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다음 달부터 매달 1백억 달러씩 양적완화를 축소(시중 현금 흡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현 경제 상황에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말이다. 이날은 장기불황 이래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크게 바뀐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미국 연준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세 차례 양적완화를 단행해, 국채와 모기지 증권 등 4조 5천억 달러어치(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5퍼센트)를 사들인 바 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직접 국채나 회사채(와 심지어 주식)를 구입함으로써 금융에 돈을 주입하는 정책이다. 은행들이 가계와 기업에 대출할 수 있도록 자금을 만들어 내고, 금리(대출 비용)를 제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양적완화는 주요 선진국 정부가 지출을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시행한 주요 통화정책이었다. 정부의 재정 정책에서는 긴축 정책이 시행됐지만,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서는 완화 정책이 추진됐다.

그런데 양적완화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 이 정책은 경제성장이나 기업 투자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1인당 GDP 증가나 투자 증가는 경제 위기 전보다 낮았다. 근본적으로 이윤율이 낮았기 때문인데, 양적완화 시행 이후로도 이윤율은 1990년대 후반의 절정기 때보다 크게 낮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위기 전보다도 낮았다.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라고는 주식과 채권의 가격을 계속 높이면서 새로운 투기적 거품을 만든 것이었다. 그 결과 이런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다. 미국에서 대기업과 페이스북·아마존·구글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이자율이 제로에 가까운 저금리 대출을 이용해 자사주를 사서 주가를 부양했고, 대주주에게 배당금을 주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데 그 돈을 사용했다.

미국에 이어 일본·영국·유럽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추진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미국 연준은 양적 축소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미국 연준은 자산 매각이 점진적일 것이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시장은 이 정책을 반기지 않았다. ‘값싼 화폐’가 점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값싼 화폐’로 매입한 주식과 채권을 되팔아야 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값싼 화폐’가 점차 줄어들면서 미국 경제와 더 나아가 세계경제의 생산 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연준 의장 재닛 옐런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직후에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핵심 메시지는 미국 경제 실적이 좋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이 실제로 강화됐다. 미국인들은 경제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취한 통화 정책 정상화를 매우 정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자신감은 미국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기초해 있다.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의 수석 경제학자였고 지금은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가빈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2010년의 회복 이래로 세계경제는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 선진국이나 신흥국 모두 성장률이 [현] 추세보다 높을 것이다.” 그는 선진국 경제가 2.7퍼센트, 세계경제는 4.1퍼센트, 미국 경제는 3퍼센트 내외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들은 가빈 데이비스 같은 낙관론자들을 반박한다. 첫째, 기업 투자에서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 생산 부문에서 이윤율이 상승하기는커녕 미국의 비금융기업 이윤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이 밝혔듯이, 기업 부채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치솟고 있고, ‘좀비’ 기업들(부채를 갚을 수 없는 기업들)의 숫자가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현재 미국 기업 부채는 8조 6000억 달러에 이르는데, 2008년 9월보다 30퍼센트나 많다. GDP 대비 기업부채도 지난 두 차례 불황 때의 수준을 넘어섰다. 기업 부문에서 이윤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연준의 ‘정상화’ 정책은 금리를 치솟게 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도 연준은 이와 비슷한 정책을 펼친 바 있다. 1937년에 대공황이 끝났다고 판단해 ‘값싼 신용’ 정책을 중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 변화가 1938년에 또 다른 거대한 불황을 낳았고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끝났다. 이런 일이 반복될 위험이 있다.

(이 글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블로그에 실린 ‘The end of QE’를 참고해 작성했다.)


이정구 국립경상대(경남 진주 소재) 대학원 전 정치경제학 강사는 최근 정성진 교수를 공개 비판한 일로 더는 강의를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