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선 트랜스젠더들이 자기 선택만으로 성별 변경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놓고 트랜스젠더 권리와 여성차별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도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여성도 진짜 여성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트랜스 여성은 트랜스 여성이다”라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다.(그 답변은, 진짜 여성은 아니라는 함의였다.) 한국에서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부 남 대 여의 근본적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배척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활동가 샐리 캠벨은 트랜스젠더들이 자기 선택만으로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월 22일 화요일 이른 새벽,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자 세 자녀의 엄마인 키위 헤링이 경찰에 사살됐다. 키위 헤링이 이웃을 칼로 찔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한 명이 키위 헤링과의 언쟁 중에 “경미한 부상”을 입자, 곧장 발포한 것이었다.

그 다음 날, 키위 헤링의 지지자 약 100명이 숨진 그녀를 기리는 추도회를 열고, 교차로를 막고 길거리를 행진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시위대를 향해 차를 돌진해 세 명을 치었다. 다행히 그 누구도 심각하게 다치진 않았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운전자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고 한다.

키위 헤링을 포함해 올해 들어 적어도 트랜스젠더 18명이 살해당했다. 살해당한 트랜스젠더의 다수는 키위 헤링처럼 흑인 여성이다. 키위 헤링의 가족들은 트랜스젠더 혐오자인 한 이웃이 상당한 기간 동안 그녀를 괴롭혔다고 진술했다.

내가 서두에서 키위 헤링의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는 트랜스젠더의 권리에 관한 어떤 토론이든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차별의 실상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게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 사건들은 인종차별과 트랜스젠더 혐오가 체계적으로 짜여 있고, 편견에 찌든 개인과 국가의 손을 빌려 트랜스젠더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또한 트랜스젠더들과 그 지지자들이 이런 현실에 그저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는 트랜스여성을 남성 교도소에 수감하지 마라!" 2017년 영국 브라이턴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자긍심 행진 참가자들 ⓒ출처 Trans Pride Brighton

오늘날 트랜스젠더 혐오는 만연하다. 2016년 ‘갤럽 혐오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79퍼센트가 혐오 범죄를 겪었다. 그중 32퍼센트가 겪은 혐오 범죄는 폭력적이었다.(전체 LGBT의 25퍼센트가 폭력적 혐오 범죄를 겪는 것보다도 더 높은 것이다.) 또한 16퍼센트는 성폭력을 겪었다.(전체 LGBT에선 9퍼센트다.) 다양한 연구를 보면, 41퍼센트에 이르는 트랜스젠더들이 자살을 시도했다. 전체 인구 중 트랜스젠더는 1퍼센트 미만인데 말이다. 트랜스젠더들은 인구 대비 불비례적으로 많이 수감돼 있기도 하다.

최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금지하겠다며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에게 힘을 보태줬다.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결정적이고 압도적인 승리에 집중해야 할 우리의 군대가 트랜스젠더가 야기할 천문학적인 의료 비용과 혼란이라는 부담을 질 수 없다.”

다시 한 번, 트랜스젠더들은 “부담”, 문제, 그리고 의료 행위와 긴밀하게 결부된 사람으로 묘사됐다.

차별에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현실의 트랜스젠더 혐오가 끔찍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개선하는 변화를 지지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트랜스젠더 운동이 부상하면서 몇몇 쟁점이 정치적 의제가 됐고 법률뿐 아니라 성별에 관한 용어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젠더[사회적 성별], 생물학적 성별, 생물학, 해방의 의미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여전히 그 논쟁은 진행 중이다. 동시에 페미니스트, 노동조합원 등 각종 활동가들 사이에서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태도가 예상 밖으로,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크게 갈린다는 사실을 들춰냈다.

핵심 논쟁 중 하나는 영국에서 2004년 제정된 성별인정법(GRA)을 둘러싼 것이다. 또한 트랜스젠더들이 자기 성별을 법적으로 더 쉽게 인정받도록, 즉 자기 선택만으로 그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것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

올여름, 〈모닝스타〉가 영국교원노조(NUT) 부위원장 키리 텅스의 (개인자격으로 쓴) 기고문을 실은 이후로 이 논쟁이 특히 뜨거워졌다. 그는 성별인정법을 고치면 “여성”이라는 단어가 의미 없어지고 “[여성들이] 안전한 공간”을 빼앗길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법 개정을 강력히 반대했다.

