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진화심리학을 찬성하는 독자가 보내 온 글이다. 이 글에 대한 한선희 씨의 반박 글도 본지에 실려 있다.(‘[진화심리학 찬반 논쟁] ‘유전자’가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인 행위의 주체이다’)


맑시즘2017 진화심리학 토론회 발제자 한선희 씨의 진화심리학 비판에 대해 자연주의적 오류를 중점으로 반론하고자 한다. (2016년 3월에 ‘노동자 연대’ 신문에 한선희 씨가 공동저자로 기고한 기사 ‘다윈의 변증법 사상과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 독자의 진화심리학 관련 문제제기에 답하며’(이하 ‘16년 3월 기사’)도 조금 언급했다.) 

왜 이 글을 쓰는가?

우선 너무나 당연히, 잘못되었기 때문에 바로잡으려고 쓰는 것이다. 나는 한선희 씨의 진화심리학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러한 비판은 잘못되었기에 우익 이데올로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아니다. 이 글에선 이런 비판이 왜 부당한지 다루고,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한 우익 이데올로기 정당화의 근본적 문제를 파헤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연대의 신뢰 하락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지금 당장은 한선희 씨의 말이 통할지 몰라도(잘못되었다는 것을 몰라도) 추후 진화심리학이 더 대중화되고, 노동자연대가 더 성장한다면 결국엔 '탄로' 날 것이다. 한선희 씨의 진화심리학 비판은 진화심리학의 기본 개념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잘못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고[1], 자연주의적 오류에 관한 몰이해를 보이는 등 이렇게 허술한 비판은 훗날 노동자연대에 관심을 가질 진지한 사람들이 노동자연대에 대해 가지는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끝으로 지금 이게 중요한 사안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시의성과 중요성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선제적으로 진화심리학에 관한 논쟁을 제기한 적은 없다. 나는 항상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서 진화심리학 비판이 나오면 그에 관한 반론을 펼쳤을 뿐이다. 나도 다른 사안들에 비해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선순위에선 좀 밀릴지라도 이 주제를 논할 필요성은 느껴왔고, 이번 맑시즘 토론회에서 진화심리학을 다루었기에 반론 글을 쓰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성과 중요성에 관한 문제 제기를 내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맑시즘 토론회

노동자연대의 주요 회원들은 진화심리학을 사이비 과학으로 여긴다. 그러나 노동자연대가 맑시즘에서 진화심리학을 다룬 이유는 그게 단순히 과학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이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맑시즘에서 다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맑시즘 진화심리학 토론회에 참가해 정치적 논점에 관해 이견을 제시했다. 먼저 ‘진화심리학은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고 따라서 사회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오해를 해명했다.

“진화심리학 비판자들은 진화심리학이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전제하고 얘기하는데 진화심리학자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유전적인 요인을 연구하는 거지 환경적인 요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즉 유전자 결정론 여부 자체가 논쟁 사안인데 근거 제시 없이 이걸 전제로 깔고 얘기하는 겁니다.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와는 반대로 진화론[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하지 않으며, 인간 행동이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2]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자 결정론이 아니라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합니다.[3]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고정불변이 아니고 고무줄처럼 유연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는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핵심적으로 자연주의적 오류에 관해 언급했다.

“우파들이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우생학, 성차별, 인종차별 등을 정당화한다고 해도 진화심리학이 실제로 그것들을 정당화하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진화론(진화생물학)이 처음 나왔을 때 우파들은 진화론을 근거로 제국주의적 침략, 인종차별 등을 정당화했었습니다. (…) 과거나 지금이나 우파들이 똑같은 논리적 오류를 저질렀는데 이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입니다. 사실 명제만으로는 도덕 명제(당위 명제)를 도출할 수 없는데 이것을 어긴 겁니다.”

그 밖에 진화심리학자들이 ‘인간 본성상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한 것에 관해 설명했다.

“(…)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가 뭔지를 봐야 합니다. 하나는 마르크스가 말했던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비되는 공상적 사회주의에 대해 말을 하거나, 다른 하나는 소련 같은 스탈린의 체제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4] 일반 사람들이 사회주의 하면 떠오르는 그런 선입관을 이들도 갖고 있을 뿐입니다.”

발제자의 정리 발언 시간에 여러 대답이 있었지만, 그중 정치적 논점에 대한 직접적 대답은 이 정도였다.

