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제9기 임원 선거가 4개 후보조가 입후보한 가운데 시작됐다. 아직 선거운동 초기여서인지 후보 진영의 정책 공약 자료가 다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부산·울산 유세를 통해 각 후보조 강조점의 윤곽은 드러났다.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은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을 위한 전망이나 혁신 과제도 상당 부분 이 문제와 관계있다.

11월 9일 민주노총 임원 선거 울산 유세 ⓒ김지태

노사정위 참여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인 후보조는 윤해모-손종미-유완형 후보조(기호3번)다. 4개 후보조 가운데 가장 온건한 팀으로, 사회연대노동포럼 유관 후보조이다. 윤해모 위원장 후보는 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을 지냈고, 사회연대노동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이다.

사회연대노동포럼은 지난 대선에서 공개적인 문재인 후보 지지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윤해모 후보는 부산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데 일조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서 민주당 지지를 열어 둬야 한다고도 했다.

그 단체의 초대 상임대표였던 인사가 바로 문성현 노사정위 위원장이다. 문성현 씨는 대선 때도 문재인 캠프 노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친문 인사다. 그러니 3번 후보조가 노사정위 참여에 열의 있는 게 이상할 게 없다.

윤해모 후보는 부산 유세에서 민주노총을 비판했다. “지금처럼 대안 없는 투쟁, 참여 없는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윤해모 후보가 말하는 대안은 사회연대임금, 사회연대복지 정책이다. 그리고 ‘참여’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윤해모 후보조가 내건 슬로건, “끌려갈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는 사회적 대화에 적극 참가해 주도하겠다는 뜻이다.(‘주도’하겠다는 생각은 환상이라는 반론에 부딪힐 수 있다.)

청소노동자인 손종미 수석부위원장 후보는 “현장을 잘 모르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문제는 계급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지 현장을 잘 몰라서가 아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데서 잘 드러났듯이 말이다.

“반대와 저지를 넘어”서 대화?

4개 후보조 가운데 스펙트럼상 중간에 자리잡은 두 개조가 있다. 하나는 조상수-김창곤-이미숙 후보조이고, 다른 하나는 김명환-김경자-백석근 후보조다.

이 둘은 윤해모 후보조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에 대한 의존을 경계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대에 맞게 산업과 정부 등 각급 교섭 공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후보조 모두 “교섭(대화)과 투쟁”의 병행을 주장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강조점은 분명 “교섭(대화)”에 있다.

김명환-김경자-백석근 후보조(기호1번)는 전통적인 국민파 성향의 후보조로, 산별노조 강화와 “정치세력화 계속 추진”을 주장한다. 산별을 중심에 세우고 진보정치 대통합을 주도할 수 있는 팀임을 내세우고 있다.

김명환 후보조는 “반대와 저지를 넘어”서야 한다며 “대화와 투쟁 병행”, “노동의 미래 주도”를 강조한다. 그동안 반대와 저지 투쟁만 한 것이 문제였다는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주장을 반복하는 셈이다. 김명환 위원장 후보는 이렇게 역설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사회적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고립” 극복이나 “사회연대전략”도 빠질 리 없다.

이런 리더십 개념에 따르면, 투쟁은 마치 기본이나 되는 양 논외가 되고, 문재인 시대 노동조합 지도자의 자질은 교섭력에 달려 있는 것이 된다.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후보는 이를 뒷받침하고자 부산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시절에는 투쟁만 잘하면 됐지만 문재인 시대는 복잡하다.”

김명환 위원장 후보는 23일간의 철도 파업을 이끈 철도노조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백석근 사무총장 후보는 김 후보가 철도파업을 승리로 이끌어 민영화를 저지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3일간이나 파업에 참가한 철도 노동자들은 영웅적이었지만, 당시 김명환 위원장은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파업을 일방 종료시켰다. 눈물을 삼키며 현장에 복귀한 노동자들은 강제 전출 등 보복과 노동조건 악화를 겪어야 했다.

