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과 토론회 등이 국내외에서 많이 열렸다. 그중 지난 9월 19일과 20일 영국 킹스칼리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데이비드 하비, 알렉스 캘리니코스, 굴리엘모 카르케디, 프레드 모즐리, 벤 파인, 마이클 하인리히 등이 참가했다. 이 심포지엄을 조직한 마이클 로버츠가 그 소식을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는데, 〈노동자 연대〉는 그 내용을 차례대로 요약해 싣는다.


심포지엄 첫날 저녁 세션의 주제는 ‘21세기 계급 투쟁을 그려 보기’였다. 계급 투쟁이 발생하는 지점들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를 설명할 때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여전히 유효한가?

데이비드 하비 교수가 첫째 발표자였다. 데이비드 하비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학자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상을 받은 저명한 지리학자이기도 한 데이비드 하비는 많은 책과 발표문을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그 현대적 의미에 관한 전문가로 널리 인정받는다. 그의 웹사이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각 장에 대한 강의들이 올라와 있고, 유튜브에서도 그의 강연을 많이 볼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란 “운동하는 가치”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즉 자본은 화폐로 시작해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흘러간다. 그런 다음에는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시장 판매를 통해 가치가 실현된다(유통). 이렇게 실현된 가치는 다시 자본가 분파들(산업자본과 지주 그리고 금융자본), 노동자 임금 그리고 정부의 세금으로 분배된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런 자본의 순환을, 지구에서 물이 지리학적으로 순환하는 것 ─ 대기에서 땅과 바다로 흐른 다음 다시 대기로 환류하는 ─ 에 비유했다. 하지만 자본의 순환은 이와 같은 단순 순환이 아니라 나선형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은 더 많은 가치로 축적·유통·분배되지 못하면, ‘악(惡)무한’(헤겔주의 용어를 사용하면)으로 그 가치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론》이 각각 다음 내용으로 나뉘어 있다고 주장한다. 제1권이 자본 순환 중 생산 영역(가치와 잉여가치 생산)만 다루고, 제2권은 가치 실현과 자본의 상이한 부문들 사이의 순환을 통한 재생산 과정만을, 제3권은 잉여가치 배분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가 [제1권에서] 생산 영역에 관한 대단한 분석을 제공하지만, 제2, 3권은 그 자신이 완성하지 못하고 엥겔스가 남은 원고를 묶은 것이라는 점을 들어, 《자본론》으로는 현대 자본주의 발전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에서 생산 영역은 “움직이는 가치의 단지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오늘날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계급 투쟁이 벌어지는 좀더 결정적인 지점은 전통적인 전투 바깥에서 즉, 작업장이나 생산 지점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투쟁이 아닌 형태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본의 유통과 분배 영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하비가 말하려는 ‘자본 순환 영역에서의 투쟁’은, 약값을 폭등시키는 제약회사에 맞선 소비자 행동, 사람들이 무엇을 사거나 필요하다고 느끼는 “욕망, 필요”를 조작하는 행위 등인 듯하다. 분배 영역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지대 때문에 벌어지는 지주·건물주와의 투쟁, 그리스처럼 갚을 수 없는 채무 때문에 벌어지는 투쟁 그리고 학생들의 학자금 부담에 맞선 투쟁 등을 예로 들었다. 이것들은 《자본론》 제1권의 영역 밖에서 벌어지는 “반자본주의” 투쟁의 새롭고도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투쟁들은 작업장이 아니라 지역사회나 거리에서 벌어진다. 다시금 데이비드 하비를 인용하면, 거대한 투쟁은 “생산과정에서 떨어진” 다른 곳에서 벌어진다.

