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때때로 한 세대 전체를 마법에 빠뜨리는 특별한 해가 있다. 이런 시기는 나중에 그 해를 단순히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수많은 상념이 떠오르게 한다.” (크리스 하먼, 《세계를 뒤흔든 1968년》의 머리말에서.)

1968년은 세계적인 혁명의 해였다. 특히 파리의 5월은 그 해의 상징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1968년 파리다. 이 영화는 1968년의 열기를 성적인 에너지와 자유로움, 영화사랑을 중심으로 전한다. 이것은 이 영화의 원작인 자전적 소설 《성스럽고 죄 없는 아이들》을 쓴 영화평론가 길버트 아데어와 그 시절에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던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떠올리는 1968년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2월과 5월)을 빼고 내내 주인공들은 스스로 집안에 갇혀 지내지만 종종 시의적절한 논쟁들을 벌인다. 가령, 중국 문화혁명에 대한 논쟁은 1968년 당시 베르톨루치 자신이 결론내리지 못했던 두 입장 그대로 두 캐릭터에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논쟁들의 명쾌한 정리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베르톨루치 스스로 “1968년 혁명세대의 쓸쓸한 패배주의였던 [자신의 1972년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는 다른 비전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듯이, 영화의 끝은 낙관적이다. CRS(악명높은 공화국 보안경찰대)와 주인공들의 시위대가 격돌하는 멈춤장면 위로 에띠뜨 삐아쁘의 샹송 〈아니,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가 흐른다.   

이 영화는 남녀의 성기가 모자이크 처리 없이 있는 그대로 나온다. 화면 가득히 나온다. 흔히 카메라의 시선이나 영화 관람의 행위를 관음증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 누드의 자연스러움을 접하고 나니 그런 비유는 검열 덕분에 그럴싸해진 게 아닐까 싶다.

1968년에 꾸었던 꿈은 1999년 11월에 시애틀에서 소생했다. 이제 슬로건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이제 베트남이 이라크가 됐다. 슬슬 대형 스크린들도 이런 시류에 반응을 보인다.

스크린에 1968년이 희망적으로 등장한다. 〈알리〉는 좋았고, 체 게바라의 경우(〈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최고였고, 〈몽상가들〉은 괜찮은 편이다. 더 다양하고 명쾌한, 1968년 소재의 영화들을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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