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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유럽연합 vs 영국 어느 쪽도 진보적이지 않다

10월 19일로 예정된 유럽연합 정상회의 이후에도 브렉시트 협상은 십중팔구 진척이 없을 것이다. 상황은 단순하다. [브렉시트 뒤로도] 유럽연합에 남을 회원국 27곳은 탈퇴 협상의 대가로 영국에게서 돈을 최대한 많이 뜯어내려 한다.

그 돈이 있으면 유럽연합은 재정 지출을 대폭 감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유럽연합은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가 돈을 토해 내겠다고 한 뒤에야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유럽의 무역 관계에 대한 논의를 하려 한다. 이는 그 돈을 얻어 내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다.

거울에 비춘 것처럼, 메이는 실질적인 무역 협상을 시작하고 나서 돈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그 돈을 바라는 유럽연합이 영국에 우호적인 된 협상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아무 보장도 없이 유럽연합에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며 우익 ‘찌라시’들이 자신을 물어뜯는 상황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황은 물론 메이 자신의 약점과 보수당의 분열 때문에 악화하고 있다.

보수당 소속의 외무장관 보리스 존슨과 재무장관 필립 해먼드가 지난 몇 주 동안 벌인 일을 보라. 메이는 자신의 내각에 속한 친(親)브렉시트파도 반(反)브렉시트파도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며 유럽연합이 거칠게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메이가 실각하면 그 후임은 [강경 친(親)브렉시트파인] 존슨일 것이므로 유럽연합의 태도가 그리 영리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보수당 내에서 브렉시트를 두고 쟁투가 벌어지고는 있다. 하지만 양쪽 다 대처 식 [우파] 정치와 역겨운 소영국주의적 민족주의에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주의 좌파가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연합이 손도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장-클로드 융커의 말은 힘 있는 자의 오만함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나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을 혐오하는 것도 아니다. 유럽인들은 제2차세계대전 기간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 영국이 유럽에 해 준 일에 유럽인들은 고마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영국은 [브렉시트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힘 있는 자의 오만함

융커는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해 스페인 정부를 지지한 유럽연합의 입장을 정당화하면서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 “카탈루냐가 독립하면 다른 민족들도 독립하려 할 것이다. 좋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15년 안에 유로존 소속 국가가 100개로 늘어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17개국만 있어도 충분히 힘들다. 나라가 더 많이 늘어나면 유로존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융커는 룩셈부르크의 총리였다. 룩셈부르크는 유럽 바깥 나라에 기반한 다국적 기업의 조세도피처 구실을 핵심으로 하는 조그만 나라다. 룩셈부르크는 유럽연합 회원국인데 룩셈부르크보다 훨씬 크고 인구도 많은 카탈루냐가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유럽연합의 이데올로기가 급격하게 바뀌었음을 보여 준다. 1992년에 마스트리히트조약으로 유럽연합이 결성될 당시, “보충성 원리”* 이념 하에 정치적 분권화가 촉진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정치학자들은 유럽연합의 “다층적 협치” 특성 덕분에 기존 국민국가에 속한 [자치]지역들이 자율성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스코틀랜드나 카탈루냐 같은 곳의 민족주의 운동이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를 가진 채 독립국이 되려고 추구하는 것을 고무했다.

카르텔

그러나 유럽연합이 그리스와 카탈루냐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유럽연합은 제대로 실행될 수 없는 통화공동체를 지탱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카르텔임을 알 수 있다. 융커가 카탈루냐 독립을 유로화에 대한 위협이라 규정한 것을 보라.

이런 입장에는 나름의 논거가 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유로존의 경제적 통합성을 강화하기를 바란다. 유럽연합의 종주국 격인 독일은 유럽연합이 긴축 정책을 더 중앙집권적으로 강제하는 것만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이 감독하는 항구적 긴축 체제 하에서 “보충성”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유럽중앙은행·IMF의 “트로이카”가 유럽연합 소속 채무국들에 보낸 “연대”의 결과로, 미국·독일·유럽연합 소속 신자유주의적 기술관료들이 채무국들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봤다.

이런 더 큰 변화에 견주면 브렉시트는 새 발의 피처럼 보인다. 영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5위인 제국주의 열강이다. 영국은 자기 자신을 돌볼 만큼은 강력하고 추잡하다. 브렉시트 협상에서 유럽연합과 대립하는 영국에 공감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추잡한 결별에서 유럽연합이 진보적인 편이라 여기는 것도 자기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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