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공개
신자유주의와 한국 노동계급 상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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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주의와 전지윤 정치 비판
〈노동자 연대〉 구독
목차
1부 한국 노동운동의 문제들 ― 민주노총 투쟁 평가를 둘러싸고
- 전략적 야권연대의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
민중주의란 무엇인가? _ 최일붕[본문으로] - 마르크스주의 핵심 원칙,
꿰어 맞추기와 절충으로 누더기가 되다 _ 최일붕[본문으로] -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 _ 김하영
[본문으로] [지난해 노동자 투쟁] 우리의 예측이 어긋난 게 아니라 바램에 조금 못 미쳤을 뿐
올해도 투쟁을 계속된다 _ 김하영[본문으로] - 전지윤은 기회주의적 처신을 중단해야 한다 _ 최일붕
[본문으로]
2부 전지윤의 포퓰리즘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
전략적 야권연대의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
민중주의란 무엇인가?[1]
최일붕
총선이 다가오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략적 야권연대는 ‘민중주의’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 집권 전략이다. 민중주의는 국민 가운데 한줌밖에 안 되는 반민주적·비애국적 무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계급을 초월하여 단결해, 그 반동적 극소수를 권좌에서 몰아내자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반동적 극소수’로 지목되는 집단은 독재 잔당과 ‘공안세력’, 냉전주의자, 재벌 등이다. 민중주의자가 즐겨 내놓는 구호는 “각계각층이 단결”, “국민과 함께하는” 등이다.
민중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어의 순화어 중 하나다. 다른 순화어는 ‘대중영합주의’이다. 대중영합주의는 최상위 엘리트 계층의 정치인이 마치 자신은 엘리트층의 정치인이 아닌 양, 심지어 엘리트층에 반대하는 체하면서 대중에게 영합하는 꼼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뉘앙스를 고려해 민중주의와 대중영합주의를 구별하기로 한다. 즉, 민중주의는 진보 성향이고, 대중영합주의는 보수 성향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경제 위기와 긴축 재정을 틈타 우익 대중영합주의 정당이 등장해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영국독립당
민중주의는 제3세계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글의 관심사는 우익 포퓰리즘이 아니다. ‘진보’와 민족 자주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종류의 포퓰리즘이 우리의 관심사다.
민중주의는 외세의 지배와, 그와 결탁한 한줌의 부패한 기득권층의 지배를 경험한 신흥국의 노동운동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일제 식민지, 외세
민중주의는 흔히 진보적 민족주의 경향을 띤다. 진보적 민족주의의 핵심 강령은 남북한 화해 협력과 궁극적 통일이다.
민중주의의 순차적 물결
민중주의 운동의 성격과 형태, 생존 능력은 시기와 조건에 따라 매우 달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와 미국에서 민중주의 운동은 아예 농민에 기반을 뒀다. 제정 러시아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나로드니키로 불렸고, 테러리즘 전략과 선거 전략을 결합해 추구했다.
미국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경제 정책 ─ 특히 곡물 가격 문제와 재벌
러시아와 미국의 민중주의는 제1차세계대전을 앞뒤로 해서 일어난 거대한 노동계급 투쟁, 특히 러시아 혁명과 서구 혁명에 밀려 완전히 주변화됐다.
1930년대 대불황기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시기
민중주의의 두 번째 물결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었다. 유럽의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민중주의는 민중전선
민중전선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전략이다. 이 전략은, 드러내놓고 친자본주의적인 정당과 선거로 연립정부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민중전선은 선거라는 면에서 보면 흔히 성공적인 방침일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정당과의 협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한은 노동자 운동을 고무하는 효과도 낸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수위가 자본가들의 우려를 자아낼 수준으로 상승할 것 같으면 민중전선은 노동자 운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낸다. 한국에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국면에서 일어난 사회보험노조와 롯데호텔 노조 파업이 NL계열의 싸늘한 냉대를 받은 것이라든지, 이듬해 단병호 위원장이 7월로 예정된 민주노총 파업을 취소한 것, 그리고 최근에 다수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총선을 의식해 새정치연합-더민주당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의 집권 초기처럼 꽤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페론은 주요 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강압적으로 노동조합을 국가에 통합시켰고,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찬양하면서, 파시스트 전범들의 아르헨티나 이주를 환영하는 등 모순투성이 정책들을 펼쳤다.
한편,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집권 중이던 1938년 멕시코혁명당을 설립해, 멕시코 혁명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아들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는 1988년 당
1949년부터 1979년까지
민중주의가 가장 성공적이던 시기는 민족 해방 혁명이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중국 혁명부터 쿠바 혁명과 베트남 혁명을 거쳐 니카라과 혁명과 이란 혁명에 이르는 1949년부터 1979년까지가 그랬다.
이 혁명들에서 노동계급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던 건 이란 혁명밖에 없었다. 이란 혁명에서도 민중주의는 초기에 노동자 운동을 자극했지만, 노동자 운동이 ‘쇼라’라는 민주적 노동자 권력 기관을 창출하며 이슬람 성직자
1994년부터 지금까지
1994년 멕시코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는 최근의 민중주의 물결의 효시를 나타낸다. 사파티스타는 혁명적인 민중주의 세력이었다. 같은 해 남아공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
2013년에 작고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현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도 최근 민중주의 물결의 일부라 할 수 있고, 스페인 포데모스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의 주요 간부들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근거한 민중주의를 지지한다.
오큐파이
노동자 운동 안의 민중주의
한국 민중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자민통’ 계열
민주노총 내 국민파·전국회의·중앙파 등도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민중주의적 경향을 띤다.
노동운동 내의 민중주의는 남아공이나 브라질, 멕시코 등의 다른 신흥공업국에서처럼 중간계급과 ─ 때로는 지배계급 일부와도 ─ 계급 연합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물론 노동계급은 중간계급의 일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간계급 가운데 특히 영세 소농이나 영세 노점상, 철거민, 빈민 등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흔히 노동자의 가족일 뿐 아니라, 그들의 일부는 얼마 전까지 노동자였다가 실직한 사람이거나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처지이기가 쉽다.
그러나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이 아니다. 전통적 중간계급의 전형은 소자영업자인데, 이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자본가 구실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 구실을 하는 이중적 처지에 있다. 스스로 자산을 소유하므로 자본가들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일하므로 노동계급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모순 때문에 구 중간계급은 양대 계급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유동적이다. 오락가락과 유동성이 중간계급의 핵심 특징이다.
중간계급에는 이른바 ‘신중간계급’이 포함된다. 이 집단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등장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자본가가 직접 사업장을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본가는 자기 대신 사업장을 운영할 특별한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사업장 내에 경영직·관리직 등 관료층이 형성됐다.
이 관료층의 최상층은 자본가 계급과 뒤섞이게 된다. 반면 관료층의 최하층은 겉보기로는 노동계급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 계층에는 매우 모순된 처지에 있는 각양각색의 인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창출하고 체제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산적 구실을 하기도 하고, 노동자들을 더 심하게 쥐어짜고 단속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이 집단도 양대 계급 중 어느 한쪽으로 이끌린다. 노동자 투쟁이 강력할수록 이 계층 하층의 일부 사람들은 노동자 편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엥겔스는 1848년 혁명 중에 프랑스 “중간계급이 견해가 엄청나게 자주 바뀐다”면서 이렇게 썼다:
“프티부르주아지는 중재자 구실을 하며 비참한 역할을 했다. … 그들과 임시정부는 몹시 갈팡질팡했다. 만사가 조용하면 할수록 정부와 프티부르주아지는 대 부르주아지 쪽으로 더욱 기울었다. 반면 상황이 격동하면 격동할수록 그들은 노동자 편을 들었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관계 문제가 진정한 쟁점이다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일자리도 불안정해지고 복지 혜택도 감축된다. 게다가 노동자의 이웃 주민으로서 그들의 환경도 파괴를 당한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일부도 자본주의의 일부 효과들에 적개심을 품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간계급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승진, 창업, 귀농,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서 그냥 뿔뿔이 낙오하기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간계급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 미칠 일부 영향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거나 우려한다. 왜냐하면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중간계급의 이익이 일부 상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임금이 상승한다거나, 노동조건 악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진다거나 하는 개혁이 자영업 계층에는 불리한 조건이 된다. 그래서 중간계급은 보수적이기가 쉽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의 더 많은 부분을 끌어당길 방안은 계급투쟁 역량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 이해관계를 확고하게 추구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중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확연하게 준별되며 심지어 충돌한다. 민중주의자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고집하지 말고 중간계급의 이해관계와 조율하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운동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지난해 봄 전면에 불거진 공무원연금 방어 문제를 회피하고 대신에 그 문제를 공적연금 강화 문제로 치환하려 했다.
결국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이 부각되고 노동계급이 운동을 주도하면 민중이 내적으로 분열될 것이고, 운동 쪽으로 포섭될 잠재력이 있는 다른 사회세력을 내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오히려 노동계급이 민중 운동에서 주도권을 발휘할수록 민중도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중간계급으로서는 사회적 권력과 집단적 힘과 규율을 갖춘 동맹을 갖게 된 셈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민중주의적 방식이야말로 민중을 이루는 계급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에 결국엔 민중을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민중주의자가 그리는 단결한 민중이라는 이미지는 이상화된 것일 뿐이다.
이 소책자에 실린 김하영의 글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는 노조운동가들 민중주의의 이러한 약점을 잘 보여 준다.
민중주의냐, 노동자주의냐?
민중주의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서도 민중 운동이 계급투쟁으로 분화되지 못한 낮은 단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 측에서 말한다면, 노동계급 의식 발전의 초보적 국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2015년 말~2016년 초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로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파업 투쟁으로 자본주의 이윤 자체를 공격할 의지 수준으로는 상승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전자를 보지 못하고 후자만 본다면 노동운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얻을 것이다. 후자를 보지 못하고 전자만 본다면 민중주의
사실,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은 노동조합 쟁점들을 다룰 땐 흔히 ‘노동자주의적으로’
민중주의적 노동운동가들은 또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민주노총 총파업을 직결시키는 방안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총파업은 노동자들에 의한 계급 고유의 투쟁 방법이다.
사실, 자민통계는 지난해 초부터 민중총궐기를 추진했지만, 상반기 내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4월 말 선제 파업과 이후의 공무원연금 투쟁 때문에 그 안
하지만 공무원연금 투쟁이 패배하고 7월 15일 민주노총 2차 파업이 존재감 없이 끝나자 민중총궐기안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민중총궐기로 “저들
2차 민중총궐기를 위한 토론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살인 진압 규탄과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해 민주세력을 모아 내는 외연 확대를 기조로 범국민대회로 열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노동개혁’ 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며 민주노총에 기조 변경을 강력히
혁명적 오솔길
그런데 대다수 노동운동가들이 노조 쟁점들은 노동조합주의적으로 사고하고
그래서 이 과정에서 개혁주의 정당이 성장하기 쉽다. 개혁주의 정당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형식적 원리에 순응해,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직접적 생활조건의 문제들을 다루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개혁 입법 활동을 하는 식의 분업을 당연시한다.
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정치 운동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
이런 정서가 보편화되면 범좌파 개혁정당이 대세가 된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로 가느다랗게나마 급진적 조류가 노동계급과 청년·학생 속에 형성될 수 있다.
특히, 노동자들이 민중주의를 학습한 효과로서 계급 의식이 향상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이 점은 엥겔스가 미국 인민당의 일부 투사들이 철도 파업 투사들과 만나며 사회주의 운동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것을 흐뭇하게 보며 지적한 점이기도 하다.
민중주의의 진화 속에서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조류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핵심 원칙,
꿰어 맞추기와 절충으로 누더기가 되다[1]
최일붕
지난호에서 나는 ‘민중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자들이] 계속 회피하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 민주노총의 부족한 동력과 사회적 고립을 볼 때 이 투쟁 [민주노총 총파업] 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총궐기로 ‘저들
[지배자들] 이 결코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저항운동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2차 민중총궐기를 위한 토론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살인 진압 규탄과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해 민주세력을 모아 내는 외연 확대를 기조로 범국민대회로 열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노동개혁’ 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며 민주노총에 기조 변경을 강력히
(그러나 헛되이) 요구했다. “
[중략] “
〈노동자 연대〉 신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중주의의 일정한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위에서 인용한 논평가처럼 기회주의적으로 그에 끌리지 말고 그보다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전망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재인용된 논평가
전지윤은 2년 전
“이 나라 노동운동의 한 절정이었던 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은 사실 안기부법 개악 반대 파업이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를 통해서 노동계급의 눈귀를 막고 손발을 묶어서 밥그릇을 빼앗으려 했다. 당시 조직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계급을 위해 이런 공격에 맞설 자신감과 투쟁력을 보여 줬다.
“하지만 지금 조직 노동운동은 노동개악 법안을 가까스로 막고 있는 처지이며, 테러방지법 통과는 막지 못한 상황이다. 굴복으로 마무리될 게 뻔한 민주당의 ‘무제한 토론’을 쳐다보는 우리의 가슴은 갑갑하기만 했다.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과 요구가 중요하고 우선이라는 협소한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이 체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모순과 부조리, 불의에 맞서서 부문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이 ‘무제한 투쟁’을 벌이는 미래를 향한 우리의 꿈은 꺾일 수 없을 것이다.”
위 인용문과 관련해서만도 적어도 다섯 가지 쟁점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1996~97년 민주노총 전면파업에 참가한 노조 지도자들과 평조합원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안기부법 개악도 반대했다면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주의 문제를 갖고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머리 왼쪽으로는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 사상을 갖고 있고, 머리 오른쪽으로는 민중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나는 이게 극복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구 노동자들도 머리 왼쪽은 먹고 사는 문제들에 관한 생각으로 차 있고, 오른쪽은 사회민주주의
둘째, 한국 노동자들의 민중주의 정치가 서구 노동자들의 사회민주주의 정치보다 좀 더 좌파적이고 투쟁적이라는 점이다. 전지윤은 이 나라의 노동계급과 그 운동의 상황에 맞지도 않는 일부 신
셋째, 나는 위 인용문의 전지윤 주장과 달리 20년 전의 한국 노동자들에 비해 지금의 한국 노동자들이 약화됐다거나 “사회적 고립”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지윤의 관찰은 단순한 인상에 불과하다. 백보 양보해 이 인상이 정확한 것이라손 쳐도, 영국 전교조
넷째, 나는 안기부법에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것은 “경제적 조건과 요구”를 둘러싼 투쟁
다섯째, 전지윤의 꿈인 “부문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이 ‘무제한 투쟁’을 벌이는 미래”는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혁명적이거나 어느 정도 혁명적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시작되는 것은 노동계급의 일부분이나 다른 천대받는 사람들의 일부분에서다. 이를 건너뛰고 통속적 의미의 ‘정치적’ 요구와 ‘정치투쟁’을 물신화하는 것은 초좌파적 선전종파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전망
이런 물음들을 염두에 두고 전지윤의 정세관을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종북’ 마녀사냥과 진보당 탄압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력으로는 전진할 수 없다. 특히 조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먼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근래 20년간의 사회운동 속에서 농민이 상당한 구실을 하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노동계급은 실은 이미 귀환했다. 도대체 박근혜 취임 이래 지난 3년간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게 민중 가운데 누군가? 농민인가, 빈민인가? 물론 2013년 중엽에는 청·장년들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항의하며 싸웠고, 2014년과 2015년의 중엽에는 청년·학생들도 세월호 참사에 항의했다. 하지만 박근혜의 공격이 집중됐고, 가시적 성과 면에서는 방어에 실패했지만 줄곧 치열하게 저항한 건 노동계급, 특히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었다: 전교조, 철도, 케이블통신, 삼성전자서비스, 택배, 건설, 조선, 공무원, 공공, 보건, 홈플러스 등등.
무엇보다 민중총궐기는 본질적으로는 노동자 투쟁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 기사를 인용하고자 한다. 전지윤이 내가 민중주의와 민중총궐기를 평가절하한 것으로 오해하는 듯해서다.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나는 민중총궐기를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부분 회복되는 징후로 보았다.
“
[민중주의는] 노동계급 의식 발전의 초보적 국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로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파업 투쟁으로 자본주의 이윤 자체를 공격할 의지 수준으로는 상승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전자를 보지 못하고 후자만 본다면 노동운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얻을 것이다. 후자를 보지 못하고 전자만 본다면 민중주의 (그리고 그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적 귀결인 개혁주의) 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다.”
민중총궐기의 압도적 주력부대가 노동자였다. 사회적 구성 면에서 민중총궐기는 노동자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노총이 조직했다. 매년 11월 13일 직전에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민중총궐기 형식으로 치러 약간의 농민과 빈민이 좀 더 붙은 것이다. 청년·학생과 진보·좌파 단체 회원 등은 언제나 노동자 집회에 동참해 왔다. 2차, 3차, 4차 민중총궐기의 구성도 압도적으로 조직 노동자들이었고, 이 점에서 이 운동들도 사실상 노동조합이 동원한 것이다. 총궐기의 요구들을 보아도 대부분
민중총궐기들은 또한 노동자들의 앞선 활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산업 현장에서의 선동과 썩 흡족하지는 못했어도 크고 작은 여러 노조들의 파업들이 누적돼 온 결과가 노동자대회를 계기로 거리 항의로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노조 지도자들이 파업 소명에는 부담을 느꼈어도 거리 항의로 소명하는 데는 그래도 용기를 보였는데, 이에 조합원들도 파업보다는 좀 덜 부담감을 느끼며 응답한 것으로 봐야 한다.
마치 우리 단체가 이 일련의 민중총궐기들을 평가절하하기라도 한 양 오해한 채, 전지윤은 민중총궐기야말로 박근혜의 ‘노동개혁’ 공세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당연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민중’이 아니라 노동자들
한편, 전지윤이 자민통계가 다 조직한 것처럼 착각하는 총궐기 운동이 왜 테러방지법은 막지 못했을까? 특히 자민통계가 우려할 만한 쟁점인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의 관심사가 노동개악에 집중됐기에 테러방지법은 안타깝게도 결국 통과됐던 것이다. 그리고 훨씬 더 폭넓고 대규모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세월호 참사 항의가 당면 목표 성취에 미달하며 좌절을 겪어 온 이유도 비슷하다. 곧, 한국 같은 제3세계 출신 신흥국의 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이슈가 아닌 경우에는 흔히 민중주의자들이 지도하도록 맡겨 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호 기사에서 이 점을 지적했는데, 이것이 내가 민중주의에 관해 그 기사를 쓴 이유다.
민중총궐기 얘기가 나온 김에 집회 준비 과정에서 전지윤이 보인 실천 자체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사회주의자인 우리는 노동자들의 가두 항의 운동인 민중총궐기를 지지하면서 그것이 자본가들의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파업이라는 투쟁 형태와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거리 항의를 당연히 지지하는 한편, 그것이 대중 파업과 결합되기를 염원했다. 이게 애써 반대 받을 일인가? 역사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Street’
‘변혁’주의자를 자처함에도 어처구니없게 전지윤은 노조 지도자들에게 파업 촉구하는 것을 아예 반대했다. 조직 노동운동이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위 “
반면 전지윤은 시민들이 폭넓게 참가할 수 있도록 집회의 명칭을 변경하고 노동 문제보다는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시켜 집회 기조를 톤다운 시키자는 일부 자민통계의 주장에 동의했다. 노동자 요구와 투쟁을 앞세우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되고 어차피 민주노총 총파업은 가능하지도 않다고도 덧붙였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계획돼 있고 노동개악이 본궤도에 오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놓은 이런 제안이 민중주의적이 아니면 무엇인가?
민주노총 측은 노동개악 문제를 부차화하자는 일부 자민통계의 주장을 선뜻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논쟁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결국 논쟁이 이어지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추후 공동집행위원장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이후 열린 공동집행위원장 회의에서 자민통계는 대다수 참석자들에게 용인될 만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1부 집회 총궐기대회, 2부 집회 범국민대회’라는 안이었다.
1차 민중총궐기 후인 2015년 11월 27일 전지윤은 그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1차 총궐기는 오랜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 노동·농민·빈민 대중조직과 주요 사회운동단체들의 결집을 성공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외연 확장의 가능성까지 보여 줬다. 이것이 계속 확대·발전한다면 박근혜 정부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은 분명하다. … 그래서 집요하게 ‘불법·폭력·종북’을 부각하며 시민사회 진영과 중간층이 민중진영과 거리를 두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먼저 노동·농민·빈민 대중조직과 사회운동단체들의 결집이 단단히 유지되고 기층과 지역으로 더 깊숙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 민중운동 진영을 시민사회 진영, 중간층과 분리·고립시키려는 노림수를 잊지 말아야 한다. … 이런 방향
[민중의 단결] 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한다는 틀 속에서 ‘2차 총궐기의 기조로 평화집회를 내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 민중총궐기인가 시민대행진인가’가 고민돼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노동자 파업 촉구를 지지하기를 냉담하게 거절할 만큼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불신하는 전지윤의 정세 인식에서는 자연히 계급이 해체되고 계급 동맹인 ‘민중’이 매우 중요해진다. 특히, 민중총궐기 전후로 보여 준 그의 실천이 민중주의가 아니면 뭔가.
‘무슨 무슨 주의’라는 말을 남발하지 말라고 그가 내게 또 쏘아붙이겠지만 그에게 반문하고 싶다. 전지윤은 사람들이 그를 아무리 자주 ‘마르크스주의자’, ‘
진보정당들에 대한 차별화된 편견
전지윤은 우리가 정의당에는 우호적인 데 반해 민중연합당에는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또한 내가 노동자 운동이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투쟁 수위를 보여 주지 못하는 원인을 자민통계의 민중주의 탓으로 돌린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나는 자민통계만이 민중주의적이라고 하지 않았고, 자민통계만이 민주노총에 파업 촉구하기를 거절했다고 하지 않았다:
“한국 민중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자민통’ 계열
(이하 자민통계) , 참여연대 등 진보적 NGO들 그리고 정의당 등이다. … 민주노총 내 국민파·전국회의·중앙파 등도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민중주의적 경향을 띤다. …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모두에 대해
한편 민중연합당은 장차 중소 자본가 계급 소수의 지지와 북한 관료의
전지윤은 자민통계가 혹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데 무슨 계급 연합이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인민전선
트로츠키는 또한 러시아 혁명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설사 러시아에 부르주아지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해도 멘셰비키는 부르주아지를 “창조해 냈을 것”이라고 재치 있게 멘셰비키의 계급 협력주의를 비꼰 적이 있다.
