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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정세가 변하고 있다

“화염과 분노”로 가득했던 트럼프의 유엔 연설 ⓒ출처 백악관 제공 영상 캡처

현 상황을 2011년과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파악해 보자. 2011년은 아래와 같은 대사건들이 일어났다.

  •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혁명.
  • 스페인 ‘분노한 사람들’의 5·15 운동.
  • 미국과 그리스 등지의 오큐파이 운동.
  • 유럽 일부의 파업 운동과 유럽 전역의 노동조합 시위.
  • 영국의 폭동과 200만 명 연금 파업.
  • 한국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투쟁과 희망버스의 성공적 동원.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2011년을 ‘제2의 1968년’이라고도 불렀다.

특히, 아랍 혁명은 21세기가 혁명의 세기가 될 것임을 확인해 줬다.

물론 2011년의 투쟁들은 그 즉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특히, 이집트와 시리아에서는 반혁명이 성공했다.

하지만 즉각적 성과를 못 거뒀다고 해서 급진화의 효과가 없어진 건 아니다. 급진화는 이후 그리스 등 일부 유럽 나라들에서 좌파적 개혁주의의 급부상이라는 효과를 냈던 것이다. 2015년 그리스에서 시리자 정부가 등장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포데모스가 부상하고 있고, 영국에서 제러미 코빈과 그의 좌파 지지자들이 노동당 지도부를 장악했다.

비록 너무 쉽게 양보했지만 미국 버니 샌더스 현상도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중심부에서 일어난 반항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지금 포데모스와 코빈 노동당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크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좌파의 분열이 심하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와 이라크 전쟁 반대가 결합돼 전개된 대안세계화운동이 이럭저럭 주요 좌파들을 결속시킬 수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는 NL과 NGO,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 일부 급진좌파도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일정한 몫을 담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촛불 운동 패배와 이후 지속돼 온 경기 침체가 상호작용을 한 결과, 지금 진보·좌파 진영의 분열과 균열은 심각하다.

유럽에서 분열과 균열의 주요인은 좌파적 개혁주의와 이슬람 문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정학적 긴장과 불안정으로 북한 핵무기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돼 왔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라는 말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 하의 노사관계 문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한국 ─ 개혁주의의 부상

이 소절에서는 한국의 개혁주의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한다. 1년 전 박근혜 퇴진 운동이 마침내 결실을 거둬 지금 개혁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친자본주의적 개혁주의이지만, 천대받는 민중 속에서 여권을 지지하는 세력은 친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개혁주의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비록 박근혜 퇴진 운동이 혁명은 아니었지만, 그 운동의 최초 수혜자가 개혁주의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비슷한 역학관계가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1917년 2월 혁명 후 열린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대의원 1000명 가운데 볼셰비키 당원은 겨우 60명밖에 안 되었다. 나머지는 죄다 개혁주의자들이었다.

이는 노동자 대중의 의식이 모순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중은 지배계급의 관념들을 일부 받아들이거나 일부 적응하면서도, 일부 거부하고 변화를 향한 염원을 키우는 모습을 보인다.

가령 문재인 정부의 어중간한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노동계급의 당혹스런 반응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정부의 대북·대미 정책이 반동적인데도 노동자들이 북한 핵과 미국의 핵우산과 구여권의 재기 가능성 등을 의식해 대체로 수용하는 듯한 정서인 것도 모순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촛불 운동에서 별로 한 일이 없는 문재인과 민주당의 부상 자체가 대중의 모순된 의식의 (단기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개혁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정의당만이 개혁주의 세력인 것은 아니다. 다른 많은 조류들이 있다. 노동당은 좌파적인 개혁주의 정당이다. 민중당은 개혁주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스탈린주의 정당이지만, 대개 좌파적 개혁주의 노선을 걷는다.(때로는 NGO들을 추수하느라 전혀 좌파적이라고 할 수 없는 너무 온건한 개혁 노선을 취한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부상하는 개혁주의 세력은 19세기 말의 고전적 사회민주주의와 닮은, 즉 좌파적인 사회민주주의이다. 비록 시리자와 포데모스, 코빈의 영국 노동당 등 상이한 변형들이 있지만 말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운동도 대부분 개혁주의의 일부다. 페미니즘은 계급을 초월한 여성의 단결이라는 계급 협력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페미니즘 가운데는 매우 급진적인 조류가 있다.(필자는 이를 초超페미니즘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급진성은 젠더 이분법적 세계관이라는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는 문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물론 개혁주의의 득세에 직면해 ‘혁명가들은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어’ 하고 생각한다면 그릇된 결론일 것이다.

왜냐하면 1970년대 이후로는 과거와 달리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 침체로 자본주의가 양보를 매우 꺼리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옛 소련 블록 몰락의 결과, 국가 권력을 지렛대 삼아 사회 개혁을 한다는 좌파적 개혁주의의 이상과 방향성이 동요하고 있고 그다지 신뢰받지도 못하고 있다.


11월 동아시아로 오면서 트럼프가 동원한 항공모함 ⓒ출처 미 해군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공세

지금 한국의 국내 정치에서 개혁주의가 부상하고 있다면, 동북아시아 지정학 분야에서는 트럼프를 배출한 정치적 압력이 이 지역으로 넘쳐 들어오고 있다. 트로츠키는 제국주의 국가의 대외 정책은 국내 정책의 연장이라고 지적했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중국과 일본과 한국의 경제들이 자리 잡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다. 그런 만큼 이 지역은 제국주의적 경쟁도 가장 격심한 지역이다. 정부 각료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향력 있는 트럼프 자문 스티븐 배넌은 지난 8월 16일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의 경제 전쟁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전임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을 주도하고 자기 나름의 ‘실크로드’를 유라시아 지역에 구축하는 등의 일이 세계경제 내에서의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킬까 봐 우려했다. 그래서 그는 적극적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추진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비록 트럼프는 (시진핑에게는 반갑게도) TPP에서 탈퇴했지만 말이다.

