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마이클 로버츠 지음, 유철수 옮김, 연암서가, 2017, 23000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자신의 블로그(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에서 2008년에 시작된 경제 위기가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다음과 같은 의미를 되짚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공식 기구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어느 누구도 이번 위기가 도래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심 탈레브가 말한 10억분의 1의 확률을 가진 ‘검은 백조’ 이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케인스주의자들도 이런 점에서 예외는 아닌데, 폴 크루그먼의 ‘기술적 고장’(유효수요 회복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같은 주장이 그것이다.

둘째는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불안정할 뿐 아니라 가끔은 심각한 불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1980년대 비주류 급진 케인스주의자인 하이먼 민스키의 ‘자본주의에서의 금융 불안정성’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차이는 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스키와 비슷한 주장을 받아들여서 2008년 경제 위기가 금융화 때문이라고 주장한 반면, 로버츠는 실물경제의 이윤율 하락을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2007년 8월에 신용경색이 나타나기 1년 전에 이윤량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주요 경제들의 이윤율은 2007년에 이미 낮은 수준이었다. 미국 이윤율은 1997년에 정점을 찍었다. 2002~06년에 가공자본의 거품 덕분에 금융과 부동산 부문에서 이윤율이 상승했지만, 이것은 생산적 투자의 이윤 증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로버츠는 이번 경제 위기가 실물생산 위기에서 비롯된 이윤율의 위기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주장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장기불황》이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의 부제는 야심만만하게도 “어떻게 일어났고, 왜 일어났으며, 이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이다.

이윤율의 위기

마이클 로버츠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있었던 세 번의 불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1930년대 대불황을 다룬 3장이 돋보인다.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대불황을 이해하는 것은 거시경제학에서 성배를 찾는 일”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그 원인을 둘러싸고 논쟁이 분분하다.

로버츠는 대불황의 원인으로 오스트리아 학파가 주장하는 신용 과잉, 통화주의자들의 은행 파산, 어빙 피셔의 과잉 채무 등이 근거가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또한 총수요의 붕괴가 대불황의 원인이라고 보는 케인스의 주장도, 왜 총수요가 갑자기 붕괴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반박한다. 로버츠는 “1930년대 미국 경제의 대불황은 이윤율이 이 시기 동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길게 지속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로버츠는 이윤율의 추세를 통해 경기의 변동을 일관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여느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구별된다. 사실 경제 위기의 원인을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이라는 마르크스의 고유한 주장으로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2008년 경제 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기를 이윤율의 등락으로 설명하는 이 책은 더욱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2008년의 위기가 서방 선진국들(미국과 유로존 그리고 일본)로 확산되면서 장기침체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과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로버츠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주요 경제국들의 이윤율이 이전의 정점보다 낮기 때문에 기업 투자가 늘어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둘째, 온갖 형태(부채, 대출, 파생상품)의 유동성 팽창과 민간부문 부채의 증가로 인해 경기회복이 방해 받고 있다는 점이다.

로버츠는 미국 경제의 부진, 유럽 계획의 실패, 일본 경제의 정체를 자세히 설명하고, 나머지 국가들도 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최근 전 세계 경제가 회복다운 회복을 하지 못하는 상세한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중국 경제에 대해서도 로버츠는 “중국의 위대한 경제 기적이 고갈될 날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장기 파동

그런데 이 책은 “이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예측 부분에서 큰 혼란을 보인다. 로버츠는 이윤율의 순환이 32~36년에 걸쳐 한 주기를 완성하며, 이런 이윤율의 주기가 자본주의의 다른 순환(재고순환, 투자나 고용 또는 산출의 순환, 사회기반시설과 주택 건설 순환 등)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로버츠는 콘드라티예프의 가격 순환을 미국의 전후 경제에 적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2016~17년에 이번 침체가 끝날 것이며, 자본 가치가 파괴된 뒤에 새로운 상승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도 2030년대 중반부터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여름 국면에 접어들 것이며, 이때 이윤율은 하락할 것이고, 자본주의는 다시 위기에 빠질 것이고, 계급투쟁은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론은 이미 당대에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에 의해 논박된 바 있다. 특히 로버츠처럼 이윤율의 변화를 중시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콘트라티예프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큰 난점이 생기게 된다. 어째서 이윤율을 끌어올리는 기술혁신이나 자본 가치의 파괴가 동일한 주기를 거치며 반복되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장기파동론을 받아들이는 점은 이 책의 큰 약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자본주의 경제 위기를 이윤율 하락으로 일관되게 설명할 뿐 아니라, 2008년 위기가 왜 장기침체로 계속되는지에 대해 매우 훌륭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부터 이 체제를 분쇄하고자 하는 활동가들 모두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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