우리가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또는 더 일반으로 자민통계를 차별한다는 전지윤의 비판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리 신문 기사 가운데는 정의당의 핵심 리더들인 노회찬·심상정과 그 당의 주요 정치인들인 김종대 씨와 조성주 씨에게 매우 비판적인 글들이 포함돼 있다. 물론 정의당에 입당한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 등 노동정치연대 소속 친노동운동가들에게는 우리가 더 우호적인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좌파 노동단체가 정의당의 상이한 계파에 대해 이런 상대적 친화성
물론 전지윤의 불만처럼, 우리가 민중연합당에 특별히 우호적이지는 않다. 자민통계가 민중연합당의 창건 문제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따라서 민중연합당이 진보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괜시리 나머지 자민통계 계파들에 오해나 반감을 주지 않겠다는 배려도 있다. 물론 전지윤의 관측대로 우리는 2012년 진보당 내 경선에서 당권파의 부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지윤은 여전히 당권파의 경선 부정은 없었다는 확증 편향을 갖고 있지만 이 문제로 그와 다시 논쟁하는 건 아무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성싶지 않다.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2013년 1월 초 노동변호사인 노동자연대 회원이 패널 자격으로 연단에 선 전
어쨌든 우리가 정의당보다 자민통계를 경원시한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자민통계의 리더급 인사 J모 동지와 H모 원로는 우리가 소위 NL-PD 갈등과 정파간 갈등에 최대한 공정하려 애쓴다고 인정한 바 있다. 우리는 지난해 9월
오히려 우리가 보기에 전지윤이야말로 편견
이와 달리, 기본적으로 진보·좌파 성향 단체나 운동, 개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말보다는 실천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둘째, 사안에 따라 다르다
공무원연금 투쟁에 대한 추상적 선전종파주의
전지윤은 공무원연금도 지켜야 했고 공적연금 강화도 지지했어야 한다고 절충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맥락 속에서 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레닌이 좋아한 헤겔의 말대로 “진리는 구체적이다.” 공적연금 강화가 집회 슬로건으로서 강요됐을 때 그에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했지만, 전술은 슬로건과 다르다. 공적연금 강화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공격부터 좌절시켜야 했다. 당장에 공격이 들어오고 있는 판에 그것을 반대하고 막을 생각은 중요하지 않은 양 일축하고 둘 다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식은 개혁주의 노조 지도자들로 하여금 곤경을 면하게 해 줄 뿐이다. 공무원연금 방어 문제가 이슈인 지난해 봄 상황에서 공적연금 운운한 것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연막이었을 뿐이다. 어떻게 좌파적 공무원 조합원들이 이충재의 책략과 이충재 등 개혁주의 관료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느냐가 중요했다.
공무원노조원인 전지윤 그룹 회원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초기인 2014년에 쓴 두 기사에서 공무원연금 문제를 놓고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문제와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상적으로는 옳은 주장이었을지 몰라도,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통해 공적연금과 공공부문에 대한 전반적 공격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으므로 당면 전술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여야 했다. 글의 논조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문제를 결합시키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투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당면한 공무원연금 삭감 공격을 막아야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전반에 대한 개선 논의도 훨씬 쉬워질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는 노동자연대가 발의했던 ‘대타협기구 탈퇴와 민주노총 총파업 일정에 동참하기’ 연서명, ‘이충재 사퇴’ 연서명 등 여러 연서명에 참가하지도, 호응해 주지도 않았다. 공무원노조 좌파에 속한 활동가들은 대체로 이 연서명에 호응했던 것에 비춰 보면, 공무원노조원으로서 그 회원이 진지하게 연금 방어와 이충재 반대를 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전지윤도 2014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특히 지난해 4월 24일 민주노총 파업부터 5월까지 투쟁이 한창이던 때 공무원연금 투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기는 전교조 연가 투쟁과 이충재 공무원노조 집행부의 배신이 교차한 결정적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겨우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글로 전지윤 자신이 쓴 짧은 기사가 있다. 거기서 그는 대타협기구 탈퇴 촉구가 부질없는 짓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노동운동 내 좌파들도 주로 ‘지도부는 협상테이블에서 나오라’는 비판에 주력했지, 다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6월 8일에 쓴 글은 투쟁을 돌아보는 논평 글인데, 거기서 전지윤은 “현장에서 잘 싸우기 위해서도 대안과 방향이 분명해야 하고 우호적 여론과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의 공적연금 지출과 사회임금 비중을 대폭 늘리기 위한 투쟁이 건설되면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그 투쟁의 일부가 됐다면.” 하고 아쉬워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지윤의 추상적 선전을 앞세운 종파주의가 잘 드러난다. 그가 다루는 상황은 진보·좌파 정당이나 급진좌파 연합이 각각 당 강령이나 행동강령 작성을 놓고 토론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니다. 업종별이나 산업별로 조직되는 노동조합과, 정치적 견해를 기초로 하는 정당은 질적으로 다르다. 노동조합, 그것도 그 한 부분이 자기에게 고유한 쟁점
전지윤이 다양한 반
지난해 4월 말과 5월 전지윤측 블로그의 글들은 공무원연금 방어 투쟁 대신에 세월호 참사 문제에 집중됐다. 물론 세월호 참사 항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 단체 자체뿐 아니라 대다수 학생 회원들도 학업 등 만사를 제쳐 두고 그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지윤이 이 문제에 견줘 공무원 투쟁의 비중을 낮춰 잡은 건 그가 전술 문제에서 약점을 보이는 것뿐 아니라 조직 노동자 투쟁에는 큰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의 반영인 듯하다. 심지어 패배가 뻔할 것 같은 투쟁이라고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동료들과 전투를 함께 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전략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전지윤은 나 또는 우리 단체가 최저임금 문제를 무시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데, 김하영 동지가 앞의 글
전지윤이 잘못된 양자택일을 피하려 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변증법에 못 미치면 중도
관조적·추수적 ‘분석과 예측’
전지윤은 지도부든 현장조합원이든, 어느 연맹 위원장이든 아무도 투쟁성을 발휘하지 않았는데, 왜 특히 자주파와 한상균 지도부 탓을 하냐고 우리에게 반문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우리는 온건한 지도자들을 더 비판했고, 한상균 지도부에 대해 종종 다룬 것은 전지윤과 달리 우리가 한상균 지도부를 함께 배출한 다른 민주노총 좌파들과 토론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나눈 대화들이
마치 트로츠키가 1930년대 초 히틀러의 집권 위험이 넘실거리던 독일에서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가운데 공산당에 호소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나치의 등장을 막으려면 공산당이 초좌파적 종파주의 노선을 버리고 공동전선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럴 가망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당시 글을 읽다 보면 그의 탄식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그럼에도 그는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당시 트로츠키가 독일 공산당에 개입하면서 했던 것처럼, 정세 인식은 관조적인 자세로 해서는 안 된다.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나무는 늘 푸른색”인 것이다.
혁명가들에게 낙관이란 난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난관을 직시하면서도,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가능성과 기회를 볼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아예 가능성과 기회가 없다면, 그람시가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곱씹은 로맹 롤랑의 말, “지성의 비관론과 의지의 낙관론”이 우리에게도 좌우명이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비관적 정세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특별히 노동계급만 싸울 자신이 없어야 하는지 설명이 안 된다. 특히,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파업을 소명할 자신은 없어도 거리 항의를 소명할 자신은 있다.
그리고 자발성은 “기계적 자발성”이 아니다. 이 말을 한 그람시는 인간 행위주체가 작용
이렇게 보면, 존 몰리뉴가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적인가?’라는 훌륭한 논문
전지윤의 분석에는 이 실험이 빠져 있다. 물론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리려 한다면 그저 의지만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아도 쌀 것이다. 그러나 1차 민중총궐기 10개월 남짓 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직선으로 한상균을 뽑은 것은 조합원 다수가 싸울 의지를 보여 준 것으로 두루 풀이되는 일이었다. 4월 말 파업이 예정대로 벌어진 직후 민주노총 좌파 활동가들은 그럭저럭 만족을 나타냈다.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현실감각을 모두 공유했던 평가였다. 7월 파업은 그 전에 공무원연금 방어에 실패하면서 동력이 없어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총궐기 두 달 전쯤 열린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회의에서는 그 직전 이뤄진 노사정 합의에 반발한 대표자 다수가 즉각적인 파업안에 찬동할 태세였다. 결국 회의 끝 무렵 대표자들은 파업 일정을 확정했다. 그래서 실제로 9월 23일 파업이 벌어졌다. 이런 정서들이 투쟁 의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고차원의 기준에 비춰 우리의 ‘분석과 예측’이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것인가?
지난해 여름 우리는, 1996년 연말 파업을 상기시키며 노조 지도자들의 소명 없이도 극소수인 자기들만의 노력으로 현장에서 파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던 일부 좌파들의 계획이야말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관조적이지 않았다. 지나친 낙관론의 문제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지도자들에게 아래로부터 압박을 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들과 토론했던 것이다.
레닌이 좋아한 나폴레옹 말처럼 “길고 짧은 건 대어 보아야 안다.” 분석과 예측 문제로 환원될 일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틈새를 보고 몸을 던져야 하는 문제였다. 미디어 논평가·평론가·분석가 등처럼 파업의 확률이나 따지면서 회색빛 ‘분석’과 ‘예측’이나 내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박을 걸어야 한다. 때로는 확률론적 기대값이 낮은 일에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실로 변혁적 따라서 능동적 세계관을 가진 사회주의 신문 편집자라면 작더라도 없지는 않은 파업 가능성을 앞두고 1면 헤드라인을 달 때, 관조적으로 ‘민주노총, 과연 파업할까?’ 하는 식으로 달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파업에 돌입하라!’ 하고 달 것이다.
전지윤은 우리가 ‘다른 많은 노조 좌파들처럼 좌파적 노조 지도자들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좌절되자 한상균을 포함한 그들
맺으며
전지윤은 “
먼저, 나는 박학다식하지 않다. 따라서 내가 박학다식을 과시했다면 그것은 젠체하기에 불과한 것일 게다. 이 점에 유의하겠다. 충고 고맙다.
역사적 사례들 얘기는 조금 다른 얘기다. 전지윤이나 나나 마르크스주의에 찬동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방법인 역사유물론을 받아들인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례는 많이 알고 많이 들수록 좋다. 오히려 역사에 대해서도 나는 박학다식하지 못해 아쉽다. 트로츠키가 혁명적 당을 “노동계급의 기억”이라고 했거늘 거의 2백 년에 가까운 그 역사
‘…주의’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여기서도 매우 간단히 언급할 게 있다. 아마 내가 전지윤의 분파 투쟁 때 진보당 당권파의 경선부정 사실을 부정한 그를 ‘확증편향’, ‘음모론’, ‘실증주의’ 등으로 비판한 게 마음에 많이 남은 것 같다. 이번에 그가 근래 쓴 글들을 보니 변한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전지윤은 왜 탈퇴했나? 그가 집단 탈퇴를 정당화할 때마다 그에게 반문하고 싶은 게 있다. 도대체 40여 명의 중앙 상근·시간제 활동가, 특히 그 가운데 전지윤 자신이 몇 년간 이끈 18명의 신문사 기자·사진기자·편집디자이너·프로그래머 가운데 왜 단 한 명도 전지윤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를 따라 탈퇴한 사람들 대부분은 몇 개월 뒤 그와 또 결별했다. 아마도 그의 분파는 세계 최단명 조직이었을 것이다.
이에 전지윤은 맨날 하는 상투적인 변명밖에 늘어놓을 게 없다. “2014년에 내가 노동자연대에서 이탈하기 직전에 있었던 것은 토론으로 보기 힘들었다. 일방적으로 징계를 당한 상황에서, 예컨대 한 토론회에서 나를 비판하는 29명의 발언 속에 지지 발언 1명이 허용되는 식이었
이런 식의 주장이 그의 특기다. 반쯤의 진실 말하기. 두 달 동안 그가 패널로 연단에서 발제를 할 수 있었던 전
그가 중앙 간부들과 활동가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포섭하지 못한 건 분파 논쟁 때 충격적으로 드러난 그의 부정직과 기회주의 때문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를 체험한 회원들은 전지윤이 다음과 같이 말해도 단순한 위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내가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주장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을 공감·지지하며, 언제든 협력할 생각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 동지들의 투쟁과 연대에 대한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쪼록 내실있고 동지적인 토론을 통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기회주의’로 말하자면, 특히 탈퇴 후 그가 전통이 다른 개인이나 그룹을 포섭하려 할 때 국가자본주의론도 재고할 태세인 것을 보면
후주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1]
김하영
우리 나라 운동에서 전통적으로 강력한 민중주의는 “각계·각층”의 동맹을 중시하고, 노동자들이 계급 고유의 이해관계를 내세우는 것을 그런 동맹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연히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사상은 노동계급이 약화됐고 따라서 예전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고 여기는, 매우 다양한 경향들과 잘 맞물린다. ‘민주노총은 조직률이 매우 낮아 계급 대표성이 없는 데다 대공장·공공부문 조합원이 다수이므로, 조합원들의 요구를 앞세웠다가는 지배자들의 귀족노조 고립 프레임에 말려든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를 “독재 회귀” 심지어 “파시즘”이라고 보는 것도 계급을 가로지르는 동맹을 정당화하는 근거다.
이런 민중주의가 2015년 투쟁에 미친 좋지 않은 영향을 잘 보여 준 대표적 사례가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태도였다. 노동운동 안에는 공무원연금 방어를 꺼리는 견해가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민주노총이 그런 걸 방어해서 지지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동자연대를 비롯한 일부 좌파들의 주장으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4·24 총파업의 주요 요구로 포함됐지만,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은 그것을 ‘공적연금 강화’로 대체하거나, ‘최저임금 1만 원’ 같은 요구를 제기하는 데 강조점을 뒀다. 이것은 자기 조합원들의 조건보다 미조직 노동자들과 전국민의 조건을 더 배려함으로써 국민적
물론 ‘공적연금 강화’나 ‘최저임금 1만 원’은 중요한 요구다. 노동자연대는 이 요구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가하기’ 공격의 최전선으로 삼고 있었고, 이를 지렛대로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같은 더 광범한 공격을 추진하려는 상황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를 사실상 회피하는 태도는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와 연금행동 정용건 집행위원장 등의 ‘공적연금 강화’론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사실상 용인하는 배신으로 나타났고, 이는 상반기 노동자 투쟁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에 그들은 공무원연금 삭감분을 국민연금 강화에 사용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합의라며 정당화했는데, 국민연금 강화는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우리의 경고가 결국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말에
민중주의의 논리는 공공부문 정상화나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반대하는 운동에도 적용됐다.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 안에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내세워서는 안 되고 ‘공공적’, 즉 국민적 요구에 헌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노선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 철도노조 김영훈 위원장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수용했다. 5월 말 공무원연금 개악 이후 상반기 노동자 투쟁의 상승세가 꺾였다면, 주요 공공기관들의 임금피크제 협상과 수용은 9~10월 공공부문 투쟁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문제에서는 사실상 비정규직 관련 쟁점만 부각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다수 지도자들이 이 쟁점으로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더민주당 등 주류 야당과도 협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규직·조직 노동자들에게 해당하는 쟁점은 지키고자 아등바등할수록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또는 노동계급의 분절화를 악화시켜 노동운동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가령, ‘쉬운 해고? 비정규직은 이미 손쉽게 해고되고 있다. 통상임금 정상화? 비정규직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는 식의 주장들을 흔히 듣다 보면, 조건 악화에 맞선 싸움이 정당한지 헛갈릴 지경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쌓아 온 임금과 고용조건 지키기에 연연하는 ‘반대 투쟁, 저지 투쟁’을 할수록 고립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운동 우파부터 좌파까지 공유하고 있다.
민중의 호민관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민중의 호민관’, ‘조직 노동자만이 아닌 계급 전체를 위한 투쟁’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정서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계급 정치를 일관되게 추구하지 않은 다른 대표적 사례는 총파업을 민중총궐기로 대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민중총궐기가 중요한 전진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나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민통 계열은 2015년 초부터 11월 민중대회를 적극 추진했고, 이를 세력 회복과 총선으로 가는 디딤돌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한상균 집행부도 7월 이후 민주노총 내에서 총파업 회의론이 강화되면서 점점 더 민중총궐기에 의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5년 초 민주노총 임원 선거 직후에는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신임 임원진이 ‘총파업 투쟁’을 가장 주되게 표방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고 당선했다는 점을 자타가 인정했다. 그래서 선거에서 ‘준비된 투쟁’을 주장했던 상대편
총파업 할 역량이 안 된다거나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총파업 같은 전통적 투쟁 방법이 이제 낡았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가령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김태현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외쳤지만 위력적이지는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
사회적 연대
그러면서 흔히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 하나는 범국민적 또는 ‘사회적 연대’ 투쟁이다. 1~2년 전부터 사용되는 “국민파업”이라는 용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이런 투쟁은 ‘파업이 가능한 노동자+파업이 불가능한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농민+빈민+자영업자+학생+여성 등등’이 모두 광범하게 연대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지만, 계급의 경계와 파업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문제점도 동시에 안고 있다.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공장, 병원, 학교, 교통·통신 체계 등을 멈출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가졌다는 데 있다. 자영업자나 학생 몇만 명이 일을 안 하거나 수업에 안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효과를 내지는 못하며, 또한 노동자들 역시 집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는 이런 효과를 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투쟁이 “정치” 투쟁
민중총궐기와 직결시켜 총파업을 조직했다면 어땠을까? 노동계급이 경제적·집단적인 힘을 사용해 실질적인 파업에 돌입했다면, 이윤을 위협하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박근혜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에 확실한 제동을 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박근혜를 한 방 먹이고 싶은 더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얻었을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노동자들 자신이 계급투쟁의 역량을 십분 발휘했을 때 연대도 확대되고 중간계급들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노동자들이 투쟁 수위를 낮춰야 연대가 확대되는 게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2013년 철도 파업 당시 ‘필공’ 파업을 해 국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철도파업이 지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철도 노동자들이 굳건히 장기간의 파업을 이어갔기 때문에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물론 필공이 아닌 전면 파업을 했더라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 이 글은 저자가 지난해 노동자 운동을 돌아보며 2016년 노동자연대 대의원협의회에 제출한 장문의 보고서의 적은 일부분이므로 서론과 결론이 없음을 독자는 감안하길 바란다.
지난해 노동자 투쟁
우리의 예측이 어긋난 게 아니라 바램에 조금 못 미쳤을 뿐
올해도 투쟁은 계속된다[1]
김하영
전지윤 씨는
지난해 노동자들은 박근혜에 맞서 꽤 저항을 했다. 연초부터 민주노총이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에 시동을 걸면서 몇 차례 하루 파업을 했고, 연말에 대규모 노동자대회 겸 민중총궐기를 했다.
전지윤은 마치 우리가 민중총궐기를
이것은 민중총궐기의 성공만을 거의 일면적으로 강조하면서 민주노총 총파업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고 한 전지윤의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총파업에 대한 공정한 평가
실제 지난해 노동자 투쟁이 전개된 양상을 봐도 민주노총 총파업이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던 양 일축해 버리는 것은 터무니없다. 전지윤은 “민주노총 지도부는 세 차례가 넘는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실질적인 파업은 잘 실행되지도 확대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도부가 파업을 호소했는데도 노동자들이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민주노총의 줄어든
그러나 우선 지적할 것은, 4·24와 9·23 같은 파업이 결코 의미 없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4·24 총파업에는 20만 조합원이 참가했고 파업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6만 4천 명가량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민주노총 총파업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도 ‘규모가 총파업이란 명명에 부합하는지’, ‘파업 이외의 단체행동 비중이 높았던 점’ 등을 돌아본 바 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어쨌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지 않은 거 아니냐’는 식의 평가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정서는 2014년 말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맞선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건 좌파이자 소수파인 한상균 후보조를 신임 임원진으로 선택한 것, 2015년 초 신임 위원장이 된 한상균이 호소한 총파업 찬반 투표에 높은 찬성률
이것이 어느 정도 좌절된 과정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구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지윤은 “한상균 지도부가 지난해 몇 차례나 총파업 지침을 내린 것이 과연 총파업을 억누른 것인지, 그런 파업 호소에도 왜 실질적인 파업이 벌어지지 않은 것인지” 설명하라고 했다.
이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용어를 좀 명확하게 해 두고자 한다. 우리는
이렇게 보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파업에 관해 단일한 입장이었다고 할 수 없다. 민주노총 지도부 안에는 총파업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가 상존했다. 한상균 신임 임원진이 총파업 건설에 가장 열의가 있었고 나머지 지도자들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었다. 이것은 단지 ‘정파’ 문제도 아니었다. ‘좌파’로 분류되는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과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도 총파업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거나 난색을 표명하는 입장이었다. 상당수 산별연맹 위원장들은 적어도 상반기에는 공공연히 총파업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보이코트했다. 민주노총 중집에서 총파업이 결정돼도 자신의 산별연맹으로 돌아가 그것을 축소 또는 좌절시켰다. 여느 산별연맹보다 규모가 크고 힘이 센 대규모 단위노조 위원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몇 차례 총파업 지침을 내렸다 해서 민주노총 지도부 구성원들이 모두 총파업을 지지했고 그 지침에 따라 행동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다.
이경훈 전 현대차 지부장은 매우 두드러진 사례로, 그는 파업 찬반투표에서 찬성을 밝힌 자신의 조합원들의 의사를 거슬러 4·24 총파업 불참을 선언했다. 그것이 “억지 파업”이라면서 말이다. 이것은 총파업에 초를 치는 행위였다. 이충재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주요 요구 중 하나였던 4·24 총파업이 끝난 직후, 공무원연금 개악에 합의해 버림으로써 뒤통수를 쳤다.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지난해 투쟁을 돌아보며 이
우리가 안타깝게 여기며 비판했던 것은, 한상균 신임 임원진이 이경훈의 “억지 파업” 주장을 즉각 공개 반박하고 현대차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총의 지침을 따르라고 호소하기보다 그를 ‘보듬고’ 가려 했다는 점이다. 파업 지침 불이행을 단호히 비판하고 집단폭행 사태에 대한 강력한 징계를 추진함으로써 전열과 조합원 사기를 유지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한상균 집행부는 이충재의 배신에 대해서도 공적연금 강화 논리에 혼란을 겪으며 우왕좌왕했다.
전국회의로 말하자면, 중앙은 적어도 상반기에는 총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전국회의 소속인 주요 단위노조 위원장들이 꼭 총파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 이경훈 징계 문제에서 중요한 키를 쥐고 있었던 울산지역의 전국회의 경향은 이경훈 징계를 반대했다. 이충재가 배신했을 때 공무원노조 내 전국회의 경향인 중집 성원들은 이충재를 사퇴시키고 새로운 투쟁 지도부 세우기를 꺼렸다. 7월 즈음 전국회의 중앙은 ‘준비되지 않은 총파업’에 대한 ‘피로 확산’ 같은 얘기를 꺼내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한상균 신임 임원진도 하반기를 준비하며 총파업에 대한 자신감을 상당히 잃고 있었다. 주로 공무원연금 삭감에 대한 저항이 좌절된 것의 후유증이었다.
