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찬반 논쟁
‘유전자’가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인 행위의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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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진화심리학을 비판한 글이다.
지난 맑시즘 때, 필자가 ‘마르크스주의와 진화심리학’을 주제로 발표한 것에 대해 민병우 씨
이 글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민병우의 문제 제기와 관련해서,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이 말하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담긴 본래의 의미와 유전자 중심 가설에 기초한 인간본성론과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의 관계를 다룰 것이다. 그 다음으로 도킨스와 윌슨 등 진화심리학자들의 인간본성론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인간 본질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가능하며 더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설명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찰스 다윈의 본래의 사상과 이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간본성과 관련해서 다윈의 사상과 이론을 검토해야 하는가.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재 인간본성론자들이 다윈의 지적 권위를 이용하여 인간 본성은 고정불변적이라는 자신들의 신념
그렇다면 다윈의 사상이 진화심리학 경향의 사람들의 관점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또, 우리가 다윈이 본래 말하고자 했던 인간 본질, 그의 용어로는 ‘의식’에 관한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다윈이 인간 본질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다윈은 본능적인 행동과 의식적인 행위의 층위를 구분하여, “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동물이 아니다”라는 것과 “인간 정신은 두뇌 활동의 산물이지만, 두뇌나 유전자와 같은 생물학적인 물질 그 자체로 환원될 수 없다”는 변증법적 사유에 바탕을 둔 과학적인 통찰을 제시했다. 이러한 다윈의 통찰은 19세기의 고루하고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분자생물학의 한 분야인 ‘후성유전학’
진화심리학 경향의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 주장은 쟁점 흐리기일 뿐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유전자와 환경이 상호작용한다”고 말하는 도킨스나 윌슨, 그리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별 의심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달리,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과 같은 소박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겠다. 또한 지난 40년간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 왔던 이유 자체가 바로 인간이 아니라 유전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한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했다는 점도 미리 언급해 두고자 한다. 즉,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진화심리학의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론’은 40년 전,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가설’과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제기한 “유전자가 인간의 문화적 행위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바탕한다.
도킨스나 윌슨이 상호작용론을 압축적으로 담아 내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들인 ‘밈’
또한 이들은 실체가 불분명한 ‘밈’이나 ‘문화유전자’와 같은 추상적인 용어들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한 문장으로도 자신들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 왔다. 이를 테면 윌슨은 40년 전, 문화유전자 개념을 중심으로 한 ‘후성규칙’의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부터 “유전자가 문화의 고삐를 쥐고 있다”든가 “개인이 특정한 문화유전자를 채용할 것인지 여부는 뇌가 지니는 특징에 달려 있으며 … 유전자 편향에 의존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생물학적 결정론의 쟁점만이 아니라 ‘본성 vs 양육’을 둘러싼 논쟁도 40년 간 이어져 왔는데, 그 어느 쪽도 인간 행동에 미치는 요인이 ‘유전자만 100퍼센트’ 혹은 ‘문화적 요인만 100퍼센트’라고 하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다들 상호작용을 언급하며 선천성과 후천성의 조화로운 균형을 표현하는 수사들을 사용해 왔다. 가령 유전자 중심에 바탕을 둔 인간본성론자들이 유전자가 인간의 문화적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를 공유한 반면, ‘유전자-문화 공진화’이론이나 ‘문화진화론’자들은 유전자보다는 문화적 과정이 인간 행동에 대한 더 큰 설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문화가 유전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 왔다. 이를 테면, ‘유전자-문화 공진화’이론은 1976년 펠드먼과 카발리-스포르차라는 연구자들이 도킨스의 주장과 다른 맥락에서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계량적으로 연구한 데서 시작됐다. 즉, 낙농업 문화에서 우유나 유제품을 소비하는 문화적 행위들이 락토오스라는 젖당
이처럼 본성론자들과 양육론자들은 모두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상대적 중요성’을 놓고 설전을 벌여 왔다. 그래서 쟁점의 본질은 형식적으로 ‘상호작용’이라는 문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호작용에서 그래도 무엇이 더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둘러싸고 본성론자들과 문화론자들의 지적 다툼이 계속돼 왔던 것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결정론의 관점에서 말하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은 쟁점을 흐리거나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당장의 비판을 모면하고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대중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한 것이지, 학문적 정직성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유전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혹은 ‘문화유전자’와 같은 말 속에 담겨 있는 진정한 쟁점은 무엇인가. 만약 유전자와 환경이, 그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각기 절반씩 공평하게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맑시즘 때 정리 발언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어떻게 유전자가 인간을 대신해서 의식적인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있다. 다윈도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최고의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
유전자 중심의 인간본성론은 현대 분자생물학 연구와 무관하다
먼저 도킨스가 사용하는 유전자 개념이나 인간 행동의 유전에 관한 그의 설명은 현대 분자생물학이나 유전학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으며, 도킨스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관념일 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도킨스를 비롯해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자들이 어떻게 유전자 개념을 이용해서 인간본성의 고정불변적인 속성을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만약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유전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자손에게 전달될까. 도킨스식 설명은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인간의 의식적 행동을 지시하는 유전자들이 대물림되면서 타고난 본능을 결정한다고 본다. 그럼 실제 현실에서 도킨스가 주장하듯 우리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존재하며, 그것들이 유전의 법칙에 따라 후대에 대물림된다는 경험적 근거가 존재하는가. “없다!” 이 대답은 필자인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아래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충격적이게도, 바로 도킨스 자신이 한 것이다.
