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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타임스〉가 역설적으로 보여 준 투기자본 규제 필요성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가 ‘5퍼센트 룰’을 문제 삼아, 한국이 “정신분열증”을 보이며 외국 자본 반대 정서로 돌아섰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이튿날 재경부 장관이 직접 “외국인 투자를 적극 환영”하며, 투자 촉진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다짐했고, 금융당국자들이 총동원돼 “외국자본의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하려는 게 결코 아니”라고 해명했다.

사실,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장 개방과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 기조는 변한 게 없다. 지난 2월 발표된 청와대 경제보좌관실 보고서는 “투기자본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이 많으나,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며, 규제 강화는 “참여정부의 정책 방향과 상치”된다고 밝혔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대외경제위원회가 4월 6일 밝힌 ‘선진통상국가’ 계획도 금융부문의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비롯한 각종 법제도를 ‘글로벌 기준에 맞출 것’을 분명히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한국의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지적한 ‘5퍼센트 룰’은 기업의 경영권을 목적으로 5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는 경우, 자금출처 등을 밝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미국의 증권법을 본떠 개정한 것에 불과하며, 영국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시행하고 있다.

‘5퍼센트 룰’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시장이 대비하도록 미리 알리는 것일 뿐, 그 자체를 막는 제도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이보다 훨씬 강력한 법을 1934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1980년대 내내 ‘기업사냥꾼’의 투기적 횡포가 기승을 부렸다.

결국 ‘5퍼센트 룰’을 핑계삼은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국 때리기”가 진정으로 노린 것은, 갈수록 확산되는 투기자본 비판 정서였다. 〈조선일보〉는 ‘5퍼센트 룰’에 대한 비판은 적절치 않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한 외국자본 반대 정서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으로, 이것은 우리 운동도 (반대 편에서) 귀담아들을 얘기다. 외국계 투기자본은 그 동안 저평가된 한국 기업에 투자해 감원과 구조조정으로 주가를 띄우고, 되파는 방식으로 차익을 누렸다. 주한미상공회의소와 일본경제인클럽은 한국시장의 투자 수익률을 최고 수준으로 평가했다. 그들의 고수익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했다.

비정규직이 늘고 빈곤층이 급증하는 가운데 투기자본이 얻는 수천억 원에서 1조 원이 넘는 매각차익은 당연히 공분의 대상이다. 더구나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있지 않은가!

갈수록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이제는 투기자본 규제요구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IMF 위기 후 강력한 신화로 자리잡은 ‘규제 철폐’와 ‘시장자유화’, ‘외자도입 만능론’이 도전받기 시작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해 한국 정부와 재계의 태도를 환기하고자 한 듯하지만, 투기자본에 대한 반감은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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