좌파 노조 지도부와의 제휴 전술에 대한 이해 부족
이런 주장에 대해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기층 노동자들은 자신감이 높
그러나 이것은 전지윤이 오해하듯이 우리가 좌파 지도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조합원들의 자신감이다. 우리는 민주노총 좌파 활동가들이 좌파 지도부가 총파업 지침을 내리도록 지지·압박하고 그 지침을 이용해 기층에서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현장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현장 조합원들이 스스로 파업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지 않을 때 지도부의 파업 지침은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설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일종의 우산인 셈이다. 그리고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의식 변화를 경험하고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이에 전지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총연맹만이 아니라 산별, 연맹, 지부까지 모두 진정한 좌파 지도부로 교체되고, 그래서 파업 지침이 어디서도 막히지 않고 내려갈 때만 총파업이 가능해진다는 말이 된다.” 그의 일면적이고 기계적인 이해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노동자연대의 전술은 관료체제가 단일해지는 상황은커녕 그 균열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었다. 좌파 지도자의 등장은 관료체제에 균열을 가져오고 사회주의자들은 그에 따른 관료체제의 통제력 약화를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온건한 지도자들도 어쩔 수 없이 총파업을 지지하는 시늉을 하게 하거나 적어도 우파적 영향력을 관철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지난해 민주노총 내 일부에서 일시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노총 신임 임원진은 노동조합 관료 전체의 규범에 순응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한 배를 탔다는 생각 때문에 관료 기구 내에 풍파 일으키기를 꺼렸다. 그래서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총파업을 은근히 보이코트하거나 심지어 노골적으로 찬물을 끼얹었을 때도 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고, 현장 조합원들이 그들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독려하는 방법을 취하지도 않았다. 분명 한상균 위원장은 총파업 조직에 열의가 있었고 재수감을 마다 않을 크나큰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총파업을 현실화시키려면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인 소수파 지도자라는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있어야 했다.
이런 난점은 민주노총 신임 임원진만의 것은 아니었다. 가장 안타깝게도 좌파들의 문제도 있었다. 노동자연대는 지난해 초에 “현재 기층의 활력이 충분하지 않고, 현장 활동가층이 두텁지 못한 데다 사기도 좋지 않아 어려움이 적잖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좌파 지도부의 등장은 투쟁에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열쇠는 현장 조합원들에게 있다. 좌파 지도자는 매우 훌륭한 투사일지라도 노동조합 관료 전체의 규범에 순응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는 점을 좌파 활동가들은 알아야 한다. 좌파 활동가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있어야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독자적인 투쟁도 해 나갈 수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근시안적이거나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활동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면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좌파단체들이 협력해 ‘좌파 활동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일부 좌파들은 좌파 지도부가 세워졌는데 왜 좌파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독립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냐며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장 강화’는 좌파들이 집행부를 잡지 못하는 시기에나 강조될 일이고, 좌파가 집행부를 잡았으니 그것을 떠받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이 강한 듯했다. 사실, 좌파 활동가들이
단결은 어떻게 가능한가?
위와 같은 평가를 하는 것은 누구를 희생양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이해하기 위해서다. 반면 전지윤은 민중총궐기를 통해 노동운동의 난점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 내에서 총파업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가 상존했던 것은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파적 사분오열”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사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민중총궐기에 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가졌다면, 그것은 ‘총파업은 못 한다’는 것을 둘러싼 ‘단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중총궐기 이후 “민주노총 3차 파업”의 “규모와 위력이 커지는 변화를 보였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의 과장이다. 오히려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민중총궐기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총파업을 하겠다’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보는 게 현실에 더 부합할 것이다. 민중총궐기 직후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들에 대한 압수수색, 한상균 위원장 체포 위협 속에서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파업을 결정하지 않았다. 12월 16일 총파업은 완성차 3사가 참가하긴 했지만 주야2시간의 형식적 파업에 그쳤다. 1월 25일 정오를 기해 들어가기로 한 “무기한 총파업” 결정은 사실상 이행되지 않았다.
민중총궐기라는 형식이 일반으로 총파업에 비해 단결 강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자기 고유의 힘을 발휘했을 때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중간계급과 청년·학생 그리고 미조직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도 받을 수 있다.
반면 전지윤은 “자기 조합원들의 조건과 경제적 요구에 따라서 칸막이화되고 각개 약진·격파 당하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이나 경제적 요구를 위해 싸우는 것이 곧 칸막이 위험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싸워서 자신의 조건을 지키지 못한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의 문제에 연대하고 나설 자신감이 생길 수 없다. 자신의 투쟁을 전투적으로 벌이면서 다른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해야 노동계급의 단결이 강화될 수 있다. 전지윤은 조직 노동자들 자신의 요구들을 양보하거나, 요구들 가운데 민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만 내세워야 “사회적 고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노동운동 내 널리 퍼진 경향에 타협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조직 노동자들의 부문적 요구를 당당하게 밝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면, 박근혜의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술에 결코 단결로 맞설 수 없다. 계급동맹을 추구하는 개혁주의자들은 조직 노동자들이 ‘계급 이기주의적’ 요구나 투쟁을 자제해야 중간계급과 청년·학생 그리고 미조직·비정규직과의 “단결”을 강화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마땅히 다른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노동자 계급이 농민과 맺은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당시 노동자 계급은 그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오직 노동자 권력
전지윤은 노동운동을 진단하면서 민주노총의 동력 축소, 조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고립, 정파 분열과 부문주의 비판 같은 이런저런 유행을 수용하고 있다. 이런 진단들은 흔히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계급론이나 가치론에 대한 이견과 닿아 있고, 사회 변혁 주체로서 노동계급에 대한 회의로 연결된다. 전지윤의 핵심 문제의식 하나도 계급투쟁과 그 주체에 대한 인식을 “생산과정을 넘어서” 생활과 소비 영역으로, “노동자를 넘어서” 자본주의에서 갈취당하는 모든 사람들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들이 생산 지점에서 벌이는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편협한 인식이라도 되는 양 비판한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보고 싶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누가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만드는가, 그것을 되찾을 힘은 누구에게 있는가?
마르크스가 왜 체제 변혁적 노동운동을 위해 《자본론》을 썼는지 이해가 간다.
전지윤은 기회주의적 처신을 중단해야 한다[1]
최일붕
민중주의에 관해 설명했던 원래 내 글은 공개 논쟁을 유도할 목적으로 쓴 게 아니고, 특히 전지윤을 주로 겨냥한 것도 아닌데, 그가 제 발이 저렸는지 몰라도 공격하는 바람에 그와 논쟁을 해야 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에서 레닌이 민중주의자들
대체로 우리 단체는 엔간해서는 종파주의자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종파는 ― 소종파든 좀 덜 소규모인 종파든 ― 그 정의상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파는 흔히 기회주의적이기도 해서, 매우 중요한 몇몇 이슈들에서 때로 개혁주의자들의 입지를 강화해 주기도 한다. 가령 조직 노동자 운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으므로 미조직 노동자와 더 폭넓은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 ‘고립’을 면할 수 있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민중주의자들의 개혁주의적 주장과 일치한다. 특히, 그의 ‘민중총궐기 평가와 2016년 전망’이라는 글에서 이 주장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런 개악
[노동개악] 을 막아낼 힘을 가진 조직 노동운동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었다. 조직된 노동자와 나머지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를 만들어 온 지배자들이 이제 그것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이간질했다. 조직된 노동운동의 현장 동력은 그동안 이런 공격을 저지하기에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다. … “정부의 탄압은 크게 두 가지를 노렸다. 먼저 기층 민중운동 단체들이 고립을 넘어서 더 넓은 외연 확장을 이루지 못하도록 차단하려 했다. 더불어 기층 민중운동 단체들 사이에 다시 틈을 벌려서 분열을 일으키고 단결을 가로막으려 했다. ‘불법·폭력·종북’을 부각하며 시민사회 진영과 중간층이 민중진영과 거리를 두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
“민중총궐기의 성과를 이어서 세월호 진실 규명, 교과서 국정화 반대, 일본군 ‘위안부’ 합의 폐기, 백남기 쾌유 기원과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한 투쟁들을 서로 연결, 결합시키고 힘을 모아서 더 큰 투쟁을 건설하려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
“민중총궐기의 경험과 성과와 이번에 구성된 투쟁과 연대의 네트워크가 이어져야 한다. 진보진영이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하며, 기층에서 주장하고 토론하며 더 광범한 대중을 견인하면서 투쟁을 건설해나간다는 방향을 중심축으로 삼고, 이에 따라 다양한 투쟁과 총선 등이 배치돼야지 그 역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먼저 노동·농민·빈민 대중조직과 사회운동단체들의 결집이 단단히 유지되고 기층과 지역으로 더 깊숙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자 민중 운동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 글에서 노동계급과 특히 조직 노동계급의 역할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다. 그리고 노동자 연대보다 민중 연대가 선차적일뿐더러 더 중요하다. “시민사회 진영과 중간층”도 꽤 중요한 세력으로 취급된다.
민중 연대는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다. 전망과 달리 전략은 선택이고 계획이다. 전지윤은 민중총궐기를 둘러싼 제
이에 전지윤은 내가 비판하는 그의 입장이 “
한편 그는 내 반론 속의 일부 표현, 특히 민주노총에 총파업 촉구하는 것을 그가 “냉담”하게 “거절”했다는 문구를 문제 삼는다. 말꼬리 물고 늘어져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속임수에도 대응해야겠다. ‘냉담’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에 흥미나 관심을 보이지 않음’이고, ‘거절’의 정의는 ‘요구, 제안, 선물, 부탁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이다. 그가 민주노총 총파업에 흥미나 관심을 보였고, 사회주의자들의 민주노총 총파업 요구·제안을 받아들였나? 주어진 전략·전술 선택지 가운데 그가 한 대안적 선택, 대안적 계획이 본질적인 문제다.
전지윤이 분석의 일관성과 그에 기반한 실천을 지향한다면, 그리고 정말로 논쟁으로 생산적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하기보다는 그 주장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논쟁해야 할 것이다.
전지윤이 빈말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자기 지지자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노동자연대의 운동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운동에 기여”한다는 것은 개입
마지막으로, 전지윤 자신의 ‘분석과 예측’을 살펴보자. 거리 항의가 크게 벌어지자 갑자기 자기의 ‘분석과 예측’이 옳았다는 도취감에 빠진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거리 항의를 경원시했나? 세월호 참사 항의에 우리 단체는 관련 기구 공동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었고, 우리 대학생 회원들도 매우 능동적이고 열성적으로 대학생 연합 시위를 공동 조직했다. 학생 회원들은 심지어 국정교과서 문제를 놓고도 ‘언론빨’을 탈 만큼 두드러졌다. 분파 활동 이래 ‘거리
물론 공무원연금 투쟁은 끝났고, 패배했다. 그러나 전지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어떤 투쟁이 패배하면 그 투쟁에 가장 헌신적이고 열의 있게 뛰어든 좌파는 분석과 예측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아야 하나? 2008년 촛불 운동의 패배를 예측하지 못한 우리 단체의 분석은 잘못됐다고 비판받을 일이었던가? 2000년대 중엽 반전 운동이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을 막지 못했다고 해서 반전 운동에 의욕적이었던 우리 같은 단체들은 운동이 ‘패배’했고 우리의 ‘예측’이 잘못됐다고 평가해야 했나?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은 패배했나? 그리고 우리의 분석과 예측은 어땠나?
이런 식의 물음 자체가 천박하다.
2016년 3월 22일
신자유주의와 노동계급의 잠재력
강동훈
전지윤 씨
전지윤이 이런 입장을 나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려고 시도한 글이 ‘신자유주의와 노동운동 ― 새로운 투쟁의 도약을 위해’
전지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주장과 달리) 신자유주의는 자유경쟁 자본주의, 독점 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단계를 이은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이다.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지배계급은 노동운동에 대한 대대적 공격, 노동 유연화, 자본의 시공간적 재배치와 강탈적 축적, 금융화, 경찰국가화 등으로 새롭게 이윤율을 끌어올렸다.
(2)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좀 덜 뺏길 수 있었”지만 (89쪽) , 결과적으로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더 커졌고 분절화됐다.
(3) 노동자들이 분절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부문적 요구를 내세운 투쟁은 무의미하거나 해롭다. 노동조합은 본질상 노동자의 부문적 요구를 내세우는 기구이기 때문에 노동운동 발전의 “족쇄”가 됐다. 노동현장 (작업장) 투쟁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노동운동을 ‘협소화’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자본축적 과정에서 자산과 공동체를 강탈당한 사람들” (123쪽) 로까지 “주체의 확장” (120쪽) 을 해야 한다.
전지윤이 주장하는 핵심 요지는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의 족쇄가 됐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한계가 있다는 수준의 비판을 넘어 족쇄라고 규정하는 것은 노동현장에서의 노동자 투쟁을 중시하고 노동조합을 중요한 노동자 투쟁 조직으로 보며 이 운동에 개입하려고 해 온 마르크스주의 전통으로부터의 완전한 일탈이다. 물론 전지윤은 마르크스·엥겔스·레닌·룩셈부르크·그람시
그리고 노동현장에서의 투쟁과 노동조합을 무시
이것은
[노동자연대가] 신자유주의적 변화 이전의 분석, 주체 설정, 전략과 전술 등을 대체로 고수하는 것으로 연결됐다. …… 노동자연대도 이런 입장에 따라 거의 10년 가까이 ‘조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가장 중요하며 그들의 작업장에서 파업, 점거 같은 방식으로 대대적 투쟁에 나서는 일이 곧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작업장이 여전히 저항의 중심’이라며, 이런 투쟁의 부활을 ‘
[노동] 계급의 귀환’이라고 불렀다. (57~58쪽)
즉,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노동현장에서의 저항을 중시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변화 이전의 분석, 주체 설정, 전략·전술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노동현장에서의 투쟁이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윤과 달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아무리 새롭다고 하더라도
물론 특정 정세에서 노동현장 투쟁에 전술적 강조점을 둘 것인지는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연대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 투쟁의 중요성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반전운동 건설에 전술적 강조점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전술적 판단의 근거와 자본주의가 현재 어떤 단계인지는 직접 연관되지는 않는다. 전술은 특정 정세에 대한 구체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지, 장기적인 자본주의의 변화와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지윤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점은, 설사 전지윤의 주장
그런데 19세기에는 이처럼 안정적인 임금노동과 불안정 노동이 공존했음에도 매우 투쟁적인 노동자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한 운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임금 노동자들이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그들의 처지를 자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영국의 항만 노동자들이 정확히 그러한 사례다. 19세기에 영국 항만 노동자들은 전형적인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이었지만 20세기에는 전형적인 조직 노동자들로 변모했다.
[3]
즉, 노동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사이에 격차가 커졌더라도, 가능한 모든 노동자들을 노조에 가입시키고 임금과 고용조건을 개선해 조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계급 전체의 임금과 노동조건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대안이야말로 전지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일 게다. 전지윤이 2014년 3월 노동자연대를 탈퇴한 핵심 이유가 조직 노동자 운동에 대한 개입 강화 정책에 반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지윤은 노조의 부문주의적 한계를
노동의 분절화
전지윤은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라고 주장하면서 그 주요 특징 하나로 ‘노동의 유연화’를 언급한다.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시대에 “외주화, 사내하청, 임시직, 파트타임, 이주 노동력의 도입 등이 대대적으로 추진”됐고
우선, 전지윤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는 노동자연대의 주장을 알고 있을 텐데도, 이에 대한 언급이나 별다른 분석을 시도하기보다는 다양한 통계로서 현상을 묘사할 뿐이다. 예를 들어 김유선의 비정규직 통계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넘어간다. “‘비정규직 비율은 2007년 3월 55.8%를 정점으로 2015년 3월에는 44.6%로 8년 사이 11.2%포인트 감소’했다. 하지만 정부 통계가 사내하청과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비정규직 규모는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결국 한국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5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비정규직으로 뭉뚱그려진 노동자들의 처지가 동일한 것도 아니다. 상용직이지만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학교비정규직처럼 계약직이지만 매년 계약이 갱신될 것이 거의 분명한 노동자 등이 비정규직 통계에 포함된다. 이런 노동자들의 경우, 고용 불안정보다 저임금과 차별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또한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시 업무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 등도 봐야 한다. 그래서 ‘상시 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주요한 의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둘째, 전지윤은 좌파와 노동운동 속에 널리 퍼진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계급 내의 격차만 확대한다’는 주장도 거듭 반복한다. “노조 조직률이 대규모 사업장에서 특히 높다는 점을 볼 때 노조 유무가 더 주된 변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민주노조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좀 더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었고, 신자유주의 공세에서도 좀 덜 뺏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역설적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분절과 격차는 더 확대돼 왔다.”
이렇게 인식하는 전지윤이 ‘정규직의 양보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해 격차를 줄이자’는 ‘사회연대전략’으로 이끌리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는 “조직 노동자들에게 단기적·부문적으로 조금 손해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전체적인 계급이익을 위해 연대와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전지윤과 마찬가지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계급 내의 격차만 확대할 뿐’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급진좌파의 일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반면,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는 적극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전지윤은 이런 방식도 거부한다. “정규직의 연대를 기대하기 힘든 조건에서 비정규직이 조직화를 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갈수록 단결과 투쟁보다는 ‘정규직 자리로 올라가는 좁은 길 위에서 경쟁’이 현실적 선택이 됐다”
물론 전지윤은 새로운 노동자 부문이 조직되고 투쟁에 나서면서 노동운동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난한 투쟁을 버텨내며 노조 인정 등을 통해 노사관계의 제도 안으로 들어온 노동자들도 곧 빠르게 민주노조 운동 속에 만연한 여러 가지 관행과 타성에 젖어 들곤 했다”며 그 의미를 깎아내린다.
이처럼 비정규직 조직화에도 부정적인 태도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현장에서의 투쟁이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전지윤의 인식과 연결돼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운동의 족쇄?
전지윤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계급이 분절화돼 있기 때문에, 임금 인상 같은 특정 부문의 요구를 내세우며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해롭다고 본다. 그 본질상 부문주의적 조직인 노동조합도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키워 오히려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정규직 노동자든 비정규직 노동자든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며 싸우는 것에 부정적이다.
우선, 전지윤은 노동계급의 힘을 ‘구조적 힘’
‘연합적 힘’과 연결되지 않는 ‘구조적 힘’은 매우 제한적인 효과만을 내거나, 심지어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 파업으로 임금 인상의 경제적 효과를 얻는 경우에도,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는 이간질 속에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정치적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118쪽, 강조는 인용자)
마찬가지로 전지윤은 이렇게도 주장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이해와 고유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것이 낳는 경제적 성과만을 봐서는 안 된다. 정치적 쟁점이나 비정규직의 투쟁과 요구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요구만 앞세운 그런 투쟁이 낳을 정치적 효과를 같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전지윤은 파업의 효과가 ‘경제적 효과’뿐인 것처럼 보면서, 지지와 연대를 받지 않는 파업은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전국에서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내세우며 파업을 벌이면 굉장히 커다란 정치적 역효과만 낳는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전지윤의 말과 달리 파업은 단지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물론 파업은 흔히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려고 시작된다. 하지만 파업을 하다 보면 연대감과 집단의 자부심이 높아지고, 이것이 처음에 들고 나왔던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향상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인한 온갖 고통을 참아내면서 뜨거운 동지애를 발휘하고, 기업주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된다. 나아가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고용주와 주변 동료만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 전체와 노동자 계급 전체를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국가의 본질에 대해 눈뜨게 만든다.
따라서 전지윤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들이 설사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향상만을 위해 파업을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 발전이라는 결과를 남긴다. 이 때문에 엥겔스와 레닌은 “파업은
게다가 전지윤은 조직 노동자들이 ‘구조적 힘’
둘째, 이처럼 파업 자체가 갖는 효과를 무시하는 전지윤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파업이 점점 어려워지고 효과도 별로 없다는 주장도 한다.
특히 오늘날 ‘연합적 힘’은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파업 등 노동계급의 ‘구조적 힘’을 봉쇄하거나 약화시키려는 지배계급의 대비와 노하우가 꽤나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파업에 나서기 힘들도록 제도적 장벽을 쌓아 왔다.
파업이 시작되면 그 파괴력이 최소화되도록 온갖 장치를 마련해 왔다. 또 파업에 대비해 물량을 비축하거나, 대체 생산을 통해 시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지배계급은 오랜 경험 속에서 배우며 이런 수단들을 발전시켜 왔다.
(117쪽)
지배자들이 파업을 막기 위해 “오랜 경험 속에서 배우며” 이러저러한 수단을 동원하는 게 신자유주의 시대만의 일이란 말인가?
게다가 전지윤은 위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주장도 한다. “적기생산방식과 하청체계 등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가 이런 ‘구조적 힘’
이런 모순되고 어설프게 절충적인 서술은 전지윤 식 글쓰기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의 글 내용의 전체 방향은 파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강조하는 데 있다.
셋째, 이처럼 부문의 이익을 위한 파업은 “역효과”를 낸다고 주장하는 전지윤은 노동조합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나아간다.
그동안 살펴봤듯이 이것은 ‘전략의 부재’ 때문이기보다는, 노동조합의 한계와 틀 안에서 투쟁해 온 전략의 결과로 봐야 한다. ……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가져오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노동조합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서, 그 반대의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112쪽, 강조는 인용자)
마찬가지로, 전지윤은 바로 이 인용문에 붙인 각주에서는, “마치 자본주의가 인류의 생산력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족쇄로 변화하는 것처럼 이것은 ‘역사의 변증법’이라 할 만하다”라고까지 말하면서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발전의 족쇄가 됐다고 주장한다.
즉, 전체 계급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는 부문적 투쟁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일부만 단결시키는 조직인 노동조합
전지윤이 “역사의 변증법” 운운하는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야 노조가 운동의 족쇄가 됐다고 보는 듯하다. 실제로 전지윤은 “2차 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계급투쟁의 ‘상승기’나, 이 나라에서 87년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전성기에 조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작업장 투쟁이 중요했던 것은 사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의 분절화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건대, 전지윤은 장기호황기 노동계급은 균일한 집단이었던 것처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언제든 노동계급은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이 균일할 수 없다. 그리고 지배자들은 언제나 이런 차이를 노동계급을 이간질해 각개격파하려는 데 사용한다.