“하지만 그분들의 얘기 “우리는 과학적 사실을 다루기 때문에 정당화하는 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언인지는 1980년대 사회생물학이 경험을 했던 거에요.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닥치던 시대에 에드워드 윌슨이 그런 주장을 해가지고 미국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사회생물학 이야기를 결합시켜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생물학 비판하는 사람들이 난리를 쳐서 너희들[사회생물학자들]이 그런 것[백인 우월주의 강령]을 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표하라고 해서 발표를 했어요.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등이 “우린 백인 우월주의 정치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했지만 그러나 이미 그런 유혹들은 굉장히 많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과학적 사실이다”라는 얘기로 책임을 모면하려고 한다든가 진정으로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그런 얘기를 해서 더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고 (…)”

내 발언은 진화심리학이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논점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발제자였던 한선희 씨는 정리 발언 시간에 내 문제 제기에 대한 답변의 상당 부분을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문제에 대해 말하는데 할애했다. 위 인용문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강령 사례 하나 언급하고 과학적 논점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것은 정치적 논점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과학적 논점으로 회피한 것(논점 일탈의 오류)이라고 본다. 진화심리학이 진짜로 성차별, 인종차별 같은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지 토론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핵심 논점인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고, 우익 인종주의 단체가 사회생물학(진화심리학과 유사한 학문)의 내용을 단체 강령에 넣었다는 사례 하나로 이 논점을 일축한 것이다. (그 사례마저도 왜곡한 부분이 있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우린 백인 우월주의 정치를 지지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사회생물학은 결코 인종차별주의를 정당화하지 않는다”[5]고 말했다. 엄연히 다른 내용이다.)

왜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가?

나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말함으로써 바로 그런 강령 사례가 진화심리학이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즉 진화심리학의 이론을 우익 이데올로기 정당화에 이용하는 건 진화심리학을 왜곡한 것이고, 나는 그게 왜 왜곡인지 그 근거로써 자연주의적 오류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한선희 씨는 둘 중 하나를 택해 반론해야 했다. 하나는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개념은 인정하지만, 진화심리학을 이용해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게 자연주의적 오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진화심리학이 실제로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지 않더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가?

자연주의적 오류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혹시 한선희 씨는 과학 이론이 전혀 그런 뜻을 내포하는 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나쁜 사람들이 악용하면 해당 과학 이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당시 답변의 뉘앙스를 생각하면 이는 기우가 아니다. 강령 사례에서 사회생물학자들은 분명히 사회생물학은 결코 인종차별주의를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는데 “유혹”(이 표현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다)한 것에 대한 “책임을 모면”해선 안 된다고 한 것을 볼 때, 명시적으로 표현하진 않았더라도 한선희 씨가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는 듯 하다.

지금까지 스탈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해서 소련이나 북한 같은 억압적인 사회를 정당화했고, 노동자연대 활동가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가 관련이 없음을 주장했다. 만약 왜곡이든 뭐든 어찌 됐든 현실에서 우익들이 진화심리학을 활용해서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있으니 진화심리학이 여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현실에서 (스탈린주의를 지지하는) 좌익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활용해서 스탈린주의를 정당화하고 있으니 마르크스주의는 스탈린주의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진화생물학(진화론)도 마찬가지이다. 우익들은 진화생물학을 근거로 약육강식, 적자생존 운운하며 제국주의적 침략, 인종차별, 우생학 등을 정당화해왔다. 물론 한선희 씨는 진화생물학을 지지하기에 내가 지금 진화심리학을 변호하는 것처럼, 진화생물학은 그런 우익적 함의를 담고 있지 않다고 변호할 것이다. 그러나 한선희 씨 논리대로라면 “이미 그런 유혹들은 굉장히 많았”기에 진화생물학은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진화심리학자들은 진화생물학에서 진화심리학이 탄생했다고 주장하기에 진화생물학은 진화심리학도 “유혹”한 것이다.

