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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폐연대·비없세 주최 토론회: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위한 좌파의 과제

지난 10월 17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주최로 ‘노동자 내적 분열의 현실과 계급적 단결의 새로운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은 전교조 지도부가 비정규직 연대를 외면한 이후 열린 것으로,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 연대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김혜진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황철우 비없세 소집권자가 발제를 맡았고, 박혜성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대표, 유성권 서울지하철노조 차량지부 안전업무직부장(전 비정규직 지부장), 이민숙 전교조 해직교사,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 등 7명이 토론자로 나섰다. 청중석에는 교사·금속·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활동가들, 전교조 조합원들, 노동운동 좌파 활동가들 등이 모여 진지한 논의를 함께 이어 갔다.

김혜진 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기아차 노조 분리, 전교조 중집의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반대 등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런 일들이 사회적으로 “노동운동의 주도성을 희석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노동운동이 (정규직 중심의) 조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동의 전망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각 부문·현장에서 부당한 현실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는 비정규직 활동가들의 연대 호소도 이어졌다. 박혜성 전기련 대표는 “연대가 조직되면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투쟁 잠재력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성권 서울지하철노조 안전업무직부장은 서울지하철의 무기계약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승진 유예 등의 차별을 두는 방안을 추구하는 노조 집행부를 비판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노조가 싸움도 안 해 보고 마치 (차별은) 당연한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 된다. (사측과 보수적 조합원들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다. 비정규직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힘을 실어 줄 때다.”

이런 주장들은 앞으로 노동운동 안에서 연대를 확대해 나가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파이를 키우기

그러나 이날 일부 발제자·토론자들이 제시한 분석과 대안은 효과적인 연대 방안인지 의심스러웠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다르다거나, 전체 노동자들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요구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그랬다.

김혜진 상임활동가는 “(정규직-비정규직의) 공동의 사회적 의제”, 최저임금 1만 원 같은 요구를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운동에서 민주노총의 주요 의제는 왜 최저임금이 아니라 성과상여금 폐지였을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통상임금 요구였다.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는 민주노총이 조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해 왔기 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져 왔다.

“명백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익이) 대립될 때가 있다. 공동의 투쟁을 위해 (정규직이) 자신을 내버려야 하는 결단의 순간이 있다.”

토론자로 나온 장귀연 철폐연대 정책위원은 이런 문제의식을 보다 명료하게 제기했다. “비정규직을 배척하는 정규직의 태도는 단지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 근거가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객관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기아차, 전교조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는 결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열악한 노동자층을 핑계 삼아 정규직의 조건 후퇴를 압박하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정규직의 조건을 방어하는 데서도 필요한 일이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 일부가 비정규직의 존재를 고용 안정의 ‘방패막이’나 임금·조건 공격의 완충지대로 여기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거나 기껏해야 근시안적 단견일 뿐이다. 흔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우선 해고가 정규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아차 사측이 노조 분리를 이용해 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 귀족”으로 몰아세우고 임금체계 개악 등을 추진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사례다.

그런 점에서 박혜성 전기련 대표가 정규직 교사, 기간제 교사, 임용고시 준비생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지 않다며, “노동자들이 제한된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단결해서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옳다.

이에 대해 장귀연 정책위원은 “노동자들이 남(서로)의 파이를 빼앗는 게 더 쉽다”고 현실론을 폈다. 그러면서도 “노동자 계급의 집단성을 구축하기 위한 대안 논리 개발”이나 “공감적이고 연대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제한된 몫을 두고 서로의 것을 빼앗아야만 자기 이익을 지킬 수 있다면, 단결은 요원한 일이 되거나 이상적인 신념을 가진 소수 활동가들만의 실천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런 잘못된 전제는 정규직 양보론으로 미끄러질 위험도 안고 있다. 정규직이 때로 자기 이익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런 방향을 가리킨다. 김혜진 상임활동가는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이 “명백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대립”되는 경우라고 상정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전체를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이 축소되더라도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나중에 임금을 회복해 나가야겠지만, 손쉬운 방법은 비정규직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 축소와 총고용 보장을 맞바꾸는 것은 비정규직 해고시키는 것보다 나은지 몰라도 결코 바람직한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이런 방식은 폭스바겐 등에서 봤듯이 노동자들을 점점 나쁜 처지로 내몰 뿐이다.

