자고 아이를 키우는 일을 사회화 하는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볼 때 진정한 문제는 재원이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아니고, 그 재원을 누가 통제하느냐입니다. 그런 재원이 자본가들 수중에 있고, 끊임없는 축적과 이윤 창출에 그런 재원이 묶여 있는 한, 우리의 필요에 맞게 쓸 수 없는 것이죠.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동력은 경쟁을 위한 끊임없는 축적, 그리고 축적을 위한 경쟁입니다. 이를 위해 소수의 사람들이 엄청난 부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체제가 끝장나지 않는 한 그들이 순순히 우리에게 그런 재원을 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부를 어떻게 빼앗아 올 것인가? 어떤 분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두고서, 굉장히 굼뜬 데 어떻게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한국의 노동계급이 느리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영국에 한번 와 보셔야 합니다.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가 된 이후] 지금은 빨리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달팽이 속도로 기어왔습니다.

혁명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고 대부분의 경우 혁명이 언제 터질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레닌도 러시아 혁명 직전까지 자기 생애에 혁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혁명 소식을 접했을 때 레닌은 스위스의 어느 호수에서 느긋하게 노를 젓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0~11년에 튀니지와 아랍 혁명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집트 혁명에 관해서 좀더 부연하자면, 제가 속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혁명 수 년 전부터 이집트에서 학생들이 반전 운동과 팔레스타인 방어 운동을 중심으로 인상적인 운동을 벌인 것을 유심히 지켜 보고 있었고, 여성이 다수인 섬유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는 등 전투적인 투쟁에 나서면서 사회적 공간을 열어젖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한테도 2011년 1월에 폭발한 이집트 혁명은 깜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첫 대규모 집회를 조직했던 어느 이집트 동지와 연락해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평소 하던 대로 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SNS에 시위 일정을 공지하고 카이로 곳곳에서 모여 타흐리르 광장으로 행진하기로 말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몇 백 명이 아니라 몇 천 명이 모였고 순식간에 1백만 명에 달하는 규모로 불었습니다.”

영국에서 2년 전에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당 대표로 선출된 것도 아무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죠. 코빈은 제 또래로 나이도 지긋하고, 남성이고, 더구나 백인이고, ‘한물 간’ 사람으로 보이는 등 인기를 끌 요인이 없어 보였는데 놀랍게도 젊은이들의 지지에 힘입어 노동당 당 대표 선거에서 이긴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공공연한 사회주의자이고,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하고, 전쟁에 반대하고, 노동자들 파업 대열에 합류하는 극좌파인데 말입니다.

또, 올해 초만 하더라도 제러미 코빈이 공식 정치에서는 너무 인기가 없어서 다들 ‘이제 코빈은 끝장이다’고 생각하고 테레사 메이도 이 기회를 틈타서 [보수당의] 의석 수를 늘려보려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코빈은 그 총선에서 대단한 성과를 냈고 거의 정권을 탈환할 뻔 했습니다. 코빈은 선거 기간 내내 분명하고 단호하게 사회주의 사상을 옹호했고, ‘노동자들의 임금 올려야 하고, 공공주택 늘려야 하고, 보건 의료 늘려야 하고, 학생들 등록금 낮춰야 한다’고 얘기했고,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동의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코빈 같은 사람을 지지하고 나선 건 우연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지배자들은 하락하는 이윤율을 만회하려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더 오래 일 시키고 의료·교육을 비롯한 각종 복지 혜택을 깎았습니다. 이것이 영국,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노동계급 성원들에게 거대한 분노를 일으켰고, 이런 분노는 샘솟듯 분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결국 트럼프가 승리했지만, 만약 [버니] 샌더스가 대선 후보로 나왔다면 달랐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양극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행 중인 양극화가 정확히 언제 도약하고 더 빨라질지를 사전에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에 거리 운동의 폭발로 나타나고, 더 나아가서 작업장과 일터의 반란으로 발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태가 급진전할 수도 있고 그러면 우리는 단거리 달리기 하듯 정신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또 다른 시기에는 인내심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여성차별에 대한 불만과 그에 맞서려는 움직임은 세계적 현상이다. 당일 청중 토론에서 질문 중인 인도네시아 참가자 ⓒ이미진

인도와 인도네시아 상황에 대해선 제가 충분히 몰라서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마도 인도에서 여성혐오적 태도가 증가한 데는 힌두 민족주의 정치 세력의 부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지형의 전반적인 우경화와 결부된 것이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티파티를 비롯한 우파와 여성혐오 세력의 준동이 트럼프 당선을 통해 표현됐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회 최상층의 지도자들이 하는 [여성차별적] 언사와, 실제로 여성이 처한 현실을 구분해야 합니다. 인도 같은 경우에도 실제 일터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산업에 편재해 있고, 그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쟁점들은 무엇인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것이죠. 공식 정치에서 여성에 대한 쓰레기 같은 말을 쏟아낸다고 해서 현실이 반드시 그에 따르지는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국제 기구들과 정부가 자본 축적의 거점을 구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성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은데요. 그럼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곳에 집중돼 있는지를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집중돼 있는 곳에서 조직화의 잠재력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혁명적 과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바로 도심 지역입니다. 노동자들이 밀집돼 있는 도심 지역이야말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축적을 이뤄 내는 중심지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혁명 과정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발전할지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인데, 이와 관련해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또 하나 오랜 상식이 있습니다. 바로 혁명가들은 대중이 현재 있는 곳에서 그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것, 노동자들이 지금 벌이는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지난 반년 동안 정치적 부패와 대통령 퇴진 문제를 중심으로 운동이 불붙었죠.

아일랜드에서도 최근 수도세 도입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저희 사회주의노동자당 동지들도 그 투쟁에 많이 참가했고 투쟁이 승리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 헌법을 개정하려는 캠페인과 사회 보장 제도를 둘러싼 쟁점에도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영국과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또 정부가 이주민, 특히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심하게 차별하기 때문에 그에 맞선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이 굉장히 중요해져 왔습니다.

영국의 그렌펠 타워에서 불이 났을 때 서민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엄청난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렌펠 타워 화재는 결국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탈규제화와 긴축 정책이 어떤 참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줬고,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와 안전 문제를 중요한 정치 의제로 올려 놨습니다.

즉, 우리가 어떤 일터, 학교, 또는 지역 사회에 있든 간에 그 안에는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행동에 나서도록 만드는 쟁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회주의자로서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쟁점들을 놓고 사람들과 어깨 걸고 함께 싸우고,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하에서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그것을 없애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특정 쟁점이 수많은 사람들 어쩌면 몇 백만 명을 거리로 불러 낼 만큼 거대한 분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투쟁들은 그 다음 투쟁을 고무하고, 예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노동계급 투쟁의 가능성을 열어 젖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과 트로츠키를 비롯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혁명가들이 매우 확고한 원칙에 입각해서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고,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온갖 방식으로 갈라 놓는 분열은, 함께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서 극복되기 때문이죠. 남과 여, 성소수자와 이성애자, 기독교인과 무슬림 또는 비종교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 대열을 이뤄 공동의 적인 자본가계급에 맞서 싸울 때, 우리는 사실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로 행동할 때 사회를 변혁할 잠재력이 현실이 됩니다.

분열을 극복하는 과정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불균등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혁명가들이 해야 할 일은 이런 과정에 개입해서 그것을 더 가속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시도했을 때 실패할 수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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