여기서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데이비드 하비의 결론에 대한 이론적이고 경험적 토대에 대한 문제다. 둘째, 지금 벌어지는 계급 투쟁이 (주로) 《자본론》 제1권의 범주 밖에서 발견되는가 하는 문제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신의 계급 투쟁 테제의 이론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자본주의 위기가 잉여가치 생산뿐 아니라 유통이나 가치실현 과정이 붕괴하는 데서도 야기되고, 심지어 후자가 더 우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비는 이것이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2권에서 한 말이라 주장한다.) 또한 오늘날 경제 위기는 (《자본론》 제3권에 나오는) 금융 부문과 금융화로 인한 부채 때문에 벌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카르케디가 보였듯이(관련 기사 ‘《자본론》 출간 150주년 기념 해외 심포지엄 소개 1부 - 과거를 평가하며 미래를 예측하기’), 금융위기 이면에는 잉여가치 생산에서의 위기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자본론》 제1권의 일반적 축적 법칙과, 평균이윤율 저하 법칙(이 법칙이 《자본론》 제3권에 나온다는 점을 보면, 제3권은 오직 '배분'을 다룬다는 하비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에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자본론》 제1권과 제2권 그리고 제3권은 서로 연결돼 있으면서 자본주의에서 경제 위기가 왜 발생하는지를 밝히는 이론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하비와 달리] 내가 보기에 《자본론》 제1, 2, 3권은 각 권의 연관 속에서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단일한 이론을 구성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과 잉여가치 축적을 향한 자본의 추동을 기초로 하는 체제인데,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때문에 주기적이고 고장 난다는 것이다. 폴 마틱 1세가 1970년대에 이를 다음과 같이 썼다. "얼핏 봤을 때는 [자본의] 순환 과정에서 야기되는 듯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순환이나 [잉여가치] 실현의 문제로 볼 수 없고, 재생산 과정 전체(생산과 순환을 모두 포함)가 일탈하면서 벌어지는 것으로 봐야만 한다. 그리고 재생산 과정은 자본의 축적에 의존하는 만큼, 이는 다시 그런 축적을 가능케 할 만큼의 잉여가치 양에 의존한다. 따라서 위기의 가능성이 실제 위기로 이어지는 경로를 포착하는 데 있어서 생산 영역이 (비록 유일한 요인은 아닐지라도) 결정적인 요인이다. ... 따라서 생산과 순환을 따로 떼어 놓고서 자본의 위기를 설명할 수 없고, 오히려 축적 과정(자본 축적과 가치 법칙의 지배를 받는)에 내재한 이윤율 저하 경향이 야기하는 문제다."

데이비드 하비의 체계에서 생겨나는 약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발표나 최근 발행한 그의 책에서도 이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하비는 나[마이클 로버츠]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자신이 왜 그러는지를 이미 밝혔는데, 그 법칙이 오늘날 자본주의와 무관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미하엘 하인리히(역시 이번 심포지움 참석자)의 견해를 좇아 마르크스 자신이 이 법칙을 버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본론》 제3권에 이 법칙이 명확히 서술돼 있고, 정기적으로 재발하는 자본의 위기에 대한 일관된 이론을 제공하고 있고, 많은 학자들이 이를 검증해 왔다.

데이비드 하비의 둘째 약점은 경제 위기가 정기적으로 재발하는데도 이런 규칙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런 규칙성은 현대 금융이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론》 출간 시기(150년 전)에도, 심지어 그 이전에도 발견할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는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기에 임금이 그 극한까지 쥐어짜였기 때문에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고 사실상 주장한다. 위기의 원인이 잉여가치 생산에 있지 않고 잉여가치 실현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후 자본주의의 첫째 불황(1974~1975년에 나타난)이 저임금 때문에 벌어졌던가? 오히려 당시의 많은 경제 분석가들(마르크스주의자들을 포함해)은 임금이 이윤을 ‘압박’했고 그 때문에 불황이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것이 이윤율 위기 때문에 비롯했고 뒤이어 나타난 1980~1982년 불황도 마찬가지라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내가 다른 연구에서 보였듯이 ‘사회적 임금’(복지 등)을 고려해 볼 때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임금이 그만큼 하락하지는 않았다.

카르케디의 이번 발표 논문도 불황이 가치 실현 문제 때문에 비롯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전후의 불황들을 보면,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 임금과 정부 지출은 번번이 증가하는 중이었고, 2008~2009년의 장기불황도 마찬가지다. 신용경색과 유로 부채 위기는 이윤율 하락, 이윤 증대를 위한 금융자산으로의 전환 그리고 그로 인한 금융위기의 결과였다. 다시 말해, 분배가 아니라 생산 영역의 이윤 위기가 낳은 결과였다.

