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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운동이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해야만 대중적 지지를 받을까?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는 한편, 북한의 핵 능력도 고도화되는 상황이 진보·좌파 사이에서 날카로운 논쟁을 부르고 있다.

진보·좌파 일각에서는 “북핵을 묵인”해서는 평화 운동이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불신만 초래해 대중적 평화 운동을 건설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 관련 연대체가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요구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북한 핵을 비롯한 모든 핵무기에 반대한다. 북한 핵무기도 미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북한 핵무기가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 단체가 북핵에 대한 견해를 독자적으로 표방하는 것을 넘어, 이를 공동전선의 요구와 슬로건에 반영하려 하는 것은 운동을 결속시키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대중 운동을 구축하려면 선전과 대중운동을 구별해야 한다.

우선, 북핵을 반대해야만(즉,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해야만) 대중적 평화 운동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평화 운동이 대중(또는 시민) 다수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한다.

물론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재앙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때 대중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무엇보다, 대중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핵무기 경쟁은 자본주의 경쟁의 일부이고 이를 끝장내려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의 높은 지위에 있고 그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일수록 핵전쟁을 막기 위해 그 사회를 전복할 위험이 있는 행동을 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심지어 반발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반도가 잿더미가 될 지경이 돼도 말이다.

즉, 평화를 원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것을 위해 “우리” 정부에 반대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면 대중(시민)은 분열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 안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올 때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매우 불균등하다는 사실이다. 즉, 노동조합에서 북핵 반대와 미국의 대북 압박 반대를 모두 내건 운동을 제안한다면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얻기는 쉬울 것이다. 그리고 노조 내 후진적 요소도 의식하는 노조 지도자 상당수가 부담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지의 상당수는 수동적 지지에 그칠 것이다. 평화 운동을 건설하려면 그런 수동적 지지에 만족할 게 아니라, 능동적이고 전투적인 지지를 모아야 한다. “우리” 정부와 그 정부의 제국주의 동맹에 맞서 능동적으로 투쟁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고무하고 결집시켜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핵 반대를 평화 운동의 요구로 채택하려는 시도는 운동의 능동적 부위를 정서적으로 이반케 할 것이다. 아니면, 북핵에 관한 견해를 통일하려다가 진이 빠져 운동을 건설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핵 반대를 공동전선의 요구와 슬로건에 반영하려는 주장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북한 핵실험 중단(쌍중단)’을 동시에 요구함으로써 미국의 제국주의적 공세가 한반도 불안정의 당면 원인이라는 점을 흐릴 뿐 아니라 공평무사 양비론 때문에 실천적으로 마비될 수 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은 원칙적으로 문제이지만, 이것을 미국의 핵무기현대화 프로그램이나 미국·중국·러시아·일본·한국의 군비 증강이라는 구체적 맥락 속에서 보면 사뭇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오히려 한미동맹의 막강한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 공격 위협 때문에 북한 지배자들이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게 됐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전자와 후자를 대등한 수준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또한 쌍중단 등을 평화 운동이 채택한다면, 운동이 당면하게 주력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가 애매해진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공세에 문재인 정부가 협력하지 못하게 강제하도록 힘을 모아야 하는지, 아니면 쌍중단이나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도록 문재인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지 말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원흉이 제국주의 체제라는 데까지 미처 미치지 못한) 다수의 소박한 의식 수준을 추수하려고, 운동을 전략적 지뢰밭으로 이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식으로는 한국에서 미국의 공격적 대외 정책에 반대하는 평화 운동을 건설하기가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