또, 그가 장기호황기에 포드주의나 케인스주의가 말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이런 점에서 보면, 전지윤의 다음 주장은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노조가 운동의 족쇄가 됐고, 부문적 요구를 위한 투쟁은 역효과를 낸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이다. “
전지윤의 주장처럼 19세기와 20세기에 노동계급은 대체로 불안정하고 노동조건을 가혹하게 공격받았지만 대규모 투쟁을 벌였다. 19세기와 20세기에도 투쟁 수준이 낮은 시기에는 노동계급이 더는 싸울 수 없다는 주장이 유행했다. 어떤 사람은 노조로 조직된 상층 노동자들이 부유하고 안락한 삶에 빠져 더는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봤고, 다른 사람들은 열악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보며 그들은 너무 불안정하고 분열돼서 싸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결국 분출했고, 당연히 이것은 노동조합을 통한 대규모 조직화와 파업 등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왜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노동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싸울 수 없고,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인가? 전지윤이 노동계급의 분절화와 지배자들의 공격을 이유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조합이 족쇄가 됐다고 보는 것이라면 이는 사실상 자본주의 시대에는 언제나 노동조합이 족쇄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다른 한편, 전지윤은 노동조합을 운동의 족쇄로 보는 자신의 주장을 마르크스주의로 포장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쓴 《임금, 가격, 이윤》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은 현존 제도가 빚어낸 결과를 반대하는 유격전에만 자신을 국한하고 이와 동시에 현존 제도가 변화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 계급의 종국적 해방을 위한, 말하자면 임금 제도의 궁극적 철폐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패한다.”
그러나 이 문구를 노동조합과 부문적 요구를 내세운 투쟁을 부정하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맥락에서 완전히 떼어 낸 인용으로, 오히려 마르크스의 주장에 대한 왜곡이다. 마르크스는 임금 인상 투쟁
전지윤의 주장과 달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부문적 요구를 내세우며 투쟁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조합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이 조직과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을 돕고, 이렇게 발전시킨 힘과 자신감으로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돕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타도로까지 나아가도록 촉진하려 한다. 그리고 전체 계급의 이익을 앞세우고 자본주의 타도로까지 노동계급의 의식과 힘이 발전하도록 하는 과제를
넷째, 이처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내세우며 벌이는 투쟁 속에서 의식과 조직, 자신감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전지윤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전체 계급의 이익을 위한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고 보는가?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높이고, 단결시키는 ‘요구’를 내세우면 된다는 것이다. “부문과 업종을 넘어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연대를 가능케 할, 나아가 더 넓은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불러올 요구들이 앞세워져야 한다.”
그러면서 전지윤은 자기 나름으로 대안을 내놓는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 노동구조 개악 반대,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반대, 핵발전 폐기 등 부문을 넘어선 공동의 요구들을 세워 나가는 것이 이런 연대 건설을 위해서도 효과적일 것이다.”
이처럼 부문적 요구가 아니라 계급 전체의 이해를 나타내는 요구를 잘 내놓으면 된다는 주장을 보자면, 전지윤은 강령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요구
노동자계급은 현재 모든 자본주의국에서 수많은 가공할 만한 재해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므로 그들을 억누르고 있는 그 모든 하중, 비 오듯 쏟아지고 있는 돌더미에 대한 투쟁을, 탁상공론식으로 고안된 하나의 과녁에 집중시킨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반대로 중요한 것은 대중의 모든 요구를 혁명적 투쟁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인데, 이러한 혁명적 투쟁이 서로 결합하여 비로소 사회혁명의 강력한 흐름을 이루는 것이다. ……
부분적 요구를 위한 투쟁이나 개개의 노동자그룹의 부분적 투쟁이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전반적 투쟁으로 확대되어 감에 따라 공산당의 슬로건도 또한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고, 일반화되어 마침내 직접적인 적의 타도를 호소하는 슬로건에 이른다.
[8] (강조는 원문)
마찬가지로, “부문적 요구를 내세울 때 제기되는 모든 이의나 이와 같은 부문적 투쟁을 모두 싸잡아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개개의 공산주의 그룹이 노동조합 참가나 의회주의를 이용하는 데 대해 반대하는 것에서 드러난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적 행동의 생생한 조건들을 파악할 능력을 결여하는 데서 비롯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프롤레타리아를 향해 최종목표를 호소하는 일이 아니라 실천적 투쟁을 고양시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적 투쟁만이 프롤레타리아를 최종목표를 위한 투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부문적 요구를 혁명적 투쟁의 출발점으로 삼고 이런 실천적 투쟁을 고양시키는 것은 무시하면서, 자신의 머릿속에서 “탁상공론식”으로 선택한 요구들을 내세우거나 이를 덧붙이는 데 집착하는
다른 한편,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전지윤은 그 대안으로 이런 제안을 한다. “이런 요구들을 중심으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모든 단체와 정파들을 포괄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다양한 공동전선이 만들어져야 한다. 선거와 의회정치에 대한 공동대응기구도 포함해서 말이다.”
모든 요구를 모으고, “모든 단체와 정파들을 포괄”하는 공동전선은 사실 자민통계가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상설연대체’론과 흡사하다.
다섯째, 전지윤은 노동조합을 운동의 족쇄라고 보아,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확대하는 방법은 노동조합 외부에서만 올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노동조합 관료들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이는 노동조합 관료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는 논리에 면죄부를 주거거나 사실상 그것을 추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물어야 할 것은 왜 노동자들은 노조 지도부가 타협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면서 신자유주의 공세를 막아 설 자신감과 투지를 발휘하지 못했을까여야 한다. 어떤 조건과 전략이 이런 실패를 낳은 것인가? 그것은 노동조합을 통한 투쟁과 타협을 제도화시킨 틀 속에서 권익 향상을 추구한 노동조합주의적 대응과 전략이 낳은 실패였다.
(78쪽)
즉,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틀 속에 갇힌” 노동조합주의적 대응을 한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적 틀에 갇혀 있다고 해서, 지도부의 배신이나 투쟁 억압이 면죄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혁명가들과 좌파 활동가들은 노조 관료들을 비판하며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일구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전지윤은 사회주의자들의 모색과 실험을 도매금으로 일축한다. “그동안 제시돼 온 많은 대안들 또한 기본적으로 그 전략의 틀 안에서 제기돼 왔다. 그 틀 안에서 조직 형식을 바꾸거나, 새로운 기구와 제도·규칙을 도입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일부 개선을 낳긴 했지만 같은 한계에 부딪혀 왔다. 좌파 지도부 세우기, 좌파 지도부를 통해 투쟁 호소하기, 지역중심적 산별노조론, 직선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이 같은 관점과 틀을 넘어서는 방향
전지윤의 이런 관점은 노동조합 안에서는 투쟁을 확대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다 보니 그는 노조 관료들의 투쟁 회피 논리를 변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예를 들어, 전지윤은 ‘2013년 말 철도 파업 국면에서 전면파업은 가능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서는 5가지 조건이 충족돼야만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민주노총이 연대파업으로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했다. 둘째, 불법파업으로 갔을 때도 지금의 전폭적인 여론 지지가 유지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셋째, 전면파업이 결국 승리해서 손배가압류와 징계, 해고 등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 분명해야 했다. 넷째, 전면파업이 결국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민영화 정책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다섯째, 전면파업으로 갔을 때 지금 파업 대오의 이탈이 벌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수유지인력들이 대부분 파업에 동참할 거라는 것이 분명해야 했다.
[10]
‘전면파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의 사기를 북돋고 그 가능성을 확대하려 애쓰기는커녕, 파업 쟁대위에서 노조 관료들이 전투적 활동가들을 억제하려고 내놓는 논리를 그대로 추종하며 적극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이처럼 노동현장에서의 파업 투쟁, 노동조합의 의미를 폄하하고, 다양한 요구를 내세우는 ‘공동전선’을 강조하는 전지윤은 “노동계급 중심성의 재해석과 주체의 확장”
자신의 글 전체에서 노동계급의 “끝없는 분절화”를 묘사하는 데 치중하던 전지윤은 글 말미에는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한국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 공세를 막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노동계급을 해체시키고, 그 힘을 빼앗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노동계급은 해체된 것이 아니라 내부 구성이 변화한 것이다.”
앞서 봤듯이, 전지윤은 ‘연합적 힘’의 지원을 받지 않는 ‘구조적 힘’은 역효과만 낸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계급 중에서도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부분을 배타적으로 강조”
전지윤은 미조직 노동자를 강조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변혁의 “주체를 확장”해야 한다며 “자본축적 과정에서 자산과 공동체를 강탈당한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넓혀야 한다”
사실 전지윤이 조직 노동자와 노동현장에서의 파업 같은 노동계급 고유의 투쟁 방식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순간, 노동계급 중심성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마치며
2013년 말~2014년 정세와 그 시기 전술들을 둘러싼 논쟁과 분열처럼 보였던 것이 이제는 분명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대한 이견과 갈등으로 드러났다.
전지윤이 자신의 원칙을 숨기고 노동자연대에서 활동해 온 것인지, 아니면 탈퇴와 탈퇴 후 자신의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이론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후자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아무튼 현재 전지윤의 모습은 ‘노동계급의 고유한 투쟁 방식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민중주의자, 자신이 선택한 괜찮은 요구를 모든 노동자 투쟁에 끼워 넣으며 가르치려는 선전주의 종파주의자의 모습이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기는 힘들다.
보론1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고전적 자유경쟁 자본주의, 독점 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와는 다른,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 단계로 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의 연속성만을 보는 것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는 변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이론을 계속 발전시켜 현실을 따라잡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 변동에 맞춰서 우리의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교조주의자가 된다면, 이론적 명료함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운동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문제를 낳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룰 때 주의할 점은 우파뿐 아니라 좌파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인상론적 분석을 좇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기 전에 장기호황기에 대한 전지윤의 언급에서 짚고 넘어 갈 점이 있다. 전지윤은 장기호황을 ‘상시무기경제’로 설명하는 노동자연대를 “군비 투자라는 한 가지 요인으로 그것
여기에서도 전지윤이 상시무기경제 이론을 피상적으로 이해해 왔다는 점이 드러난다. 노동자연대는 브레너가 언급한 요인들을 무시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장기호황기의 주된 특징은 그전 시대와 달리 주기적 공황이 찾아오지 않았다
다시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논의로 돌아오자. 전지윤은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라는 증거로 1980년대 초부터 회복되기 시작한 이윤율을 근거로 들고, 신자유주의의 주요 특징으로는 “노동운동에 대한 대대적 공격과 착취율 강화,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의 유연화, 시공간적 재배치와 강탈적 축적, 금융화와 신제국주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경찰국가화”를 제시한다.
우선, 이윤율 문제를 살펴보자. 전지윤은 1980~90년대에 이윤율이 올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이윤율이 장기호황 때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근거로 신자유주의 시기를 ‘장기 위기’나 불황으로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일부 상쇄하며 회복·팽창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전지윤도 인정하듯이, 노동자연대가 1980년대의 이윤율 상승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연대도 이 시기에 착취율 강화를 통해 이윤율이 일부 올랐음을 인정한다. 결국 쟁점은 이 시기 이윤율 상승을 어떤 맥락 속에서 볼 것인지이다.
이 점에서 장기호황기의 이윤율과 신자유주의 시대 이윤율의 비교는 중요하다. 장기호황기에는 높은 이윤율 덕분에 전 세계 주요 경제가 모두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그 팽창기라 할 만한 시기에도 주요 경제들이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1990년대 초와 2000년대 초에 심각한 위기에 빠졌고, 일본은 1990년대 이후로 20년 넘게 성장하지 못했다. 유럽도 1990년대에 심각한 정체 상태였고, 라틴아메리카는 198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다. 1990년대 초에 소련
둘째, 신자유주의 시기를 “장기적인 과잉 축적과 수익성의 위기 시기”
셋째, 전지윤은 주로 중국을 염두에 두고 자본의 “시공간적 재배치”를 얘기한다. 물론 중국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급속히 성장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중국 인구는 모든 선진국을 합친 것보다 거의 3억 명이나 많지만 중국의 산출량은 선진국 전체의 5분의 1도 안 되며 수출은 10분의 1 정도다.”
게다가 전지윤은 신자유주의적 성장을 유발한 다른 요인들과 중국으로의 자본 재배치를 유기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넷째, 전지윤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장 요인으로 금융화를 얘기한다. 브레튼우즈 체제
또, 전지윤은 미국에서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이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증가한 것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금융화가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 자체를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라는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부족했다. 이런 변화는 단기적 이윤만을 앞세우는 자본주의의 속성과 투기적 성격을 분명히 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다른 한편, 전지윤은 신자유주의가 ‘부채의 시대’라고 지적하면서 노동자들도 부채와 신용의 노예가 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택 마련 등에 들어간 과도한 부채는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작용도 한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노동자들은 돌아오는 이자지급과 카드할부금, 채무 상환 날짜의 압박에 더 크게 시달린다. 적당한 타협으로 빨리 파업을 끝내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다.”
다섯째, 전지윤은 데이비드 하비를 따라 신자유주의의 주요 특징으로 ‘강탈을 통한 축적’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반박은 ‘강탈을 통한 축적’은 신자유주의 시대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전 시기에 걸친 특징이라는 점이다. 고전적 자본주의 시기의 ‘시초 축적’은 말할 것도 없고, 독점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시기에도 세계 곳곳에서 강탈은 자행됐다.
또, 전지윤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다음과 같이 달라진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공공서비스와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야말로 강탈적 축적의 대표적인 사례다. 시장과 경쟁의 논리가 더욱 전면화되면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겪게 됐다.”
전지윤이 ‘강탈을 통한 축적’을 그냥 끌어다 쓰고 있는 행태는 분명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사회변혁의 주체를 노동계급에서 다양한 형태로 빼앗기는
전체적으로, 전지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좌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러 특징들을 나열하며 묘사할 뿐 이것을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지윤의 비난과 달리, 노동자연대와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변화와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진지하게 분석해 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노동계급과 노동시장의 변화, 생산의 세계화와 다국적기업의 확대, 금융부문 팽창, 국가와 기업의 관계, 국가 간의 관계와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 등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는 것이 그 사례다.
보론2
민중주의적으로 곡해된 그람시
전지윤은 조직노동자들이 “단기적·부문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전체적인 계급이익을 위해” “청년실업자, 여성, 이주민 등에게 더 절실한 요구와 투쟁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썼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경험과 통찰은 돌아 볼 가치가 있다.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지배계급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의 고숙련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양보를 하면서, 그것을 이용해 나머지 노동자들과 이간질하려 했다.
그람시는 “피아트의 숙련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더 빈곤한 노동자 대중에게 특권 계급으로 보일 것”을 우려했다. 언론은 “한 달에 7,000리라에 달하는 이들의 높은 봉급을 부각시키면서 기술직 종사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맹렬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하지만 피아트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앞세우기보다는, 더 열악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고 투쟁에 연대하는 것을 우선했다. 그러자 “적어도 공장 내에서는 좀더 등급이 높은 기술직 노동 종사자 때문에 덜 숙련된 노동자들이 손해를 입는다는 식의 착취 의식이나 특권 의식이 소멸했다.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전위는 전위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다. 이것이 토리노에서 공산당이 발전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진정성의 정치’에 입각한 투쟁과 연대이다.
1. 그람시의 집필 취지 왜곡
위 내용 중 인용은 모두 그람시가 1926년에 쓴 ‘남부 문제에 관하여’에서 따온 것이다. 그 글에서 그람시는 당시 이탈리아 자본주의 지배 질서의 특징, 즉 산업화된 북부와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남부로 나뉘어 있고 지배자들이 그런 격차를 이용해 노동자와 농민을 이간질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람시 주장의 핵심은, 남부 농민을 대변한다고 자임하지만 실제로는 지주와 연결된 ‘남부주의자’들이든, 남부 농민들의 빈곤을 묵인하는 대가로 양보를 얻어내려는 북부의 개혁주의자들이든 모두 농민 해방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농민은 자신들의 열망과 요구를 중앙집중적으로 표현할 능력이 없으므로 북부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운동으로 농민 대중을 지도해 이탈리아 전역에 노동자 국가를 건설하는 것만이 농민에게 실질적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람시는 또 다른 글인 ‘리용 테제’에서도 ‘노동자가 농민을 획득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 방식은 노동자들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지위에서 비롯하는 힘을 활용해 공장에서 노동자위원회를 구성하고, 그것을 본받아 농민위원회가 수립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람시는 농민과 중간계급 지식인을 노동계급과 대등한 수준의 동맹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노농동맹이라는 용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어떻게 나머지 민중
이런 왜곡은 “볼셰비키적 당 건설”을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한 그람시를, 혁명과 관계 없는 개혁주의자로 왜곡한 이탈리아 공산당의 타락을 답습하는 것이다.
2. 투쟁의 주역을 양보의 주역으로 바꾸다
이제 전지윤이 인용한 각각의 내용을 따져 보자. 먼저, 전지윤이 그람시를 인용하며 그린 다음과 같은 상황은 우리도 바라 마지않는다.
“적어도 공장 내에서는 좀더 등급이 높은 기술직 노동 종사자 때문에 덜 숙련된 노동자들이 손해를 입는다는 식의 착취 의식이나 특권 의식이 소멸했다.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전위는 전위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다. 이것이 토리노에서 공산당이 발전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관건은 어떻게 그런 상황에 이를 것이냐는 것이다. 노동자연대는 지배자들의 공세에 직면한 조직 노동자들로서는 자신의 요구를 위해 싸우면서 자신감을 키우고 그럼으로써 처지가 더 열악한 노동자나 민중의 투쟁에 연대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전지윤은 조직노동자들의 요구와 더 열악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립시키면서 “
전지윤이 불러낸 그람시는 과연 그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는가? 위 문장만 보면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람시의 원문을 보면 놀랍지 않게도 답은 완전한 ‘아니오’다.
전지윤의 인용 방식은 심각한 왜곡을 낳았다. 다음 문단을 다시 보자.
그람시는 “피아트의 숙련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더 빈곤한 노동자 대중에게 특권 계급으로 보일 것”을 우려했다. 언론은 “한 달에 7,000리라에 달하는 이들의 높은 봉급을 부각시키면서 기술직 종사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맹렬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원문을 보면 봉급이 “7,000리라에 달하는 이들”은 “피아트의 숙련 노동자”가 아니다. 두 문장은 별개의 사례를 설명하는 문단들에서 각각 따온 문장들이고 두 문장 사이에는 원고지 2매 정도의 글이 있다. 별도의 설명 없이 나란히 제시할 수 있는 문장들이 아닌 것이다!
위 문장들은 모두 그람시가 남부주의자들의 주장
1919~20년 이탈리아는 ‘붉은 2년’이라 불릴 만한 부분적인 혁명 상황을 겪는다. 개혁주의·중간주의자들이 이끄는 노동총연맹
당시 그람시는 봉급이 7,000리라에 달하는 기술직들이 사용자에 맞서 투쟁을 벌일 때 피아트의 숙련 육체 노동자들이 평소 악감정을 느끼던 기술직
전체적으로 그람시는 기술직이든 잡역부든 숙련 육체 노동자들의 연대에 힘입어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이런 경험이 쌓여서 숙련 육체 노동자들이 기술직과 잡역부 등에게서 전위로 인정받게 됐다고 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잘 조직된 숙련 육체 노동자들이 손해를 감수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그러니 “피아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앞세우기보다는…”이라는 전지윤의 주장은 난데없는 것이다.
3. 구체적 맥락 삭제하기
그러면, 그람시가 “피아트의 숙련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더 빈곤한 노동자 대중에게 특권 계급으로 보일 것”이라고 쓴 것은 대체 어떤 맥락이었는가?
앞서 말했듯이 당시 이탈리아는 위기가 극심했기 때문에 당시 피아트 경영진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꼼수를 부렸다. 노동자들에게 공장 경영에 참여하라고 했다
즉, 그람시는 당시 이탈리아의 구체적 상황을 분석하며 지배계급이 제안한 일종의 ‘노동자 자율경영’이 사실은 함정이라고 폭로하면서, 투쟁하는 전위로서 구실을 다하자고 노동자들에게 말한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전지윤은 구체적 사회 상황, 지배자들의 모순, 노동계급의 주·객관적 조건, 요구의 성격, 이 모든 것을 추상한 채 마치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면 지배자들의 포섭 전략에 놀아나는 것이고,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부차화해야만 계급의 전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양 쓰고 있다. 당시 이탈리아 지배자들이 제시한 ‘양보’의 내용을 독자들이 읽으면 오늘날 한국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숨긴 듯하다. 실로 그람시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따져 물을 노릇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박근혜가 조직 노동자 운동의 저항을 제압해 전체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히 내걸고 방어에 나서는 것, 즉 전체 전쟁의 최전선에서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야말로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데서 전위로서의 구실을 자임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람시의 뜻을 한국에서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민중주의 논쟁
민중주의 정치의 문제들
김문성
전지윤 씨
먼저 독자들이 전지윤의 토론 방식을 알아두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논지 전개 방식은 여러 요인에 관한 피상적 관찰과 ‘나열’이다. 그는 핵심 주장과 그것이 비판받을 것에 대비한 알리바이형 주장을 나란히 나열해 놓는다. 그래서 그의 논술 방식을 잘 모르는 논쟁 상대는 그를 비판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는 ‘왜 이걸 강조하냐’는 반문에 늘 ‘나는 다른 점도 지적했는데, 그 비판은 부당하다’는 식으로 반박하니 말이다.
이러니 이번 논쟁에서도 ‘나는 총파업을 지지했는데, 왜 민중주의라고 하느냐’는 식으로 항변하는 것이 낯설지가 않다. 그런데 논쟁의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그의 ‘재반론’은 글 제목 “노동운동의 요구와 방향을 좁히지 말아야 한다”부터 민중주의적 방향을 잘 드러낸다. 민중주의는 피억압 대중
노동자연대가 전지윤의 지난해 노동자 투쟁 평가에서 문제 삼은 것이 바로 이런 사고 방식이었기 때문에, 전지윤의 답변은 자신이 노동자연대와 무엇을 차이로 긋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음을 드러낸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차이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단연 으뜸 원칙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원칙에서 그가 멀어졌음을 보여 준다. 아울러 동어반복, 맥락 없이 문구만 떼어 내서 반박하기 등으로 본질적 쟁점을 흐리며 불리함을 감추는 그의 논쟁 방식이 무지보다는 의도적 논쟁술에 가까움도 보여 준다.