진화생물학이 우익적 함의를 담고 있지 않기에 진화생물학을 근거로 한 우익 이데올로기 정당화가 잘못되었고 따라서 진화생물학은 ‘무죄’인 것처럼, 진화심리학 역시 우익적 함의를 담고 있지 않기에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한 우익 이데올로기 정당화는 잘못되었고 따라서 진화심리학도 ‘무죄’인 것이다. 그리고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이 우익적 함의를 담고 있지 않다는 주장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자연주의적 오류에 관한 몰이해

맑시즘 토론회 발제 때 한선희 씨가 자연주의적 오류에 관해 비판하는 발언을 했었다. 난 토론회 당시에는 그 발언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했다. 당시 나는 자연주의적 오류에 관해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선희 씨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래는 맑시즘 발제 때 한 문제의 발언이다. (밑줄은 내가 표시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는 자신들의 주장이 사회 불평등, 여성 억압 등의 체제 모순들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고, 마치 지질학자가 지진에 대해서 다루듯이 지질학자들은 "지진이 필요하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정당하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냥 "과학적 사실이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16년 3월 기사’에서도 인용했던 전중환 교수의 기사를 맑시즘 토론회에서도 언급했다. 원문은 이렇다. (밑줄은 내가 표시했다)

“성매매를 진화의 틀로 설명한다고 하면 흔히 이런 거부반응이 나온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는 어쩔 수 없다고? 더러운 헛소리군!” 이따금 환호하는 반응도 있다. “오! 성매매는 어쩔 수 없다고? 반가운 소식이군!” 사실은 둘 다 틀렸다. 과학은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뿐이다. 결코, 그 현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 함이 아니다. 지진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이 지진은 필요악이라 부르짖지 않는 것과 같다. 어쨌든 성매매가 왜 일어나는지,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이해한다면 성매매를 허용 또는 금지하는 정책들에 따르는 이득과 손실을 정확히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전중환, ‘왜 성을 사고파는가’, 경향신문, 2015년 6월 2일

이 기사를 보고 한선희 씨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라는 말을 창조해서 ‘인용’했다. 전중환 교수가 사회 불평등이나 여성 억압 등에 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중환 교수의 기사를 보면 알다시피 해당 글은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며 절대 그런 해석이 나올 수 없다. 전중환 교수의 말은 ‘진화심리학 이론은 인간의 행동에 관해 옳고 그름을 주장하지 않는다’이지 한선희 씨의 왜곡처럼 인간의 행동에 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는 게 결코 아니다.

진화심리학의 ‘정치적 함의’에 관해 논쟁할 때 자연주의적 오류를 이해하는 것(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게 무슨 말인지 똑바로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전중환 교수의 기사에서도 보았듯이 진화심리학자들이 내거는 가장 핵심 반론이 자연주의적 오류이기 때문이다. 이런 몰이해로 가득한 발언은 지적 불성실을 보여줄 뿐이다. 진화심리학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자연주의적 오류가 무슨 뜻인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자연주의적 오류

“내가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해 설명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생들은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 이기적 행동을 정당화시켜준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내 강의실을 떠나버려 나는 당혹스러웠다.”

― 랜덜프 네스[6]

자연주의적 오류를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은 이미 예전부터 수많은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했던 바인데 그에 반해 진화심리학 비판자들은 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거의 안 하고 있다. 언급하더라도 제대로 비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노동자연대 활동가 다수도 이 단어가 생소할 것이다. (‘16년 3월 기사’에 짤막하게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으나 후에 그 내용을 삭제했다.)

나는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도덕 체계에서 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인간의 복지에 관한 견해를 세우기 위한 저자들의 일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추론에 보통 술어인 '이다'나 '아니다' 대신에 갑자기 '이어야 한다'나 '이어서는 안 된다'로 이루어진, 앞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명제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이러한 변화는 알아채기 힘들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중대한 귀결을 낳는다. 왜냐하면 이 '이어야 한다'나 '이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은 어떤 새로운 관계나 긍정을 표현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반드시 관찰되거나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전혀 인지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런 새로운 관계가 그것과 전적으로 다른 것들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유가 제시되어야만 한다.

―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3 - 도덕에 관하여』, 1966, pp.177~8

흄은 많은 도덕 논증이 사실에 관한 주장으로부터 출발해서 종국에는 그래야만 한다는 주장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어야 한다'나 '이어서는 안 된다'에 관한 진술이 '이다'나 '이 아니다'에 관한 진술로부터 어떻게 따라 나올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기반을 두고 많은 철학자들이 '존재로부터 당위를 도출할 수 없다'는 주장을 기꺼이 승인해 왔다. 다시 말해서 가치평가와 무관한 이유로부터 가치평가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앤 톰슨, 『비판적 사고와 윤리: 실용적 입문』, 서광사, 2009, p.58

즉 ‘존재(이다)만으로는 당위(이어야 한다)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다”와 “~이어야 한다”는 다른 의미이고, 따라서 전자에서 후자를 도출하려면 논증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하지 않고 곧바로 후자를 도출하는 것은 오류라는 뜻이다. 논리학 용어로는 ‘사실 명제만으로는 당위 명제가 연역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진화심리학엔 여러 주장이 있는데 그 중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 하나를 소개하겠다. 진화심리학에선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양육에 적합하도록 진화했다고 말한다. 만약 남성 우월주의 단체가 있어서 이 사실을 자신들의 강령에 사용한다면 그들은 아래와 같은 논증을 펼 것이다. (논증의 단순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남성보다”라는 중요한 단서를 뺐다.)

