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다 자충수를 둔 김대중

효성 공장 경찰 투입 항의 시위

 김덕엽

 6월 5일, 효성 울산 공장에 30개 중대 3천6백 명의 경찰이 투입됐다. "퇴로는 막지 않겠다던 경찰은 공장을 빠져 나가는 노동자들 중 수배가 내려진 노동자들을 색출하며 250여 명을 연행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울산에서는 연일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다.

 6월 9일, 효성 노동자들의 공장 진입에 연대하기 위해 5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노동자들이 공장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은 또 다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서울·부산 등지에서 집결한 경찰들은 스크럼을 짜고 공장 진입을 시도하는 노동자들을 곤봉과 방패로 잔인하게 공격했다.

 경찰은 환자를 태운 호송차가 시위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막았다. 그들은 또 호송차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학생들까지 연행해 갔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나타난 한 회사 관리자는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여성 노동자에게 욕설을 하며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리고는 "어때?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하며 잔인한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현재 효성 노동자는 울산 성당(복산 성당)으로 거점을 옮겼다. 농성장 곳곳에는 "경찰 병력 철수하고 자율 교섭 보장하라", "효성 공장 경찰력 투입, 김대중은 퇴진하라", "강고한 연대 투쟁 효성 공장 탈환하자"라고 씌여진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무쟁의 13년

 

 무쟁의 13년 동안 효성 노동자들의 울분은 쌓일 대로 쌓여 왔다.

 효성(주)은 1994년 이후 비정규직화에 박차를 가했다. 한 효성 노동자는 말했다. "94년 이후에 회사가 공장 규모를 늘렸다. 시설 증설을 염두에 두면 정규직 노동자 수는 적어도 4천여 명이 돼야 했다."

 그런데도 회사측은 1998년 울산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 1천8백여 명 중 1천 명 이상을 해고했다.

 철저한 노무관리는 13년 무쟁의의 '비결'이었다. 회사는 공장 가동률이 낮은 라인의 직·반장들을 하청회사 사장 자리에 앉혔다.

 회사는 단체협약을 무시한 채 10여 년 동안 반장 교육을 악랄한 노무관리 프로그램으로 이용했다. 언양 공장의 한 조장은 회사가 어떻게 노동자 통제를 종용했는지를 기자에게 전해 줬다.

 "너희들은 관리자다.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을 못 하도록 해라. 총회가 있으면 사람들을 빼돌려라."

 노조 총회 때마다 회사측은 노동자들을 휴가보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추천인 제도까지 만들었다. 추천인이 누군지도,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직장 상사가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내가 추천했는데 당신이 노조 활동을 하면 내가 곤란하다. 당신 때문에 감봉되거나 해고될 수는 없다."

 집회가 있는 날이면 집회가 끝날 때까지 퇴근시키지 않았다. 총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의 명단을 파악하여 감봉 처리하거나 승진 대상에서 제외했다.  

 회사측은 지금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하루에도 수십 차례 전화를 해 "복귀하면 150만 원을 주겠다"며 회유하고 있다.

 

사태 전개

 

 하반기에 화학·섬유 부문의 구조조정이 예고되고 있다. 지금 노동자들의 분노의 초점이 되고 있는 효성 울산 공장의 파업도 회사측의 구조조정에서 비롯했다. 회사측은 일방적으로 전환배치를 단행했다.

 그러자 지난 5월 초부터 효성 노동자들은 '회사측의 일방적인 전환배치 거부와 반장 교육 저지'를 내걸고 투쟁하기 시작했다. 이 투쟁에는 울산 공장뿐 아니라 언양·안양 공장 노동자들도 결합했다.

 5월 6일, 경찰은 박현정 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3인을 구속했다. 회사측은 적극적 노조 활동가 21명을 징계·해고·고소·고발했다. 이것은 '13년 무쟁의'의 신화를 깨는 도화선이 됐다. 노동조합은 파업 찬반 투표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투표일인 5월 16일 회사는 파업 찬반 투표를 막으려고 일부러 공장 가동률을 20퍼센트로 낮췄다. 작업장 문을 땜질로 봉쇄했다. 콘테이너로 정문을 막고 노조원들의 공장 출입도 봉쇄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회사측은 쟁의 절차를 무시한 "불법" 파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회사의 훼방 때문에 쟁의 절차를 밟을 수 없는 상황에서 노조는 25일부터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회사는 파업 열기를 식히려고 교섭을 제안했다. 그러나 회사측이 내 놓은 교섭안은 "파업해서 손해봤으니 2년 동안 임금 동결하자.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기만적이게도, 회사측은 노조에 교섭 제의를 해 놓고는 교섭에는 제대로 나서지 않은 채 28일에 살인적인 용역 깡패들을 파업 농성장에 투입했다. 한 노동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회사는 우리가 싸운 경험이 없다고 얕잡아 봤다. 식칼, 가스총, 전기봉으로 무장한 용역깡패들을 투입하면 우리가 두 손 두 발 들 줄 알았던 모양이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파업 분쇄 시도에 항의해 즉각 전면 파업으로 응수했다. 이번에는 회사측이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

 상황은 점차 효성 공장을 넘어 전국적 초점이 돼 가고 있었다.

 5월 29일, 기업주 단체인 경총은 효성에 경찰력을 투입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당의 내분과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해 거의 마비 지경에 이르자 위기 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경총은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효성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우차 노동자 강제 진압 파문으로 혼쭐이 난 정부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경제5단체장들과 〈조선일보〉까지 가세해 노동자 투쟁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을 재차 주문했다. 정부는 결국 기업주들의 요구에 굴복했다.

 6월 5일 새벽, 현 정부 들어 파업 작업장에 대한 열번째 경찰력 투입인 '울산만 작전'이 감행됐다.  

 

김대중, 주저하다 악수를 두다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저항이 뒤따랐다. 매일 오후 울산 시내에서 항의 가두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효성 투쟁은 효성만의 싸움이 아니다. 총노동과 총자본의 싸움이다."고 강조했다.

 공장 침탈 이틀 뒤인 6월 7일 현대차 노조의 소위원들이 잔업을 거부하고 가두 투쟁에 나섰다. 영남 노동자 대회를 하루 앞둔 6월 8일, 현대차 노조는 잔업 거부를 결정했다.

 태광·고합이 연대 파업에 들어갔다. 두 노조의 연대 파업은 효성 노동자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줬다.

 가장 좋기로는 현대차 같은 대형 노조가 연대 파업을 벌이는 것이다. 지금 효성 노조의 가족대책위는 매일 현대차 정문 앞에서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차 노동자들이 효성 노동자들의 연대 호소에 진중하게 반응하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