1) 노동계급의 핵심적 중요성에 관해[1]
전지윤은 이번 반론에서도 자신이 작업장 투쟁
정부는 총궐기에 대해 히스테리를 일으켰고, 민주노총 1,2차 총파업 때를 넘어선 지난 3년간 어느 때보다 압도적 탄압으로 막으려 했다. … 이 정권이 그토록 매달린 노동개악법 통과가 아직까지 안 된 것은 4차까지 이어진 총궐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총궐기 건설에 협력한 모든 단체와 아직도 누워계신 백남기 님 등 수많은 평범한 참가자들이 여기에 기여한 것이다.
[2] 제도정치에서 강제추방 당하고 야권연대에서도 배제된 자주파가 지난해의 구체적 상황에서 자의반타의반으로 주력한 것은 오히려 기층에서 총궐기 등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총궐기 건설에 가장 열심히 앞장선 것은 바로 자주파였다. 한상균 지도부의 총파업 호소에도 자주파 성향 노조들이 상대적으로 더 호응했다.
[3] 아직 … 자신감과 투쟁 수위가 높아지진 않고 있으며 단지 노조관료들이 투쟁을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니란 점도 직시해야 한다.
[4] 이것은 단지 작업장 투쟁만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5]
오히려 인용한 단락들을 조합하면, 민중총궐기는 지난해 노동자 투쟁의 맥락 속에서 설명되지 않고 있다. 즉, 노동자 투쟁의 성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가져오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노동조합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서, 그 반대의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6] 결국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금,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활력을 회복하지 못하며 투쟁으로 성취한 자신들의 조건을 지키기에 급급해 있다.간간히 새롭게 등장하는 투쟁과 활력들은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7] 하지만 지금 조직된 노동운동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
[8]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는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9]
굳이 직접적으로 논쟁하는 글이 아니라도 “신자유주의와 노동운동”
많은 급진좌파들은 … ‘조직된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힘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입장은 노동계급과 함께 자본주의의 모순에 저항하기 마련인 피억압 민중,미조직 청년,실업자 등과 노동계급을 불필요하게 구분하려 하곤 한다.가장 협소하게는 개별 노동조합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둘러싼 투쟁에 매몰되는 경향마저 있다.
[11] 노동계급의‘구조적 힘’은‘연합적 힘’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파업 등 노동계급의‘구조적 힘’을 봉쇄하거나 약화시키려는 지배계급의 대비와 노하우가 꽤나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연합적 힘’과 연결되지 않는‘구조적 힘’은 매우 제한적인 효과만을 내거나,심지어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12]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가져오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노동조합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서,그 반대의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13] 마치 자본주의가 인류의 생산력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족쇄로 변화하는 것처럼 이것은 ‘역사적 변증법’이라 할 만하다.
[14]
그는 생산현장에 기반한 노동계급의 처지와 나머지 피억압 사회계급의 처지를 구분하는 것의 중요성을 기각하더니, 노동계급의 주도력
노동계급의 힘을 억제하려는 “지배계급의 대비와 노하우”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을 인종·민족·성 등으로 이간질해 단결을 어렵게 하기, 직장폐쇄, 구사대·경찰·군대 투입 등으로 직접 탄압하기, 파업 불가 작업장·업무를 지정해 합법 파업을 원천 봉쇄하거나 대체근로를 합법화하기, 파업 손실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하기 등의 파업 무력화 방법들은 진작부터 여러 나라에 있어 왔다. 사회의 객관적 구조에서 나오는 노동계급의 “구조적 힘”은 지배계급의 봉쇄 조처보다 앞서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파업으로 이윤 생산을 멈춰 자본가들과 국가에 결정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은 이윤의 원천이 임금노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른 피억압 집단이 가지지 못한 노동계급 고유의 잠재력이고 객관적인 것이다. 즉, “지배계급의 대비와 노하우”는 노동계급의 구조적 힘에 후행하는 요소다. 따라서 지배계급의 봉쇄 조처로 노동계급의 “구조적 힘”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치나 세력 관계, 자신감의 문제이지 ‘구조적 힘 자체의 약화’ 때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지윤이 오늘날 노동운동의 어려움을 여러 곳에서 묘사하는 것은 피상적 관찰이지 이론적·원리적 분석은 아니다.
노동계급의 귀환? 역귀환?
노동계급의 힘 문제를 다루는 전지윤의 방식 전반은 피상적이고 비역사적이다. 그가 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직접 살펴보자.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가져오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노동조합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서,그 반대의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마르크스는 노동조합 운동이 실패하기 쉬운 이유를 좀 더 일반적으로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은 현존 제도가 빚어낸 결과를 반대하는 유격전에만 자신을 국한하고 이와 동시에 현존 제도가 변화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 계급의 종국적 해방을 위한,말하자면 임금 제도의 궁극적 철폐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패한다.”
(칼 마르크스, 《임금, 가격, 이윤》) [15]
그는 오늘날 노동운동에서 노동조합이 ‘족쇄’로 변했다고 주장하면서 1백50년 전에 마르크스가 이를 “일반적으로 지적”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술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성립되는 것인지 나는 도통 잘 모르겠다. 아니면, 이미 마르크스의 생존 시절부터 노동조합은 족쇄가 돼 오늘날까지 왔다는 뜻일까. 어찌 됐든 1백50년 넘는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적 경험마저 무시하는 대담함에 경의를 보낼 뿐이다. 이런 서술 방식이야말로 역사를 신비화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부정직한 논쟁 방식은 더 있다. 아래 인용 단락을 보라. 그는 애초에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강조에 민중주의적 함의가 있다는 노동자연대의 비판에 주류 정당들은 결코 지지할 수 없는 요구라고 반박했는데, 더민주당 등이 총선 공약에 포함시키고 나자, 2주 만에 말을 싹 바꿔버렸다.
[3월 9일]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는 노동계급의 가장 열악한 부문을 위한 명백한 노동계급의 요구이지 ‘중간계급이나 전국민적 요구’가 아니다. 이게 ‘계급을 초월한 전국민적’ 요구라면 왜 주류정당들이 이 요구를 한사코 반대하거나 대변하지 않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16]
[3월 25일] [최저임금 1만 원, 공적연금 강화, 비정규직 관련 요구 등] … 민주당이나 시민단체가 지지하는 요구를 내세우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고, 지지하지 않는 요구를 내세우는 것이 더 나은 일인가? [17]
나는 적어도 이렇게 부정직하게 논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런 사람들의 정치적 주장을 신뢰하겠는가. 이런 맥락 없는 인용이 낳은 모순, 말바꾸기에 대한 그의 답이 무엇이든 그가
노조관료로부터 독립적인 현장조합원들의 행동과 네트워크 건설은 특정한 조건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 그것이 가능할 정도로 자신감과 투쟁 수위가 높아지진 않고 있으며
[18]
사려 깊은 주장인 듯 보이지만 분위기 또는 상황을 바꿀 “특정한 조건”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느 곳에서도 딱부러지게 밝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공허하다.
능동적 좌파라면, 전지윤처럼 노동자 운동의 요구만 보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나름으로 설정한 “정치”적
어쨌거나 그가 왜 노동자연대더러 “노동계급의 귀환”이라는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 하는지 이제는 더 명확해진다. 사실, ‘귀환한 노동계급은 어디에 있느냐’는 그의 항변은 그가 노동자연대 회원일 때부터 계속 던진 질문이다. 정작 그는 그 귀환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았고, 그것을 강조하는 방침에 반발하다가 단체 내 호응이 없자 단체를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노동자연대와의 정치적 차이를 급속히 발전시켜 왔다.
그가 운동주의자들처럼 ‘운동들의 운동’으로서 위계 없는 운동들의 연대와 요구들의 나열을 강조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동계급 운동이 힘을 얻을 “특정한 조건”으로서 서로 다른
2) 민주주의의 계급적 성격
사회변혁에서 노동계급의 중심적 구실을 부정하는 전지윤은 여러 피억압 집단의 공통점으로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이것이 현재
1차 총궐기 참가자들에게 엄청난 폭력을 가해서 반발과 충돌을 유도한 다음, 그것을 빌미삼아 탄압과 민주주의 파괴를 정당화하려는 시나리오를 짜놓았던 것 … 원래 기획 … 테러방지법, 복면금지법, 집회·시위 불허 등을 쏟아내고 있다.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지배계급 내 박근혜 분파의 민주주의 파괴 의지는 너무나 노골적이다. … 지배계급은 조급함뿐 아니라 두려움이 커질 때 민주주의를 거추장스러워하는 법이다.
[22] 테러방지법 폐기는 중요한 계급적 요구다. 민주주의의 제약으로 가장 고통 받는 게 노동계급이기 때문이다.
[23]
[총궐기 직후] 공안탄압 광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을 [노동자연대는] ‘톤다운’이라고 비판 [했다] … 노동계급이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앞장서 싸우는 게 중요한 상황에서 말이다. [24]
이런 강조는 생뚱맞다. 박근혜의 민주적 권리 훼손에 반대하지 않는 좌파는 없기 때문이다. 쟁점은 그런 공격의 성격, 그것에 맞서는 운동의 핵심 동력 문제다. 그런데도 전지윤이 민주주의 ‘쟁점’이 중요하다고 새삼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가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을 기각하는 맥락, 그의 민주주의 개념, 그의 박근혜 정부 성격 규정 등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본다.
‘국가 형태’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민중의 지배
한국에서도 1987년 6월 말 대통령 직선제 개헌 약속으로 정권 획득의 공정한 기회를 얻어냈다고 판단한 자유주의 야당들이 소심한 투쟁마저 멈춘 반면, 이미 민중항쟁의 주요 구성원이던 노동자들은 울산을 시작으로 7월부터 노동현장 민주주의
물론 이런 모순을 절충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 왔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 칼 카우츠키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논평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지지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반대한다고 했다. 즉, 그때까지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으로 불리던 카우츠키가 정작 러시아 혁명에는 반대를 표명한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어느 계급의 민주주의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부르주아 독재이듯, 노동자 권력이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민주주의지만, 방금 막 타도돼 아직 잔존한 구 지배계급인 자본가들에게는 독재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분리하는 카우츠키의 민주주의 개념은 계급을 초월한 ‘일반 민주주의’ 체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요컨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지배 체제 안에 노동계급 민주주의의 요소들
결국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에게 형식적인 절차상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파시즘 등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 제한적으로 포함된 노동자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방어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예를 들어 스페인 혁명에서처럼 파시스트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한답시고 노동자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억압한 것이 왜 반혁명적이고 재앙적인 전략이 됐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전지윤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 민중 전체의 단결을 강조하는, 지배계급 중 각별히 반동적인 소수
대다수 민중주의자들은 좌파일지라도 자신들이 ‘일반 민주주의를 대표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반면, 노동자 투쟁은 자신들의 협소한 이익을 위해 파업하는 것이므로 부분을 대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근혜의 우파적 공세가 경제·안보 위기, 특히 경제 위기에 대응해 기업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임을 이해한다면, 바로 그 기업주들의 이윤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노동계급의 주도성과 파업의 힘을 부차화시켜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오류를 피하려면 민주적 권리들과 정치체제
그 점에서 노동자들이 개별 노동현장에서 투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측면을 무시한 그가 절차적 민주주의는 “계급적 요구”라며 강조하는 것은 시사적이다. 전지윤의 접근법과 달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마지못해 제한적으로 허용해 “사회권”이라고 부르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일부 기본 요소들, 즉 노동현장에서 기업주에 맞서 획득한 노동과정의 부분적 자율성, 임금과 복지의 향상 등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문제를 경시해서는 결코 안 된다.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이 첨예할 때는 지배계급이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기도 한다. 1980년대 대처가 이끈 영국 보수당 정부가 노조의 파업권을 약화시킨 것이나 9·11 테러 이후 미국판 테러방지법인 ‘애국법’이 제정돼 민주적 권리를 약화시킨 것이 그 사례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영국과 미국의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훼손된 것은 아니다.
강성 우파 정부
박근혜 정부가 강성 우파 정권이고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특정한 민주적 권리들을 공격하고 있지만, 오늘날 한국의 정치체제
예를 들어, 박근혜는 “노동개혁”을 관철하려고 한국노총 관료들을 끌어들여 노사정 타협이라는 외피를 쓰려고 애썼다.
박근혜 정부의 성격 문제는 노동운동 전략·전술 수립에서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반동적 성격 때문에 모든 피억압 민중의 권리가 공통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과장하면, 전지윤처럼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박근혜의 민주적 권리 탄압이 노리는 바가 “노동개혁”
민주주의가 의제통합적 기능을 한다고 보는 전지윤은 그것의 중심에 종북몰이 문제를 놓는다. “박근혜에게 종북몰이는 ‘절대반지’와 같았다. 박근혜의 등장도, 기반도, 당선도, 통치도, 위기 탈출도 ‘종북’을 빼면 설명되지 않는다.”
전지윤은 3년 전 진보당 내 경기동부의 “내란음모” 탄압 사건에서 자민통계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언급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와 관련한 논쟁은 그의 노동자연대 탈퇴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당시 사건 초기에 경기동부 리더들이 이른바 ‘5월 RO 회합이 없었다’고 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고 탄압 방어 연대체에서 사과까지 했는데도, 이를 거짓말로 볼 수 없다고 변호할 정도로 균형을 잃은 무비판적 방어론을 펼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노동자연대가 그런 무비판적 방어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연대가 종북몰이에 기회주의적으로 타협이라도 한 것인양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나 노동자연대는 당시 기관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진보당을 방어했을 뿐 아니라, 최영준 운영위원이 진보당 방어를 위해 결성한 연대체인 공안탄압대책위원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김인식 운영위원은 진보당 해산 재판
이런 사실들을 왜곡하는 전지윤의 부정직함의 다른 편에는 기회주의가 있다. 그는 탄압에 직면한 단체에 대한 어떤 비판도 ‘정의롭지 않다’고 강변했다. 사실 그가 자민통계의 사상을 지지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당시 그는 무비판적 방어를 해야 하는 이유로, 친북 사상은 인기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사상의 자유 탄압에 반대한다’는 노동자연대의 비판적 방어론은 오히려 자민통계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종북몰이에 힘을 실어 준다는 것이었다. 대단히 도덕적인 것 같지만, 이는 오히려 ‘친북 사상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대중의 후진적 정서에 영합
이처럼 전지윤의 기회주의는 때로는 초좌파적
3)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정의당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정의당은 현재, 노동자연대가 그토록 문제 삼는 ‘민중주의’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계급연합적 성격의 진보정당”인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좀 우스꽝스럽다. 전지윤이 우호적으로 대하는 민중연합당이야말로
자주파는 현재 민주당과의 동맹 등 ‘계급 연합 정치’를 기본적 지향대로 온전히 추구할 조건에 처해 있지 못하다. ‘종북’ 불똥이 튈까 봐 겁먹은 민주당과 심지어 정의당까지도 자주파를 ‘왕따’시키는 판
[29]
사정이 그렇다고 정치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일까? 상황 논리를 펴는 것을 보면, 전지윤도 차마 자민통계의 본래 전략까지는 변호하기 어려운가 보다.
그래서 그가 정의당에 대해 지지가 거의 없는 비판 일색인 것은 정의당의 사회민주주의를 스탈린주의보다 더 우파로 판단하기 때문인 듯하다. 특정한 정치운동을 판단할 때는 계급 기반과 강령, 계급 갈등 속에서의 실천 등을 종합해서 봐야 하는데, 그는 이데올로기를 더 선차적으로 보는 것이다.
정의당은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이 사회민주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후 확립된 “현대 사회민주주의”다. 이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나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으로 상징되는데, 그 특징들은 이전보다 더 공공연하게 ‘계급에서 국민으로, 혁명 거부, 냉전에서 서방 편들기’ 등을 내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북몰이를 “민주주의 파괴”로 과장해 이해하고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혁명적 비판과 대중의 합리적 문제제기까지 싸잡아 ‘기회주의’로 모는 것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아부처럼 들린다. 오늘날 노동자 대중이나 진보적 대중, 청년들이 북한을 ‘가난하고 실패한 제3세계 독재국가’ 같은 이미지로 보는 것은 단지 반공주의 세뇌 때문이 아니다. 역설이게도, 민중연합당 창당이 가능했다는 점이 종북몰이에 운동
그는 정의당 비례 국회의원 후보 선출에서 노동자연대가 지지한 양경규 후보가 종북몰이에 타협했다고
그 점 때문에도 진보정치 세력의 민중주의
야권연대/연립정부/인민전선
야권연대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비판은 혁명적이고 좌파적이다. ‘선거 실리를 위해 정당이 정체성 없이 야합하고 있다’고만 비판하는 것은 그 목적이 달라서 그렇지, 새누리당과
물론 스탈린주의와 시회민주주의의 ‘야권연대’
반면, 스탈린주의 정당은 노동운동의 상층뿐 아니라 기층에까지 기반을 구축한다. 그런 만큼 운동에 미치는 영향력은
공산당들이 이런 반혁명적 정책을 채택한 것은 소련의 지정학적 전략과 국제적 수준에서 인민전선 정책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련 당국은 나치 독일이 소련을 향해 동쪽으로 진격할 수 없도록 반대편인 서쪽에서 독일을 압박해 줄 동맹 세력을 영국, 프랑스,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계급 안에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유럽 공산당들은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통해 자국의 지배자들에게 공산당들이 혁명을 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맹을 위해 이를 막을 태세까지 돼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전지윤이 정의당보다 자민통계가 더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은 대중운동에서의 그들의 영향력과 비중 때문인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스탈린주의의 인민전선 전략이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지윤이 정의당만 개혁주의로 취급하면서 자민통계를 편애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거나,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적 외면일 뿐이다.
노동자연대가 정의당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건 정의당의 부상이 지난해 노동자 투쟁의 부분적 회복 속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타이트하게 사상적 통일과 조직적 일사불란함을 추구하는 스탈린주의 정당보다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좌파가 개입할 여지가 더 크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운동 전체의 전투성 회복을 위해서도 성장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개입해 그 안의 좌파를 지지하고 필요할 때는 동맹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초좌파적 종파주의라면, 개혁주의 정당의 우경화를 손뼉치며 기뻐할 것이다. 폭로 거리가 생겼다고 말이다.
균형감은 구체적 맥락에서 나온다
한편, 노동자연대는 필요할 경우 구체적 맥락 속에서 특정 정치 경향이나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비판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또한 공개적이고 일관된 기준으로 임해 왔기 때문에 그 판단 자체에 대해 논쟁을 한 적은 있어도 정파적 ‘편파’라는 비판은 받은 적이 없다.
예를 들면,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안에서 진보·좌파 정당 다원주의를 정치 방침으로 지지해 왔다. 진보·좌파 정당들을 지지 대상으로 하되, 특정 정당 지지 문제로 불필요하게 단결을 해치지 말자는 것이다.
이번 총선 민주노총 전략 후보 선출을 위한 울산 동구·북구 단일화 과정에서도 노동자연대는 선거구별로 상대적 좌파성을 따져 각각 노동당 이갑용 후보
지난해 노동당과 정의당의 통합 논쟁 때도 노동자연대는
반면, 전지윤의 블로그 글 수백 개를 뒤져 봐도 그는 옛 진보당 방어와 정의당 비판 말고는 노동당 등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런 그가 노동자연대의 ‘정의당 편애’를 증명한답시고 노동당, 녹색당을 우리가 별로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은 얄팍한 수작이다. 아마 이번에도 이간을 노린 것일 텐데, 그 정당들이 그 정도로 옹졸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다지 효과는 없을 듯하다.
4) 어떤 조직이 필요한가
노동계급 대중에게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만이 자본주의 지배의 구조물들을 해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만 수백만, 수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자기 쇄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적 정당이 지금처럼 극소수일 필연적 이유는 없겠으나 혁명적 시기에 가서야 비로소 대중정당으로 성장해 혁명적 노동자 운동을 권력으로 이끌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당연히 기존에 개혁주의를 지지했던 수백만 대중을 설득하는 데 달려 있다. 혁명가들이 활동적 능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지난한 시간을 견디며 끈기 있게 헌신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개혁주의 운동과의 공동전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혁주의를 지배계급의 음모나 개혁주의 지도자 일당의 책략 따위로만 보는 관점으로는 이런 과업을 수행할 수 없다. 모종의 마술적 슬로건이 운동의 약점을 극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환상 따위가 그럴 수 없음도 마찬가지다.
또한 혁명가들의 공동전선은 전지윤의 “공동전선 정치”와 달리 혁명적 독자성
그렇다면 이런 정치로 그가 건설하는 조직은 어떤 모양이 될까. 이제 막 시작한 그 조직을 사실상 유일하게 대표하는 전지윤의 정치와 전략·전술을 볼 때, 그 조직은 혁명적 강령에서 시작해 단단한 소수가 끈기 있게 노동자 투쟁에 개입하며 전투적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진정으로 혁명적인 조직이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그것을 위해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고 어느 계급의 힘에 기대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토론하며 헌신적으로 현실의 운동에 개입주의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운동들은 결국 국가를 상대해야 하므로 그것의 정치적 표현체가 필요한데, 전지윤의 논리적 귀결은 그 형식이 범좌파 연합 정당일 것임을 보여 준다. 이조차도 건설 과정, 운영 과정에서 전지윤 조직이 영향을 미치려면 기층에서 조직을 건설해야 할 텐데, 지향하는 바 자체가 그렇지 않으니 결국은 운동 상층 지도자들을 향해 타협과 절충, 운동 내 명망 쌓기가 그의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가 될 것이다.
이미 ‘운동들의 운동’을 추구한다며 이론과 강령 상의 절충과 타협이 혁명적 강령을 대신하고 있다. 운동의 다수파에 얹혀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거나, 지지자들이 강령 확립을 위해 헌신하기보다 마치 서클처럼 그저 토론만 하면서 전지윤에게 재정이나 대어 주는 것이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지윤의 레닌주의 비판은 그 자신의 행보를 사후에 정당화하기 위함일 뿐이다. 2013~14년에 그는 지도부의 일원이었으면서 레닌주의 지향 조직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민주적으로 행동하다가 노동자연대 회원 다수에게, 심지어 자신이 직접 이끌던 단체 편집부의 기자들에게까지 배척받게 됐다. 이후 자신의 창피한 정치적 패배를 가리려고 노동자연대가 비민주적이고, 레닌주의적 민주집중제가 문제인 것처럼 바꿔치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문제는 계급에게서, 또 동료들의 경험에서 배우기를 거부한 전지윤의 비민주성이었다.
