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세계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혁명으로 이어질 조건들이 존재했고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발하자 전세계 곳곳에서 투쟁을 고무했던 것이다.

상층계급 사람들은 그 투쟁을 분쇄하기 위해 자원을 쏟아 부었다. 약 14개 국의 군대가 러시아로 쳐들어가 반혁명 세력인 백군을 지원했다.

1918년 러시아를 침공한 미군 ⓒUnderwood & Underwood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영국 총리가 되는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당시는 군수장관]은 러시아 혁명 정부를 “요람에 있을 때 목 졸라 죽이기” 바란다고 선언했다.

〈타임스〉는 이렇게 썼다. “볼셰비즘에 적합한 치료약은 총알이다.”

지배자들은 온갖 악선전을 해 혁명에 대한 지지 여론을 꺾으려 애쓰기도 했다.

처칠은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짐승 같은 야만 상태”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신문들은 볼셰비키가 한 시간에 500명을 참수할 수 있는 전기 단두대를 페트로그라드에 설치했다고 떠들어 댔다.

공포

1919년 2~3월, 미국 상원 소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고 소위 ‘볼셰비키 공포’에 대해 다뤘다.

역사가 프레드릭 루이스 슈만이 말했듯, 당시 청문회는 혁명 러시아를 “노예들이 살인광들의 지배 아래 처참하게 살아가는 아수라장 같은 곳”으로 묘사했다.

볼셰비키가 “자유연애”를 부추기고 여성을 “국유화”했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혁명 탓에 러시아가 방탕해졌고 여성이 비천하게 취급받는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었다. 

〈피바다 - 볼셰비키 러시아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지독히도 반유대주의적인 한 소책자에서는, 볼셰비키 고문에 관한 선정적인 주장을 실었다.

“볼셰비키는 나무로 만든 빈 통 안에 못을 박은 후, 사람들을 그 통 안에 빼곡히 집어넣고는 그 통을 이러 저리 굴리며 기뻐했다.”

이런 식으로 볼셰비키를 악마화한 다음, 지배계급은 기회 있을 때마다 볼셰비키 혁명과 자국에서의 투쟁을 연결시켰다.

1919년 미국 시애틀에서 총파업이 터지자, 신문들의 헤드라인은 이런 식이었다. “빨갱이들이 이끄는 시애틀 파업 - 혁명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신문들은 이 파업이 “미국을 볼셰비키화 하려는 계획의 핵심 단계”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파업 물결이 이어지자 이민국은 미국 전역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체포·투옥됐고, 구타 당하고 끔찍한 감옥에 수감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약 5천 명의 노동자들이 1919년 반(反)공산주의 파머 습격[당시 법무장관 미첼 파머가 주도한 ‘빨갱이 사냥’]으로 투옥됐다.

저자 데이브 셰리는 이렇게 썼다. “미국에서 8주 동안의 ‘빨갱이 사냥’으로 투옥된 미국 시민이,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신경제정책이 시행된 8년 내내 투옥된 사람보다 더 많았다.”

날조

1924년에 영국의 [우익] 신문 〈데일리 메일〉은 이른바 “지노비에프 편지”를 실었다. 

〈데일리 메일〉은 자신들이 당시 소비에트 지도자였던 그리고리 지노비에프가 영국 공산당에 보낸 편지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편지는 총선 나흘 전에 공개됐는데, 노동당을 연루시켜 타격을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데일리 메일〉은 그 편지가 “영국과 식민지 국가들에 레닌주의”를 전파하고 “영국과 국제 프롤레타리아를 혁명화”하는 계획을 다루고 있다고 떠들었다. [결국 노동당은 패배했다.]

그로부터 거의 75년이 지나서야 당국은 그 편지가 날조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지배계급의 공포를 보면, 노동자들이 직접 사회를 운영하는 것을 지배자들이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지배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파괴하고자 이토록 조직적으로 나섰던 것은, 그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러시아 혁명이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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