“연대노조”와 정규직 양보

조상수-김창곤-이미숙 후보조(기호4번)는 “당당하게 만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주요 슬로건의 하나로 내세웠다. 조상수 위원장 후보는 부산 유세에서 민주노총의 청와대 면담 불참을 비판하며 비전과 전략이 없으니 우왕좌왕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조상수 후보조가 제시하는 비전과 전략의 하나는 ‘사회적 대화’ 참여다. 기업과 국가(둘 다 자본주의 조직인데도)의 운영에 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 참가, 초기업단위 교섭, 노·정 협의 제도화, 사안별 노사정 대화 등이 그것이다.

조상수 후보도 투쟁과 교섭의 ‘병행’을 주장하지만, 그의 비판은 명백히 투쟁 우위 방식과 노동운동 좌파를 겨냥하고 있다. 그는 3년 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후보로 나섰을 때, 스스로 민주노총 임원 선거의 한상균 후보조와 같은 편처럼 보이기를 원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상수 후보는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을 지낸 3년 동안 상당히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조상수 후보조는 대안적인 노조의 상으로 “연대노조”를 제시한다. 연대임금, 일자리연대, 복지연대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강조점은 조상수 후보조가 사회연대, 사회운동노조를 강조해 온 노동조합 실무자들과 정파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조상수 후보는 울산 유세에서 “자본이 정규직 양보로 격차 해소를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말하는 연대임금, 일자리연대 등은 정규직 양보론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규직 양보를 할 것인가, 재벌의 곳간을 열 것인가” 하고 묻고는, “입체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갔다.

그의 실천을 봐도 그가 말하는 “연대노조”와 정규직 양보 사이에 만리장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조상수 후보가 위원장이던 시절 공공운수노조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규직 양보안들을 제시한 바 있고, 공공상생연대기금도 추진했다. 문재인은 연대기금 추진을 매우 환영했다.

“투쟁 없는 교섭은 쟁취도 어렵다”

4개의 후보조 가운데 가장 왼쪽에 이호동-고종환-권수정 후보조가 있다. 이호동 후보조는 현 한상균 집행부의 계승을 자임하고 있다. 부산 유세에서 이호동 후보는 “한상균 집행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이호동-고종환-권수정 후보조는 “투쟁 없는 교섭은 쟁취도 어렵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대타협은 “노동자 양보의 강제”라며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의 힘이 있을 때만 대등한 교섭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다른 후보조와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이호동 위원장 후보는 38일간의 발전노조 파업을 이끈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권수정 사무총장 후보는 자신의 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조바심을 내며 투쟁을 그르치지 않는 뚝심’과 ‘연대’를 승리의 비결로 강조했다. 그는 현대차 아산사내하청 해고자다.

이호동 후보조는 민주노총을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는 조직,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주장한다.(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직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노동조합 좌파들이 한편으로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론의 영향을 받고 다른 한편 노동조합 내 온건화 압력에 응답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아갈지는 매우 중요하다. 좌파의 단결, 더 나아가 노동계급의 단결 강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지난 임원 선거 때와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좌파의 단결이 약화했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지 223호 ‘민주노총 임원선거 운동, 어떻게 되고 있나?’를 참고하시오.)

이호동 위원장 후보는 지난 11월 4일 3단체(노동전선, 노동당 노동위, 변혁당)와 일부 활동가들이 참가한 ‘전국활동가대회’에서 좌파 공동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이후 노동당 노동위가 공동대응에서 철수하기로 하고 변혁당도 별로 열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좌파 공동대응 선본 활동은 일단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 후보들이 단결을 위한 대안을 잘 제시한다면 전투적 조합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

노·사·정 동반자관계 중시론이 노동조합의 헤게모니를 잡지 못하도록 좌파 후보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노동계 초청 청와대 만찬.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의 핵심 쟁점은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이다 ⓒ출처 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