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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노동자 연대
등록일 2009년 1월 12일, 사업자등록번호 104-86-18859, 통신판매업신고 제2009-서울중구-0370호, 신문사업등록번호 서울다0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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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년 1월 12일, 사업자등록번호 104-86-18859, 통신판매업신고 제2009-서울중구-0370호, 신문사업등록번호 서울다0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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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번역 전문기
226호 | 기사입력 2017-10-30 14:02 |
주제: 역사, 혁명과 혁명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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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낳았다. 본지는 연말까지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기사를 꾸준히 번역 연재하려고 한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8: 극빈하고 궁핍한 노동자들만이 투쟁에 나설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0: 러시아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모두 보여 준 크론시타트 수병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1: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전쟁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신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2: 혁명과 내전 중에도 토론과 논쟁은 중요한 요소였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3: 노동자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4: 혁명은 어떻게 러시아 제국 전체로 확대됐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5: 7월 사태 - 위기에 처한 러시아 혁명과 시험대에 오른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6: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예술 양식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7: 민족 자결권 보장과 혁명의 관계를 이해한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8: “빵, 평화, 토지!” – 농민과 노동자를 이어준 구호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9: “여성의 완전한 해방”으로 발을 내디뎠던 혁명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30: 코르닐로프 쿠데타: 쿠데타를 저지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했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1: 차르의 보물을 놓고 지배자들이 벌인 소동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2: 노동자 권력은 독재를 뜻할까?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3: 겁에 질린 지배자들이 거짓말을 퍼트리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4: 혁명은 사회뿐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도 변화시켰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5: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신문이 필요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8: 10월 혁명 -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접수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9: 1917년 러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0: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이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1: 트로츠키: 노동자 운동을 무장시킨 지도자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2: 혁명의 패배는 예정돼 있지 않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3: 《세계를 뒤흔든 열흘》 -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책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협상: 전쟁에 목매는 지배자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5: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지 않았다면 혁명은 패퇴했을 것이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6: 십중팔구 처음 들을 볼셰비키 영웅 3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7: 반혁명의 씨앗을 뿌린 러시아 내전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8: 혁명은 새로운 지배계급을 낳을 수밖에 없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9: 연재를 마치며 - 러시아 혁명은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함을 보였다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등불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위대한 노동조합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의 지도자 빌 헤이우드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혁명은 우리 생애 가장 위대한 사건이다.

“러시아 혁명은 자유와 노동자 민주주의의 여명이다. 우리가 레닌을 믿지 못한다면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저항을 통해 왕들을 끌어 내리는 것이 가능함을 목격한 각국의 노동자들은 크게 고취됐다.

그 결과, 1918년 독일에서는 수병 반란이 확산돼 노동자 파업과 맞물리면서 제1차세계대전을 끝냈고 카이저[독일 황제]를 끌어내렸다.

1918년 독일의 병사 소비에트 ⓒo.Ang.

이탈리아에서는 “러시아처럼 하자”가 좌파의 슬로건이 됐다. 혁명적인 노동조합 활동가였던 아르만도 보르기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을 우리의 북극성으로 삼았다.

“러시아 혁명의 승리에 기뻐 날뛰고, 혁명이 위험에 빠질 때면 가슴을 졸였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과 혁명 열사·투사를 기리는 상징물과 제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영향은 저항을 고무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러시아 혁명은 경제와 정치를 연결하는 법을 보여 줬다.

러시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의 접근법은 “평화, 빵, 토지”라는 슬로건으로 압축됐다. 이 슬로건처럼 볼셰비키가 각각의 투쟁들을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서, 유럽 전역의 노동자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러시아에서 혁명을 낳았던 요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전 세계 어디서나 존재했다.

1917년 봄 프랑스에서 수십만 파업 물결이 이어질 때, 파업 집회의 마지막 구호는 바로 “전쟁을 멈춰라!” 였다.

모리배

1917년 8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작업장으로 복귀하면 빵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빵 얘기 집어 치워라!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모리배들은 꺼져라! 전쟁을 멈춰라!” 노동자들은 파업을 계속했다.

작가 빅토르 세르주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노동자·병사 평의회(소비에트)가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반란, 리옹에서 반란, 벨기에에서 혁명, 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의 옛 명칭]에서 혁명, 불가리아에서 소비에트들의 승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반란.

“유럽 전체가 싸우고 있다.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모든 곳에서, 심지어 연합군 병사들 안에서도 소비에트를 세우고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것이.”

이집트, 인도, 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저항이 분출했다. 민중들이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봉기했고, 제국주의 군대 내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저항을 조직한 수단은 바로 소비에트였다. 노동자와 병사들이 구성한 평의회인 소비에트는 1905년과 1917년에 만들어졌다.

러시아 혁명에서 노동계급은 소비에트를 이용해 조직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러시아의 소비에트를 모방하거나 거기에 영향 받은 노동자평의회들이 만들어졌다.

세계 곳곳에서 파업 위원회들은 러시아를 따라서 자신들을 소비에트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만들어진 노동자평의회는 다른 곳보다 더 나아가 직접 민주주의,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 권력을 제기했다.

러시아가 준 영감은 소비에트만이 아니었다. “볼셰비키처럼 하기”가 일상 언어의 유행이 됐다.

1919년에 영국 병사 1만 명이 켄트주(州) 포크스턴에서 [재파병을 거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병사들은 자신들의 단체를 결성하면서 당시 인기 있던 구호를 내걸었다. “볼셰비키들 어서 모여라.”

러시아 혁명으로 각국에서 정당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기존 정당이 분열하거나 [성격이 다른 단체로] 전환했다. 세계적으로 노동자 운동과 노동자 단체들은 여러 갈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노동자 혁명은 각국의 노동자 운동과 조직 모두를 엄청나게 전진시켰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570호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8: 극빈하고 궁핍한 노동자들만이 투쟁에 나설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0: 러시아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모두 보여 준 크론시타트 수병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1: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전쟁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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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3: 노동자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4: 혁명은 어떻게 러시아 제국 전체로 확대됐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5: 7월 사태 - 위기에 처한 러시아 혁명과 시험대에 오른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6: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예술 양식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7: 민족 자결권 보장과 혁명의 관계를 이해한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8: “빵, 평화, 토지!” – 농민과 노동자를 이어준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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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5: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신문이 필요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8: 10월 혁명 -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접수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9: 1917년 러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0: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이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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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3: 《세계를 뒤흔든 열흘》 -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책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협상: 전쟁에 목매는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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