이타적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란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신경계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타적 행동이 유전된다는 실험적 증거가 있을까? 없다. 그러나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행동에 대해서든 그 유전학적 연구는 거의 수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거의 궤변에 가까운 무책임한 말을 늘어놓고는 그 다음에 꿀벌의 행위에 관한 실험을 달랑 하나 소개하면서, “유전자에서 행동에 이르는 배
그런데도 어떻게 분자생물학자도 유전학자도 아닌 도킨스가 인간 행동의 유전에 관한 권위자가 될 수 있었는가. 주된 배경 가운데 하나는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자 중에 한 명인 프랜시스 크릭
다시 말해 생명과학 연구자들은 암이나 유전병이 발생하는 기전을 설명하기 위해 세포에서 세포핵, 염색체, 유전자
문제는 도킨스나 윌슨, 그리고 진화심리학자 같은 유전자 중심의 인간본성론자들이 암이나 유전병 같이 신체 형질에 관한 분석을 통해 이룬 현대 유전학의 성과들을, 갑자기 인간 행동이나 사회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인 양 둔갑시킨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유전자를 직접 다루는 실험실의 연구자들은 이기적인 혹은 이타적인 행동을 지시하는 유전자나, 윌슨이 말한 문화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수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킨스와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자들은 생명체의 눈 색깔을 지정하는 대립유전자나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존재를 규명해 온 현대 유전학의 무대 위에다, 규명된 적 없는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연막을 치고, 유전자가 지배하는 인간 본성이라는 허구의 스토리로 각색된 대중 공연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도킨스도 인정했듯이. 현실 세계에는 인간의 의식적 행동을 코딩
도킨스, ‘유전자’라고 쓰고 ‘신’이라고 읽는다
도킨스가 사용하는 유전자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DNA 염기서열’의 물질적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추상적 개념이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복제자’로 해석하여, 대물림되는 유전을 조상 세대의 형질이 고스란히 후손에게 전달되는 이른바 ‘고정 불변적인’ 현상으로서 이해한다. 이러한 생각 역시 유전이 DNA 염기서열의 무작위적인 변화로 인한 차이
실체도 불분명하고 현대 유전학에서 검증되지도 않은 도킨스의 유전자
의식이란,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
이 인용문에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하나는 인간본성론자들이 말하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의 핵심 메시지가 결국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다른 하나는 인용문 첫 줄의 ‘유전자가 궁극의 주인’이라는 문구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도킨스의 유전자 관념의 실체가 신학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도킨스 지지자들은 도킨스가 말하는 유전자를 현대 분자생물학의 DNA 염기서열의 유전자를 지칭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도킨스 자신은 ‘유전자’라고 쓰고 ‘신’이라고 읽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가 궁극적 주인’이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기독교 사회에서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을 창조주에서 찾는 ‘궁극적인 원인’과 같은 의미이다.
결정론적 세계관이 문제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목적론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 같은 혁명가들이 결정론적 세계관에 맞서 투쟁한 것이다. 예를 들면 엥겔스는 독일 사회주의노동당 내에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오이겐 뒤링의 기계적 유물론에 맞서 《반
물론 생물학적 결정론의 인간본성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홍준표나 트럼프 같은 보수적 우익 정치인들과 동일하게 대할 수는 없다. 진화심리학 경향의 사람들이 정치인의 손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는 아니지만, 스탈린 정권 하의 뤼센코의 유전학이라든지 파시즘의 우생학과 같은 부도덕한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만행이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과학 활동과 보수적인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다.
