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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군부의 인종차별, 아웅산 수치의 외면, 미·중 제국주의의 위선이 낳은 비극

8월 말 격화된 미얀마 정부의 야만적 군사작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로힝야족이 50만 명이 넘었다.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도(무슬림)로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州)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미얀마 군은 로힝야족을 살해하고 거주지를 불태우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했다.

미·중 갈등 속에 버림받은 로힝야족 ⓒ출처 Patrick Brown

미얀마 정부는 부인한다. 오히려 로힝야족 무장 저항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의 책임이라고 한다.

9월 25일 유엔 총회에서 미얀마 대표는 “로힝야족 반군이 … 무슬림 남성을 강제 징집하고 여성과 어린이를 위협해 방글라데시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도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이 “공포를 일으키려고 예배 시간에 맞춰 [이슬람 사원에] 폭발물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1962년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한 이후 로힝야족은 계속해서 박해에 시달렸다. 군부는 때로는 직접, 때로는 불교도 민병대를 부추겨 로힝야족을 살해하고 인접국 방글라데시로 내쫓았다. 1982년에는 법 개정으로 사실상 시민권을 빼앗았다. 2013년 6월에도 로힝야족 600여 명이 살해되고 8만 명이 난민이 된 일이 있었다. 로힝야족은 정치적 권리마저 제약당한다.

미얀마 군부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민주동맹(NLD)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도 책임이 있다. 현재 법적 제약 때문에 미얀마 국가자문역과 외무장관을 맡고 있지만 현 정부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인(즉 이제는 미얀마 국가의 중요한 일원이 된) 아웅산 수치는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을 비판하지 않는다.

국제적 비판 속에서도 침묵하던 아웅산 수치는 이번 사태가 터진 지 3주가 지난 9월 19일에야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모든 인권 침해와 불법 폭력을 규탄한다. 우리는 국가 전체의 평화, 안정, 법치 복구에 헌신할 것이다.” 쌍방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고, 군부가 탄압을 멈추는 게 아니라 국가의 질서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아웅산 수치는 민족자결권을 요구하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염원을 공개적으로 옹호한 적이 없다.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그래서 로힝야족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비판하며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당한 목소리다.

제국주의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이 박해당하는 문제의 뿌리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찾을 수 있다. 미얀마의 인접국인 타이 출신의 사회주의자 자이 자일스 웅파콘은 그전까지 미얀마 지역은 “여러 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곳”이라고 지적했다.(웅파콘은 타이 정부의 탄압을 피해 현재 영국에 망명 중이다.)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이 국내 거주 미얀마인을 인터뷰한 장문의 기사 제목을 “로힝야는 미얀마 민족 아니다”로 뽑아 미얀마 군부의 입장에 편드는 주장이 부각되도록 편집한 것은 부적절했다.(비록 해당 기사에서 기자는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지만 말이다.)

미얀마(옛 이름 버마)는 1886년부터 영국 식민지 인도의 한 주(州)로 병합돼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30년 영국이 이주시킨 인도인으로 구성된 항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 영국 식민 당국은 버마인들을 이용해 파업을 탄압했다. 전형적인 이간질로 각개격파하기 전술이다. 당시 노동자 200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식민 당국의 이런 이간질 정책은 버마 독립 운동의 지형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30년 버마 민족주의 운동 ‘도바마 아시아욘’이 생겨났다. 이 단체의 이데올로기는 불교 극단주의와 버마인 우월주의였다. 이 단체의 지도자 아웅산(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은 이렇게 주장했다. “오로지 버마족과 샨족만이 국가를 가질 자격이 있다.”

오늘날 미얀마 지배계급은 인종차별을 이용해 민주주의 제약과 빈부격차 문제를 가리려 한다.

미·중 갈등 속에 버림받은 로힝야족

로힝야족의 비극은 현재의 제국주의 간 갈등과도 관계 있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에 비판적인 국내 자유주의 언론들이 포착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바로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로힝야족의 비극에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연일 “군사적 옵션” 운운하며 협박하고 각종 제재를 시행하는 미국은 로힝야족 문제를 두고는 별다른 조처가 없다. 인권을 그리 중시한다는 미국이 말이다. 유엔이 미얀마 정부를 비판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별 실효성은 없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된 미얀마 유화 정책과 관련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선언한 오바마 정부는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미얀마를 포용하기로 했다. 2011년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국무장관으로서는 1955년 이후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2012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첫 외교 순방국에 미얀마를 포함시켰다. 미얀마를 중국으로부터 떼어 내 미국에 협력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에게도 미얀마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다.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얀마가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를 받던 지난 20년 동안 경제적·외교적 후견국 구실을 해 왔다. 최근에 중국은 미얀마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고 미얀마와 중국 간 석유 송유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미얀마 국가의 계속된 소수민족 탄압을 문제 삼지 않았다.

요컨대 로힝야족의 비극은 제국주의 간 갈등 속에서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민족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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