이와 달리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의 임금·고용을 지키기 위해 함께 단결해 싸울 수 있다. 그러려면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겠다거나 혹은 정규직이 양보하라는 압박에 반대해야 한다. 한국지엠의 경우처럼 위기에 처한 기업에서는 정부에게 국유화를 통해 임금·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계급 투쟁의 관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대립된다고 보면, 정규직의 요구와 투쟁이 비정규직의 조건 개선에 해롭거나 적어도 염치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김혜진 상임활동가가 통상임금이나 성과연봉제 폐기 요구에 냉소적 태도를 취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촛불운동 당시 민주노총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폐지 요구가 전체 촛불 대중과 괴리된 것처럼 여기는 것은 투쟁의 동학을 잘못 보는 것이다. 오히려 공공부문 노동자들, 특히 철도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폐지 파업은 퇴진운동 초기에 운동 확대의 발판을 제공함으로써 조직 노동자운동의 주도력을 보여 줬다. 촛불운동 참가자들은 철도 파업을 적극 지지했고, 승리하기를 바랐다. 철도 노동자들이 촛불 집회의 중요 대열을 이룬 덕분에 노동조합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더 우호적이 됐다.

만약 철도 파업이 승리했다면 촛불운동에 참가한 더 많은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을 고무하고 그들에게 일터에서도 싸울 자신감을 줬을 것이다. 한 노동자 부문이 싸워서 승리하는 것은 다른 노동자 부문을 고무한다. 안타깝게도 철도-공공운수노조, 정의당 지도자들이 파업을 성과 없이 중단하는 바람에 촛불운동 속에서 이런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못했다. 이런 동역학을 보지 못하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른 부문과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무하고 저항을 확대할 고리로 연결시킬 수 없게 될 것이다.

통상임금 쟁점도 마찬가지다. 통상임금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전후로 “노사관계의 핵”이라 불릴 정도로 폭발력이 있는 쟁점이었다. 그리고 흔히 얘기되는 것과는 달리, 대기업 정규직뿐 아니라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문제는 대기업 정규직만의 투쟁으로 여겨지며 지지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그래서 투쟁 건설보다 소송만으로 소극적 대응을 하는 노조 지도자들이 노동조합 안팎에서 강력한 좌파적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되고, 그 속에서 금속노조·현대기아차지부 지도자들의 양보론도 강화될 여지가 더 커졌다.(일자리 확대를 위해 통상임금을 양보하자는 제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요구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면, 정작 비정규직의 요구를 성취하는 데서도 장애를 줄 수 있다.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이나 노조 할 권리 등은 매우 중요한 요구다. 그러나 요구가 중요하다고 해서 투쟁 동력이 자연히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을 단지 요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쟁취할 투쟁 동력을 진지하게 조직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저임금 1만 원 요구와 조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결합시켜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노동자연대 김하영 운영위원의 아래 글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투쟁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도덕주의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동역학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 경제 위기가 오래 지속되는 조건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고귀한 이념을 위해서보다는 자신의 조건을 지키는 투쟁에 훨씬 자주 내몰리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의식이 변하고,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자신감이 높아져 실제 연대 행동에 나서게 된다.

“좌파들은 자신들의 이상과 노동자들의 실제 투쟁을 대립시키기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 투쟁을 한껏 지지하면서 그 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연결시키려 하고 연대를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요구안도 그런 활동을 대체하는 마법 같은 단결 비법이 될 수는 없다.”(김하영,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 책갈피)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회의론 속에서는 이런 전망을 갖고 연대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황철우 비없세 소집권자는 “정규직 운동은 이제 끝났다고 본다”고 주장했는데 너무 비관적으로 들렸다. “그 빈자리는 비정규직들이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대안도 전혀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기아차에서도, 전교조에서도 비정규직에 연대하고자 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정규직 노조가 균일한 집단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매우 모순적이고 불균등하다. 좌파는 그런 의식의 불균등성에 개입해 연대를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 정규직 회의론이나 단위 사업장 (기층) 차원의 연대는 어렵다는 생각은 오히려 연대를 강화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좌파 활동가들의 과제

바로 이 점에서 전기련 박혜성 대표의 호소가 귀담아 들을 만했다. 그는 전교조의 일부 활동가들이 지지와 연대 덕분에 “전기련 회원들이 고무 받고 자신감도 얻었”던 경험을 들어 이런 노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돌아보면 전교조에서는 이미 영어전문강사들의 고용 안정 문제에 대해 논란이 벌어져 왔다. 전교조 내 활동가들이 학교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손 내밀고 연대를 건설하려고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활동을 일찍부터 쌓아 왔다면, 전교조 내 의견 분포를 바꿀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번에는 이런 연대를 충분히 건설하지 못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 (좌파) 활동가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와 실천적 투쟁을 건설하고 정부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전교조에서는 교찾사 같은 노동조합 좌파와 그 집행부가 거듭 동요하고 노동자들의 후진적 의식에 타협한 것이 핵심적으로 문제를 낳았다. 그럼에도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30퍼센트가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지지해 표결한 것은 단결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만약 좌파가 일찌감치 기층에서 강력한 운동을 건설하면서 단결의 비전을 제시했다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좌파 활동가들은 노동자 의식의 불균등성과 모순, 그리고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잠재력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서 기층에서 연대를 확대하고자 분투해야 한다. 그럴 때 후진적 부문의 압력에 영합하거나 양보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굳건하게 단결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