이데올로기를 무엇으로 정의하든 간에 과학이론을 수립하는 사람이 어떤 형태의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과학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누구도 가설 없이 이론을 수립할 수 없으며 그 가설의 일부는 사회정치적으로 일반화된 세계관이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지배계급의 사상이든, 평범한 사람들이 상식이나 통념이라고 말하는 것이든, 어떤 형태이든 간에 당대의 주류적인 세계관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1970년대 신자유주의라는 완전 자유경쟁의 시장 논리가 확산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인종차별이 버젓이 존재하던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학부 시절을 보낸 윌슨의 개인적 경험들이 인종차별의 생물학적 근거를 찾고자 하는 그의 사회생물학 가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의 1차적 기능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뒤범벅돼 있는 지식 체계나 담론에 비판적인 물음을 제기하며 경험적으로 부합하는지를 엄밀하게 따져 묻는 데 있다.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자들은 이론 수준에서든 경험적 연구에서든 이런 엄밀한 분석에 바탕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도킨스가 복제자로서 설정한 유전자에 인간 행위가 코딩되어 유전된다는 경험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현대 유전학 연구는 유전자 중심설에 바탕을 둔 인간본성론의 연구와 그다지 관련이 없다.
무엇보다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계승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먼저 다윈은 인간의 행위를 크게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본능적 행동과 의식적 행동이라는 두 층위로 구분하여, 필수적인 생명 활동인 먹고 자고 위험을 피하는 등의 본능적 행동은 반사 반응에 관여하는 신경계통
다윈의 이론만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은 자신들의 학문적 원류인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빌려온 모듈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그 개념의 창시자인 제리 포더
다윈의 변증법적 통찰: 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동물이 아니다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이 다윈의 주장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근거들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인간 본질에 관한 다윈의 관점과 진화심리학자들 사이의 가장 큰 불일치는 바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한다. 즉, 다윈은 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동물이 아니라는 변증법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했지만, 결정론적 세계관을 공유하는 인간본성론자들은 인간은 동물이거나 동물 수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한 석기 시대 원시인 정도로 간주한다.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다윈은 인간 본질의 역사성과 가소성
그래서 윌슨이 《사회생물학의 승리》를 외친 책의 핵심 주장인 “새도 바람 피운다”는 여러 여성과 성적 관계를 원하는 남성의 난교 성향이 자연적 본성이라는 논거로서 제시되며, 진화심리학류의 책들은 “양복 입은 원시인”을 주된 타이틀로 삼아 아직도 인간이 야만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묘사한다. 또한 도킨스는 이런 이야기들에 ‘유전자’ 개념이 포함된 수사들을 갖다 붙이면서 과학적 설명인 양 포장한다. 이들은 자연선택, 유전자, 동물 행동 등의 개념을 이용하여 생물학의 영역을 벗어난 인간의 의식을 다시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본성으로 규정하고 생물학의 법칙 하에 두고 있다.
그러나 다윈은 오직 인간만이 동물 세계에서 유일하게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에 기초하여 행동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강조했다. 도킨스와 사회생물학 및 진화심리학은 성매매, 강간, 살인, 이기심, 이타심, 협동, 우애 등을 타고난 본성으로 규정하여 후천적 요인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다윈의 관점에 따르면 본성이 아니라 인간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의식의 영역에 해당된다. 즉, 현대인은 누구나 성매매 · 강간 · 살인 등이 나쁜 행위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때론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긴다. 이를 테면 무고한 사람을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소위 미치광이 범죄자로 불리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완전 범죄를 계획하거나 사이코패스로 규정되어 감형되길 바라는 것이다. 다윈이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최고의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은 유전자가 행위의 주체라는 도킨스와 달리 인간이 의식적인 행위의 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래서 다윈의 관점에 따르면, 수컷 새가 여러 암컷과 교미를 하든 혹은 한 암컷에 충실하든 이러한 동물들의 행동이 인간의 외도 성향이나 일부일처제에 대해서 말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외도를 하는 것이 나쁜 것이고 일부일처제가 좋은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규정된 이상, 사람들은 외도가 옳고 그른 행동인지를 사회적 규정에 따라 판단하여 외도를 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는 이른바 의식의 영역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윈은 “보편적인 도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 사회의 도덕적 가치관이 시대와 문화적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다윈의 관점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석기 시대 대형 초식 동물을 쫓던 사냥꾼으로서의 남성 원시인의 역할을 현대의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진화적 기원으로 삼는 관점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윈은 남성이 여성에 견줘 태어날 때부터 철학이나 과학과 같은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주장할 때조차, 생물학적 결정론에 경도돼 있는 진화심리학과는 다르게 접근했다. 