오바마 하에서든 트럼프 하에서든 미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력 균형이 중국 쪽으로 약간 이동했다는 국방부 보고가 있었는데, 이에 트럼프는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대항해 손잡는 것도 미국에게는 악몽의 시나리오다. 미 국방부의 위임을 받은 전략국제연구센터가 이 우려를 심각하게 표현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에 대한 수사도 트럼프의 친러시아 성향에 대한 견제의 성격을 품고 있다.

이런 첨예한 제국주의적 갈등 상황에서 최근에는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고 일본열도를 넘어가는 미사일 실험을 했다.

그리고 미국은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를 북한 앞바다로 비행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트럼프의 험악한 말이나, 미국이나 북한 어느 한쪽의 계산 착오로 재래식 전쟁이나 심지어 핵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또한 그다지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

특히, 트럼프의 두 달 전 UN 총회 연설은 실로 으스스했다. 그 연설의 핵심 메시지는 미국 우선주의였는데, “국권,” “주권’이라는 말을 무려 22번이나 연설에서 사용했다.

이는 자본주의 열강이 각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경쟁을 벌이는 것을 당연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대외적으로 ‘한번 해보자’,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오바마 시절의 미국 제국주의는 너무 물러 터졌다는 함축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기존 세계질서를 미국에게 유리해지도록 흔들어 놓을 태세가 돼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이런 호언장담들은 자신의 핵심 지지자들인 미국 서민층(중간계급 하층과 일부 노동자층) 내의 국수주의자들과 이민 혐오자들의 사기를 북돋는 내용이었다.

물론 트럼프는 1년 전 대선 후보 시절에 그가 보였던 어느 정도 고립주의적인 경향을 이번 UN 총회 연설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대기업과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을 의식한 것이었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미국의 적들(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에 맞서 계속 동맹 관계를 다지자고 호소했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미국의 국권이 중요한 건 세계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미국의 국방예산안이 초당적 지지를 받아 의회에서 통과됐다고 자랑했다.

미국의 군비지출은 미국 다음가는 10개국의 군비지출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많다.

물론 중국은 트럼프가 미국을 지지하라고 호소한 자들에 포함되지 않는다.

트럼프가 가장 험악한 말을 퍼부은 국가가 바로 북한이었다. 며칠 전 한국 국회에서의 연설에서도 트럼프는 북한을 22분간 저주했다.

지난 몇 달간 긴장이 고조돼 온 지역도 바로 한반도 주변이다.

트럼프는 UN 연설에서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고,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북한 지도자들만 대상으로 삼지 않고 북한 주민 전체도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전 미국 대통령들의 위협과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이다.

이후 트럼프의 각료들, 가령 니키 헤일리 UN 주재 미국대사, “미친 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쏟아 냈다.

물론 틸러슨은 3주 전쯤 트럼프를 “멍청이”라고 불렀고, 또 “트럼프도 북한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북한과 연계가 있는 은행들과 기업들, 개인들을 겨냥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내리고, 군사훈련의 수위를 대폭 높인 수준이다. 이는 일본과 한국 방문 중에도 트럼프가 확인한 사항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선에 성공한 비결이 미국 우선주의와 인종차별, 성차별, 섹슈얼리티 차별 등 반동적 관념을 가진 미국 서민층의 반(反)대기업 정서를 결합시킨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반면 공화당 주류와 민주당이라는 전통적인 양당 체제는 대기업들의 지지를 받아 왔다.)

또한 트럼프의 부상으로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우익이 사기가 오른 반면 개혁주의적 진보세력은 우울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세력균형은 트럼프가 동북아시아에서 점점 더 강수를 쓰도록 고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은 미국의 동맹인 도쿄와 서울을 공격할 것이다.

IISS, 즉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겨우 2~3주 안에 서울 주민 중 일백만 명의 사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추산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협정을 인증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이 얻었을 메시지는 명약관화하다. 미국과의 영구 평화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북한 핵을 문제 삼으며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중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 때문이므로, 미국의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영구 평화는 상정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영구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상황 인식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으로 바뀌게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게 되면 행정부와 군부의 지도자들은 사고 방법을 바꾸기 시작한다. 전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언제 전쟁을 벌이는 게 가장 유리한 시점이냐가 계산법이 되는 것이다.

그때는 그동안 전쟁에 그리 의욕을 보이지 않았거나 승리를 낙관하지 않던 자들도 일전을 벌이기로 마음먹는 경향이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두 달 전 이런 사실을 상기시켰다. “1962년 10월 미국과 소련은 쿠바 미사일 배치 문제로 거의 핵전쟁을 벌일 뻔했다. 훨씬 덜 알려져 있지만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1983년 10월 소련 지배자들은 미국이 군사 훈련을 빙자해 선제공격을 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들이 선수를 칠까 고려했다. 그 순간들은 십중팔구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공포의 세력균형”이 한반도에 “제한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재래식 전쟁의 가능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2퍼센트 미만에 불과한 확률도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의 손실과 곱한 기댓값은 엄청나다. 핵전쟁이든 재래식 전쟁이든 판돈이 한반도 주변에서는 너무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