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자임해 왔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20대 국정 전략”의 첫째 항목이 “촛불 민주주의 실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의 요구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문재인은 9월 7일 경북 성주에 사드 발사대를 폭력적으로 추가 배치했다. 사드 배치 철회는 퇴진 운동의 공식 요구였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얘기해 놓고 정작 초·중등학교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가로 정규직 전환하는 것은 “제로”다.

대북 정책도 문제투성이다. 친미 행보를 거듭하며 불안정 고조에 한몫한다. 문재인은 트럼프와 한국의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에 합의했고, 국방장관 송영무는 핵잠수함과 김정은 참수 부대 창설 운운하고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첫 위기를 닮아가는 문재인 7일 사드 배치 강행으로 엉망이 된 소성리(오른쪽 위), 낙마한 김이수(오른쪽 아래)

박근혜 퇴진에 일익을 담당한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 탄압의 원상 회복은 거의 언급도 안 된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인정이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석방은 정부가 결심만 하면 되는데도 말이다.

인사도 지지층에게 실망을 줬다. 최근에는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에 뉴라이트와 사이비 과학인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박성진을 임명하려 한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염원을 멀리하고 우파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지지층 균열이 시작되는 첫 위기를 겪고 있다. 물론 이 위기의 심각성을 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위기와 봉합을 거듭하며 더 심각한 위기로 나아갈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진보·좌파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이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으로 사드를 긴급 배치한 직후, 친문재인적 매체인 〈한겨레〉조차 1면 헤드라인을 “문재인 정부마저”로 달았다. “절차적 정당성 저버린 정부”라고도 비판했다. 경북 성주 주민들은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해 문재인을 지지한 것을 후회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어떤 도움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희망도 가지지 않겠다.” 이들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이런 정서는 더 확산될 것이다.

마치 2003년 이라크 침략 전쟁 파병 결정, 전북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 운동 폭력 진압, 노조 파업 폭력 진압 등 일련의 지지층 배신 정책으로 위기를 겪은 노무현 정부가 연상된다. 노무현은 결국 임기 첫해에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까지 했고, 이듬해 초 국회에서 우파에 의해 탄핵되는 위기를 겪었다.

물론 그때와 세력 균형이 달라서 문재인 정부는 지금 당장 그런 정도의 곤경을 겪지는 않는다. 문재인의 높은 국정수행 지지율은 9월 들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등 우파가 당장 득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취임 후 줄곧 80퍼센트를 상회하던 지지율이 70퍼센트대로 떨어지고, 민주당 지지율도 취임 후 처음으로 50퍼센트 밑으로 내려갔다. 문재인 지지 이유 가운데 가장 비율이 높던 “국민과의 소통 및 공감” 항목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시사적이다.(9월 10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례 조사 결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이 국회에서 좌절된 것도 상징적이다. 사법부 내 개혁파라는 김명수의 대법원장 임명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알량한 사법 개혁조차 시작부터 흔들린 것이다.

물론 김이수 인준이 부결된 뒤에 자유당 의원들이 서로 얼싸안은 건 역겨운 일이다. 극단적 중도를 추구하겠다더니 우파 좋은 일만 하고는 ‘존재감을 과시했다’고 으스대는 안철수도 꼴 보기 싫다.

그런데 13일 국민의당이 박성진, 탁현민 등 문제 인사의 경질과 김이수 인준을 맞바꾸자고 제안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파의 기를 살려 준 김이수 부결에는 문재인의 우경적 정책뿐 아니라 문제 인사 보호에도 그 책임이 있는 셈이다.

문재인의 선택

문재인 정부의 첫 정치 위기는 표면상 노무현 정부의 첫해의 위기 양상과 다르지만, 위기를 불러오는 동학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경제·안보 위기 등 좌우 선택의 기로에서 민주당 정부가 노동계급이나 개혁 지지층 대신 우파의 손을 잡았다. 대선 후 사기가 떨어진 우파의 기를 살려 준 셈이다. 반면, 지지층에서는 균열과 불만이 자라나고 있다.

문재인은 스스로 우파적 정책을 취함으로써 일부 중도우파층을 흡수해 오히려 우파의 입지를 줄일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보에서 대결 기조를, 경제 문제에서 친기업 기조를 강화할수록 전통적 우파들의 기는 살아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진보파의 환멸은 자라나기 시작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친기업·친제국주의 정책을 펴는 데서는 우파가 더 일관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도 노무현 정부의 배신적 우경화가 바로 이런 동학을 작동시켜 이명박의 집권을 불러왔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과 진보·좌파가 문재인 정부에게 기대를 걸고 행동을 유예하거나 정부의 개혁(성공)을 돕겠다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우파를 막는 것에도 장애가 된다.

문재인 정부를 통해 개혁을 얻어 내겠다는 것이 공상적임이 좀 더 분명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하겠다는 개혁은 박근혜가 못한 온갖 친기업 개악들을 부드럽지만 효과적으로 하려는 것이지, 노동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문재인은 좌우의 비판에 처할수록 좌파보다는 우파와 손잡기로 기울 것이다. 그의 기반이 노동계급이 아니라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계급의 제1선호 정당은 아니지만 말이다.

진보진영의 온건파들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도우려 할수록, 점점 더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문재인의 타협적 태도 때문에 음메 기가 산 우파의 공세는 앞으로 좀 더 거세질 것이고, 온건 진보계는 이로부터 문재인 정부를 방어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20년 전 노동자 운동은 정리해고, 파견법 등 노동악법을 날치기한 김영삼 정부를 대중 파업으로 몰락시켰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종종 모호하고 주저하며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명확한 입장을 취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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