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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독립 선언의 울림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배신한 자치정부
난국을 타개할 힘은 노동자 대중의 독립적 행동에 있다

10월 27일 독립 선언 이후 카탈루냐 독립 운동은 격랑에 부닥치고 있다.

우파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가 이끄는 스페인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라호이는 독립 선언 후 30분도 지나지 않아 카탈루냐 자치정부·자치의회 해산과 12월 21일 재선거 실시를 선포했다. 10월 30일 스페인 검찰은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 카를레스 푸지데몬 등을 반역죄로 기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푸지데몬은 자치정부 내각 절반을 이끌고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도망쳤다. 10월 31일(현지 시각) 푸지데몬은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라호이의 자치정부·자치의회 해산과 재선거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푸지데몬은 라호이를 달래려면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고 자치의회 소속 정당들의 지도부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미 카탈루냐 독립 운동을 한 차례 배신한 바 있는 푸지데몬의 행태는 카탈루냐 곳곳에서 “인간 장벽”을 치고 스페인 정부의 침탈 시도에 맞섰던 공무원 노동자들의 담대함과 뚜렷이 대조된다.

푸지데몬은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 공격과 천대에 맞서 싸워 온 카탈루냐 민중의 열망을 배신했다 ⓒ출처 Manu Gomez

푸지데몬의 굴복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취약성을 보여 준다

푸지데몬은 자신의 행태를 “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세계[유럽연합]에 보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유럽연합에게도 외면받고 있다. 시사적이게도, 벨기에 총리실은 10월 31일 총리실 기자회견장을 쓰게 해 달라는 푸지데몬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10월 1일 국민투표 이후 푸지데몬은 줄곧 유럽연합의 중재 하에 라호이와 타협하려 했다. 라호이가 이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유럽연합 주요 지도자들이 입을 모아 라호이의 탄압을 지지했는데도 말이다.

기성 언론들은 사태를 라호이 대 푸지데몬의 정략 싸움으로 풀이하지만, 푸지데몬이 응답 없는 구애에 매달리는 것은 그가 속한 카탈루냐민주당(PDeCat, 푸지데몬의 통합과단결당(CiU)이 다른 우파 정당들과 합당하며 만든 신자유주의 정당)이 대변하는 계급의 이해관계와 연관 지어 봐야 한다.

국민투표 이후 카탈루냐 자본가들은 줄곧 독립에 반대해 왔다. 이들은 독립으로 스페인과 유럽 자본주의 질서가 타격을 입고 자신들이 그 질서에서 배제될까 두려워한다.(이미 10월 넷째 주까지 카탈루냐 기업 수백 곳이 본사를 카탈루냐 밖으로 옮긴 배경이다.)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카탈루냐민주당은 이제껏 카탈루냐에서 긴축을 추진해 왔다. 이들은 언제나 “세계[유럽연합] 질서 안에서의 자결권”을 주장했는데, 이는 유럽연합의 기준에 맞춰 긴축을 시행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2011년 5월 스페인 전역에서 광장 점거 운동이 벌어졌을 때 카탈루냐에서 시위대가 분노를 표출한 대상은 당시 자치정부 여당 통합과단결당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독립 운동은 스페인 지배자들에도 위협적이지만(카탈루냐 독립이 실현되면 이는 스페인 국가가 ‘1978년 체제’를 갖춘 이래 최대 도전이다), 카탈루냐 자본가들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의 경찰 투입에 맞서 카탈루냐 항만 노동자들이 항만 봉쇄 전면 파업을 벌이는 등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분출하는 것이 특히 그렇다. 노동자 투쟁은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전투성을 고무하는 구실을 해 왔고, 그 속에서 반자본주의 정당 민중연합(CUP)의 영향력도 늘었다.

