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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사회주의와 전쟁》:
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전술은 무엇인가?

점증하는 미·중 갈등을 배경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둘러싼 한반도 주변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동아시아 긴장 고조 상황을 잘 이해하려면,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밀접한 관계를 인식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을 알아야 한다.(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동아시아 상황에 적용한 김하영, ‘오늘의 제국주의와 동아시아의 불안정’, 〈레프트21〉 96호를 꼭 읽어 보시오.)

레닌이 쓴 《사회주의와 전쟁》은 “전쟁과 관련한 사회민주주의의 전술을 개괄”할 목적으로 쓰인 소책자다. 전쟁에 맞선 투쟁을 어떤 전략과 전망 하에서 건설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할 때 큰 영감을 준다. 특히 현재 국내 좌파의 일각에서 평화주의가 유행하고 있으므로, 평화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한 《사회주의와 전쟁》은 읽을 가치가 있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왼쪽 팻말) 독일 해군 병사들이 일으킨 반란은 독일 전역으로 번져 제1차세계대전을 끝내고 혁명으로 이어졌다

레닌은 《사회주의와 전쟁》을 1915년 8월에 출판했다. 1915년 9월 스위스 치머발트에서 열린 국제반전회의를 겨냥한 것이었다. 치머발트 회의에 참석한 국제 사회주의 정당의 대표는 39명밖에 안 됐지만, 이 회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1914년 7월 제1차세계대전이 개전하자 국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그 전의 다짐을 저버리고 각자 자국의 전쟁 노력과 승리를 지지했다. 당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대표격이었던 독일 사민당도 애국주의 부추기기에 동참할 정도였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이 드러나면서, 1915년 여름에는 대중 정서가 바뀌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민주주의 주류의 전쟁 지지 입장(사회적 애국주의)과 단절하려는 흐름이 생겼다. 치머발트 회의는 그 흐름을 표현한 사건으로 “일보 전진”이었다.

레닌은 치머발트 회의를 지지하며 참석했다. 치머발트 회의 다수파가 제출한 평화주의적 결의안에 찬성 투표를 했다.

그러나 동시에 레닌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 입각해 작성한 독자 결의안을 제출했다.(이는 부결됐다.) 또, 회의가 채택한 결의문을 혹독하게 공개 비판했다. 그 결의문이 담고 있던 평화주의는 사회적 애국주의와 명확하게 단절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평화주의는 대중의 소박한 평화 염원 정서에 기반한다. 레닌은 대중의 그런 정서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운동의 전략으로서 평화주의는 비판했다. 다음의 인용문은 레닌의 기본 관점을 잘 보여 준다.

“평화를 바라는 대중의 염원은 흔히 저항의 시작, 전쟁의 반동적 성격에 대한 분노와 자각을 드러낸다. … 사회민주주의자[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그런 정서가 추동하는 모든 시위에 가장 열렬한 일부로 참가할 것이다. 그러나 병합 없는 평화, 민족 억압 없는 평화, 약탈 없는 평화, 현 정부들과 지배계급들이 벌일 새로운 전쟁의 씨앗이 없는 평화가 혁명적 운동 없이도 가능하다는 관념으로 대중을 기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 항구적이고 민주적인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정부와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내전을 지지해야 한다.”(이하 인용은 필자가 영어판본을 직접 번역한 것이다.)

평화주의는 전쟁 일체에 반대한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각각의 전쟁을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시각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따로따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비록 전쟁이 모두 공포, 잔혹 행위, 비탄, 고통을 불가피하게 수반할지라도, 대단히 해악적이고 반동적인 제도(전제정이나 봉건제)를 파괴하는 데 일조함으로써 인류의 발전에 유익한 진보적인 전쟁이 많았”기 때문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방어하기 위한 전쟁, 노예제 폐지를 둘러싸고 1861년 일어난 미국 남북전쟁 등이 당시의 사례다.

‘정당하고 방어적인’

레닌은 마찬가지 이유로 피억압 민족이 강대국에 맞서 일으키는 전쟁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내일 모로코가 프랑스에, 인도가 영국에, 페르시아나 중국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면, 그런 전쟁은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와 무관하게 ‘정당하고 방어적인’ 전쟁일 것이다. 사회주의자는 모두 억압당하고 종속돼 있고 불평등한 처지의 국가가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노예를 소유하고 다른 민족을 약탈하는 강대국들에 맞서 승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벌이는 제국주의적 전쟁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으므로 그 자체를 지지할 수도, 그중 한 국가를 편들 수도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노예 100명을 소유한 노예 소유주가 노예 200명을 소유한 노예 소유주에 대항해 ‘공정한’ 노예 재분배를 요구하며 전쟁을 벌인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사례에 ‘방어적’ 전쟁이나 ‘조국 방위’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히 역사적으로 오류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약삭빠른 노예 소유주가 평범하고 속물적이고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는 순전한 기만일 뿐이다.”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쟁은 단지 몰지각한 지배자 일부가 일으키는 잠깐의 일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현상이라고 봤다. 그래서 근본적이고 항구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뒤집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전쟁과 한 나라 내의 계급 투쟁이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음을 이해한다는 면에서 평화주의와 … 다르다. 계급이 폐지되고 사회주의가 건설되지 않는 한 전쟁이 없어질 수 없음을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는 피억압 계급이 억압 계급에 맞서 벌이는 전쟁, 노예가 노예 소유주에 맞서 벌이는 전쟁, 농노가 지주에 맞서 벌이는 전쟁, 임금노동자가 부르주아지에 맞서 벌이는 전쟁 같은 내전을 정당하고 진보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본다는 면에서도 다르다.”

제1차세계대전은 극심한 사회적 위기를 불렀다. 또, 전쟁의 진실이 점차 드러나면서, 그 전쟁으로 노동계급은 고통만 받을 뿐 이로울 것이 없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사회주의자는 이를 이용해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키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결론이었다(혁명적 패배주의).

이와 달리 “교전국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모두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야 한다는 생각을 ‘어처구니없고 이상한’ 것으로 여기는” 평화주의의 관점은 사실은 “정부들이 시작한 전쟁은 정부들 사이의 전쟁으로 끝나야만 한다”는 자본가 계급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레닌은 날카롭게 지적했다.

레닌의 주장이 옳았음은 현실에서 입증됐다. 제1차세계대전은 결정적으로는, 1917년 혁명의 결과로 들어섰지만 전쟁을 지속하는 등 개혁을 지체시킨 러시아 임시정부를 타도한 10월 혁명, 자살적 작전에 투입되기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킨 해군 병사들의 투쟁으로 시작된 1918년 독일 혁명으로 끝이 났다.(김종환, ‘제1차세계대전 종전: 혁명적 노동자 운동으로 전쟁이 끝나다’, 〈노동자 연대〉 167호를 참고하시오.)

물론 레닌 시절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똑같지는 않다. 당시와 달리 현재 강대국들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레닌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레닌은 사회주의자의 책무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는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중이 이런 [혁명적] 정서를 의식하도록, 그 의식을 심화시키도록, 그 의식을 분명히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이 임무는 다음의 구호로만 정확히 표현될 수 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켜라. 전시에도 거듭거듭 벌어질 모든 계급 투쟁, 만만찮게 일어날 ‘대중 행동’의 모든 전술은 이 구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력한 혁명 운동이 불타오를 때가 강대국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의 첫 번째 전쟁 때일지 두 번째 전쟁 때일지, 그 전쟁들의 와중일지 후일지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어떤 경우이든지 우리가 짊어진 임무는 이 방향으로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활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