레닌주의 조직 원리인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는 오직 현실에 개입하는 정당을 주체로 설정할 때만 의미가 있다. 이 당은 노동계급의 일부지만 혁명적 사상으로 구별되는 일부로서 계급의 여러 부분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따라서 이런 경험들은 단체 안에서 민주적으로 토론돼야 한다. 그러나 민주적 토론은 집단적 실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계급의 다양한 경험에서 배우면서 최적의 실천 지침을 끌어내려면 민주적 토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토론은 다수결, 집단적 실천, 중앙집중주의와 배치되지 않는다. 따라서 레닌주의 정치조직의 민주적 집중주의는 국민의 다수인 노동계급의 이익을 배반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주류 정치, 당원과 지지자들 다수의 이익을 지도자들이 거스르곤 하는 개혁주의 정당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더 민주적인 징표인 것이다.
물론 집중적 실천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변론이 설득력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협업
마치며: 기회주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전지윤은 여러 면에서 말을 실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 점에서 “딱지붙이기”에 대한 그의 항변이 흥미롭다.
딱지를 붙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토론과 비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 내가 쓴 지난번 반박 글에는 이런 딱지 붙이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동지에게는 그것이 벗어나기 어려운 하나의 습관이 돼 버린 것 같다.
[35]
자신은 ‘~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으니 “딱지 붙이기”를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딱지 없는 딱지 붙이기’가 습관인지, 책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하나만 지적하고자 한다. 그동안 노동자연대의 실천과 주장을 왜곡해 곳곳에서 황당한 딱지를 붙이며 운동 내 신용을 떨어뜨리려 애써 온 것은 전지윤 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그는 최일붕의 비판이 자신을 지지하지 못하도록 회원들을 압박하는 거라는 식으로 말한다. 2년 전 단체 내 논쟁에서도, 최근 반박 글에서도, 우리 단체의 활동가들과 평회원들을 독자적 사고도 없는 꼭두각시처럼 취급하던 그가 ‘알파고’가 인간의 창조성을 따라잡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말을 잃을 지경이다.
그는 ‘2년 전 조직 내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도 40명이나 자신을 지지해 함께 탈퇴했다’고 강변한다. 자신의 분파가 “최단명 조직”이 된 것은 분파를 3개월 만 운영하게 한 규약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미안하지만, “최단명 조직”은 공식 분파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종합적 진실을 말하자면, 당시 그의 분파원 다수는 그가 제기한 핵심 쟁점인 진보당 방어 문제 등에서 전지윤을 거의 지지하지 않았다. 더욱 우스운 것은 단체의 대의원협의회에 영향을 미치겠다고 결성한 분파의 구성원들 상당수가 대의원 선출
그가 노동자연대 지도부 출신임을 내세워 노동자연대를 비판하는 것이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지는 모르겠다. 노동자연대의 이런저런 급진적 비판에 마음을 상하거나 불쾌해 한 소수에게서 SNS 상에서 호의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담컨대, 그런 옹졸함과 얄팍함, 교활함, 기회주의로는 갈수록 야만적으로 되는 자본주의에 맞설 단호한 대중 운동을 건설하거나 이끌 수 없다. 전지윤과의 논쟁은, 지금껏 그랬듯이, 이런저런 작은 실수들은 있을지언정 크게 보아 노동자연대가 개척하려는 길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전지윤의 ‘노동운동의 요구와 방향을 좁히지 말아야 한다’에 답하며
지난해 노동자 투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최영준
전지윤 씨
무엇보다 전지윤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낮아 지난해 민주노총 총파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면서, 노동자연대가 근거 없는 낙관에 기초해 허망하게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에 주력했음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주장들을 보면, 2년 전 그가 우리 단체를 탈퇴한 핵심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조직노동자운동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진 전지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이탈해 민중주의로 더욱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노동자들은 싸울 자신감이 없었는가
전지윤은 “과연 지난해 조직 노동자들이 파업 호소만 하면 싸울 자신감과 준비가 돼 있었던가?” 하고 묻는다. 애초부터 총파업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전제한 질문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조직노동운동은 여러 굴곡 속에서도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고, 2014년 말 민주노총 첫 직선 위원장으로 한상균 좌파 집행부를 당선시켜 박근혜 정부의 파상공세를 막아야 한다는 바람을 표현했다. 이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파업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도부가 단호하게 파업을 호소하면 이에 응해 파업에 나설 수도 있음을 보여 준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노동자들은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에 맞서 상당한 저항을 했다. 박근혜 집권 직후 상황에 비춰 보면, 노동자들의 저항 수준과 태세는 꽤나 전진했다. 비록 하루 행동에 한정됐지만 4·24 파업과 9·23 파업은 의미가 있었다. 4·24 선제파업은 중앙파·국민파 지도부의 비협조 속에서도 전국적으로 27만 명
11월 14일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집권 이후의 최대 규모 시위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진보·좌파 단체가 주된 동력이었다. 노동자들은 거리시위로 상당한 저항을 보여 줬다. 물론 노동계급 고유의 힘
전지윤은 최일붕·김하영이 “지난해 투쟁에 대한 평가를 자신들의 예측에 끼워 맞추고 있다”고 말했지만, 골방에 앉아 자신이 만든 규정에 현실을 욱여넣고 있는 것은 바로 전지윤 자신이다.
노동자 투쟁에 대한 전지윤의 회의는 “사회적 고립”과 “줄어든 동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피상적 인상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그는 “20년 전의 한국 노동자들에 비해 지금의 한국 노동자들이 약화됐다거나 ‘사회적 고립’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최일붕의 주장이 “당혹스러운 말”이라고 했다.
20년 전이라면, 1997년 총파업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민주노총 파업 지지율이 80%에 달하던 때이다. ‘이미 귀환한 노동계급’을 못 알아 본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말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최일붕 동지가 “확률론적 기대값이 낮은 일”에도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말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전지윤이 말하는 1997년과 비교했을 때 오늘날 한국 노동자들의 힘도 여전히 강력하다. 당시보다 노동자 규모는 더 늘었고 이들이 산업 현장에서 미칠 힘은 그만큼 더 커졌다. 1997년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강화로 노동계급 내부가 분절화되어 힘이 약화됐다는 주장이 유행이지만, 그 상징으로 꼽히는 비정규직의 증가는 그만큼 자본가들이 이 노동자들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고 이들의 투쟁 잠재력도 더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조직 면에서 보자면, 1997년에 비해 노조 조직률은 약간 낮아졌지만 조합원 규모 자체는 40만 명 넘게 늘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도 10만 명 가까이 늘었다. 그동안 공공부문, 서비스업, 비정규직 등에서 새롭게 노조를 조직하고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전지윤의 주장처럼 조직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는 것도 아니다. 2013년 말에 ‘노동귀족’, ‘철밥통’이라고 비난받던 철도 노동자들이 23일간 최장기 파업을 벌이며 박근혜 정부를 위협하자, 투쟁에 대한 지지가 광범하게 일었다. 철도 민영화 반대 여론은 70퍼센트를 웃돌았다. 지난해 민주노총의 4·24 총파업에는 1천여 개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지지를 표명했다. 1997년과 마찬가지로 조직노동자들이 노동계급 고유의 방식으로 제 힘을 보여 주면, 광범한 지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전지윤은 ‘때로 확률론적 기대가 낮은 일에도 도박을 걸어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제멋대로 뜯어붙여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지만, 정말이지 최일붕의 지적처럼 혁명가라면 “평론가들처럼 그저 파업의 확률이나 따지”고 있지 말고 능동적으로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지난해 노동자 투쟁이 우리 혁명가들의 바람만큼 다 잘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계급투쟁 수준은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에 타격을 미쳐 노동개악을 철회시키는 수준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결국 임금 삭감과 쉬운 해고를 위한 양대지침이 발표됐고, 공무원연금 투쟁에서 패배하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파업 회피에 있었다. 주요 산별·노조 지도자들은 총파업을 은근히 보이콧하거나 하반기 총파업 계획을 거듭 연기시키는 구실을 했다. 4·24 파업을 ‘억지 파업’이라고 비난하며 재를 뿌린 이경훈이나, 공무원연금 개악에 배신적 야합을 한 이충재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빚었다.
아쉽게도 한상균 집행부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물론 전지윤의 고약한 왜곡과 달리 노동자연대는 ‘한상균 지도부가 총파업을 억눌렀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한상균 위원장이 총파업을 조직하고자 했고 구속도 마다하지 않고 투쟁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럼에도 한상균 집행부는 파업을 방해·회피하는 다른 노조 지도자들을 공개 비판하고 기층 조합원들을 향해 투쟁을 호소하기보다 점차 ‘노조 관료들의 질서’에 순응해 갔다. 우리가 이런 약점을 비판했던 것은 그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투쟁의 전진을 모색해 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전지윤은 “영향력이 막강”한 노조 지도자들이 다 문제였다면 파업은 애초에 가능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민주노총 좌파 지도부의 등장으로 노조 지도자들 사이에 균열을 내고, 이를 이용해 기층에서 투쟁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활동가들이 좌파 지도부가 총파업 지침을 내리도록 지지·압박하고 그 지침을 이용해 기층에서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하며 현장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말이다. 한상균 집행부의 등장, 4·24 총파업의 순조로운 결정, 9·23 총파업의 신속한 결정 등이 이를 방증한다.
전지윤처럼 이를 위한 노력은 방기한 채 어차피 총파업은 불가능하다고 숙명적으로 본다면, 이경훈이나 이충재에 대한 비판은 해서 뭐하겠는가. 이들 지도부가 파업을 호소했어도 어차피 조합원들은 따를 의사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전지윤 같은 입장은 주요 노조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그것은 또 지도부의 투쟁 호소를 이용해 작업장에서 투쟁을 건설하려는 혁명가들의 노력도 무망한 일로 만들어 버린다. 전지윤이 공무원연금 투쟁 때 이충재의 배신 행위를 비판하고 독립적으로 투쟁을 건설하려 한 ‘사수넷’의 노력에 지지를 제공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노동자 투쟁에 대한 전지윤의 관조적·회의적 평가는 조직노동자들의 투쟁 잠재력에 대한 그의 더 깊은 회의를 반영한다. 그는 최근 ‘신자유주의와 노동운동’이라는 논문을 통해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표명했다.
그가 그 글에서 제안한 “진정성의 정치”는 조직노동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요구를 앞세우지 말고 “전체 계급의 이익”을 위해 나서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를 위해 조직노동자운동이 “단기적 부분적으로 조금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주장은 예를 들어 공무원연금에서 일정 손해를 감수하고 좀 더 열악한 조건의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는 개혁주의자들의 논리에 한 귀퉁이를 열어 주는 듯하다.
무엇보다 전지윤은 이제 좌파가 조직노동자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미조직 청년, 실업자, 자영업자, 여성이 투쟁의 주역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알파요 오메가인 노동계급 중심성에서 이탈하는 것이고, 그가 추구하는 민중주의에 맞게 ‘이론’을 수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맥락 없는 갖다붙이기 식의 전지윤의 억지를 방지하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노동계급 중심성은 차별받는 사람들 스스로의 투쟁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차별과 천대를 없애려면 자본주의 이윤을 타격할 고유한 능력이 있는 노동계급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를 대립시키다
전지윤은 지난해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를 대비시켜 전자는 실패했고 후자는 대성공을 거뒀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10만여 명이 모인 민중총궐기의 대다수이자 주축은 조직노동자들이었고 이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 더구나 민중총궐기는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4·24, 9·23 등의 민주노총 총파업과 여타 많은 쟁의들
실제 민중총궐기투쟁본부에서 조사한 민중총궐기 참가자 구성만 봐도 압도적으로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었다. 2차 민중총궐기로 가면 그 비율은 더 커진다.
한편, 전지윤은 마치 최일붕과 김하영이 자신의 비판을 의식해 은근슬쩍 말을 바꿔 민중총궐기의 의의를 사주고 있다고 왜곡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노동자연대는 이미 지난해에 민중총궐기의 성공이 노동자들의 자신감 회복을 보여 주는 좋은 징조라고 봤다
총궐기에 관한 전지윤의 핵심 물음 하나는 “과연 총궐기가 총파업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냐”는 점이다. 만약 그랬다면 박근혜가 좋아했을 텐데 오히려 탄압을 퍼붓지 않았느냐면서 말이다. 전지윤은 진보당 마녀사냥에 대해서도 똑같은 논리를 댔는데, 정부의 탄압이 있어야 투쟁이 위력이 있는 것이고 바로 그곳에 운동이 집중해야 한다는 식의 분석은 조야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민중총궐기 구상은 총파업이 아닌 다른 무엇을 찾아보자는 제기로부터 출발했다. 자민통 계열은 지난해 초부터 ‘총파업이 아닌’ 민중총궐기를 제안했다. 이들은 총·대선을 앞두고 2015년 민중총궐기를 통해 자신들의 전략적 프로젝트
그럼에도 총궐기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전혀 이슈가 되지 못했다. 한상균 위원장이 후보자 시절부터 11월 총파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데다가, 민주노총 집행부가 4월 선제파업과 상반기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을 강조해 민중총궐기에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투쟁이 패배하고 7월 15일 민주노총 2차 총파업이 규모나 행동 면에서 초라하게 끝나자 민중총궐기 주장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파업이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받는 싸움을 하자’는 민중주의 주장이 민주노총 지도부 내 다수의 호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노조 지도자들은 파업 명령에 부담을 느껴 민중총궐기를 파업 대체물로 삼고자 했다. 하루일지라도 불황기에 생산에 차질을 주는 파업을 조직하는 것보다 주말 집회에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것이 훨씬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물론 1차 민중총궐기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가 상당했다. 또, 민주노총 총파업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잠재력도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도 민중총궐기 성사를 위해 초기부터 총궐기투쟁본부에 중앙과 지역 차원에서 적극 참여했다.
혁명적 좌파에게는 ‘스트리트’
2차 민중총궐기 기조 논쟁은 바로 이 속에서 벌어졌다. 당시는 1차 민중총궐기 이후 정부의 탄압이 거세던 때였다. 정부는 이를 통해 12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자 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예정대로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노동개악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고,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민주노총 침탈·한상균 위원장 체포 협박 등 탄압에도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 자민통 활동가들은 정부의 탄압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민단체, 종교계 등을 끌어들여야 하고, 이를 위해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 등 민주주의 문제로 대회 기조를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더 온건한 ‘중간층’
집회 기조에서 노동개악 문제를 부차화하고 민주주의를 부각시키는 것은 투쟁을 전진시키는 제안이 아니었다. 이를 두고 최일붕이 집회 기조의 “톤다운”이라고 비판한 것은 정당하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지지하지만 집회 기조에 노동개악 저지가 핵심적으로 포함돼야 하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지윤은 ‘노동개악 반대’ 요구를 부차화하는 민중주의자들의 주장을 지지했다. 그는 총궐기투쟁본부 안에서 전혀 비중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자민통의 주장을 지지해 준 유일한 좌파였다. 그는 1차 민중총궐기를 단순 찬양하며 “어차피 민주노총 총파업은 가능하지도 않다”고도 말했다. 전지윤은 사실상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를 대립시키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즉, 민주노총 파업은 불가능하고 ‘사회적 고립’만 자초할 수 있으니 민중총궐기를 잘 해보자는 식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논쟁의 구체적 맥락에서 노조 지도자들에게 파업을 촉구한 나의 주장에 대한 반대이자 거부였다. 따라서 최일붕이 “전지윤은 노조 지도자들에게 파업 촉구하는 것을 아예 반대했다”거나 “총파업 촉구를 거부”했다고 쓴 것은 왜곡이 아니다.
그런데도 전지윤은 자신이 그런 말을 언제 했느냐며 펄쩍 뛰며 딱 잡아뗀다. 아마도 전지윤이 이 글을 본다면, 십중팔구 또다시 자신이 몇 년 전에
좌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건설 노력이 무의미한가?
전지윤은 2014~15년 노동자연대가 ‘기층 노동자들이 불만은 많지만 스스로 파업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지는 않다’는 분석에 기초해 내놓은 좌파 노조 지도부와의 제휴 전술과 좌파 활동가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 제안을 여전히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전지윤은 이렇게 묻는다.
자주파, 국민파, 중앙파에 현장파, 전지윤까지 다 민중주의적이거나 거기에 순응하는 상황에서 “좌파 활동가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으며 과연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우선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한상균 집행부를 민주노총 총파업 지침을 무력화하거나 비협조적이었던 산별·연맹 지도자들과 마찬가지 취급을 하는 듯이 곡해하고 있다. 이는 한상균 집행부 당선에 일역할을 한 노동자연대와 한상균 집행부를 이간질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연대는 현장조합원과 노조 지도부를 구분하면서도 노조 지도자들 사이의 좌우 차이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노동자연대는 한상균 집행부가 “소수파 지도자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노동조합 관료 전체의 규범에 순응해선 안 되고 총파업을 회피하는 지도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현장조합원들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선거운동 때와 취임 초기에는 그럴 것도 같아 보였다.
그러나 지도부에게 촉구하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는 좌파 활동가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있어야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독자적인 투쟁도 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지윤은 좌파 활동가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는 누구와 함께할 것이며, 과연 만들 수 있는 것이냐고 따진다. 2014년 한상균 집행부 당선과 지난해 총파업 국면에서는 ‘좌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실제로 가능했다. 민주노총 선거가 끝난 후 한상균 후보의 선거운동에 동참했던 좌파 단체들
그리고 전지윤은 노동운동 내 세력들
물론 전지윤은 결국 이런 시도가 실패했으니 애초 안 될 일이었다고 숙명론적으로 말하겠지만, 좌파 활동가들이 이와 같은 문제들을 둘러싸고 진지한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것은 결코 무가치한 일이 아니다.
전지윤은 이와 같은 노동운동 내 중요한 전술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없이, “노조관료로부터 독립적인 현장조합원들의 행동과 네트워크 건설” 노력은 “특정한 조건에서 가능하다”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좌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건설과 현장조합원 운동을 터무니없이 등치시키면서 말이다. 노동자연대는 현재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전투성이 현장조합원 운동을 건설할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과장된 인식을 결코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 현장조합원 운동이 가능한 시기가 아니라고 해서 현장 노동자들의 활동과 투쟁을 강화할 수단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조 좌파 지도부와의 제휴나 좌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는 바로 이를 위한 전술로 제시한 것이다. 현장조합원 운동의 원칙
예컨대,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에서 노동자연대가 발의해 조직한 현장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인 ‘사수넷’이 비슷한 시도였고 나름 성과가 있었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막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충재에게 책임을 물어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었다. 이 자가 뻔뻔하게 위원장 직을 유지했다면 공무원 노동자들의 사기는 더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노조 안에서 소수일지라도 좌파와 전투적 활동가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처럼 계급투쟁 수준이 높은 곳에서조차 이는 마찬가지다. 그리스 사회주의자인 니코스 루도스는 2009년 말 그리스 총파업의 시작은 교사노조의 한 특정 지부의 파업이었고, 곧이어 교사노조 지도부가 전국적 3시간 파업을 선언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 개입한 소수의 전투적 활동가들이 있었고, 파업이 확산되면서 산업마다 작업장마다 불균등하게 벌어진 것도 이 파업을 조직하려는 “노동자 2~3명이 작업장에 있느냐 없느냐가 그 차이를 낳은 주요 요인이었다.” 즉, 계급투쟁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고 그 투쟁은 “자동으로 일어난 일도, 순전히 자발성에 의해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사회주의자라면 노동자들의 낮은 자신감 수준이 문제라는 한마디 말로 노동운동의 여러 전술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외면해선 안 된다.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력과 자신감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능동적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전지윤은 조직노동자 운동과 조직
기회주의자의 맥락 없는 단순 사실 나열
전지윤은 노동자연대에 “최저임금 1만 원, 공적연금 강화, 비정규직 관련 요구는 덜 중요한 요구인가” 하고 묻는다. 우리 단체가 마치 대기업 정규직의 경제적 요구만을 “특별히 더 계급적인 요구”로 격상시키고 있다고 왜곡해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데 혁명적 좌파라면 어떤 요구가 일반적으로 좋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 그 요구가 어떤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제기됐고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요구도 특정한 구체적 맥락에서는 투쟁에 장애가 되는 부적절한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지윤은 바로 이 점에서 극도의 무능과 무지를 보여 준다. 기회주의자답게 그는 지난해 투쟁의 요구를 둘러싸고 제기된 주요 세력들 사이의 논쟁을 물타기 하고 있다. 공적연금 강화 요구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악을 관철하기 위해 공무원 노동자들을 “철밥통”이라고 비난하며 나머지 노동자들과 야비한 이간질을 시도했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운운하며 ‘공적연금 강화’를 위해 공무원들이 양보하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 진영의 효과적인 당면 투쟁 전술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와 개혁주의자들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분명히 반대하지 않았다. 이충재 집행부는 ‘공적연금 강화’ 요구를 공무원연금 양보와 맞바꾸기 위한 ‘알리바이’로 사용했다. 특히, 국민대타협기구 안에서 추상적인 공적연금 강화 약속을 받아내는 대가로 공무원연금을 내주는 배신을 저질렀다.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에 참가한 대다수 개혁주의 단체들도 공적연금 강화를 위해 공무원·교사들의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무원·교사들이 ‘철밥통’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적연금 강화’를 전면에 내세워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훈계했다. 심지어 일부는 ‘공무원연금 사수는 계급이기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공적연금 강화는 ‘공무원연금을 양보하라’는 코드명과 같았다.
이런 구체적인 상황에서 전지윤과 그 그룹에 속한 공무원회원
그래서 최일붕이 전지윤과 공무원A가 “진지하게 연금 방어와 이충재 반대를 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전지윤은 최일붕이 자신과 공무원A를 매도했다며 반발했고 공무원A가 “공무원연금 개악과 이충재 지도부의 후퇴에 반대하는 여러 글을 쓰고 온갖 집회에 참가하고 조합원들의 대거 참가를 조직해 온 것을 깡그리 무시”했다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과거에 썼던 4편의 글을 링크해 뒀다.
