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발전노동자와의 토론

이 글은 기사 ‘민주노총 임원 선거 운동 시작되다’에 대한 한 발전노동자가 보낸 독자편지와 그에 대한 필자(김하영)의 답변이다.

민주노총 임원 후보들에 대한 보도가 편파적입니다

발전노동자

기사 내용 중 일부 편파적인 내용이 있어 지적합니다. 김명환 후보에 대한 평가 ⎯ “23일간이나 파업에 참가한 철도 노동자들은 영웅적이었지만, 당시 김명환 위원장은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파업을 일방 종료시켰다. 눈물을 삼키며 현장에 복귀한 노동자들은 강제 전출 등 보복과 노동조건 악화를 겪어야 했다.” ⎯ 에 비추어 이호동 후보에 대한 평가 ⎯ “38일간의 발전노조 파업을 이끈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 는 문제 있어 보입니다. ‘38일간의 발전노조 파업의 주역은 조합원이었으며, 지도부는 굴욕적 잠정합의와 파기. 눈물로 복귀한 조합원들은 차별과 강제전환배치로 고통받았으며 이후 복수노조 출현으로 소수노조로 전락하고 말았다’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필자 김하영의 답변: 공정성의 맥락을 고려해야 합니다

김하영

일면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2002년 발전노조의 파업도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위원장 명령에 따라 종료됐습니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 보죠.

김대중 정부는 발전소 매각 등의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고자 발전노조 파업을 강경 탄압했습니다. 발전 파업에 대한 지지는 상당했고 발전 노동자들의 투지도 완강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2차 연대파업이 예정돼 있던 당일(4월 2일, 파업 37일차) 정부와 교섭해 합의를 하고, 연대파업 철회를 선언했습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발전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상태였습니다. 노정 합의 내용은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파업을 중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민·형사상 처벌과 징계 문제도 남았습니다.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합의 내용이 항복문서나 다름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발전파업 노정 합의서’가 발표된 날 밤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 이호동 위원장이 농성 중인 명동성당 앞에 모였습니다. 경찰과의 몸싸움 끝에 보고대회가 열린 4월 3일 새벽, 이호동 위원장은 “파업의 시작처럼 파업을 끝내는 것도 조합원들의 조직적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4월 3일 이호동 위원장은 일방으로 파업 중단과 현장복귀 명령을 내렸습니다. “승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투쟁은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 이제 현장복귀명령을 내리고자 합니다.”

이호동 위원장은 총회를 열려고 했지만 성원이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조합원들 사이에서 여러 의구심을 낳았습니다. 애초 발전노조 지도부와의 교감 없이 노정 합의 내용이 정해졌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연대파업 철회로 연대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으므로, 파업 중단 명령이 불가피했느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노정 합의안에 대한 반발은 민주노총 산하 다른 노조의 노동자들로부터도 격렬하게 제기됐고, 이 때문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4월 3일 합의안 폐기와 임원 전원 사퇴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비판의 맥락

그러나 제가 지난 글에서 2002년 발전파업 종료에 대한 평가를 담지 않았다 해서 저와 저희 단체가 그것에 대해 무비판적임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 당시 저희 단체의 평가를 보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발전파업의 교훈’, 월간 다함께 12호)

또, 김명환 후보의 잘못만 들추는 편파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김명환 위원장이 2013년 철도파업을 일방 종료시킨 것을 비판한 것은 그가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장을 반박하는 맥락에서였습니다. 그저 모든 후보들 전력 살펴보기의 일환으로 언급한 게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김명환 후보조는 “반대와 저지를 넘어”서야 한다며 사회적 대화 참가, 경영 참가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저는 물었던 것입니다. 과연 “반대와 저지” 투쟁을 한 것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반대와 저지”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는지 말입니다.

2013년 철도파업은 수서KTX 민영화 저지 파업이었습니다. 김명환 위원장이 파업을 종료하기 직전에 철도노조와 여야 국회교통위가 ‘철도발전소위 구성’에 합의했습니다. 이것은 23일간 파업의 결과로서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파업 이듬해 철도공사와는 별개 기업인 수서KTX주식회사가 공식 출범했습니다(현재 주식회사 SR). 2013년 파업 당시 철도노조가 주장했던 대로 수서KTX의 분리 운영은 재정 압박에 따른 조건 악화 압력을 낳고 있습니다. 여전히 철도노조가 철도공사와 주)SR의 재통합을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김명환 후보조는 “투쟁과 교섭의 병행”을 주장합니다. 사실 노동조합의 기능에 비춰 보면 하나마나 한 말입니다. 어떻게 투쟁하고 어떤 내용으로 교섭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위 철도파업 사례는 투쟁만 하고 교섭력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투쟁을 밀어붙일 단호함이 없으면 교섭도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투쟁이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시점에서 투쟁을 도저히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철도 노동자들의 투지와 박근혜 정권에 대한 노동계급 일반의 반감으로 봤을 때 그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침탈 이후 사태 전개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철도노조 지도부가 급작스럽게 투쟁을 종료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여야 국회교통위와의 합의(교섭)는 투쟁의 결과물이었다기보다 투쟁을 정리하는 명분에 가까웠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층의 특성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에 근거한 전략의 필요성

이처럼, 김명환 후보조의 현재 강조점을 비판하고자 2013년 철도파업 종료 과정을 언급한 것이지, 맥락 없이 괜시리 그의 잘못만을 편파적으로 들춰 냈던 게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저와 노동자연대는 좌파 노조 지도자들의 과오를 덮는 일에 아무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저희는 좌파 노조 지도자들이 온건파 노조 지도자들의 문제점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의 주체는 현장 조합원들입니다. 이들을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 엘리트주의적인 좌파 노조 지도자들은 어느 수준에서 투쟁을 흐지부지하거나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종료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노동자연대는 현장 노동자들 자신의 의식과 투지가 가장 중요하고, 좌파 지도자의 당선은 그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아 그들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좌파 지도부 세우기 자체보다 현장 노동자들 자신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에 진정한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 노동자들이 좌파 노조 지도자들을 맹신하다가 그들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 심지어노골적 배신에 마비되는 일이 없도록 늘 좌파 노조 지도자층 일반의 특성을 설명하고, 그들이 한계를 드러냈을 때 대안을 제시하고자 애써 왔습니다.

어떤 단체들은 온건파 지도부에 맞서 좌파 지도부를 세우고 지키는 것을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좌파 지도부를 비판해야 할 때조차 침묵하기도 합니다. 좌파 지도부를 비판해 봤자 온건파 지도자들이나 득을 본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는 (혁명적 전략에 따라) 이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본의 일부가 돼 배출한 한상균 집행부에 대해서조차 우리는 비판을 삼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노동조합 좌파의 일부인 기호2번 이호동 선본이 선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투쟁 강조가 (지도자들의 교섭을 지켜보는 것보다) 노동자들 자신의 자신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힘이 강화될 때만 상층 지도자들의 우유부단함과 투쟁 중단(노동조합의 제도권 정착과 함께 온건파뿐 아니라 좌파 지도자들도 보인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