결국 독립이 선언된 것도 바로 이런 아래로부터 행동 덕이었다. 선언 전날인 26일 푸지데몬이 중앙정부의 요구를 수용할 뜻을 비췄을 때,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벌이고 ‘공화국 [즉각] 독립’과 ‘푸지데몬 사퇴’를 구호로 외치며 바르셀로나를 행진했다. 그 압력으로 자치정부가 분열할 위기에 처하면서 푸지데몬은 독립을 선언해야만 했다.

푸지데몬과 카탈루냐민주당은 선거에 참여해 승리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며 치러지는 재선거는 (그 선거를 누가 감독하든) 독립 선언을 되돌리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푸지데몬은 중앙정부가 자신의 반역죄 혐의에 대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면 출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이전에 반역죄로 재판 받은 카탈루냐 수반 루이스 콤파니스는 징역 30년 형을 선고받고 5년 만에 사형당했다.) 아직 구속돼 있는 독립 운동의 지도적 활동가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대중 시위가 분출한 상황에서 이는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다.

이를 두고 10월 1일 국민투표를 조직한 지역 치안위원회 활동가 마리나 모란테는 이렇게 지적했다. “푸지데몬은 이제껏 카탈루냐 민중의 염원을 따르지 않으려 기를 썼습니다. 독립 운동이 카탈루냐 [지배] 엘리트들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립 운동의 우군을 자처했던 푸지데몬 같은 자들이 바로 그 [지배] 엘리트의 일부임을, 그들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독립 운동 배신]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역사에서 거듭 드러났듯,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만이 진정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출처 Joan Morejón(플리커)

유감스런 스페인 좌파의 분열

유감스럽게도, 카탈루냐와 바스크 이외의 지역을 기반으로 둔 스페인 좌파들은 대부분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한다. 스페인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사회당은 라호이 정부의 공격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좌파연합(IU, 공산당이 주도한다)과 신생 정당 포데모스는 라호이의 탄압과 독립 운동 사이에서 양비론을 펴고 있다. 두 정당은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면 스페인 나머지 지역에서 표를 잃게 될까 두려워한다. 또, 기존 국가기구를 이용해 개혁을 이루겠다는 개혁주의 전략 때문에 스페인 국가가 약해지는 것도 두려워한다.

급진좌파를 자임하는 포데모스의 행보는 특히 우려스럽다. 포데모스 카탈루냐 지부 소속 자치정부 의원들이 라호이의 자치의회 해산 결정에 맞서는 입장을 채택하려 하자, 포데모스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10월 30일 포데모스 카탈루냐 지부에 독립 반대 입장을 채택하라고 강요했다.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앞날은?

10월 31일 푸지데몬의 기자회견 이후 독립 운동은 주춤하고 있다. 총파업을 준비하던 노조들은 파업 계획을 유보했다. 카탈루냐 북부 지로나주(州) 청사 방어 시위를 주도한 한 공무원 노동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앙정부의 공격에 맞서 자치정부가 공화국 수립 계획을 발표할 줄 알았어요. 그랬다면 우리가 거리에서 [투쟁해] 그 계획을 실현했겠지요.

“우리는 파업, 도로 봉쇄 계획을 짜고 있었어요. 그런데 푸지데몬이 저렇게 나오니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카탈루냐 독립 운동은 오만한 프랑코 군부독재 잔당에 맞서는 투쟁이다. 독립 운동이 패배하면 라호이 정부와 유럽연합은 물론이거니와 스페인의 극우 파시스트들이 기세를 올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라호이가 헌법 155조를 발동해 자치정부의 독립 선언을 공격하면서 스페인의 극우 파시스트들은 카탈루냐 주요 도시들로 집결해 독립 반대 집회를 주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0월 31일 민중연합을 비롯한 카탈루냐 좌파들은 옳게도 푸지데몬의 배신을 비판하며 재선거 거부 등을 걸고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독립 운동이 난국을 타개하고 자결권을 지켜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길로 전진하는 길은, 오직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의 힘이 발휘될 때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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