그는 실제 여성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해서 접근했는데, 남성과 여성이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동동한 교육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성인이 된 이후에 여성이 심오한 사고력을 발전시키고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의 마지막 장인 21장에서 노예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은 다윈이 비판한 훔볼트 같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은 개념이나 이론 수준이든 경험적 연구이든 신뢰할 만한 근거들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자연의 법칙으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본질을 분석하는 데 있어 생물학적 결정론의 관점을 비판해 온 다윈의 사상을 생물학적 결정론의 인간본성론을 옹호하는 과학이론으로 왜곡하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는 단지 다윈 개인의 명예에 관한 문제를 넘어 우리가 인간 본질에 대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하나의 유용한 설명 체계로서 다윈의 사상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유전자가 아니라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의식적인 행위의 주체’라는 다윈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진화심리학 경향의 인간본성론과 관련해서 다루는 주제들은 사람들이 초콜릿 같은 단 것을 좋아하는 이유나 음식을 불에 익혀 먹으면서 두뇌가 커졌다는 이야기, 혹은 소를 길들이면서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와 관련된 유전적 변이가 발생한 이야기와 같이 인간이 음식물을 섭취하는 문화적 행위와 신체 형질의 관계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 그리고 도킨스가 인간의 심리와 행동, 혹은 인간의 의식에 관해 말해 온 것들이 핵심 쟁점이다. 가령 이들은 배우자 선택에 있어 여성은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중시하고 남성은 여성의 외모와 젊음을 선호하는 것이 진화적 기원에서 비롯한 것이며,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게 된 이유가 석기 시대 사바나 초원에서의 진화적 적응 때문이고, 남성이 성매매나 외도와 같은 난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동물의 본능에 적용되는 동일한 생물학의 법칙의 지배를 받아서이며, 배우자를 살해하는 범죄 행위도 유전자의 생식 전략의 일환이고,
다윈의 관점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들은 본성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판단 대상이 되는 ‘의식’의 문제이다. 비록 의식은 동물 세계에서 유래했지만, 생물학의 법칙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보편적이지 않으며 시대와 문화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의식의 변화도 겪고 도덕적 가치관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옳았던 행위가 지금은 옳지 않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이야기를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6번째 테제에서 압축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간의 본질은 각각의 개인 속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라 그 현실의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즉,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대뇌피질 앞쪽 띠이랑을 MRI로 스캔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어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맺게 되는 생산 관계로부터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처럼 거대한 변혁을 겪은 ‘나’는 이전의 의식과 다른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나’는 유연한 감각 기능이 내재된 두뇌라는 첨단 물질을 이용해 외부 세계에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수동적인 반응을 구사할 수도 있고, 아예 외부 세계를 근본에서 바꾸는 능동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같은 대격변만이 아니라 그보다 낮은 수준의 사회적 변화들 혹은 막장 드라마와 같은 대중매체도 ‘나’의 의식에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며 ‘나’라는 존재를 계속해서 재구성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다윈은 의식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으며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의식이 유의미한 변화를 겪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즉, 진화이론으로 자연 세계에서 의식의 출현을 분석한 다윈이 동물 세계에서 유일하게 호모 사피엔스만이 생물학의 법칙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역사를 갖는 유일한 종
참고할 만한 자료들
- 다윈의 본능에 관한 진화이론
- 다윈의 《종의 기원》, 6~7장 그리고 《인간의 유래1》 3~4장.
- 박성관의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7장.
- 결정론적인 세계관과 유물주의 자연철학
- 칼 맑스의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의 부록의 ‘역자 해제’
-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 1장.
- 존 벨라미 포스터 외, 《다윈주의와 지적 설계론》의 3~6장.
- 리처드 요크 외, 《과학과 휴머니즘》.
- 인간의 의식과 뇌과학 이론과 관련하여
- 데이 리스 외, 《새로운 뇌과학》 2~3장.
- 힐러리 로즈 외,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
- 유전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관한 유전학 관련 도서
- 이블린 폭스 켈러,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
- 리처드 르윈틴, 《DNA 독트린》.
- 리처드 C. 프랜시스, 《쉽게 쓴 후성유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