이는 그동안 주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해 온 주장, 즉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인정하면 여성 권리가 침해되거나 심지어 여성의 안전까지도 위협받는다고 묘사하는 일련의 비슷한 주장들에 동조하는 것이다.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사실이 있다. 올해 상반기 교원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이 논쟁이 벌어졌을 때 대의원들이 성별 자기 결정권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영국 교원노조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기로 결의하다’] 비슷한 논쟁이 앞으로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성별인정법은 2004년에 통과될 때 비교적 진보적인 법이었다. 트랜스젠더들이 성 전환 수술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성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요한 조처였다. 어떤 트랜스젠더들은 [성 전환] 수술을 받고자 하지만, 어떤 트랜스젠더들은 성별 전환을 이름이나 인칭대명사를 바꾸는 것, 또는 호르몬을 투여받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가 여기 있다!" 2017년 영국 브라이턴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자긍심 행진 ⓒ출처 Trans Pride Brighton

그럼에도 기존 법은 매우 큰 한계가 있다. 성별 인정 증명서를 받으려면 ‘성별 인정 심사위원회’(개인이 어떤 성별인지 법적으로 결정하는 사법 기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자신의 성별을 바꾸려면 먼저 “성별 위화감”(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아야 하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성별로 최소 2년 동안 살아 본 후에 심사를 받아야 하고, 나머지 인생을 그 성별로 살려는 의사가 확고한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2년이라는 유예 기간 때문에 아직 자신의 성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트랜스젠더 여성 중 특히 징역형을 받는 이들은 남성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심각한 공격이나 강간, 괴롭힘에 시달려 왔고 종종 죽음에 이르렀다. 2년간의 유예 기간 탓에 트랜스젠더들은 각종 서비스들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인정받으려면 각종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올가을에 논의될 성별인정법 개정안은 성별 인정 증명서를 원할 경우 각종 진단이나 심사위원의 승인을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선언만으로 가능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미 덴마크나 아일랜드에서 통과된 수준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 개정안을 균형감 있게 보자. 성별인정법 개정안은 트랜스젠더 혐오를 [근본적으로] 끝장내진 못할 것이다. 법으론 혐오를 없앨 수 없다. 법률 상 변화는 대체로 아래로부터 투쟁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현재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시간 낭비, 정서적 시련을 일부 덜어 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성 정체성을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에 더 그렇다.

그러므로 성별인정법 개정안을 지지해야 한다.

불행히도, 몇몇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좌파와 노동조합 운동의 일부는 이런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예컨대, 키리 텅스는 기고문에서 성별 자기 결정권이 ‘여성만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끝장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이라는 개념을 폐기시키고 생물학적 성과 젠더(사회적 성별)의 차이를 허물어뜨리는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여러 번 들은 반론이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언 헌틀리(아동 강간범이자 살해범) 같은 자가 여성 교도소에 갈 목적으로 성을 바꾸겠다고 할 수 있고, 그러면 여성들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솔직하지 못한 주장이다. 다른 사람을 공격할 소지가 다분한 폭력적인 수감자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얘기이고, 그가 트랜스젠더냐 아니냐,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것은 상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상 여성 교도소가 “안전한 공간”이라고 전제하는데, 그것도 생뚱맞다. 순전한 가정에 기반한 이런 주장에서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부분은, 남성 교도소에 실제로 수감된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마주하는 진정한 폭력에 대해서는 정작 눈감는다는 점이다.

성별 이분법 고착화?

오스트레일리아에 기반을 둔 학자인 실라 제프리스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성별인정법이 2004년 처음 도입될 때부터 반대해 왔다. 2008년에 쓴 글에서 그는 성별인정법이 젠더 규범을 법률에 고착화시키고 젠더(그가 보기엔 사회적 구성물이고 나쁜 것)와 섹스(생물학적 요소) 사이의 구분을 흐린다고 주장했다. 성별인정법은 트랜스젠더가 지향하는 젠더에 따라 섹스(법적으로 중요한 개념)를 바꾸도록 허락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이 두 주장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성별인정법이 오직 두 성별 ― 남성과 여성 ― 만 허용하고 모든 개인은 이거 아니면 저거로 자신을 규정해야 하기 때문에, 넌바이너리[자신을 남성이나 여성 중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나 간성[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태어났거나 어느 한쪽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한 사람들을 위한 조항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제프리스는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젠더란 가부장제의 도구이고 가부장제와 함께 철폐돼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는, 애초 존재하지 말아야 할 젠더라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라는 젠더 정체성 자체가 문제라고까지 주장한다.

젠더가 사라진 사회를 지향한다는 이유로 현재의 젠더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임금 제도 자체의 철폐를 지향한다는 이유로 현재의 임금 인상 투쟁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자본주의 초기 일부 영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실제 그렇게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고 운동과 개인들에게 해악을 끼친다.

둘째, 성별인정법이 생물학적 성과 젠더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는 제프리스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이는 성별인정법의 장점이다. 그 덕분에 성 전환 수술을 원하지 않거나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법률상 성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뉴스테이츠먼〉에 글을 기고해 이를 반대하며, 오직 “잘못된 몸 안에 갇혔다”고 느끼고 그에 따라 몸을 바꾼 트랜스섹슈얼만 성별을 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더 가시화된 트랜스젠더들을 보면, 자신이 태어난 몸이 어떠하든 자신이 원하는 젠더로 살아갈 수 있다고 느끼는 트랜스젠더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인] 트랜스섹슈얼만 법적으로 성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한 개인을 “남자” 또는 “여자”로 만드는 것은 그가 남성 혹은 여성으로 길러지는 경험을 통해서인데 트랜스젠더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고도 주장한다. 남자아이로 성장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자아이들처럼 차별을 겪으며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더 나아가,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의 시간’ 진행자 중 한 명은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운동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진정한 여성이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수십 년간 투쟁해 온 페미니스트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게 오늘날 여성이 되는 기준인가?

