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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브렉시트 협상의 함정

뻔하게 예상됐던 것처럼, 영국 보수당 정부와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사이의 브렉시트 조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근본 문제는 협상 양측 힘의 불균형이다. 영국 자본주의는 향후 교역 관계를 두고 유럽연합과 합의를 꼭 봐야 한다. 영국 자본주의가 가장 중요한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으려면, 또 유럽 대륙에서 영업하는 다국적기업의 공급망이 끊겨 커다란 혼선을 겪지 않으려면 말이다.

유럽연합은 영국보다 훨씬 크다. 협상이 결렬돼 무역협정을 맺지 못한 채 브렉시트가 되더라도 그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더구나,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등지에 기반을 둔 금융 중심지들은 런던 금융가에 있는 기업들을 유치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한편, [브렉시트 뒤로도] 유럽연합에 남을 회원국 27개국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영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하나는 일반적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이다. 일반적 이유는 영국을 유럽연합 탈퇴의 본보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9월 1일 유럽연합 측 수석대표 미셸 바르니에는 이 점을 분명히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협상은 일종의 교육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를 보여 줄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돈 문제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영국이 탈퇴하려면 [소위 ‘이혼합의금’으로] 1천억 유로[약 1백35조 원]를 내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의 법적 근거는 상당히 수상쩍다. 유럽연합 탈퇴 과정을 규정한 그 유명한 리스본조약 50조 어디를 봐도 그런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그저 “[탈퇴국과] 유럽연합 간 향후 관계에 관한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만 규정한다. 사실 바르니에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바라는 것은 영국이 그 돈을 내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바로 이 “향후 관계” 수립을 미루는 것이다.

“향후 관계”

그리스 사례에서 봤듯이, 유럽연합은 자기 실속 문제를 난해한 법률 용어로 포장하는 데 아주 능하다. 영국은 유럽연합 예산에 대한 순 기여도가 가장 큰 국가여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향후 몇 년간 유럽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위한 돈을 계속 내지 않으면 예산이 크게 줄어 회원국 간 의견 대립이 생길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영국 정부의 국제무역부 장관 리암 폭스가 유럽연합이 영국을 갈취하려 든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폭스와 총리 테리사 메이가 내세우는 대안 – 세계 모든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글로벌 영국” – 은 순전한 환상이다. 폭스는 테리사 메이의 일본 방문을 수행하며 발표한 성명에서 그런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나 일본 측의 답변은 우여곡절이 가득할 일본과 유럽연합의 협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의 브렉시트부 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들에 얼마를 보상할지 액수를 대라는 바르니에의 압박에 저항하고 있다. 이는 보수당 내 탈퇴파가 들고일어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협상 조건을 따져 보건대 사리에 맞는 일이긴 하다. 유럽연합이 내놓을 카드를 보지도 않고 자신의 최고 카드를 내려놓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앞서 말한] 힘의 불균형 때문에 영국이 양보하는 방향으로 떠밀리고 있다. 이미 보수당은 향후 몇 년을 위한 과도기적 협정을 맺어야 할지 모른다고 암시한 바 있다. 그 협정의 내용은 지난해 보수당 대회에서 메이가 약속한 것보다 영국이 훨씬 더 유럽연합에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노동당은 그런 과도기적 협정의 결과로 영국이 유럽단일시장에 남게 되는 것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이는 메이와 데이비스를 압박하는 교묘한 정략처럼 보일 수 있다. 보수당 소속 잔류파 하원의원들이라면 노동당과 함께 영국이 그런 양보를 해야 한다고 투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동당의 태도 전환은 제러미 코빈과 노동당 예비내각의 재무장관 존 맥도넬의 큰 후퇴다. 이전까지 코빈과 맥도넬은 유럽단일시장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비판할 태세가 돼 있었지만, 지금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부인하려는 노동당 우파 의원들의 압력에 굴복한 듯하다.

유럽연합은 유럽단일시장 잔류 조건으로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을 내세운다.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잔류에 투표하자고 주장할 당시 코빈은 이민 통제 강화에 반대했다. 영국이 유럽단일시장에 잔류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최근 코빈은 단일시장 잔류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모두에 반대했다.

이제 노동당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없는 유럽단일시장 잔류 주장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런 주장이 영국 내 유럽 출신 노동자들에게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똑같이 빠질 함정이 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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