논증1

[전제] 여성들은 양육에 적합한 사람들이다. (사실 명제)

[결론] 여성들은 양육에 전념해야 한다. (당위 명제)

이 논증을 보면 사실 명제에서 곧바로 여성은 (사회활동을 하지 말고) 양육에 전념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를 도출하고 있다. 그러나 전제는 결론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전제만으로는 결론이 연역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논리적 오류이다. 가상의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논리적 오류를 저질렀고, 이게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앞에서 나온 백인 우월주의자들도 같은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비판에 대해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전제에서 바로 결론을 도출한 게 아니라 숨은 당위 명제가 있다고 반론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논증2

[소전제] 여성들은 양육에 적합한 사람들이다. (사실 명제)

[대전제] 양육에 적합한 사람들은 양육에 전념해야 한다. (숨은 당위 명제)

[결론] 여성들은 양육에 전념해야 한다. (당위 명제)

이 논증은 형식상으로 타당하기에 흄이 말하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아니다.[7] 그러나 ‘논증의 건전성’은 의심스럽다. 논증의 건전성이란 논증이 타당하고, 전제가 모두 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왜 논증2의 대전제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반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적합한 사람들이 담당하는 게 효율적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반드시 (상대적으로) 적합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성평등이라는 더 큰 가치(당위)가 있으면 성별로 상대적으로 적합한 일이 있더라도 그와 무관하게 평등하게 배분할 수 있는 것이다. 대전제에 성평등 사상을 반영한 당위 명제를 넣으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논증3

[소전제] 여성들은 양육에 적합한 사람들이다. (사실 명제)

[대전제] 양육에 적합한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당위 명제)

[결론] 여성들은 더더욱 사회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당위 명제)

논증2와 논증3을 보면 소전제인 사실 명제는 그대로인데도 대전제인 당위 명제가 바뀌니까 결론이 정반대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인 당위 명제의 도출에는 대전제로 어떤 당위 명제를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논증을 통해 보았듯이 사실 명제(진화심리학의 이론)만으로는 당위 명제(성차별적 주장 또는 성평등적 주장)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사실 명제는 당위 명제를 만나야만 새로운 당위 명제를 도출한다. 그리고 사실 명제는 어떤 당위 명제를 만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당위 명제를 도출한다. 진화심리학은 사실 명제를 제시한다. (전제로서의) 당위 명제는 우리의 몫이다. 진화심리학이 성차별, 인종차별 등 우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하는 비판자들은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진화심리학자들의 항변에 대해 반드시 반박해야 한다.



[1]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는 상대방의 주장이 아닌 엉뚱한 주장을 비판하고선 따라서 상대방의 주장이 틀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선희 씨는 ‘16년 3월 기사’에서 ‘진화심리학에선 이렇게 주장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유전자 결정론, 두뇌가소성 부정/무시, 적응만능론 등) 진화심리학을 비판했는데 이에 관한 출처는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보였다. 나는 이런 사례를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로 보고 있다.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가 아니라면 그 말의 출처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처는 진화심리학계 내에서 권위 있는 진화심리학자의 책이나 논문이어야 한다. 자기 주장에 자신이 있다면 어느 글 몇 쪽인지 출처를 확실히 밝혀서 누구나 쉽게 찾아보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데이비드 버스, 『진화심리학』, 웅진지식하우스, 2012, p.74 (진화심리학 교과서로 사용된다.)

[3] 같은 책 p.51

[4] 스티븐 핑커, 『빈 서판』, 사이언스북스, 2007, pp.516~517

[5] 캐빈 랠런드 & 길리언 브라운, 『센스 앤 넌센스』, 동아시아, 2014, p.139 재인용.

[6] 매트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 사이언스북스, 2001, p.178 재인용.

[7] 논증2의 대전제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논리 형식상의 오류가 아니다. 존재에서 곧바로 당위를 도출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종의 도덕적 입장으로 자연적인 것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는 윤리학적으로 따져볼 문제이지만, 이것 자체가 논리적 오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