남자아이로 자란 사람은 여자아이로 자란 사람과 당연히 경험이 다를 테지만 그걸 어느 정도로 중시해야 할까? 인도의 여자아이는 스웨덴의 여자아이와 경험한 것이 같지 않을 것이다. 가난하게 자란 남자아이는 [영국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자와는 판이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는 성별 전환을 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다른 성별로 불리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성별 전환 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받아들여지거나(여성인 경우 그에 수반하는 차별에 직면할 것이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이 글의 서두에서 설명한 더욱 끔찍한 억압에 직면할 것이다.

핵심은 트랜스젠더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말해 주는 게 국가의 일이 아니라는 것, 노동조합 혹은 여성운동의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것은 여성운동의 핵심 요구였다. 그 자율성을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을 규정할 권리에도 마땅히 동등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섹스와 젠더

일부 트랜스젠더 이론가들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생물학적 성이란 개념이 실제로 얼마나 안정적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에는 단순히 두 종류[남과 여]로 나눌 수 없는 많은 다양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건 분명 사실이다. 양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거나 전혀 가지지 않고 태어나는 사람, 염색체 등의 비율이 다른 사람 등등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나 여성이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그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젠더는 생물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젠더는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에 관한 거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그 의미도 그에 따라 사회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젠더는 단지 “선택”의 문제이고 정체성 정치에 기반한 라이프스타일에서 비롯한 것이고 “실존하는” 물질적 토대는 없다’는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다. 여성차별의 토대는 보통 의미의 생물학에 있지 않다.

우리의 생물학적 특징은 20만 년 동안 변하지 않았는데 여성은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차별받는 집단이 아니었다. 여성차별은 지난 1만 년 동안 계급 사회가 자리잡은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계급 사회는 사유재산(일부일처제와 부계 상속을 요구했다)과 여성의 무상 노동(가정에서 재산 상속인을 낳고 돌보고, 현재와 미래의 노동자들을 재생산하는)에 의존한다.

그리고 지난 수천 년 동안 젠더는 여러 방식으로 통제됐다.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는 크로스드레싱[이성 복장 착용]이 사형에 처해졌고 올해[2017년] 8월에 미국에서는 한 소년이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남성, 여성 그리고 아동의 위계 서열을 전제로 하고 그 외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부르주아 가족 개념은 19세기 영국에서 도입됐다. 당시 영국 지배계급은 순종적이고 건강하고 교육받은 노동자를 원하지만 그 비용을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여성이 가정 내에서 무상으로 일하도록 했다. 여성들은 유순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감정적이어야 하는 반면, 남성들은 강하고 외향적이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가족 형태는 특정한 사회적 윤리를 동반했다. 그에 따르면 동성애 등 젠더 규정에 맞지 않는 다양한 “일탈”을 불법화했다.

따라서 트랜스젠더 차별과 여성차별은 서로 상극이긴커녕 동일한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한 것이고 우리는 모두 함께 그 뿌리에 도전해야 한다. 파괴적으로 강요되는 성 역할을 극복하고, 더 부담 없이 의료 제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각자의 몸에 대한 자율성을 쟁취하는 것 등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노동조합 운동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자신의 해방 운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논쟁이 필요한 곳에선 논쟁을 해야 한다. 이는 다른 많은 운동들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나 이 문제에 잘못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발언권을 아예 빼앗기보단 그들의 주장을 논박하고 도전해야 한다. 논쟁에 건설적으로 참여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은 운동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전투적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저널리스트 줄리 버칠처럼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항상 화장이나 하고 바지는 절대 안 입으면서 눈꼬리 치며 미소 짓는 사람들” 따위의 모욕적인 언사를 늘어놓는 사람들은 억압에 맞서 싸우는 데 사실 아무 관심이 없다.

단 1명이 공격받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공격받는 것이다. 억압받는 한 집단이 전진하면 모두의 투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관련 기사: ‘트랜스젠더 해방을 위한 투쟁’] 2015년에 성별 자기 규정을 허용하는 비슷한 성별인정법이 통과된 아일랜드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법 때문에 여성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아일랜드에서 여성운동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지난 2년간 낙태권 운동이 성장했고, 2015년에는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모든 전선에서 차별에 맞서며 전진한 덕분에 서로 자신감을 고무한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여성에게 피해를 준다는 주장은 증거가 없다. 반면 트랜스젠더들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피해를 입는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2018년 1월 15일 변경 사항) 영국 Gender Recognition Act의 취지를 더 잘 드러내고자 기존 번역어 '성인지법'을 '성별인정법'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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