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의 기틀을 닦을 것입니다"

 조성민 정리

 54년 만에 철도 노조가 민주화됐다. 민주 후보가 당선된 뒤 열린 5월 30일 철도 노조 정기 대의원대회는 민주노조에 대한 철도 노동자들의 열망과 민영화 저지 투쟁 의지를 한껏 보여 주었다.  

 대의원대회에 참가한 철도 노동자들은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보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더 환영했다.

 이 날 대의원대회에서는 단체협약 및 조합의 중요한 정책사항이 있을 때 위원장이 직권 조인하는 일이 없도록 조합원 총회를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정하도록 규약을 개정했다.

 노동자들은 작년 12월 10일 인원감축에 동의한 노사정 합의문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민영화 반대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다함께〉는 철도 노조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활동가 두 명과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한 사람은 자신을 철도 노조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활동가"라고 소개했고, 다른 한 사람은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대외협력국장이었고 5월 말 현재 철도 노조 인수위원회에서 총무 재정팀 인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종렬 씨다.

 각자 따로 인터뷰를 했지만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같이 써 놓았다.

 

 기자 : 54년 만에 철도 노조를 민주화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그 동안 어용 노조가 어떤 일을 저질러 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이종렬 : 철도노조 자체가 청량리 깡패들에 의해 건설된 것이었고, 이승만이 만든 어용 노조인 대한노총의 핵심으로 활동했습니다. 철도 노조는 유신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 1987년에는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를 지지하는 성명도 냈습니다.

 1988년 기관사들이 파업할 때는 노조측이 도시락을 주문해 진압 경찰에 제공했을 뿐 아니라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1996년에는 위원장 승용차를 그랜저로, 지방본부 위원장 승용차를 소나타-Ⅱ로 일괄 구입한다는 명분으로 조합비 인상을 결정했습니다. 노조 위원장이라면 철도청장과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활동가 : 1996년부터 지속적으로 인원감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조는 이를 계속 묵인해 왔습니다. 2001년까지 7천7백 명의 인원 감축 계획을 노동조합은 모두 합의해 주었습니다. 그 동안 임·단협이 이루어진 게 거의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은 기존 노조에 기대하는 게 전혀 없습니다. 지난해 제가 조합원 자격이 박탈됐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활동도 안 하는 노조에 조합비 안 내도 되니까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공투본 소속 조합원들이 철도청에 의해 파면·해고·전출됐을 때 노동조합은 오히려 조합원들의 탄압에 동참했습니다.

 지난해 철도청의 부실과 문제를 언론에 폭로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기관차 부품이 없어 막 들어온 차에서 부품을 빼내, 나갈 차에 끼워 넣기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철도청에서는 이에 대해 보복성 발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를 묵인했습니다.

 

 기자 : 회사측이 이번에 김재길 후보의 낙선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선거에 개입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종렬 : 선거 기간 중에는 인터넷에 김재길 후보가 '병역을 면제받은 간질환자라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다'는 악의적 거짓 글이 실렸는데, 이 글이 인쇄물로 나와 철도청 팩스를 통해 각 지부로 발송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한 상태입니다.

 활동가 : 선거 기간 중에 서울 전기사무소 소장이 소속 직원 170여 명 중에서 40여 명을 보복성 인사 발령을 냈습니다. 심지어 출퇴근 거리가 3시간이나 되는 곳으로 발령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또, 철도청측은 공공연히 중간 관리자들을 시켜 '만약 선거 결과가 나빠지면 인사 발령이 또 있을 것'이라며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선거 전에 직원들 개별 면담을 해서 '누구를 찍지 마라'고 말을 꺼낸다던가 '민주파가 잡으면 감사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워낙 행정이 부실하기 때문에 한 번 감사가 나오면 직원들은 그 감사 준비하느라고 며칠씩 고생을 합니다. 그러니 감사가 많아진다고 하면 일단 골치가 아파지는 거죠.

 

 기자 : 지난해 12월 15일에 철도 노조는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공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른 공공부문 노조들이 그보다 일주일 전에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상태에서 철도노조가 파업 일자를 늦게 잡은 것은 다른 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공동 파업 철회의 책임을 떠맡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해 파업이 철회된 후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종렬 : 노조 집행부는 "철길에 누워서 기차를 막더라도 민영화를 저지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질적인 파업 준비는 전혀 하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철도노조 최초로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해 82퍼센트가 찬성을 했던 때였습니다.