데이비드 하비는 임금이 매우 많고 노조가 강했기 때문에(그래서 유효수요를 창출했기 때문에) 1950년대는 자본주의가 잘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데, 전쟁 직후 이윤율이 높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맞이했고, 그 덕분에 자본은 생산과 축적을 유지하려고 양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요 경제들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이윤율이 하락하자 (작업장에서) 계급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고, 노동 측의 패배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세션에서 나도 발표했는데, 내 발표의 주된 내용은 자본주의와 그 모순(위기를 반복적으로 계속 낳는)에 대한 마르크스의 설명에서 잉여가치의 생산과 자본 축적이 핵심이라는 점이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자본가 계급의 이윤은 분배되기 전에 먼저 존재해야 한다.” 마르크스에게 잉여가치의 생산은 “움직이는 가치의 단지 일부분”이 아니라 가장 큰 부분이다. 이 말은 개념적으로뿐 아니라 양적으로도 진실인데, 모든 자본주의 경제에서 총산출량의 80퍼센트가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수단과 중간재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마르크스의 위대한 발견은, 자본주의 축적과 노동의 궁핍화를 추동하는 특별한 동력이 바로 잉여가치라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잉여가치의 생산이 그 유통이나 분배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하고 가장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분석에서 생산과 유통이 대등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보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징은 바로 잉여가치 생산이지, 잉여가치가 표층에서 어떻게 순환하고 배분되는지가 아니다.

《자본론》 제1권에서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의 양상이, 생산수단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는 반면 노동자들은 산업예비군으로 전락하고 그래서 노동력 가치는 최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보였다. 이것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인다. 그런데 바로 이처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는 것이 이윤율 하락 추세를 낳는다. 노동력만이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에서 이윤율은 계속 하락해 왔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나는 영국은행이 제공한 통계를 이용해 마르크스가 《자본론》를 출판한 이래 150년 동안 영국 자본의 전반적인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물론 이윤율이 일직선으로 하락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전반적인 경향에 맞서는 상쇄요인들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들은 계급 투쟁의 강도를 그려 보는 데서 결정적 지표들을 제시한다. 나는, 영국의 이윤율 데이터와 활용 가능한 파업 데이터를 이용해, 노동운동이 강력하고 자신감이 있던 시기에 이윤율이 하락할 때마다 계급 투쟁(파업 건수로 측정한)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점을 발견했다. 영국의 경우 제1차세계대전 전과 후 모두 해당됐고 197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패배해 약해진 가운데 신자유주의 시기처럼 이윤이 상승했을 때(부분적으로는 노동운동의 패배의 결과)나, 노동운동이 약한 가운데 이윤율이 하락해 낮은 상태일 때(1930년대의 대공황이나 지금)에는 작업장에서의 계급 투쟁도 낮았다. 이윤율이 바닥을 치고 상승한 ‘회복기’와 노조 내부 개혁이 맞물린(1890년대와 1950년대) 때 파업은 낮은 수준에서 점차 상승했다.

이렇듯 작업장에서 계급 투쟁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벌어졌을 때는 자본가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이전의 회복기 동안 노동운동이 강력한 상태로 있을 때였다. 이것이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기 가장 좋은 객관적 조건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작업장에서의 계급 투쟁이 자본주의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의 출판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도, 가치가 잉여가치와 노동자들의 몫으로 분배되는 것을 놓고 벌어지는 투쟁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이 자본주의가 불평등과 갈등 그리고 데이비드 하비가 초점을 맞추는 작업장 바깥의 투쟁들(지대, 부채, 세금, 도시 환경, 오염 등에 대한)을 낳는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런 투쟁들이 선거를 넘어선 수단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노동 대중이 생산수단을 통제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끝장내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이런 불평등 중 그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소비자나 채무자로서의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이 오늘날에도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변화시킬 주체다.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더라도 오늘날 노동자 계급은 개별 사회에서나 전 세계적으로나(가장 협소하게 제조업 노동자들로만 정의하더라도)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출판했을 때보다는 물론이고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거대한 사회 세력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오늘날 계급 투쟁의 주요한 동력이라고 내세우는 ‘탈취에 의한 축적’ 또는 ‘양도이윤’ 즉 사기, 속임수, 가격 후려치기, 환율 투기 등은 자본주의 이전의 많은 계급 사회에서도 존재했고 자본주의에서도 존재한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분명히 밝힌 것은 자본주의에서 계급 투쟁의 핵심은 가치 생산을 두고 벌이는 투쟁이라는 점이고 그것은 자본주의만의 독특한 점이다. 가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핵심이며,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건강함은 자본에 대한 이윤율의 수준과 그 [증감]방향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충분한 잉여가치 추출 능력에서 모순을 갖고 있고 그 때문에 경제 위기가 반복됐다. 이런 경제 위기는, 대안적인 경제 이론들이 주장하듯이, 임금 인상, 정부의 지출 확대, 금융에 대한 국가 규제로 해결할 수 없다.


이 글을 요약한 이정구 국립경상대(경남 진주 소재) 대학원 전 정치경제학과 강사는 최근 정성진 교수를 공개 비판한 이후 추가 강의 배정은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