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박노자 교수(이하 존칭 생략)가 저술한 《러시아 혁명사 강의》를 읽어봤다. 

그런데 박노자가 《러시아 혁명사 강의》 6강에서 “소련이나, 중국, 북한은 [서방자본주의처럼] 그렇게 착취할 수 있는 식민지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이들은 일국 내 농업 부문에서 잉여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나아갔습니다."(260쪽)라고 서술한 것을 읽고 정말 실망스러웠다. 양심수조차 자본주의 국가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말을 듣고 더욱 아쉬웠다. 이는 소련과 중국이 각각 중앙아시아를 ‘식민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란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노자가 지적한대로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한 소련은 이전 러시아 혁명의 유산을 짓밟았다. 이 때 소수민족들의 권리도 억압당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자신과 같은 민족인 조지아(그루지야는 러시아식 표기)인들의 반란을 진압해서 ‘조지아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반면에 레닌은 이러한 스탈린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또한 서방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있는 투르크족과의 연대를 주장했던 술탄 갈리예프를 “공산주의자로 위장한 투르크족 민족주의자”라며 공산당에서 제명했다.

 스탈린은 소수민족을 강제로 분리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키르기즈족은 산악 지대와 초원 지대에서 오랫동안 같은 민족으로 살았는데도 생활하는 지역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산악 거주 키르기스족은 “키르기즈 소비에트 공화국(오늘날의 키르키스스탄)”, 초원 거주 키르기즈족은 “카자흐 소비에트 공화국”(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카자흐족”란 단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살았던 투르크계열의 ‘코사크’족에서 따온 것이다.)으로 분리시켰다.

현재 중국이 지배하는 동투르키스탄(‘동쪽 투르크족들의 땅’이란 뜻, 제정 러시아가 지배한 지역은 ‘서투르키스탄’이다.)도 마찬가지다.

동투르키스탄 민중들은 자신들을 ‘무슬림’ 또는 ‘자기가 사는 지역의 주민’이라고만 규정했다. 그런데 청나라가 신장에 한족들을 이주시키고, 위구르족 지식인 자녀들에 대한 중국어, 한문 교육을 시키는 등 동화 정책을 펼치자 이를 계기로 민족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동투르키스탄 민중들의 저항을 중국 국민당 정부와 중소우호조약을 맺기 위한 압력을 넣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했다. 그리고 훗날 동투르키스탄을 점령한 중국 공산당은 소련에 편입되기를 원하거나, 소련식 연방제(“소비에트” 공화국) 형태로 동투르키스탄을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친소 성향의 위구르족 공산주의자들을 ‘분열주의자’로 규정하고 처벌했다. 그래서 일부 위구르족들과 카자흐족들은 이에 반대해서 중국정부에 맞서거나 소련에 망명하기도 했다.

 오늘날 동투르키스탄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면화 수입의 대부분은 이주한 한족들과 중국 정부의 손으로 넘어간다. 반면 많은 동투르키스탄 민중들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데도 중국과 소련에 과연 “식민지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