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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젠더폭력 대책: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향한 반걸음

문재인 정부가 젠더폭력 대책을 “실질적 성평등 정책”의 핵심으로 부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올 하반기 핵심 과제로 ‘젠더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확대’를 꼽았다. 9월 26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관계부처 합동 국무회의 뒤 ‘디지털 성범죄(몰래카메라 등) 피해 방지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 외에도 여러 젠더폭력 대책을 마련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5일 젠더폭력 대책TF를 구성해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 국가 행동계획 수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은 2018년 제정 예정이다.

몰래카메라 범죄

옛 연인 등의 성관계 사진이나 영상 따위를 동의 없이 온라인에 공개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2년 전 소라넷 폐지운동을 계기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경찰에 보고된 몰래카메라 범죄 건수가 2010년 1,134건에서 2015년 7,615건으로 늘어났는데, 몰래카메라 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다. 실제 피해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에 따르면, 피해 인지 뒤 사법 절차를 거치는 경우는 40퍼센트 미만이다.[1]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은 변형·위장 카메라의 수입·판매 규제, 몰래카메라 영상 유포자 처벌 강화, 피해자 지원책 등이다. 이 대책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약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범죄피해자보호기금 지급 요건 대폭 완화, 무료법률서비스 제공, 생계 곤란 시 생계비 지원 등). 불법영상물 삭제 비용을 정부가 선지급(나중에 가해자에게 부과)하는 조치도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피해자들이 사설업체에 의뢰해 영상물 삭제에 들이는 돈은 평균 무려 1천2백만 원이라고 한다.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젠더폭력(스토킹, 데이트폭력, 온라인 성폭력 등) 대응 강화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젠더폭력방지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법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출신인 더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한국여성의전화의 제안을 기초로 법안을 마련 중이다.

올해 3월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제안은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독자적인 피해자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젠더폭력방지법이 이 제안처럼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라면 진일보한 것이다.

현재 가정폭력, 성폭력 등 여성폭력 피해자는 각각의 법률에 따라 지원을 받는데,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는 별도의 지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없고 치료비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여성단체들은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이 일반예산이 아니라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사업으로 편성돼 예산지원이 불안정한 것도 문제로 꼽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폭력 의료비 예산이 항상 부족해 상담소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을 일반예산으로 돌려서 피해자 지원 예산을 안정화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생계지원, 주거, 의료, 일자리 정책 마련을 과제로 제시했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당연히 확대돼야 한다. 게다가 피해자들을 선별하지 않고 모두 지원하고 지원의 수준도 확대하려면 단순히 피해자 지원 예산체계 변경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주택·의료 예산 확대 등 복지 예산이 대폭 늘어나야 하고 양질의 일자리도 확대돼야 한다. 이런 개혁 요구들은 젠더폭력방지법 제정으로 환원될 수 없다.

한 가닥 의구심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서 여성에게 불리한 기존 법·제도의 취약점이 보완되고 피해자 지원도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고용, 임금, 노동조건 등에서 여성들이 겪는 실질적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은 거의 내놓지 않은 채, 젠더폭력 대책을 핵심 성평등 정책으로 부각하는 것에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경찰인력 증원이 포함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박근혜 정부하에서 경찰이 대폭 증원됐다. 그리고 강력범죄가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상황도 아닌데도 경찰인력 증원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경제·안보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젠더폭력 대책을 공권력 강화의 정당성 천명에 이용하려는 듯하다.

지난 10년간 공식 통계상의 강력범죄에서 성폭력범죄만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나머지(살인, 강도, 방화, 폭행·상해 등)는 오히려 감소했다. 그런데 성폭력범죄의 신고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공식 통계상 증가 수치가 실제 성폭력범죄의 증가를 나타내는지는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잘 아는 사이에서 일어나므로 경찰 활동은 성폭력 예방에 거의 쓸모가 없다. 경찰력 증원 계획은 여러 모로 타당성이 없다.

정부의 젠더폭력 대책은 여느 범죄 대책처럼 어디까지나 사후 대책이지 예방책이 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면 대체로 말해 온갖 개인간 폭력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을 대폭 축소할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문재인 정부에 기대어서는 대다수 여성들의 삶이 크게 개선될 수 없다. 여성운동은 문재인 정부에게서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하며 노동운동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복지 확대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1] 《현장의 목소리로 젠더폭력 근절 정책을 밝히다》(2017. 3.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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