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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네덜란드 노사정 대타협은 어떻게 노동운동을 약화시켰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며 네덜란드의 노사정 대타협을 모델로 제시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회주의자 로프 게렛센(사진)은 네덜란드에서 노사정 합의가 고용 불안정, 임금 억제, 불평등 심화를 가져왔다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로프 게렛센은 네덜란드의 월간 《사회주의자》 기자다. [ ] 안의 내용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추가한 것이다.

로프 게렛센

네덜란드 노동조합 운동은 1970년대의 위상·전통과 비교해 봤을 때, 지난 수십 년간 상당히 약화됐다.

다른 나라들의 노동조합 운동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네덜란드 노동조합 운동에는 ‘폴더 모델’로 알려진 고유한 전통이 있다. 폴더 모델은 일종의 실용주의로, 협력을 위해 [계급 간] 차이를 제쳐 놓는 것이다. 독일 총리였던 헬무트 콜이 이 ‘모델’의 열렬한 팬이었다.

1980년대 이래 네덜란드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 하나는 1982년 11월 악명 높은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경제 위기가 닥치고 실업이 늘던 시기였다. 당시 뤼트 뤼버르스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는 새로운 임금 [억제] 정책 등 여러 수단으로 노동계를 위협했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도입됐다. 바세나르 협약은 그 신호탄이었다. 실업이 늘고, 많은 영역에서 규제가 없어지고, 공공기관과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됐다.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졌고, 사회보장제도와 임금·노동자 관련 법이 공격받았다. 그 결과,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계속 커졌다. 아동 수십만 명이 가난하게 자랐다.

투쟁 전통이 약화되다

바세나르 협약은 ‘콕-판 베인 협약’으로도 알려져 있다. 판 베인은 가장 큰 기업가 단체의 회장이었고, 빔 콕은 가장 큰 노총인 네덜란드노총(FNV)의 위원장이었다. 네덜란드노총은 1982년 초 사회민주주의 노조와 가톨릭 노조가 합병해 설립됐다.(개신교 노조는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사회민주주의 정당[노동당] 대표가 된 빔 콕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하는 데 앞장섰다. 이는 노동당과 노동조합 운동,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뜻했다. 시장 논리가 맹위를 떨친 반면 사회적 영역은 공격받았다.

이는 오랫동안 노동조합 관료층과 사회민주주의가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기업과 노동조합과 그 밖의 여러 부문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가 제도화한 결과였다. 이런 과정은 이른바 “사회적 파트너들”과 정부 간 대화와 합의라는 이름으로 미화됐다.

그 결과 파업이 크게 줄고 노동‘손실’일수도 줄어들었다. 이는 네덜란드 노동계급의 [투쟁] 경험이 적어지고, 전투성과 응집력도 약해졌음을 뜻했다. 바세나르 협약을 정당화하며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일자리다”(독일 총리 헬무트 슈미트도 비슷한 말을 했다)라거나, “더 낮은 임금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거나 적어도 실업률을 낮춘다” 따위의 거짓말이 널리 동원됐다.

바세나르 협약으로 기업가들은 물가 수당[임단협 당시 예상한 물가인상률보다 물가가 더 오를 경우 사측이 자동으로 지급하는 수당]을 폐지하는 등 임금을 낮추고, 임금에 차등을 두고, 주주배당금을 임금 인상률과 분리시켰다. 일자리도 더 불안정해졌다.

노동조건 악화와 노동자 지위 하락

네덜란드 안팎의 경제·정치·사회적 변화도 노동조합 운동의 약화에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노동조합 운동이 처한 환경과 그 내부 상황은 20~30년 전과는 많이 다르다. 유럽연합 통합의 진척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이 기간 동안 일어난 대표적 변화다.