 노조가 파업 기금을 평균 30만 원씩 내라고 했을 때도 조합원들은 모두들 "염불보다 젯밥에 눈이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집회 서너 번에 조합비 12억 원을 썼다고 결산했지만, 이것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12월 파업 철회와 조합비 전용 의혹이 선거 승리의 핵심이었습니다.

 활동가 : 지난해 파업의 쟁점은 민영화와 인원 감축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조는 인원 감축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민영화는 추후 협의하자는 안에 서명했습니다.

 게다가 노조는 "파업하려면 구속자 후원 기금, 파업 기금이 필요하니 조합원들이 몇 십만 원씩 파업 기금을 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 한 달 월급이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그 돈을 내라고 한다면 조합원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노조가 파업을 회피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도 이 점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노조가 합의서에 서명한 날 조합원들에게 "이제 투쟁복 벗고 근무하라"고 했지만, 조합원들은 다음 날 오전까지 투쟁복을 입고 근무할 정도로 파업에 대한 염원이 강했습니다.

 지난해 파업 철회 사건은 조합원들이 김기영 전 노조 집행부 쪽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 전에는 전기협 지부 중에서 서울의 6개 지부만 공투본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지부들도 김기영 집행부를 완전히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파업하겠다고 하니까 한 번 같이 싸워 보자는 의견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노조의 파업 철회 후에 모든 전기협 지부가 철투본[생존권 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철도노동자 투쟁 본부, 12월 파업 철회 후 공투본이 확대되어 건설됨]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기자 : 공투본에서 시작해 민주노조 건설로 이어졌던 과정을 한번 설명해 주십시오.

 

 이종렬 : 우리는 1996년 조합비 인상 결정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중 간선제로 뽑힌 대의원들이 모여 결정한 사항은 무효다'며 대의원대회 결정에 대해 무효 소송을 냈습니다. 이것이 작년 대법원 최종 판결로 나온 것입니다. 직선제로 규약 개정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였지요.

 활동가 : 지난해 1월 14일 대법원은 대의원 간선제가 '민주적 조합 운영을 방해한다'며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 이후 본조합 위원장과 지방본부 위원장, 지부장까지 모두 직선으로 치러야 한다는 염원이 높아졌습니다. 그 염원으로 공투본이 결성됐고 직선제 지지 서명을 시작했습니다. 2만 5천 명의 조합원 중에서 1만 3천 명이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조그만 역까지 모두 돌아다니며 설득하고 서명받은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노조는 기만적으로 대의원 선거에 한해서만 직선으로 치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현 집행부의 임기는 인정하고 2001년에 직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한다는 안이 통과됐습니다. 조합원들의 분노에 밀린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활동해 온 공투본이 12월 파업 철회를 보며 실망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철투본을 건설하고 선거 준비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기자 : 조합 인수 과정은 잘 되고 있습니까?

 

 이종렬 : 솔직히 다른 업무는 인수받을 게 없습니다. 한 게 없으니까요. 문제는 재정입니다. 그들은  서류도 빼돌리고 하드 디스크도 포맷해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5월 30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결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청산하기 위해 '어용청산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어용청산위원회'는 54년 간 어용 노조로서 활동해 왔던 제도, 인적 측면, 운영 등 모든 것을 고쳐 나가 민주노조의 기틀을 닦을 것입니다.

 

 기자 : 상급단체가 여전히 한국노총인데 민주노총으로 가게 될까요?

 

 이종렬 : 그것은 조합원들과 대의원들의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대의원대회에서 3분의 2가 찬성하거나 조합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상급 단체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물론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당장 그 토론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당장은 민주노조 체계를 세우는 것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대 노총 어느 곳과도 함께 연대할 생각입니다.

 활동가 : 민주노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작년 노조 사무실을 점거 농성하고 있을 때 한국노총은 기존 철도 노조가 깡패를 몰고 점거 농성장에 가도록 사주했습니다. 활동적인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으로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의원대회에서 이남순 위원장을 맞이할 때와 단병호 위원장을 맞이할 때 박수의 강도가 달랐던 것을 보면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토론에 붙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제기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