하지만 링크해 둔 글 4편을 읽어 보니, 놀랍게도 이충재 집행부에 대해 단 한마디도 비판적 언급이 없다. 이 중 가장 마지막 글이 쓰여진 2014년 11월에 이미 이충재 집행부는 ‘공적연금 강화’를 강조하며 양보로 기울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이들은 당시 ‘공적연금 강화’ 요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간파하지 못했던 탓인지, 정의당의 노골적인 양보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했지만 공적연금 강화 논리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이들이 둔감해서 당시까지는 그 위험을 잘 몰랐다고 치자. 그러나 전지윤과 공무원A는 이충재가 배신적 합의를 하고 이로 인해 노동조합 내 좌파적 활동가들과 전투적 조합원들 사이에 논란이 일 때조차 단 한 편의 비판적 논평도 내지 않았다. 전지윤이 말한 “이충재 지도부의 후퇴에 반대하는 여러 글”은 도대체 언제 썼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전지윤은 사람들이 자신이 링크로 걸어 둔 글을 읽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이런 식의 거짓말을 하는 걸까? 심지어 노동자연대가 주도적 역할을 한 여러 연서명
일단 공무원A는 누가 떠먹여 주지 않으면 연서명에도 참가하지 못한다는 얘기인가?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를 배제한 게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노조 게시판 등에 공개적으로 연서명 제안서를 여러 차례 올렸기에 당연히 적극적인 활동가라면 답을 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각각 77명과 1백22명의 활동가들이 이를 보고 연서명에 동참했다. 만약 공무원A가 연서명에 관해 듣지 못했다면, 이는 그가 이충재 집행부의 배신 행위에 맞서 항의를 건설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공무원A가 “온갖 집회”에 참가하고 조합원 조직을 열심히 했다는 전지윤의 형식적 주장도 무의미한 사실 나열일 뿐이다. 이충재와 그를 지지했던 소위 ‘혁신모임’ 간부들도 온갖 집회에 참가했고 노조가 호소한 집회에 조합원을 대거 조직했다. 하지만 이들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와 이충재의 배신 행위에 반대해 적극 나서서 활동했는가? 전지윤 식의 형식적 사실 나열은 전혀 진실을 보여 주지 않는다. 진지한 좌파 활동가라면, 운동의 방향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그를 위해 애썼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최저임금 1만 원과 비정규직 2법 반대 문제도 구체적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이 요구를 지지하는 것은 전혀 쟁점이 아니다. 노동자연대도 이 요구를 당연히 지지한다. 문제는 이 요구만을 앞세움으로써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에 대한 사용자들의 공격을 외면하거나 부차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총 내 국민파를 비롯한 여러 민중주의자들은 4.24 총파업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등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을 불편해 했다. 대신 그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 부각시키려 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립서비스로 ‘최저임금 인상’을 언급하고 새정치연합이 의욕적으로 달려들자, 최저임금 요구가 후자와 국민의 호응을 얻기 수월하다고 본 것이다.
노동운동 내 온건파들은 비정규직 2법 저지를 압도적으로 강조하면서,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겨냥한 통상임금 축소, 노동시간 연장 개악도 부차화하려 했다.
요컨대, ‘조직노동자들의 요구를 내세우지 말고 계급을 초월한 국민적
그리고 그가 ‘좋은 요구를 내거는 게 왜 문제냐’고 반복하는 데는, 추상적 접근법의 고질적 약점이 근저에 깔려 있다. 전후 맥락도 없이 여러 사실을 단순 나열하는 전지윤은 운동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사태를 분석하고 전술을 구사하려는 혁명가들의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레닌은 구체적 증거나 구체적 근거를 얘기하지 않고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얘기했다. 전지윤과 우리는 ‘구체성’의 의미 자체를 달리하는 것이다.
“정치적 요구”가 결합돼야 투쟁이 확대될 수 있는가
전지윤은 계급투쟁 수준이 지지부진하다며 “부문과 업종을 넘어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연대를 가능케 할, 나아가 더 넓은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불러올 요구”를 채택해야 운동이 전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노동개악 저지와 같은 노동계급의 요구뿐 아니라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 테러방지법 같은 민주주의 요구를 결합시키고 부각시켜야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지윤의 주장은 모순적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설 자신감도 없다고 진단하면서, 그들더러 자기 조건 방어를 넘어 정치적 요구를 함께 내걸라니 말이다. 눈앞의 공격에 맞서 자기 조건을 지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더 넓은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강력히 싸울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더 넓은 정치적 요구”를 내걸면 자동으로 투쟁이 더한층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순진한 착각이다. 예컨대, 2013년 말 철도 파업 때도 전지윤은 진보당 방어와 같은 민주주의 요구를 결합해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철도 파업은 전국적 초점으로 떠올라 이미 정치적 계급투쟁의 양상을 띠었다. 더구나 철도 파업이 그토록 수많은 지지를 받으며 정부 정책을 위협했는데도 승리하지 못한 것은, 진보당 방어를 요구로 내걸지 못해서가 아니라 노조 지도부가 필공파업으로 투쟁을 제한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맞설 혁명가들의 조직이 현장에 구축되지 못했던 탓이었다.
철도 파업 당시 진보당 방어와 같은 민주주의 투쟁을 강조한 전지윤의 주장이 당시에 지닌 구체적 함의는 사회주의자들이 철도 파업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전지윤은 이런 주장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데, 노동자연대가 “지난해 내내 ‘노동개악 반대’에 관심사를 집중”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테러방지법, 백남기 농민 살인 진압과 같은 민주주의 문제도 중요한 ‘계급적’ 요구인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노동개악 저지에 집중한 것은 ‘협소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우선, 정치투쟁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보여 준다. 전지윤은 마르크스주의를 소련 국정교과서를 통해 잘못 배운 1980년대 좌익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치투쟁을 이해하는 듯하다. 당시에 우리는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레닌의 개념을 오해해, 경제투쟁에 정치적 요구를 결합시켜야 운동이 전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레닌에게 정치투쟁이냐 경제투쟁이냐의 차이는 단순히 요구가 정부를 향한 것이냐 특정 기업 또는 특정 산업을 향한 것이냐 하는 차이보다는 요구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차이였다. 마르크스와 레닌에게 정치투쟁은 계급 전체의 운동이다. 한 부문의 경제투쟁이 부문을 뛰어넘어 노동계급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하면 그것은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를 갖고 시기를 집중해 동시 파업을 벌이고 공동의 항의 집회를 한다면 사실상 정치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노동개악 저지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이지만, 동시에 정부 정책에 맞선다는 점에서도 정치적 투쟁이었다. 지난해 내내 박근혜와 지배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며 밀어붙인 사안이 바로 노동개악이고 박근혜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의 핵심을 이룬 것도 노동개악 저지 투쟁이다. 즉, 노동개악은 자본주의 하의 양 계급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전투를 벌인 사안으로 그 자체로 단연 가장 중요한 정치적 투쟁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개악이 노동계급 전체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공격이므로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적 좌파라면 지난해 계급투쟁에서 노동개악 저지를 다른 요구들보다 우선성을 부여해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전투를 효과적으로 벌이기 위해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도 분명히 옹호하며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운동 내에서 상당히 큰 난점이 발생했다. 박근혜가 노동계급을 이간질하기 위해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방어를 꺼리는 태도가 상당히 만연했다. 노동자연대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보다 공적연금 강화를 앞세운 입장을 비판하고, 조직노동자들의 요구는 외면하면서 그 대신 최저임금 등의 요구를 내세우자는 주장을 비판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었다. 즉, 우리는 당면 투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자들을 비판했다!
따라서 전지윤이 “부문을 넘어 넓은 사회적 지지를 받는 요구나 투쟁”을 주장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거듭 반문하는 것은 구체적 상황을 외면한 지독히 추상적인 인식이고, 노동자연대가 민중주의의 문제점이라고 비판한 것을 전지윤 자신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전지윤이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운동이 “조직노동자들이 부문의 조건과 요구에 따라서 칸막이화되고 각개 약진·격파 당하는 상황”이고 “사회적 고립”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에 조직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보는 데서 드러난다.
여기에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끌어다 “‘노동자들은 박해받는 소수 종교와 탄압받는 학생들을 위해서 자기 일처럼 투쟁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않다는 좌파들을 비판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전인수다. 노동자연대가 원칙과 실천의 지침으로 견지하는 노동계급 중심성은 노동계급은 천대받는 사람들의 요구를 지지하고 이들을 위해 투쟁에 나설 수 있을 뿐 아니라 천대와 차별을 끝장낼 힘을 가진 유일한 세력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는 그 잠재력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나날의 피 말리는 투쟁 속에서 승리와 패배를 모두 겪으며 단련된다. 전지윤이 경멸하는 부문적이고 협소한 요구
설상가상으로 전지윤은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계급투쟁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한다. “단일 공장의 노동자들이나 단일 산업 부문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고용주에 대항해서 투쟁을 벌인다면 이것은 계급투쟁인가?”라고 묻고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러나 엥겔스가 말한 계급투쟁의 세 차원 또는 양상에는 정치적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뿐 아니라 경제적 계급투쟁도 분명히 포함된다.
김하영이 지적하듯, 경제적 요구와 투쟁을 폄하하는 이 같은 주장은 “투쟁에 나설 잠재력이 있는 조직 노동자들의 동원을 회피하는 것
2013년 철도 노동자들이 박근혜 퇴진을 내걸거나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당면한 공격을 저지하는 투쟁을 잘 벌인다면 박근혜의 위기를 심화시켜 소외되고 천대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을 고무할 수 있다. 노동자연대가 조직노동자들의 구실을 강조하고 주목하는 것은 바로 정권과 자본가들을 위기에 빠뜨릴 능력이 있는 유일한 사회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연대는 조직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관념적으로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실제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잘 싸우도록 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라 본다. 이를 두고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불신’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뻔한 것도 잘못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사실, 전지윤은 자신의 분석을 조직노동자들의 잠재력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불신으로까지 발전시킨 나머지, 생산 현장에서 이윤에 타격을 주는 파업과 같은 투쟁을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문제에 관심이 없는데도 노동계급의 잠재력 운운하는 것은 위선 아닌가?
다시 한번 전지윤에게 김하영이 던진 질문인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누가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만드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최일붕이 말한 대로 ‘노동개혁’ 반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래지 않아 재개될 것이다.
보론1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공적연금 강화’는 어떤 내용인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용건 집행위원장 등은 소속 단체인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공식 입장이 여전히 ‘여야 합의안 폐기’인 상황에서도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 이충재의 배신은 존중됐지만 연금개악 야합에 항의하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반발과 소속 단체인 노동자연대의 반대 의견은 무시됐다.
이처럼 구체적 맥락 속에서 보면 ‘공적연금 강화’ 요구는 국민
연금행동은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의 제안으로 2012년 10월 ‘국민연금 바로 세우기 국민행동’으로 발족해, 2015년 3월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으로 확대 재편됐다. 노동자연대
다만, ‘적절한 소득대체율’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이를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은 어떻게 돼야 하는지 등 공적연금 ‘강화’의 구체적 내용을 두고 연대체 소속 단체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심지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속에서 조직을 확대 재편할 당시에도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기본 과제로 포함할지를 두고 한참 논쟁해야 했다.
연금행동이 발행한 소책자 《우리는 행복한 노후를 꿈꿀 권리가 있다》를 보면 국민연금의 ‘적절한 소득대체율’을 50퍼센트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처럼 소극적인 대안으로는 공적연금의 ‘상향 평준화’라는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공무원연금 개악 전에는 어지간한 교사·공무원도 2백만 원 안팎의 연금을 받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최저생계비 정도의 액수를 갖고 씨름해야 하는가.
연금행동 소속의 일부 단체와 리더들이 하향 평준화에 반대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상향 평준화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공무원연금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여긴 데에는 다음의 문제가 연관돼 있었던 듯하다. 즉, 하향 평준화에는 반대하지만 중향 평준화, 즉 국민연금은 조금 인상하고 공무원연금은 조금 삭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이런 관점으로는 공무원연금 삭감에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 대가로 국민연금을 일부 인상하겠다고 약속한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도 소속 단체들 사이의 견해가 다르다. 정부는 호시탐탐 보험료 인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소득대체율 인상을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노동자들의 추가 부담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아예 공세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목표로 삼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사회연대전략’인데, 정용건 집행위원장이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OECD 소속 나라들을 비교해 봐도 한국 노동자들의 연금 보험료 부담은 낮은 수준이 아니다. 반면 기업주들의 부담 수준은 현격히 낮아 다른 주요 지표들과 마찬가지로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의 부담을 늘린다면 당장 연금 지급액을 대폭 늘릴 수 있다.
연금행동은 2015년 9월 발행한 소책자 개정판에 “연금액 인상에 필요한 재원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충분히 조달할 수 있습니다” 하는 문구를 포함했는데, ‘사회적 합의’가 대체로 노동자들의 양보를 끌어내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척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 기금의 ‘윤리적 투자’, ‘공공복지인프라 투자’도 쟁점이다. 물론 연기금을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기업주·부자 들만 배불리는 것은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윤리적인 기준을 고려한 투자”, “장기적으로 국민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투자라는 요구는 금방 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연금행동 소책자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삼성이나 회사돈을 횡령한 SK, 노동자를 탄압한 이마트 주식에 투자된 것을 문제 삼는다. 그러면 현대나 GS, 혹은 노동법을 제법 잘 따르는 외국계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은 괜찮은 걸까?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려면 대기업 주식을 사야 할까, 아니면 중소기업 주식을 사야 할까? 기금 수익률을 높이려면 위험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혼란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부의 지급 보증을 의무화하고, 기금 ‘투자’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당장 필요한 노인들, 유족들, 아이들에게 충분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소책자 저자들이 한편에서는 “국민연금 국가지급 의무화”
좌파라면 ‘공적연금 강화’라는 거창한 구호에 주눅들어 이런 약점들을 못 본 체해서는 안 된다. 또 구체적 맥락과 내용을 따져보지도 않고 ‘공적연금 강화’라는 요구를 지지해서도 안 된다. 전지윤과 변혁재장전이 바로 이런 기회주의를 노정해 왔다.
부정확하기 이를 데 없는 한반도 주변정세 인식
단순한 인상들을 그나마 원칙 없이 꿰어 맞추기
김영익
좌파 블로거 전지윤 씨
그나마 일부 대목을 보면, 과연 전지윤이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 이론과 분석을 갖고 있는지 미심쩍은 데가 있다. 예컨대 지난해 3월 사드 배치 논란에 관해 그가 쓴 글을 보면, 중국의 부상을 일면적으로 과장하는 게 두드러진다. 그는 미국을 “대장 마피아”, 중국을 “신흥 마피아”에 비유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마피아 서열이 분명할 때는 줄서기를 하면 됐는데, 지금처럼 서열이 바뀌는 듯할 때가 한국 지배계급에게 골치 아픈 일이다.”
또 다른 글에서는 자기 주장과 모순되는 이론을 끌어오고 있다. 즉, 정성진 교수의 《마르크스와 세계경제》
이처럼 전지윤에게는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 이론이 사실상 부재하다 보니, 그때그때의 인상이나 다른 진보·좌파 주장들의 영향을 받아 전망이 바뀌거나, 여러 다른 이론들과 무원칙하게 절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런 사례의 하나로, 전지윤의 글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한반도 긴장 상황에 관한 과장된 인식이다.
그리고 전지윤은 같은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상황이 곧바로 확전이나 전면전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아직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고 정말 그러길 빈다. 하지만 몇 가지 요소들 때문에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강조는 필자) 이 대목을 보면, 분명 전지윤은 당시 상황이 전쟁 위기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가 “확전이나 전면전” 가능성을 높일 요소들로 제시한 것들
[3] 은 대부분 해당 국가 정권의 성격과 관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전지윤이 위의 글을 쓴 지 나흘 만에 이 사태는 8월 25일 남북 대화로 일시적으로 봉합됐다. 그러자 9월 4일 전지윤은 말을 슬쩍 바꿨다.
이번에 한반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다가 가까스로 봉합된 것은 무조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지역의 긴장이 아직 당장의 확전이나 전면전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는 게 다시 드러났다.
(강조는 필자)
‘곧 전쟁이 일어날까 봐 불안하다’고 암시하다가 불과 2주 만에 ‘이 지역 긴장이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전쟁을 체제의 동역학이 아니라 정권의 변덕에 좌우되는 것쯤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그가 현상에 얼마나 휩쓸리는지를 알 수 있다. 즉, 당시 상황을 다루면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들을 선택해 서술했는데, 진정한 분석에 기초하지 않은 이런 선택이 결국 상황을 과장되
최근 한반도에 다시 긴장이 높아지자, 지난 2월 전지윤은 개성공단 폐쇄, 남한 우파의 호전적 언사들, 한미 연합훈련, 사드 배치 등 몇 가지 사실들을 부각시키면서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인상론적으로 서술하는 글을 내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2차 대전 후 한반도에서, 베트남에서, 남미에서, 중동에서 미제국과 강대국들이 해 온 짓을 보면 안심할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제국주의의 경제 제재와 봉쇄가 결국 군사적 개입으로 연결돼 온 곳은 바로 중동인데, 이라크와 시리아 등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했던가를 떠올려 보면 소름이 끼칠 뿐이다. …
기존에 키리졸브 훈련이 가장 공세적이었던 때는 2013년 봄이었고, 그때 외국 언론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었다. … 종북몰이가 절정에 달했던,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기획된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그때보다 더 크고 강한 훈련이 다가오는 지금, 제도정치권에는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협정에 대한 목소리조차 ‘해산’당하고 사라진 상황이다.
이처럼 단순한 인상에 기초한 인식에 따라 전지윤은 자신이 궁극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펼친다. 즉, 제국주의, 군사적 대결을 부추기는 모든 세력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강력한 단결과 운동을 하루 빨리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면한 운동 건설을 위해 대북 제재 반대, 사드 배치 반대 등 외에도 “평화협정 체결” 같은 평화주의적 요구를 반전평화 운동의 요구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문제에서 “정치적 차이”를 내세우거나 “선전”에 머무는 것을 비판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갈등과 한반도 불안정
인상에 불과한 전지윤의 한반도 상황 인식, 특히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정치를 강조하는 건 “추상적 원칙” 반복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뭐라 답변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늘날 한반도 불안정을 세계적 맥락, 즉 오늘날의 제국주의 체제 속에서 조망해 왔다. 한반도 불안정은 자본주의 체제 구조 변화의 불안정성에서 비롯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역동적 발전 과정 때문에 각국 경제력의 상대적 비중이 바뀌어 왔다. 이것은 중대한 지정학적 함의가 있다. 국제적 위계 질서의 위쪽으로 올라가려는 국가와 현재 지위를 유지하려는 국가가 경쟁적으로 힘을 과시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국가 간 세력균형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나머지의 부상”, 특히 중국의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은 이를 위협으로 느끼며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려고 적극 대처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외에 역내 국가들이 모두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리고 역내 문제에 개입하려 하면서 갈등 양상은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한반도는 제국주의 간 갈등이 점증하는 그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열강의 갈등 속에 한반도에서 불안정이 커져 왔다. 미국은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을 선언하며 한미동맹을 대중국 포위 전략의 일부로 삼으려 했다. 그리고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압박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군사적 대응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런 상황이 특정한 조건과 맞물리게 되면 한반도의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과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단기간에 미국과 중국이 제국주의 간 전쟁으로까지 나아갈 확률은 낮다.
우선, 여전히 그들 사이에 현격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군사력, 주요 국제 기구 및 지역 기구들을 주도하는 지위 등에서 중국은 미국과 격차가 크다. 지난 수십 년간 경제가 급성장했지만, 중국의 1인당 GDP는 여전히 미국은 물론 한국에 견줘서도 현격히 낮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도 오롯이 동아시아에만 집중할 처지가 못 된다. 중동의 전쟁과 유럽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당장 전면적 군사 충돌
전지윤도 한반도 긴장의 근본 원인이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간 갈등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 상황을 다룰 때는 이런 분석에 기초하는 게 아니라 현상론적 접근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긴장 상황을 실제보다 과장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전쟁 위험이 그가 호들갑스럽게 기술한 대로라면 진보·좌파는 거의 모든 것을 부차화한 채 당장 한반도 전쟁 반대 운동을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의 주장이 장기적으로도 낙관론인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정과 모순이 지금의 불안정을 장기적으로 심각한 전쟁 위기로 발전시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지정학적 갈등은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다. 즉, 오늘날 동아시아 불안정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내재적 모순이 매우 깊어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상황은 직선적이거나 단선적이기보다 계속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늘날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불안정을 자본주의 문제 등 근본적인 문제들과 연결시켜 접근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불안정을 키우는 미국과 남한 정부의 정책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한편, 제국주의 문제에 대응하는 근본적 방향에 관해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선전·선동하는 게 중요하다. 반전 운동 건설은 아직 이르다. 노동자 운동 안에서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적 정치를 강화하는 것이 중장기적 미래에 노동자 운동이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과거 볼셰비키가 소수임에도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 류의 평화주의를 끈질기게 반박하며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강조한 것이 나중에 제1차세계대전을 끝내는 데서 매우 중요한 기여였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지 않은가.
평화협정 문제
레닌은 1915년에 쓴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국가 간 갈등이나 전쟁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 대응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국가 간의 전쟁을 야만적이고 잔혹하다고 항상 비난해 왔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부르주아적 평화주의자나 아나키스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과 달리 우리는 한 나라에서 전쟁과 계급투쟁 간에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점을 안다. 즉, 우리는 계급이 사라지고 사회주의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전쟁도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제국주의의 바탕에는 자본주의 동역학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레닌은 카우츠키와 달리 국가 간 협약이나 동맹으로는 자본주의에서 항구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제국주의 하에서는 기껏해야 계속되는 갈등의 휴지기 속에 짧은 평화만이 일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반제국주의 운동이 궁극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윤 체제인 자본주의를 가장 효과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는 사회세력, 즉 노동자 계급이 중요하다. 자본가들은 거의 모든 일에서 노동자들에 의존하고,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려면 자본주의의 바로 이 약점을 파고들어야만 한다. 따라서 반제국주의 운동은 노동자 투쟁을 중시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반전평화 운동 내의 쟁점을 살펴봐야 한다. 한반도 평화에 관한 진보·좌파의 논의는 대개 국가 간 외교 관계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많은 진보·좌파가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의 핵심 요구는 평화협정 체결로 수렴되고, 6자회담이나 북·미 또는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성사와 지속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는 데 고민이 머물게 된다. 전지윤은 별 문제의식 없이, 무비판적으로 평화협정 요구를 지지함으로써 이런 경향의 꽁무니를 좇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평화협정에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바라는 대중의 정서가 담겨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평화협정 요구가 대중의 평화 바람을 실현할 수 없음도 봐야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평화협정 체결 같은 국가 간 외교 협상 촉구를 반전평화 운동의 요구로 채택할 때 여러 문제가 벌어질 수 있음을 안다.
우선,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이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었지만, 1941년 독소 전쟁이 벌어졌다. 오늘날에도 현존 제국주의 체제가 온존하는 한, 어떤 행태의 국가 간 협정이나 약속이 맺어져도 한반도 긴장을 억제하는 효력이 항구적으로 유지되지 못한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동맹을 강화하고 군사 행동을 감행하면서 이를 정당화하려고 계속 북한을 ‘악마화’하려 할 것이다. 이것을 평화협정 문서로 억제할 수 있을까? 고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역내 국가들이 평화 정착의 주체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엄청난 수준의 군비 경쟁을 벌이는 이 국가들은 본성상 항구적이거나 진정한 평화를 구축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경쟁의 국제적 성격 탓에 국경을 벗어나 다른 국가들과 충돌하게 된다. 기업들이 국제적 경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에 기대기 때문에, 무장한 국가들은 이 충돌에서 군사력을 동원하곤 한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한반도 주변 4대 열강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은 더 악화했다.
