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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러시아혁명사 강의》 서평:
오류와 혼란투성이 러시아혁명사 책

《러시아혁명사 강의》 박노자 지음, 나무연필, 284쪽, 16000원

박노자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강의한 것을 수정·보완해 《러시아혁명사 강의》를 출간했다. 그래서 박노자의 이전 글들을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때 “어디서 봤더라?”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짐작했겠지만, 이 책에서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나 분석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주장들, 그것도 잘못된 주장들을 반복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박노자는 레닌의 초기 사상의 이론적 골자 중 하나가 전위당론이라고 소개하는데, 그 전위당은 “당의 상층부에 직업적 혁명가가 있어야” 하고 “그 아래에 당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하고 당을 위해 헌신하는 준직업적 혁명가들이 당원으로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은 사회민주주의부터 우익에 이르기까지 혁명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모두 공유하는 레닌주의 정당론에 대한 전형적인 왜곡이다.

그런데 책의 다른 곳에서는 “레닌조차도 러시아 혁명 이전에는 볼셰비키 정당을 좌지우지하지 못했”으며, “상당히 역동적으로 조직성과 민주성을 결합해 당을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혁명 이후인] 1920년 9차 당대회까지만 해도 볼셰비키는 비교적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운영 원칙을 지켜나갔”다고 지적한다. 앞의 내용과 모순되는 것이다.

역사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박노자는 트로츠키의 반스탈린 투쟁, 혁명을 지키려 한 러시아 노동자들의 노력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는다

트로츠키에 관한 장은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트로츠키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한계 많은 존재로 보았고, 따라서 공포 없이는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트로츠키는 “무산계급의 독재도 결국 인간을 다스리는 정권인 이상 공포로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으며, “국가가 반드시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박노자는 이런 왜곡과 편견에 머물지 않고 트로츠키를 스탈린과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비운의 인물쯤으로 묘사한다. “결국 레닌은 사망하고, 트로츠키는 그때부터 당내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지요.”

하지만 역사가를 자처하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당내 투쟁의 배경이 됐던 수많은 쟁점들, 즉 러시아 내부에서 공업화 전략과 농업 정책, 독일·중국 혁명에 대한 대응, 파시즘 문제, 코민테른의 여러 정책 등은 러시아 혁명과 더 나아가 세계 노동자 계급의 진퇴를 두고 벌인 갈등이었고, 국제주의냐 아니면 일국 사회주의냐 하는 노선의 대립이었다. 그런데 박노자는 이런 쟁점을 쏙 빼놓은 채 트로츠키를 권력욕에 눈먼 사람쯤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직무 유기

그렇다면 박노자는 “스탈린 독재로 넘어가면서 당의 안팎은 물론 나라 전체에서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만 이유를 어디서 찾을까? “전쟁을 조직할 만큼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진한 국가가 세워졌다면, 과연 그 국가의 체제가 노동자들의 직접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을 던지고는 이것을 ‘레닌의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레닌과 볼셰비키 그리고 혁명을 수행한 노동자 대중이 연합군의 침략과 백군의 저항에 맞서 노동자 혁명을 지켜 내고자 했던 노력들에 대한 합당한 평가는 그의 책 어디에도 없고, 국가는 필연적으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억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아나키즘적 평가만 남아 있다.

정작 그가 제시한 대안은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이나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아주 격렬하지만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반항” 같은 개혁주의적 방안이다. 그런데 이런 개혁주의적 대안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좌충우돌하고 동요하다가 더 급진적인 대안에 자리를 내주거나 또는 그렇게 하지 못해 오히려 반혁명의 피의 수렁에 빠져 버린 사례가 역사에 자주 등장했다. 게다가 박노자 본인은 국가가 폭압적으로 주도한 이른바 스탈린 체제의 “적색개발주의”를 적극 옹호한다. 이처럼 ‘박노자의 모순’이 오히려 문제 아닐까?

박노자가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정치 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제시한 대안은 적색 개발주의다. 그런데 적색 개발주의의 대표 사례인 소련을 보면, 도무지 왜 그런지 이해하기 힘든 묘사들이 계속 나온다. “소련도 중앙집권적 정치가 강력하게 작동했던 1950년대가 경제 황금기였습니다. … 적색 개발주의의 정치적 역동성은 이후 문제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련에서는 관료제가 다소 분산되었어요. … 집권 세력의 위계질서적 통제가 강할 때 적색 개발주의 체제는 비교적 잘 운영되지만, 그 통제가 약화되면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노동 생산성의 증가 폭도 작아지면서 개발이 주춤해지는 겁니다.”

박노자의 말대로라면, 소련의 집권 세력이 왜 통제를 늦추어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만들었을까 하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후에라도 통제를 재강화하는 쪽으로 국가 운영 방향을 되돌렸으면 효율성이 회복됐을 것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말이다.

이 물음에 대해 그가 ‘정치 신학’이라고 조롱했던 국가자본주의론에서는 세계자본주의 하에서 자본들 사이의 경쟁을 그 이유로 꼽는다.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 체제, 중국의 마오쩌둥 체제, 그리고 수많은 저개발국가들이 압축적 성장 또는 국가 주도 성장을 추진한 배경에는 세계 자본주의가 그 국가들에게 가하는 압력과 생존을 위한 자본 축적이라는 요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스탈린주의 체제는 초기의 고성장 이후에 자본주의 고유의 비효율과 이윤율 저하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적색개발주의론은 이런 점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박노자는 적색개발주의론에 대한 비판에 약간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그 이유는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그 시대를 살면서 온갖 고통과 착취를 감내했던 민중에 대한 비판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적색 개발주의 하에서 완전고용, 무상의료, 상당히 좋은 생활조건 등을 보장해 줬으므로 신자유주의 사회보다는 더 낫다고도 여긴다. 그래서 박노자는 스탈린주의 체제가 사회주의와는 구분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옛 소련과 북한 또는 중국 같은 사회를 옹호한다.

반면, 박노자가 속한 노동당은 북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그런데도 그 당이 북한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박노자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그의 영향력 없음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동당의 무원칙함을 뜻하는 것일까?

박노자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좌파적 주장을 펼치면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한국에 살았다 해서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1987년에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은 부르주아 세력이 아니라 급진화된 중간계층의 일부였던 학생들”이라는 구절이 이를 잘 보여 준다.

6월 항쟁을 떠오르게 하는 묘사인 듯하지만, 사실을 온전하게 진술한 것이 아니다. 6월 항쟁 기간에도 갈수록 기층 민중의 참여가 두드러졌지만, 무엇보다 7~9월 노동자 투쟁을 1987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묘사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러시아혁명에 관해 생생하고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존 리드가 쓴 《세계를 뒤흔든 열흘》(책갈피)이나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풀무질) 같은 고전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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