고용 시장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여성 노동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중요한 변화의 하나다. 비록 많은 여성이 대체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적게 벌지만 말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운동(특히 능동적이고 전투적인 구성원들)은 여성들의 이해관계, 기회와 바람, 경험에 부합하는 새로운 전략과 전술, 요구와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에는 돌봄 노동자(보육시설·병원)와 청소 노동자들의 행동이 있었다. 또한 이주민 출신 노동자 숫자도 늘고 있다. 여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이 노동조합 투쟁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고용 시장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정규직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줄고 임시직이나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다. 임시직, 유연 노동, ‘0시간 계약’[호출 노동], 피고용인 없는 수많은 ‘개인사업자’(ZZP-er)[특수고용노동자]가 그런 사례다. 네덜란드 노동자의 20퍼센트가량이 유연 근로계약을 맺고 있고, 12퍼센트 이상이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둘 다 유럽연합 평균보다 훨씬 높다.

이런 변화 때문에 노동자들의 지위가 약해졌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투쟁하고 조직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러나 이런 노동자들이 조직돼 행동에 나서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네덜란드에서 확인됐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청소·보건·슈퍼마켓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이런 행동들은 노동조합 운동의 고령화를 막고, 청년들이 노동조합 운동과 작업장에서 열정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데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섰지만, 노동조합은 이런 투쟁들을 반영해 기존의 고착화된 형태와 틀을 바꾸려는 구조적인 노력을 등한시했다. 낮아진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고, 노동조합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면 바로 그런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패배의 경험

파업 전통이 매우 약하다는 것과 ‘폴더 모델’이 제도화돼 있어 노조 관료의 개혁주의에 대한 견제가 약하다는 것은 네덜란드 노동조합 운동의 여전한 약점이다.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조합 운동을 위해 싸우는 조직 좌파 세력이 단단하다고 말할 수 없다.

2007~2008년 금융·경제 위기 이후 [노동조건] 악화가 계속되면서 심지어 중앙은행장과 재무부 장관조차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할 지경이 된 것이 네덜란드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최근 네덜란드 노동자들(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은 은퇴 연령 연장이라는 또 한 번의 패배를 겪었다. 2004년에 35만 명 이상이 이에 반대해 파업했다.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커다란 하루 파업이었다.

그러나 현장조합원들의 이런 투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관료들은 투쟁을 전진시키길 거부했다. 현장조합원들의 영향력은 그런 관료들을 투쟁으로 등 떠밀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관료들은 이 투쟁을 배신했고 연금 지급 연령이 늦춰졌다.

노동조합 운동은 퇴직 연령 인하 요구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아주 오랜 요구)를 결합시키고 이를 투쟁의 초점으로 삼아야 한다. 엄청난 자산을 보유한 네덜란드 퇴직기금을 민영화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세금 체계의 변화도 신자유주의 정치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불평등이 상당히 커졌고, 네덜란드는 여전히 조세회피처 국가다. 지난 수십 년간 소득세의 최상위 구간 세율은 72퍼센트에서 52퍼센트로 떨어졌다. 파트너십[합명·합자회사] 과세율은 34.5퍼센트에서 25.5퍼센트로 내렸다. 반면, 부가가치세율이 21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높아서 평범한 사람들은 생활비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

노사정 합의가 강요해 온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최근 대규모 파업에 나선 네덜란드 초등교사들 ⓒ출처 네덜란드 교원노조

가능성을 보여 준 최근 초등교사 파업

폴더 모델의 영향이 강하다고 해서 노동조합 투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매우 반갑게도 초등학교 교사들이 대거 행동에 돌입했다. SNS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4만 명이 참가한 행동 위원회가 결성됐다.

주요 노조 바깥에서 시작된 이 행동에 노조들도 합류했다. 그러지 않았다간 조합원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 교사들은 노조와 함께 대규모 파업을 준비했다.

정부는 매우 두려워하며 파업을 막으려고 예산 확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초등교사들은 임금을 다른 교사들 수준으로 올리고 행정 업무를 줄이려면 예산 확대 폭을 그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했다.

약 9만 명(참가율 95퍼센트)이 참가한 이번 초등교사 파업은 1980년대 이래 처음이다. 파업 직후 노조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조합원 과반(63퍼센트)이 노조가 더 많은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고 답했다. 투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 봤듯이 고용주와 노조 사이의 사회적 합의 모델은 실패로 끝났다. 노동조합 운동은 약화됐고 여전히 노조 관료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운동은 이제 [3월 선거로 더한층 우경화한] 새 우파 정부, 끝이 안 보이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