우리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반도 문제를 위한 국가 간 대화 재개나 합의가 이후 새로운 긴장 고조의 전주곡이었음이 입증되는 일을 번번이 겪어 왔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1993~94년 한반도 위기를 막지 못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지만 우리는 1998년 금창리 위기를 겪어야 했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공동 코뮤니케도 결국 2002년 2차 북핵 위기로 이어졌다. 남·북한과 4대 열강이 모두 동의했고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가장 진전된 합의라고 평가받았던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미국의 새 대북 금융제재 실행을 막지 못했고, 그 이듬해 북한은 처음으로 핵실험을 감행해 버렸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벌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평화협정 체결 운동은 거듭되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되든 북·미 간 직접 대화가 열리든 어떤 형태로든 국가 간 대화가 시작된다면, 평화협정 체결 운동은 정부 정책 자문, 또는 정부의 외교 정책을 지켜보는 수동적 관찰자 사이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다가 대화에 일정 진전이 있다가도 미국의 합의 파기나 약속 불이행 또는 새로운 긴장 조성 요소가 등장해 대화 국면이 끝나면, 평화협정 체결 운동 참가자들은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지는 일이 거듭될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으로”
반면 전지윤은 평화주의에 기회주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론을 현실에 꿰어 맞추고, 겉보기로 그럴 듯하면 이 요소 저 요소 절충하거나 수정하면서 말이다. 《마르크스와 세계경제》
당시 레닌은 계급투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야 한다고 봤다. 즉, “현재의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키는 것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전술이다.” 그리고 계급 간 내전으로 자국 지배계급을 타도하려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자국의 패배를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제1차세계대전 초반에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과 정책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때 트로츠키는 평화주의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했다. 그리고 혁명적 패배주의는 러시아에서 혁명을 재촉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의 패배는 독일의 승리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는 유럽 프롤레타리아에게 커다란 재앙을 초래한다고 여겼다.
이에 대해 토니 클리프는 이렇게 지적했다. “트로츠키의 주장은 합리주의적이긴 하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합리주의 측면에서 보면, 혁명과 내전은 순전히 부정적이다. 이것들은 사회의 생산력을 파괴하는 직접적 충격을 가한다. 하지만 경제적 혼돈이라는 조건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당시 레닌은 사회애국주의와 혁명적 입장 사이에서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호함을 비판하고, 이들을 혁명적 입장 편으로 견인하고자 했다. 그 당시 사태는 국제주의자와 조국 방어주의자를 점점 더 갈라놓게 만들었고, 레닌의 입장이 올바르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트로츠키는 레닌의 입장으로 기울다 결국 1917년에 볼셰비크가 됐다.”
“혁명적 패배주의”에 관한 의심을 드러내면서 전지윤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연습 같은 상황에서
하지만 이것은 전술 차원의 논의다. 선전주의자 전지윤은 전술과 강령의 차이를 모른다.
레닌은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반전 운동 초기에 평화주의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대중의 정서는 종종 미숙한 수준의 저항, 분노 그리고 전쟁의 반동적 성격에 대한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는 이러한 정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정서 속에 일어나는 모든 운동과 시위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전쟁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봤다. 사회주의자들은 “
사실, 전지윤의 주장에서 얼핏 드러나는 것은 객관적 사태 전개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꽁무니 좇기이다. 제국주의 전쟁과 군사 행동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할 대중 의식의 일반적 수준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발전돼야만 하는지엔 생각이 못 미친다. 이런 식으로는 혁명적 정치 조직이 그런 운동 안에서 할 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회주의적으로 두리번거리기 십상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앞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체계적 연관을 포착해 왔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평화주의와 구별된다. 평화주의는 제국주의와 군사주의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따로 떼어내 다루는 경향이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마르크스주의는 체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체제의 상이한 양상들
그래서 최근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2013년 봄보다 더 큰 전쟁 위기를 맞을 가능성
그러나 이것이 평화강령의 올바름을 입증하는가? 치머발트 회의에는 평화 요구를 지지하지만 제2인터내셔널과의 분열을 반대하는 우파가 다수였다
전쟁의 격화와 레닌의 촉구로 1916년 4월 개최된 킨탈 회의는 치머발트 회의 결의안보다 레닌의 노선에 더 가까운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킨탈 회의의 결의안에서도 제2인터내셔널과의 결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유물변증법 vs 실증주의: 전지윤의 방법
최일붕
전지윤은 1999년 그가 주창한 서해교전 음모론이 분쇄되고부터 진지하고 심각하게 음모론을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진상이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음모론을 암시했다. 그러다가 진보당 내 경선부정 사건을 둘러싸고 논쟁이 붙자 정말로 심각하게, 쓰라린 심정을 실어 도덕주의적으로 격렬하게 음모론을 고집했다. 그러나 차승일 기자는 음모론이 탈계급적인 엘리트 사회론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민중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내 글
대체로 글의 성격에 따라 ‘구체적 논거’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 마르크스 《자본론》의 제1~3장은 ‘구체적 논거’가 매우 적은 반면, 제10장 이후로는 ‘구체적 논거’가 ‘과시적 나열’처럼 비쳐질 수도 있을 만큼 풍부하다. 또,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흔히 글보다 말로 실행되는 사회주의자들 자신의 전술을 다루는 담론은 ‘구체적 논거와 인용’이 부족하고 불완전할 수 있다. 그런 근거들은 주로 집단적 토론과 평가 속에서 제시된다.
‘논거’나 ‘인용’은 이유를 설명할 때 대는 증거 구실을 한다. 그러나 증거는 그 자체로 참은 아니다. 많은 증거와 사실, 인용할 말 등이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들이다.
전지윤이 노동자 고유의 저항 방식의 실현 가능성을 평가절하하고 일면적으로 ‘민중적’ 저항 방식만을 찬양·고무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필자는 ‘구체적 논거’를 충분히 들었다.
마찬가지로, 민중총궐기 준비회의 석상에서 전지윤이 민주노총에 총파업 촉구하기를 거절한 것, 또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삭감에 반대해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공적연금 강화를 내세워 저항을 사실상 회피했던 것, 그리고 지난해 노동자 투쟁 자체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것에도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
‘~주의’, ‘~주의’ 하지 말고 그 대신 ‘구체적 논거와 인용’이 충분해야 한다는 전지윤의 주장 자체가 특정한 ‘주의’를 함축한다. 실증주의 말이다. 실증주의는 17~18세기 경험주의의 19~20세기적 후예로, 특히 20세기 전반부에는 실용주의와 융합했다.
물론 전지윤은 자신의 방법에 대해 한 말이 거의 없다. 방법론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실증주의자는 추상적 개념·원리나 철학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 실증주의자는 ‘사실’과 ‘증거’, 인용할 말을 수집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지윤을 체험했고 지금 그의 주장을 듣는 우리가 그의 주장의 근저에 놓인 가정들을 포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하에선 그런 가정들이 어떤 방법으로 연결돼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현상론(現象論: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만을 근거로 한 논의)
실증주의의 첫 번째 문제는 관찰 등 경험으로 확인되는 구체적 증거가 객관적 실재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명백한’ 사실을 기초로 지식을 획득해야 하고, 그 사실은 관찰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는 게 바로 실증주의이다. 사실과 증거의
흔히 구체적 사실들과 증거들에 근거하는 것을 유물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일 뿐이다. 유물론이 아니라 실증주의가 정확한 용어다. 유물론은 물질적 실재에 근거하는 것이다. 사실과 증거, 명제 등은 감각 경험으로 포착되는 현상이므로 객관적인 실재가 아니라 주관적인 인상이다. 현상에 집착하고 현상을 실재로 착각하면
마르크스가 실증주의를 비판한 것은 표면적 현상이 흔히 근저의 실재를 알기 어렵고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이 뭔지 알지 못한다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지윤은 조직 노동자들에게 저항 능력이 없다는 국내외의 다양한 주장들을 절충해서 차용해 자신의 노조 무용론
국가 탄압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 진보당의 자민통계가 1년간 와신상담을 한 결과 1차 민중총궐기를 성공시켰다는 전지윤의 서술도 현상론에 불과하다. 사건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하지 않고 계급투쟁을 중심에 놓는 대안적 분석이 가능하다. 결국 국가 탄압에 저항할 힘은
그 분석에 따르면, 진보당 강제 해산으로 약간은 위축됐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전통이 강력한 다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민중총궐기 1년 전, 직선으로 쌍용차 공장점거 지도자 한상균 후보를 선출했다. 한상균 선본은 선거운동 내내 총파업을 강조했다. 스스로 파업할 자신은 없었어도 집행부가 소명하면 그에 응할 용의가 있었던 조합원들은 낙관을 품고 1차 총파업과 메이데이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 직후 박근혜 정부는 반격을 가해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충재 집행부의 우파적 성향, 공무원노조 내 좌파의 거듭된 불필요한 타협과 사기저하와 사상적 혼란, 그리고 노조 인정을 받으려다 실패한 이래 그다지 사기와 자신감 수준이 높지 않았던 조합원들, 이런 상황의 개선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민주노총 좌파 등 주요 행위 주체들이 각각 패배에 한몫했다.
공무원노조 투쟁 패배의 직접적 여파로 사기저하가 만연했고, 7월 총파업은 거의 불발됐다. 그러나 9월 노사정 합의에 반발해 노동자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저항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한상균 신임 집행부는 5월부터 민주노총 우파들
신임 집행부는 자신감을 급속히 잃기 시작했고, 11월 민중총궐기가 구원투수가 돼 주기를 바랐다. 결국 다양한 개혁주의자들과 자민통계의 제안으로 요구를 확대하고, 농민·빈민 조직들을 동원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그런 계획이 실제로 나타난 결과인 민중총궐기는 본질적으로 노동자 투쟁이었다. ‘민중총궐기’의 현상과 본질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건은 지배적으로 노동자
민중이나 다중 같은 차별화되지 않은 사회적 범주의 다원적 구성 속에서 중심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들
전지윤은 필자가 “노동자들의 관심사가 노동개악에 집중됐기에 테러방지법은 안타깝게도 결국 통과됐던 것”이라고 말한 것을 들어, 필자도 노동조합의 부문주의적 성격을 인정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노동조합의 부분주의적 한계를 전지윤처럼 일면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필자는 노동자들이 ‘노동개혁’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그 벅찬 일을 잘할 때야 비로소 테러방지법이든 다른 무슨 10대 요구든 붙잡고 씨름할 자신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게 닥친 공격도 물리치지 못하는 처지에 “민중의 호민관” 되기는 언감생심인 것이다. 트로츠키는 계급의식의 “발전 속도를 앞질러서 필수적 발전 단계들을 뛰어넘으려는 성급한 기회주의적 시도”를 비판하면서 말했다. “
내 보기로 전지윤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눈앞에 닥친 이슈들을 넘어 훨씬 더 광범한 민중의 요구들을 받아안아 민중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골똘한 나머지 소박한 도덕론을 강변한다. 또, 안토니오 그람시를 오해해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하기도 한다.
전지윤의 친스탈린주의적 태도는 또 다른 면에서 실증주의와 관계가 있다. 실증주의적 방법으로는 감각으로 관찰할 수 없는
2.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혼동
실증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은 단순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한다는 것이다. 실증주의의 인과관계 개념은 사건들 사이의 상관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다시금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현상과 실재가 일치한다면 과학은 필요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실증주의자들인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의 인과적 설명이 부적절하다며 이렇게 비판했다. “그들의 뇌로 반영되는 것은 발현의 직접적 형태일 뿐이지, 발현 내부의 연관은 아닌 것이다.” 실증주의자들이 ‘구체적’ 증거에 근거해야 함을 강조한 것에 맞서 마르크스는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범주들의 인과관계를 드러내려 애썼다. 가격은 구체적 증거이지만 가치는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이 과학임을 표방했지만, 그 의미는 실증주의자와 매우 달랐던 것이다.
실증주의자의 원인 개념은 ‘기술’
당시에 필자는 전지윤의 주장을 이렇게 비판했다. “논리가 일련의 비약에 기초하고 있고, 이 비약들은 그가 진보당 당권파의 결백을 확증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그 인과관계를 설정한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 전개도 결과론적으로 보아, 마치 필연적 귀결들의 연속인 것처럼 서술한다.”
그러나 전지윤은 당시의 사건들을 마치 필연적 귀결들의 연속인 것처럼 서술한다. 그래서 그의 서술을 읽어 보면, 마치 모종의 보이지 않는 힘이 통제할 수 없이 작용해 상황이 박근혜 정부의 계략
3. 객관주의(객관성을 강조하는 반면 주관성은 경시함)
실증주의의 세 번째 문제점은,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다룰 때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고 객관주의적 방식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객관주의적이어서 소수 행위자의 개입 효과를 과소평가하므로, 예측에 대해 교만한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사회계가 자연계와 다르고, 특히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복잡성 때문에 실증주의적 접근법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하겠다는 스스로의 공약을 지키지 못한다는 모순에 처한다.
이러한 논점은 우선, 전지윤이 마치 노동자연대 정치의 타당성의 기준이 예측
레닌은 유물론을 실증주의자들인 당시 민중주의자들의 객관주의와 대조했다:
객관주의자는 주어진 상황의 역사적 필연성에 관해 말하는 데 반해, 유물론자는 주어진 사회·경제 구조를, 또 그 구조를 창출한 적대적 관계들을 정확하게 기술한다. 객관주의자는 일단의 주어진 사실들의 필연성을 보여 주면서 언제나 그 사실들의 변호론자가 될 위험이 있다.
[후주28] 반면 유물론자는 주어진 상황의 극복할 수 없는 ‘역사적 추세들’에 관해 말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계급 모순들을 보여 주려 애쓴다. … 그리고[노동계급이 주도력을 발휘할 잠재력이 있음을 근거로] 계급적 편파성을 견지한다. (‘나로드 [민중] 주의의 경제적 내용’에서) [후주29]
물론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 문제를 다룰 때는 마치 ‘자연사적 과정’을 다루듯이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주관성과 객관성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객관적 상황도 주관적 행동의 영향을 일부 받는 것이다. 주관성과 객관성의 이러한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혁명적 정치조직의 개입이 할 수 있는 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 이런 자세로 레닌은 탐구하고 분석했던 것이다.
이제 전지윤이 노동계급의 상태와 저항 잠재력을 다룰 때 드러나는 수동성과 숙명론이 실증주의와 유물변증법 중 어느 것에 가까울지는 명백할 것이다. 그리고 원칙과 이론을
게다가 한술 더 떠, 이제는
맺으며
지금까지 실증주의 비판을 보며 독자가 사실, 증거, 관찰, 실험 등
하지만 경험은 현상에 대한 경험이요, 감각 경험이요, 인상이다. 본질적 실재는 직접 경험할 수 없다.
후주
부록1
진보당 당권파의 경선 부정은 없었는가?
통합진보당은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 직후 비례대표 후보 경선 당시 대리투표로 인한 부정경선 논란에 휘말렸고 많은 당원들이 이로 인해 형사 처벌을 받았다.
위 부정경선 논란은, 부정경선을 스스로 저지른 옛 국민참여당 계열 당원들
위 부정경선과 관련해 당권파가 하는 항변의 주요 내용도 ‘대대적인 부정경선을 저지른 쪽은 국민참여당 계열이지 당권파가 아니며, 국민참여당 계열이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고 당권파로부터 당권을 빼앗으려는 불순한 의도 하에 부정경선 혐의를 당권파에게 부당하게 덧씌웠고, 종국에는 당권파에 대한 종북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권파의 위와 같은 항변이 일부 진실
당권파를 지지하는 당원들도 작업장 등에서 친분관계를 이용해 다른 당원들로부터 인증번호를 받아 대리투표를 하는 부정경선을 저질렀다.
위와 같은 대리투표는 당원들의 후진적 의식
그런데, 당권파가 다수인 당시 통합진보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위와 같은 대리투표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서도 대리투표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조처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금지하는 규정조차 전혀 마련하지 않는 등 대리투표를 사실상 방조했다.
이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35부가 지난 2013년 10월 7일 부정경선과 관련해 보건의료노동조합 조합원, CNP 직원 등에 대해 무죄
당권파 주장대로 국민참여당 계열만이 대리투표 부정경선을 저질렀다면 위 통합진보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왜 대리투표를 사실상 방조했겠는가? 많은 노동자들은 당권파를 지지하는 당원들이 작업장에서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서 지인 당원들로부터 인증번호를 받아 대리투표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전혀 통제하지 않고 방조하는 통합진보당에 대해 실망하고 환멸을 느꼈다.
당권파도 경선 부정의 일부였다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종북 마녀사냥에 맞선 투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은 그렇게 아둔하지 않다.
부록2
전지윤과 변혁재장전은 책임성과 자기인식부터 길러야
전지윤 씨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진보좌파 진영이 힘을 모으자는 취지에 공감해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을 압박해 우리의 연대체 참가조차 가로막는 노동자연대 지도부의 비동지적 태도는 어떻게든 정당화되기 어렵다.
(http://rreload.tistory.com/264)
이 짤막한 두 문장은 사건의 온전한 설명이 아니라 전지윤의 의도에 맞게 취사선택되고 짜깁기된 ‘사실’들이다. 전지윤이 2년 전 단체를 탈퇴하기 직전에 벌인 5개월 여 동안의 논쟁 때 거듭 구사한 진술 방식이라 새롭지도 않다. 그래도 변혁 운동가라면 솔직해야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정치 논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변혁재장전이 애당초 민주노총으로부터 총선공투본 참여 제안 자체를 받지도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순서이겠다. 이유는 간단했다. 민주노총 책임자가 변혁재장전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총선공투본은 총선 돌파를 위해 민주노총이 제안해 만든 노동운동과 진보·좌파의 총선 대응 연대체다. 민주노총이 2월 3일 총선공투본 구성을 위한 ‘제정당, 단체 연석회의’를 소집했다. 연석회의에 참석한 단체들이 총선공투본 구성 취지에 공감해 2월 18일 발족했다. 모두 29개 단체들이 총선공투본에 참여했다.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전빈연, 빈민해방실천연대, 노동당, 정의당, 민중연합당, 녹색당, 시민혁명당, 변혁당, 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 노동전선, 좌파노동자회, 현장노동자회, 전국회의, 한국진보연대, 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 등. 민주노총이 노동운동과 진보·좌파 운동에 이러저러하게 기여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한 단체들을 사려 깊게 확인해 소집한 까닭에 총선공투본이 특정 경향이나 단체들에 배척적으로 구성됐다는 문제제기는 없었다.
반면, 변혁재장전은 극소수 개인들의 서클이다. 그나마 노동운동가들도 아니다.
대표성은 해당 단체의 사회적 기반과 영향력이나 운동에 대한 책임성을 뜻한다. 물론 꼭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을지라도 폭넓은 지지를 받는 운동가가 있다면, 그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모종의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80만 명의 조합원이 소속돼 있는 민주노총의 대표성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민주노총에는 못 미치고 또 각각 불균등하지만, 나머지 참여 단체들도 노동자 운동과 피억압자들의 운동에 일정한 책임성과 기반을 갖고 있다.
총선공투본에 참여하고 싶다면 사리를 분간하지 않는 보채기를 멈추고 노동운동 안에서 세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전지윤은 이런 기초 개념조차 없이 총선공투본에 참여하겠다고 한 것이다. 참 분별없는 짓이다. 전지윤의 분별 없음은 그가 민중총궐기투쟁본부 회의
그런데도 전지윤은 무분별함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연대가 “비동지적”으로 대하고 있다고 탓한다. 심지어 노동자연대가 민주노총을 “압박”해 변혁재장전의 가입을 막았다고까지 썼다. 민주노총이 변혁재장전의 총선공투본 참여 신청을 최종 거절
한편, 변혁재장전이 총선공투본 참여를 신청한 날짜는 3월 10일이다. 그때는 이미 총선공투본이 두 차례 대표자회의를 거치며 기조와 사업 계획을 대부분 마무리지은 뒤였다. 민주노총이 ‘변혁재장전’의 총선공투본 참여 신청을 거절한 이유의 하나였다.
그런데도 전지윤은 굳이 총선공투본에 가입하려 했다. 이 무렵 총선공투본은 그 내부에서 정의당의 야권연대 방안을 놓고 논쟁이 있었다. 일부 좌파가 야권연대를 추진하는 정의당을 총선공투본에서 배제하거나 적어도 총선공투본이 정의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연대는 정의당의 전략적 야권연대가 정의당에 선거적 실리를 가져다 줄 수 있겠지만, 노동계급의 적인 부르주아 야당과의 전략적 협력이 계급투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총선공투본이 사실상 정의당에 투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대중 앞에 내놓아야 한다는 일부 좌파의 ‘대對정의당 세컨더리 보이콧’ 요구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민중연합당에 대해서는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는” 반면, “정의당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글쎄, 노동자연대는 두 정당 사이의 좌우 구분선이 직선적이지 않다고 본다. 어떤 쟁점들
그와 동시에, 노동자연대는 지난해 노동자 투쟁의 제한적 회복 덕분에 주류 개혁주의 정당인 정의당이 성장하는 역설에도 주목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노총의 선진 노동자들이 정의당을 왼쪽에서 지지하는 분위기가 포착된다.
이쯤 되면, “진보좌파 진영이 힘을 모으자는 취지에 공감해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는 전지윤의 주장이 정치적 진의를 숨긴 연막 같다고 하면 공연한 트집잡기일까?
끝으로, 전지윤의 분별 없는 보채기는 오늘날 많은 연대체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관행의 허점을 교활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오늘날 상당수 연대체들이 모종의 자율주의적 방식으로 구성·운영된다. 참여 단체들의 대표성은 흔히 무시되거나 부정된다. 그리하여 참여 의사를 밝힌 단체들에 대해서는 그 지지기반이나 책임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개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이를 문제 삼으면 오히려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 됐다.
자율주의적 방식의 연대체 운영의 폐단을 잘 나타내는 것이 오늘날 연대체에서 관행으로 돼 있는 합의에 의한 결정 방식이다. 물론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합의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놓고 이견이 존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럴 때는 다수결로 결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합의에 의한 결정 방식은 소수가 한없이 붙들고 늘어지면 아무런 행동도 조직할 수 없도록 만들 위험이 있다. 그 결과 노동조합이나 다른 대중 단체들이 연대체에서 아무런 대표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보다는 최소한 대중을 대표하거나 운동에 기반이 있고 책임을 지는 단체 대표들에 의한 다수결 투표가 더 민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