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마이스너는 마오주의를 따른 공산당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1927년 혁명의 실패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퇴각한 공산당은 이제 농민에게 ‘프롤레타리아 의식’이나 ‘프롤레타리아 지도’를 되뇌이게 된다.

이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주도 세력인 노동계급 없이 ‘프롤레타리아 의지’만으로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마오 특유의 주의주의적 관념론이었다.

이 때문에 마오의 공산당이 권력을 잡는 과정은 “대부분이 농민들로 구성된 군대가 도시를 점령하는 것”이었고 사회주의를 선포하는 순간조차 노동자들은 아무 구실도 하지 못했다.

공산당은 노동자는 물론 혁명의 주요 세력이었던 농민도 배제한 채 독자적으로 모든 계급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마이스너는 급속한 공업 건설이라는 공산당의 “세속적 목표”가 낳은 결과가 사회주의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도 잘 보여 준다.

예컨대 1956년 백화운동의 와중에 사람들은 불평등의 심화와 당 관료의 특권, 정치적 자유의 억압, 노동자가 공장관리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 노동조합의 부재를 비판했으며 심지어 “의사들이 당 관료에게 너무 과다한 시간을 쏟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마이스너는 ‘마오 시대’가 노동자와 농민 위에 수직적으로 세워진 관료 지배 체제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체제는 ‘국유화’라는 사회주의의 ‘필요조건’이 이뤄졌던 점에서 자본주의도 아니고 ‘생산자들의 자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도 아니라는 것이다.

관료들은 “재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무와 소득”에 의한 특권을 갖게 됐는데 이것은 ‘덩의 시대’에 모든 경제 부문에서 관료들이 사적 자본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조건이 됐다. 

마이스너는 올바르게도 ‘마오 시대’의 관료와 대중과의 상충된 관계를 잘 포착해 낸다. 하지만 관료들이 수행한 구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점은 대체로 모호하다.

동일하게 특권적인 관료제 내에서 ‘덩의 시대’에 ‘관료 자본가’가 출현했다면 ‘마오 시대’ 관료들의 구실은 무엇이었는가?

마이스너는 ‘마오 시대’에는 그나마 현재의 보수화된 관료들과는 달리 ‘사회주의 목표’를 추구했다는 주장으로 간단히 덮어 버리려 한다. 이 점은 저자가 비판했던 마오의 주의주의가 오히려 스스로에게 투영돼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마오 시대’에 ‘사회주의를 이루려는 의지’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는 한편, 마오에 대한 붉은 칠도 거듭된다.

대약진이나 문화대혁명은 ‘사회주의적 시도’로 대약진운동의 실패 후 류사오치의 등장은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마오 시대의 당지도자들은 대중의 소비를 축적 경쟁에 종속시키는 자본가 계급으로서의 구실을 공동으로 수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의 가장 큰 위협이 프롤레타리아가 돼 버린 역설’은 ‘마오의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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