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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통신비·집값 인하 정책,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을 내놓으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한다. 여러 언론들에서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소득·일자리 증가 → 소비 증가 → 투자 증가 → 소득·일자리 증가’로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신자유주의로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임금과 일자리를 늘려 노동계급의 전체 소득 몫을 늘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임금을 올리면 성장률이 올라가면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득주도성장론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소득주도성장론이 경제 위기의 주된 원인을 소비 부족이라고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 성장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중의 소비보다는 자본가들의 투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임금을 올린다고 해도 노동자들은 생산된 상품 전체를 구입할 수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언제나 ‘과잉생산자’라고 지적했다. 자본가가 이윤을 다시 투자하지 않으면 상품의 일부가 팔리지 않으면서 경기침체가 벌어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근본적인 모순과 약점이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단지 임금·일자리 증대 정책이 아니라 소득주도’성장’론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본가들의 투자 확대(자본 축적)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임금 몫을 늘리는 정책은 이윤율을 압박해 자본가들의 투자를 줄이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전제(투자 확대, 자본 축적)를 받아들이게 되면 임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져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게 될 공산이 크다.

꾀죄죄

그러나 당면해서 더 중요한 점은 문재인 정부가 실제 소득주도성장 정책, 즉 노동자들의 몫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와 우익 야당언론의 말잔치를 걷어내고 공정하게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너무 꾀죄죄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별 볼 일 없는 비정규직 대책과 복지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미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예산 총지출이 2017년의 본예산보다 7.1퍼센트(28조 5000억 원) 늘어나 대대적인 복지 예산인 것처럼 주장했으나, 실상은 내년 예산 총수입 증가분 32조 8000억 원도 다 쓰지 않는 균형재정 예산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대한다며 경찰·군인 선발은 늘리지만, 교사 선발 수는 대폭 줄였다.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말하지만, 학교비정규직 교사·강사는 정규직화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 상시업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례들도 폭로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자회사 고용 방안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조차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그나마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비용도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하위직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2.6퍼센트로 제시했는데, 예년(지난 3년) 인상률 3퍼센트대보다 낮아진 것이다.

아동수당 1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그 대신 인상을 약속했던 가정양육수당은 결국 동결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도 정부 지원은 거의 늘리지 않고, 건강보험료 인상과 건강보험 재정 흑자분을 사용하기로 했다. 통신비집값 인하 정책은 기업주부자들의 반발 때문에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 대부분은 노동자들의 전체 소득 몫을 늘리는 게 아니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다.

그런데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문재인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성과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 정부와 어느 정도로 협상협력해야 하는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 산별노조와 교섭 체계 완성, 대표성 확대를 위한 노조 조직률 제고, 노동자 간 격차 축소, 노조 할 권리 등을 위해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은 노동계급 전체의 소득을 올리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 처우 개선을 명분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데 있다.

게다가 집권 4개월밖에 안 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은 벌써 터져 나오고 있다.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는 것뿐 아니라 꾀죄죄한 비정규직 대책, 복지 정책도 공분을 사고 있다.

이런 불만을 투쟁으로 조직하는 것을 부차화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를 부풀리거나 상층의 교섭이나 노조 내 협상 전략 마련에 치중해서는 임금과 일자리 문제든, 임금 격차 문제든 해결할 수 없다. 협상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낮춰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하거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강화해, 노동운동을 혼란과 사기 저하로 이끌 수 있다. 그리고 혼란과 사기 저하는 노조 강화와 조직률 확대도 어렵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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